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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평점 :
내일 있을 총선에 대비해 지금은 어디를 가도 선거 벽보가 보이고 선거 유세 방송을 많이 볼수 있다. 각 정당을 나타내는 색깔의 옷을 입고 소중한 한 표에 대해서 다시한번 고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토록 싫어했던 정치에 대해서도 여러 책과 인물 들로 인해 어느 정도 마음을 열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선거에 대해서도 호의적이고 후보들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만약에 여당의 한 젊은 국회의원과 거의 빨갱이 수준에 가까운 골수 야당 대표가 만나 사랑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둘이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에 이 내용들을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전 판사 출신에, 현직 여당인 새한국당 국회의원에, 검도장 바지 사장을 하고 있는 또라이 기질이 있는 김수영. 단 두 명 있는 진보노동당 대표 오소영이 만나는 장면들. 운명처럼 엮인 건지 우연이 겹친건지 좋지 않는 일로 만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되어 버린다. 거부할 수 없는 사과나무. 불꽃처럼 타오르듯 꽃피는 사과나무, 그 사과나무에 어느새 꽃이 피고 탐스러운 사과가 열릴 듯하다.
김수영과 오소영이 만나게 되는 설정이 끊임없이 해석된다.
정각이 되면 땡땡땡 울리는 괘종시계와 손목시계를 비롯해 그외 문학 작품들을 설명하며 둘의 만남에 대해 잭슨 폴록의 추상화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시턴 동물기』나『삼국지』, 겨우 몇일만에 사랑에 빠지고 죽음을 맞이한 『로미오와 줄리엣』등의 여러 작품을 파고 또 파고들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컸다.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던, 서로 다른 당의 대표들이 사랑에 빠져 버렸다. 얼마전에는 빨간 소화기를 든 오소영이 김수영의 머리통을 갈겨버린 사건으로 인해 온 대한민국 국민이 야유를 퍼부어대고 있었다. 국회의원 사임하려던 김수영은 그만두지도 못해버렸다. 그들의 뜨거운 마음을 나눌 곳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둘이서만 있을 곳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웃기다.
사랑에 빠져있을때, 누군가를 사랑하면 왜 그렇게 입이 근질거리는지.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스스로의 일을 가까운이에게 말하고 싶어 어쩔줄을 모른다. 이들처럼 서로 견제해야 하고 적대적인 정치 정당을 사이에 두고,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너무 힘들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자문을 구하고 싶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그 답답한 심정을 말하는 그들이 재미있었다.
바람은 모습이 없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로써 바람의 모습을 본다. 시간은 모습이 없다. 대신 시간에 흘러가는 것들로써 시간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마음이 죽어 있는 자에게는 바람도,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도 없다. 시간도, 시간에 흘러가는 것들도 없다. 그 모두를 보거나 듣게 만드는 것은 결국 마음이기 때문이다. (143페이지 중에서)
새로운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역시 즐거운 일이다.
환한 연두색 바탕에 빨간 사과가 앞면, 주황색 바탕에 덜익은 초록색 사과가 있는 표지가 뒷면.
표지와 제목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나에게 이 책은 제목과 책표지가 둘다 마음에 든 경우였다. 우리에게 확실한 열매를 맺게 해주는 듯한 표지와 색감이 예술이다.
이응준이라는 작가, 처음 접하는데 시니컬하면서도 우리의 허를 찌르는 위트가 있다.
발칙한 상상이 돋보이는 작품. 정치와 로맨틱 코미디가 만나도 이렇게 재미있을수가 있구나. 국회의원들도 사람이란 말이지. 사랑 앞에 별수 있나. 그이가 내 인생의 사과나무 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