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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책을 읽게 되면 내가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이 책 재미있다며 읽어보라고 권하게 된다. 늘 그렇게 해 오다가 아이들이 무지 좋아했던, 그래서 대여섯 번 읽었던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이 쓴 글이라 중학교 1학년생인 아들에게 먼저 권했다. 김려령 작가라고 하니 '그래요?' 하며 반갑게 책을 받아들더니 평소에는 일주일이 넘던 책읽기가 이틀만에 끝났다. 아직도 읽고 있겠거니 했더니 벌써 읽었다며 재미있고 다 읽고 났더니 마음이 따뜻했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럼 독후감을 써 보라고 했더니 싫다고 해 짧게 느낌을 써 보라며 포켓북을 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도둑질하는 해일, 두 명의 아버지를 둔 지란, 그리고 진오. 세 친구가 만드는 이야기는 따뜻했다. 라는 글을 써 놓았다.
사람의 느낌은 나이를 떠나서 비슷한가 보다. 책을 읽고 느끼는 공감대 또한 비슷한 걸 보니 더 그러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 김려령의 소설이 그렇다. 나이 먹은 우리 부부나 아직 십대인 아이들이 느끼는 바가 비슷하고 책을 읽고 따뜻함을 느끼는 바도 비슷하다. 『완득이』의 소설 한 편으로 김려령 작가는 우리 가족에게 따뜻함을 주는 작가가 되고, 그 이름 하나로 책을 집어들게 만드는 작가가 되었다.
『완득이』에서도 느낀 거지만 김려령 작가는 특별한 주인공을 우리에게 소개시켜 준다.
『완득이』에서 똥주 선생을 꼭 죽여달라며 하나님한테 기도하는 완득이처럼 그녀의 2년만의 신작 『가시고백』에서는 도둑질하는 주인공 해일이 나온다. 책의 첫머리에서 부터 자기 고백을 하는 해일의 말을 들어보라.
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욱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중 략) 나는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마음보다 손이 먼저 움직인다는 해일. 예민한 손놀림으로 습관적인 도둑질을 하는 열여덟 살의 해일은 그리 잘 살지 않는 중급반의 수학을 하는 평범한 소년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일주일간만 빌렸다는 옆자리에 앉는 지란의 전자수첩을 아주 순식간에 훔치게 된다. 맨날 바람만 피던 친아버지, 엄마와 재혼한 새아버지가 있는 지란. 구김없이 잘 사는 줄 알았던 지란도 남모르는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해일은 달걀을 부화시키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고 일기처럼 싸이에 남기고, 반 친구들도 그 사실을 알게된다. 막말하는 진우와 지란은 해일의 집으로 가 병아리로 부화시키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어느새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입안의 가시같은 고백들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고백하는 이. 고백할 대상이 있기에 할 수 있는 것들.
공부에만 온통 빠져있을 고2 아이들이 아닌 저마다 고민이 있고, 힘들게 공부하고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낭만과 우정이 있다는 걸 보여 주었다. 다른 아이들을 시기하는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닌 가깝지 않았던 아이들조차 서로 따뜻함을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좋게 보였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런 모습들은 보지 않고 어른들의 잣대를 그어놓고 그 잣대에서만 움직이는 아이들을 보려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는 감정하고 마음속 감정이 달라서 감정부터 솔직해 지자며 '감정을 설계하지 않는 자,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라는 사이비 교주 냄새가 폴폴 나는 문구를 홈페이지 대문에 써놓은 감정 설계사인 해일의 형 '해철'. 동화 '백설공주'에서의 왕비의 거울이 자기 내면의 거울이라며 남을 헐뜯는 것보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똥주 선생 같은 화학샘 '용창 느님'. 마음에 커다란 불을 안고 있는 열여덟 살의 청춘들에게 해철과 용창 느님은 이들의 조언자요,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는 자그마한 등불 같은 존재들이다. 그렇게 차가우면서도 부드럽게 열여덟 청춘들을 이끌어주고 있었다.
해일이 유정란에서 부화시켜 어린 병아리를 키운 것처럼 우리의 각박해진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