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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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확실히 심리 스릴러가 좋다.
책을 읽으려고 앉아 있을때 긴장감 때문에 어떻게 전개될까 너무도 궁금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심리 스릴러의 그 묘미를 사랑한다. 책을 읽다가 잠들면 꿈속에까지 그 주인공이 찾아와 살려달라고 말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와 잠을 좀 설쳐도 책 속에 빠져있는 시간이 좋은 것이다. 내 잠을 방해하는 그 속삭임마저 즐기는 것도 같다.


풀이 높이 자란 정원에서 한가롭게 그네를 타고 있던 어린 소녀가 있다. 빨간 머리카락이 나풀거리고 하얀 여름 원피스가 그네가 움직일때마다 펄럭였다. 한참을 그렇게 있는 동안 10살짜리 어린 소녀의 곁엔 모르는 누군가가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녀의 입을 가로막고 소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10년후, 한밤중에 장애아동보호시설의 침대에서 자고 있던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가 사라졌다. 이 소녀 또한 10살 짜리 여자아이이며 피부가 희고 눈밑에 나비모양으로 주근깨가 있는 빨간머리칼을 가진 소녀였다. 빨간머리칼을 가진 여형사 프란치스카는 시각 장애인 소녀 사라의 납치가 10년전의 사건과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10년전에 사라진 소녀 지나의 오빠인 막스와 만나게 되며 그에게서 혹시 10년전 사건에서 놓친건 없는지 묻게 되고, 여동생 지나를 자신 때문에 잃게 되었다는 죄책감이 괴로워하는 유명한 권투 선수 막스는 다시 그때의 그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동생의 실종사건과 연관성이 있다는 걸 알게된 막스는 스스로 파헤치고자 한다.


얼마전에 본 영화 <블라인드>처럼 시각 장애인은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에 촉각과 후각이 발달한다. 영화속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이코패스를 보며 공포감에 진저리를 쳤었는데, 이번 소설에서도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가 납치되고 그 납치된 상황속에서 소녀가 느끼는 공포감은 나한테까지 전이가 되었다. 어린 소녀의 공포감을 즐기는 사악한 인간의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인간의 본능인 성적인 면이야 누구나 다 가지고 있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극단적인 성향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그런 악마적인 성향을 표출해내지 않지만 이처럼 어렸을때의 공포와 억압이 범인으로하여금 그것도 아주 어린 아이를 납치할 수 밖에 없었던듯도 하다. 원초적인 공포와 자신이 사냥꾼이며 낚시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했던 잔인한 사이코패스는 사라를 극도의 공포로 몰고 갔다. 그런 사라를 지켜보는 사람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성 폭력이나 납치같은 사건들은 모르는 사람보다 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사건들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좋은게 좋은거다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런 나쁜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인간들은 인간도 아니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얼마전에 본 영화 <도가니>에서의 그 나쁜 놈들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더 분노하고 프란치스카와 막스가 사라를 얼른 찾아주기를 바랬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서 그렇게 다른 사람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렇게 어린 아이를.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까.
세상이 하도 무서우니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남자를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 자신의 가족 외에는 모르는 사람들을 절대 믿으면 안된다고 아이들에게 자꾸 주지시킨다. 친절하게 말하다가도 자신에게 공포감을 주는 남자를 보이지 않는 눈으로 보며 사라가 말했던 것처럼.
이 남자를 믿으면 안돼, 나쁜 남자야.  
나도 그렇게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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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 - Navie 241
요조 지음 / 신영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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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하는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책은 많이 봐왔어도 요리를 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요조 작가의 전작인 『반하다』에서도 레스토랑을 하는 남자 윤건이 나오더니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 현이건은 요리하는 남자다. 좋아하는 이에게 마음이 담긴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에서 그의 마음이 배어 있어서 일까. 그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내보이는 일 또한 그의 마음이 전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요조 작가의 남자 주인공은 따뜻한 남자다.
깔끔하고 자신의 일에서는 차가운 남자이지만 자신이 마음에 둔 여자한테는 한없이 잘해주는 남자. 자꾸 신경이 쓰이고 여자애 곁에 있는 남자에 대한 강한 질투심이 생기는 것.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주인공을 보는 일이 나는 왜 즐거울까. 요조 작가의 남자 주인공이 마음에 드는 순간이다.


까만 눈동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까만 머리칼, 얼굴은 하얗다 못해 투명하기까지한 예쁜 얼굴을 가진 홍대 클럽의 인기 밴드 라푼젤의 보컬 김우리.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 하는 집에서 사는 우리지만 잠 잘데 있고 그럭저럭 살아가는게 그나마 좋은, 기타 치며 노래하는게 너무나도 좋은 우리. 누군가 다가오는 것도 싫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아는 게 싫어 음반 기획사에서 러브콜이 들어와도 그냥 싫은 우리는 그렇게 싫은 아버지에게서 당뇨병 까지 물려 받았다.


당뇨가 있는 시어머니를 보아 왔기 때문에 우리의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제 꽃다운  스물두 살의 우리가 자신의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꽂는 모습은 굉장히 안타까웠다. 평생을 친구처럼 가지고 가야하는 당뇨병인데 살면서 힘들어 하지 않을까 하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동화속 이야기같은 로맨스 소설을 읽고서 말이다.


그러고보면 요조 작가의 작품속 캐릭터들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살면서 상처하나 없는 사람들이 어디있겠냐만 버릴수 없는 가족에 대한 아픔과 또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강하게 엿보인다. 아마 아버지가 싫은 사람들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매사에 시큰둥하지만 이건의 마음을 느끼고부터는 자신의 마음들을 조금씩 표현하고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우리의 모습이 참 이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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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3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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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다보니 굉장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읽다 생각해 보니 내가 요즘 일본 문학을 자주 읽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일본 문학을 한번 읽으면 계속해서 읽게 되고 또 손에 잡지 않으면 한동안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많은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다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작가들도 많고 책들도 많다.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하는데 오사와 아리마사라는 작가를 나는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원래 이 소설은 '아르바이트 탐정'시리즈의 세번째의 책으로 시리즈로써는 첫 장편소설이라고도 한다.


'사이키 인베스티게이션'이라는 탐정 사무소를 하고 있는 아버지를 도와 아르바이트로 탐정일을 하는 류는 열일곱 살의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다. 고등학생이라지만 전부터 아버지일을 도와서인지 여느 조수 못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차량 운전이면 운전, 싸움이면 싸움, 죽음에 맞써 싸우기도 하는 내가 보기엔 베테랑 탐정이다. 실력이 좀 부족해서 실력으로는 명문대에 가지 못하고 아버지 일을 도와 아버지 친구분에게 어떻게 부탁 한 번 해볼까 하는 기회주의자 이기도 하다. 학교 빠지는 건 기본이요, 아버지가 무슨 조사를 하라고 하면 거의 완벽하다시피 조사까지 해오는 주인공이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탐정일을 하기 전에 국가기관의 스파이등 안해 본 일이 없다지만 도망가다가 헬기까지 조종할 수 있는 그 옛날 TV 드라마 시리즈의 맥가이버와 비슷한 인물들이다. 하긴 뭐 탐정이니 못하는 게 없어야 모든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낯선 남국 '라일 왕국'의 왕녀가 비밀리에 일본에 오게 되어 아버지 사이키 료스케는 아들 류와 함께 왕녀 미오를 경호하게 된다. 왕녀의 아버지는 병으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왕녀는 여왕을 올리려는 이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급기야 납치까지 당하게 되자 료스케와 류는 왕녀의 나라인 라일 왕국에 까지 가 왕녀 미오를 구하려 한다. 이들의 활약과 함께 능청스러운 열일곱 살의 류의 핑크빛 마음까지 엿볼수 있다. 
 

상당히 재미있을것 같은 느낌의 제목이다. 가벼우면서도 왠지 웃길것 같을 거라고 기대를 했다. 하드 보일드 형사물 『신주쿠 상어』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가는 약간의 힘을 뺀 이 소설을 발표했다고 한다. 나와는 약간 맞지 않았던지 나는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른 분들 리뷰를 대충 보니 다들 재미있었다던데 나와는 느낌이 좀 다른 것 같다. 저마다 취향이 다를 것이라 생각되고 또 요즘의 내 기분 때문에 책에 더 집중 할수 없는 탓일수도 있다. 기분에 따라 책의 재미가 틀려지기도 하니 할 말이 없긴 하다. 미스터리 소설 이되 나에게는 약간 심심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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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다
요조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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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강희.
어줍잖은 사랑을 하다가 실패하고 엄마와 단둘이 살던 청주생활을 정리한 후 친구들과 언니가 있는 서울로 오게 된다. 엄마를 빼고 유일한 피붙이라 생각하는 언니 재희는 강희와는 너무도 다르게 느껴진다. 차갑고 정적이고 똑똑하다. 그런 언니에게도 다정한 형부가 있었다. 서울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언니의 방문으로 형부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간 곳에서 그, 차윤건을 만난다. 강희를 처음 본 윤건은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이가 그만두었다며 아르바이트 할 생각이 없냐며 묻는다. 이 남자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과 얼굴에 비친 웃음이 바람둥이처럼 생겼다. 청주에서 조그만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서울로 오게 된 강희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 온데는 없고 해서 언니 몰래 형부의 친구인 윤건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가 한마디 건넬때마다 가슴이 콩콩 뛴다.


그, 차윤건.
그는 쬐그만 강아지 강이와 함께 살며 사람이 아닌 강이에게 주절거리는 걸 좋아한다. 한식 레스트랑을 경영하는 그는 어느 날 친구 김서훈의 부부와 함께 온 처제인 강희를 보고 왠지 마음이 가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기를 권한다. 그녀를 볼때마다 왜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서른하나가 되도록 어느 누구에게 가슴떨림을 느껴 보지 못했던 그에게 강희는 늘 설레임을 준다. 이렇게 가슴이 떨려도 되는지. 그녀를 만날때마다 이렇게 가슴 떨림을 주는 거라면 이게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설레인다는 말에 사귀자고 불쑥 말하는 강희가 너무도 좋다. 강희가 너무도 좋은 그는 강희에게 1박 2일로 낚시를 가자며 '고해성사' 할게 있다고 한다.


윤건이 가진 상처.
강희가 가진 마음속의 상처. 누구나 저마다 상처 한두 개 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밝게만 보였던 강희에게도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택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윤건과 강희의 아픔은 약간 신파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신파로 그리지 않아서 좋았다. 서로의 아픔을 극복하고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질 때 그려지는 느낌표. 한 번 만진 사람이 계속해서 애정을 갖고 만져주고 사랑해 주면 죽지 않는다는 '한없이 고독한 영혼을 가진 식물' 인 유추프라카치아처럼 서로에게 유추프라카치아가 되길 원하는 두사람. 


나는 이 나이가 되어도 풋풋한 사랑이야기 좋더라.
솔직히 이혼하고 사랑하고 이런 내용을 다룬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만날때 가슴이 콩콩 뛸 정도로 설레임을 느끼는 그런 소설이 좋다. 예전에 내가 꿈꾸었던 사랑들을 소설 속에서 느끼고 싶어하는 내 소녀적 감성을 무시할 수가 없다. 나이가 먹어도 마음은 십대 소녀의 마음과도 같기 때문에 너무 강한 내용보다는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마음속에 한없이 다가오는 이런 사랑이야기가 좋다.


원래는 요조 작가의 다른 이야기를 먼저 만나려고 했는데 사정상 초기작이라는 이 작품 먼저 만나게 되었는데 느낌이 참 좋다. 강희와 윤건에게 느낌표가 마구 생겼듯이 나에게도 요조 작가의 글은 느낌표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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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한약방
서야 지음 / 가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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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의 풍경을 기억한다.
아주 오래전의 옛날로 돌아간 느낌. 그곳에서 안식을 찾았던 그런 느낌을 가졌었다. 정겨운 한옥 고유의 멋이 그대로 우러나와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고만 싶었던 그곳. 한옥마을 문화 해설사를 따라 다니며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때 너무도 재미있어서 혹시나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놓칠까봐 아이들보다 더 까치발을 들고 귀를 쫑긋거렸던 그런 기억이 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 하나의 장면이라도 놓칠까봐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그 시간들이 머릿속에 마치 영화 화면처럼 그림이 그려진다. 그곳에서 하룻밤쯤 묵으며 그곳의 정취를 느끼고자 했던게 벌써 몇 해가 지난건지 생각해보면 아련한 추억이 많은 여행길이었다. 마치 고향의 그리움을 간직한 것처럼 전주의 그 풍경들은 그렇게 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그런 소중함을 느꼈던 탓인지 전주 한옥마을을 무대로 한 책을 만났을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 그 풍경들을 그리며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의 전작인 나의 온 마음을 쏙 빠지게 만들었던 『은행나무에 걸린 장자』속에 나온 인물들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입술 끝이 한없이 올라가기도 했던 그런 기분좋은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에 대한 느낌이란게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하나의 작품만으로도 예전의 작품을 다 찾아 읽게 만들고 작품이 나올때마다 왠지 설레임을 주는 그런 작가이다. 그래서 더 기대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게 더 기분좋은 일이었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어여쁜 늘뫼.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 초등학교 수준의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처럼 뽀얀 피부와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늘뫼는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뒤 전주 한옥마을 삼거리에서 한약방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랑 살고 있다. 동네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 모두에게 늘뫼는 너무나도 예쁘고 귀여운 없어서는 안될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랑 둘도 없는 친구인 소담골 표원장님이 한의사들을 데리고 이곳 전주에 자원봉사 하러 오셨다. 이번에 오신 선생님들중에 서울사람이라 그런지 하얗고 잘생긴 이호윤 선생님을 보자 마치 폭죽이 터지는 양 가슴이 펑펑 소리를 내며  늘뫼의 마음을 붙잡는다. 이게 바로 사랑일거라며 한 눈에 이 선생님에게 반한 늘뫼는 날마다 고이고이 기르던 조랭이 오빠가 사준 토끼를 좋아한다는 이호윤 선생님의 말에 다음 날 아침에 솜래 할머니에게 토끼탕을 해달라고 해 의사 선생님들에게 바친다. 

너무도 정적이면서도 도무지 속을 알수 없을것 같은 이준.
서울에서 유명한 소담골 한의원의 침구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로서 소담골 편 원장의 오랜 지기인 강의원의 한약방에 자원봉사하러가게 된다. 서울에서 먼 전주의 한옥마을에 위치한 삼거리 한약방은 동네 할머니들의 단골이요 전주에서는 유명한 한약방이기도 하다. 그곳 강 의원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딸을 보며 이준은 남다른 생각이 든다. 지적 수준이 다소 부족하지만 선하고 까만 눈망울을 빛내며 말하는 순수한 늘뫼를 보며 이준은 마음의 시름을 잊는다.  평생 웃음이라고는 모를 그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판소리 무형문화재의 자손으로 태어나 한량무, 가야금 까지 두루두루 국악이라면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는 가야금의 대가 명. 이이가 『은행나무에 걸린 장자』에서 은목에게 가야금을 가르치던 그 가야금 선생님이 아니신가. 가끔씩 위에게 강한 질투를 유발시켰던 인물인 명이 이번엔 늘뫼의 곁에 있는 이로 나오게 된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명의 출연만으로 나는 은목과 위를 떠올렸다. 


조금 부족하지만 할아버지가 오매불망 어여쁘게 키운 손녀딸 늘뫼를 보면서 마음이 정말 많이 아팠다. 내가 만약 이런 아이를 두었다면 이 아이를 누구의 짝으로 댈 것인가. 그런 마음이 들어 늘뫼의 할아버지가 어떻게든 늘뫼의 짝을 맞춰주고 싶었던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사실적으로 보자면 어떤 부모가 늘뫼를 며느리로 보겠는가. 그런 너무도 현실적인 사실들이 가슴에 콕콕 박혔다. 그래서 많이 울기도 하고 해맑은 늘뫼를 바라보며 웃음 짓기도 했다. 이렇듯 사랑이란건 본인 의지로도 어찌할수 없는 걸꺼라 생각이 들었다.   


사랑스럽고도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늘뫼의 천진스러운 말투와 때가 묻지 않은 늘뫼를 보는 기쁨이 컸다.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그 아이를 어여쁘게 봐주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가슴속에 따뜻한 사랑을 깨달아버린 이준을 보는 내내 나는 가슴이 떨렸다. 그런 둘을 보는 마음에 아마도 애틋함이 더 컸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따뜻함을 품지 않았던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명에게도 누군가를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에도 나는 눈물을 흘렸다. 이렇듯 따뜻한 소설을 만났다.


전주 한옥마을의 풍경들이 새삼 떠올라 전주를 다시 방문하고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작가가 보았다던 그 허름한 삼거리 한약방을 볼때면 나는 그 곳에서 달걀을 삶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삶은 달걀을 건네고 싶었던 늘뫼를 떠올릴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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