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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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옛집 그리고 현재 언니와 살고 있는 집. 방 하나 너머로 알 수 없는 감정이 존재하는 공간. 하나의 공간 속에서 각자가 하고 싶은 걸 하며 분위기에 순응하게 되는 공간을 그려본다. 숨겨둔 사건 같은 건 말로 하지 않고 그냥 담아둘 뿐이다. 비록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마음. 숨겨둔 마음에 침잠하여 울음을 터트려도 그냥 바라볼 뿐이다. 어쭙잖은 위로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다시 평정심이라는 걸 갖게 되는 그런 마음들을 담았다.


 

둘에서 셋이 되면 변하는 게 있을까. 할머니와 유리, 유리와 언니, 언니와 언니의 동생. 이러한 관계에서 유리와 언니 그리고 재한 씨가 들어오면서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고 바닷가로 놀러 가기도 하는 등 관계의 변화가 온다. 셋은 불완전한 숫자인 것 같다. 짝이 맞지 않아서일까. 둘과 넷 사이의 셋. 셋이면 둘은 짝이 될 수 있지만 하나가 남는다. 남은 하나는 쓸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혀 쓸쓸하지 않다면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는 거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는 공간에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관계다.





 

나는 괜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을 하기도 하고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휴대폰을 보기도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을 해놓고서,

  누구 기다려요?

  할머니가 물어오면

  아뇨!

하고 급히 대답하곤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갈 길을 가신다. (51페이지)

 


유리는 휴무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몇 년 전에 할머니와 살았던 시골집에 간다. 지금은 다른 할머니가 사는 집. 집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집 밖을 한 바퀴 돈다.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무슨 이유로 옛집으로 향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말할 필요를 못 느끼는 듯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서도 말해주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만다.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9페이지)


 

소설의 첫 문장처럼, 괜찮다고 말해주는 소설 같다. 아픔을 드러내지 않아도, 말없이 이해와 공감을 해주는 사람들. 따로 또 같이 행동하는 이들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유리와 언니가 밤 산책할 때 굳이 나란히 걷지 않아도 괜찮다. 거리가 조금 벌어져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도 아무렇지 않다. 결국엔 함께 집에 돌아갈 것이므로 괜찮다. 함께 집으로 돌아갈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말이다.

 


그날은 딱 이 정도로 쌀쌀한 날이었다. 어제의 쌀쌀함도 내일의 쌀쌀함도 아니고 딱 오늘 정도의 쌀쌀한 온도와 바람. 나만 알 수 있는 똑같은 날씨를 만나면 나는 잠시 그 어느 날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따뜻한 밥과 국과 물과 아이스크림과 새 칫솔을 떠올린 뒤 다시 나온다. (94~95페이지)




 


재한 씨가 바다 보고 싶지 않으냐고 물어올 때 유리는 지나고 싶은 터널을 들러줄 수 있는지 묻는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터널을 지나면 언니는 쓰고 싶은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해서다. 이해와 배려가 배어난다. 긴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우리는 변하게 될까. 쓸쓸했던 감정 따위 파도를 향해 버릴 수 있을까. 따로 또 같이 어울리며 사는 게 우리 삶인가 보다.


 

아무리 외롭고 쓸쓸해도 나를 위하는 사람 때문에 오늘을 사는 것 같다. 친자매가 아니어도 복권 당첨금을 나눠줄 수 있는 사이, 살아온 이야기를 주절주절 꺼내도 조용히 듣고는 합격을 말해주는 사람 때문에 오늘을 버틸 수 있다. 쓸쓸함을 내비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이해하며 공감의 몸짓을 하는 것.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뭇국을 끓여내듯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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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염기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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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하나가 내게로 오는 계기는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작가 외에 마케팅 담당자가 작성한 어느 홍보 문장이 눈에 띄는 경우다. 제목이 직설적이고도 특이해서 관심을 가졌으나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출판 계약까지의 과정 때문이었다. 여덟 편의 원고가 도착하고 독자가 되어 읽은 후 출판사 관계자에게 원고를 보내고 출간하게 된 책이다.

 


소설은 유쾌하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건 기본이다. 작가의 말발에 휘말려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른다. 띠지에 적힌 문장 하나가 눈길을 끈다. ‘염기원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라고 한 고은주 소설가의 말이다. 이 작품 외에 7편의 작품이 출간 예정이라고 하니 새로운 작가의 탄생은 맞는 거 같다.




 


중고등학교 때 투포환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고졸 출신의 공장 노동자, 가족 중 유일하게 정규직인 채하나는 동영상에서 집 나간 오빠 얼굴을 발견했다. 사기꾼을 고발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오히려 사기꾼에게 당하고 있을 오빠가 걱정돼 그 길로 오빠를 잡으러 떠난다는 내용이다. 소설의 부제 사기꾼들의 전성시대에서 드러나듯 사기꾼에 관한 내용이며, 작가가 몸담아 왔던 IT 업계의 내용에서부터 우리가 기레기라고 부르는 기자들의 행태까지 현재를 고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오빠 새끼라고 부르지만, 남매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염려에서 우러나오는 애틋한 관계라고 봐야 한다. 때 이른 여름휴가를 내고 오빠를 구하려 태백에서 서울로 향하며 그녀가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빛난다. 경제적 상황이 전혀 다른 친구 미주와 그녀의 오빠 우주, 하나와 채강천은 한 팀을 이루듯 가깝다. 책기꾼을 고발, 성토하는 하연 언니의 말에서 오늘의 현실을 마주한다. 마냥 가볍다고 할 수 없는 내용의 소설이다.

 


오빠를 향한 하나의 염려 때문일까. 독자인 우리도 하나의 시선에서 채강천을 바라본다. 사기꾼에게 홀린 건 아닐까. 부디 별일 없어야 할 텐데, 하고 말이다. 아닐 줄 알면서도 독자는 하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오빠를 찾으러 다니면서 하나는 그가 했던 질문을 떠올린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이다. 톨스토이의 작품 제목이 떠오르는데, 삶과 죽음을 동시에 생각하다 보면 이 문장이 저절로 떠오른다. 보다 근원적인 질문, 삶과 죽음에 관한 의문인 거다. 미주는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 또는 돈 때문에 산다고 대답한다. 하나는 오빠의 생각이 궁금했다. 오빠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지 궁금했던 이유다.




 


믿음으로 살지. 손을 맞잡고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렇게 가다 보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218페이지)


 

사기꾼에 당하여 패가망신한 사람이 아버지여서일까. 사기꾼이 발붙이지 못하게 애쓰는 채강천의 마음이 드러나는 문장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미래의 희망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한 조각이라도 믿음이 남아 있어야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좋은 세상을 꿈꾸는 모범적인 답변이며 생각이다. 대부분은 타인을 위해서라기보다 자기를 위해 살아간다.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라치면 겁부터 먹을지 모른다. 타인과 나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된다. 우리가 독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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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브루클린
제임스 맥브라이드 저자, 민지현 역자 / 미래지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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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소설을 읽었을 때 우리는 하나의 작은 사회와 인간관계를 엿본다. 피부색이 다른 과거의 어느 장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한다.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며 때로는 과거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며 살아가는 게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1960년대의 브루클린. ‘커즈하우스라 불리는 주택단지의 광장, 국기 게양대에서 술 취한 남자가 다가와 총으로 젊은 남자를 쏘았다. 총을 맞은 젊은 남자는 광장 일대에서 마약을 파는 청년이다. 총을 쏜 남자는 파이브엔즈 교회 집사이며, 한때 총을 맞은 딤즈에게 야구를 가르쳤다. 유색인들이 기거하는 커즈하우스와 파이브엔즈 교회에 속한 인물들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다.




 


백인들 틈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사는 흑인들의 삶을 말하는 한편 차별과 화합에 대하여 말하는 소설이며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딤즈에게 총을 쏜 쿠피 램킨은 사람들에게 스포츠코트라 불리는 늙은 남자다. 스포츠코트는 매일 술에 취해 있지만 어느 노부인의 정원사 일을 하고 교회의 자질구레한 일을 한다. 스포츠코트가 딤즈에게 총을 쏘았고, 경찰은 그를 뒤쫓지만 교회나 주택단지 어느 누구도 스포츠코트의 행방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애매하게, 근처를 돌아다닐 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파이브엔즈의 지 자매가 앞장선다. 스스로 오물을 청소하는 자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소란스러운 사람들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모두 한통속이 되어 감추고 일을 만들어 시선을 다른 데로 향하게 한다. 스포츠코트는 죽은 아내 헤티와 이야기를 나누고 킹콩이라는 술을 즐겨 마신다. 이 소설의 원제가 ‘Deacon King Kong’인 이유다. 즉 킹콩 집사라는 건데, 스포츠코트가 왜 딤즈에게 총을 쏘았는지, 딤즈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과 마약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선착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탈리아인 엘레판테가 어떤 사연으로 묶여있는지 알아보는 즐거움이 크다.

 


백인과 유색인이라고 하여 차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한다. 파이브엔즈 교회와 선착장의 창고가 묘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곤란한 상황이 생겼을 때 도와줄 수 있었고, 그걸 잊지 않은 사람은 선물을 포함해 베푸는 삶을 산다. 핫소시지가 관리하는 주택단지의 지하실에 백인들이 먹는 고급 치즈가 배달되었던 것처럼. 누가 보냈는지 모르면서도 커즈하우스 주민들은 골고루 나눠 먹는다. 파이브엔즈 교회 자매들은 예수님의 치즈라고 부른다.

 




각박한 사람들이 사는 이 척박한 도시, 현란한 신기루에 눈먼 어리석은 인간들에겐 깨진 꿈과 허망한 약속의 동토. 하지만 세계 금융의 수도, 백인을 위한 기회의 땅. 지 자매는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이웃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들은 결국 빵부스러기 같은 존재, 굴러다니는 골무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과자 위에 드문드문 뿌려진 설탕 가루. 약속의 땅이라는 좌판 위에서 눈에 띄지 않거나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야 하는 점들. (358~359페이지)

 


그때 분명히 알았어. 우리가 백인들 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들의 잔혹함과 허위, 서로에게 하는 거짓말.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새에 그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이식되어 있었다는 것도. 남부의 삶은 정말 힘이 들었어. (370페이지)


 

흑백 갈등을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지 자매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 헤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하는 부분에서 언뜻 보여줄 뿐이다. 대신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가족과 이웃 공동체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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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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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아무튼, 현수동을 읽고 있을 때, 이 작품 출간 소식을 발견했다. 소설이 간절하게 읽고 싶었던 나는 구매목록에서 패스했다. 그러다가 한겨레신문에서 나온 기사를 읽었다. 표절과 그에 대한 창비와 관련된 기사였다. 패스했던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표절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우리가 믿었던 작가에 대한 실망감이 컸고 불편했다. 한 작가의 SNS에서 분개하는 글을 읽었지만, 어느 순간 흐지부지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외 다른 작가들은 표절에 대하여 말하기란 쉽지 않았을 거로 보였다. 작가가 출판 계약을 해지할 정도로 문제 삼은 글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신문 기자로서의 날카로움과 재치가 빛난 글이었다. 작가의 소설을 몇 권 읽은 독자로서, 명쾌한 논리로 말하는 소설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출판계와 작가, 한국문학이 가진 문제점을 직시한 글이라 흥미로웠다. 적나라하게 말하는 글에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 작가, 문제 작가네’,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돈 문제는 상당히 불편한 주제임이 분명하다. 사회생활을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작가로서는 더한 듯하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돈 이야기하는 것이 껄끄럽고, 출판사와 차기작 계약까지 걸린 문제라 난감하긴 할 터. 속으로는 묻고 싶은 게 많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인 것 같은데, 장 작가는 분명하게 말한다. 인세 정산의 문제를 칼럼에서 밝혔다. 책을 내면 시스템에 따라 순 판매량을 책정해 인세를 정산해주는 거로 알고 있었다. 정확한 판매량을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어떤 책이 몇 부 팔렸는지 몰랐다고 했다. 물론 칼럼을 쓰는 시점이고 현재는 이러한 시스템에 정착해가는 단계인 것 같다. 한국 문단과 서점, 출판계에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책을 구매할 때 책 제목과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거의 구매하긴 한다. 작가와 편집자, 마케터의 입장에서 표지를 고르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응축한 게 제목일 것이다. 제목, 표지, 내용의 합작품이 좋은 작품을 이루는 요건이고 또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소위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리라. 어떤 제목과 표지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어떤 책의 경우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감추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어떤 책이 나왔을 때, 추천사는 중요한 부분이다. 관심 없던 책도 추천사를 써준 사람 때문에 구입한 적도 있다. 좋아하는 문학평론가, 작가의 추천사가 있는 경우는 거의 구매하는 것 같다. 이것을 노리는 출판사의 마케팅일 것이다. 작가로서 추천사를 써주는 작업도 귀찮을 것으로 보인다. 재미없는 책도 읽어야 하고, 써 줄 말이 없어도 써줘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추천사 의뢰가 한두 권 오는 것도 아니고 그거야말로 고역이 아닐까. 추천사에 대한 부분도 적나라하게 밝힌다. 장강명 작가답다.

 


현재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는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한다. 웹툰과 웹소설,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화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정말 짜증 나’, 하면서 보던 드라마도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소설을 읽지 않아 드라마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작이 궁금하긴 했었다. 이 주제의 칼럼이 있는 게 당연했다.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가 영화화한다는 기사를 보고는 괜히 반가웠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월급사실주의 소설가로서 잘된 일일 거로 보였다. 읽었던 작품에 대한 견해가 영화 개봉 후 달라지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는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분야다. 책보다 더 파급효과가 크다. 82년생 김지영도가니의 효과가 그렇다.


 

글자들의 세계는 의미의 세계였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정돈된 방에서 쉬는 것처럼 편안했다. 비문학 서적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것도 이 시기였다. 글을 쓰는 이유도 바뀌었다. 이제 소설 쓰기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라기보다 작은 것이라도 의미를 붙들고 싶어서였다. 아무리 글을 써도 궁극의 의미에 이르지 못할 것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위안이라도 없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시시포스가 된 것 같은 비장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301페이지)

 


여전히 소설이 좋다. 에세이를 읽다가도 소설이 몹시 읽고 싶다. 에세이는 이제 그만, 했다가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읽게 된다.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는 명쾌한 논리로 독자가 궁금해하는 것을 콕 찍어 이야기했다. 물론 이 책이 예비작가들을 위했다고 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좋은책이었다. 이제 그동안 읽지 않았던 작가의 에세이와 놓쳤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책은 책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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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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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가슴 한구석에 블랙홀 같은 마음 하나쯤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늪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곳. 우리 스스로 그 늪에 갇혀 침잠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갇히기도 한다. 언젠가 싱크홀에 빨려 들어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사 현장이면 위험표지판을 세워놓을 텐데 확인할 틈도 없이 발생한 일이었다. 만약, 돌을 던졌을 때 공중에서 부유하다가 빨려 들어간 것처럼 누군가가 사라졌다면 이건 블랙홀일까. 우주 너머로 사라진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괴롭지 않을까. 외롭지 않을까.

 


블랙홀 언저리에서 각자의 삶에 고달픈 사람들의 이야기다. 희영과 필희, 은정은 은수리의 삼총사다. 필희의 엄마와 은정의 아빠가 도망친 이후 세 사람에게도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비밀을 이야기할 때 주로 찾았던 저수지에서 의자처럼 생긴 바위 뒤로 필희가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 이후의 삶을 나타내는 소설이다.




 


50대의 나이가 된 희영과 엄마가 죽으면서 혼자가 된 미정, 수학 여행비가 필요하다는 이든에게 슈퍼에서 알바를 제안한 순옥, 사라진 언니 필희를 찾기 위해 미확인 홀을 찾아다니는 필성, 굴착기 기사 정식, 아파트 건너편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아내를 둔 찬영의 삶은 이름처럼 빛나기만 할까. 인터넷 쇼핑몰을 하다가 사기를 당한 혜윤, 다시 은수리로 돌아온 은정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을 본다. 어쩌면 연작 단편 형식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각자의 이야기에서 외로운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마다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외로움의 불씨들이 하나씩 피어오른다.

 


아내가 낸 구멍을 등으로 막고 있다는 생각이 문제인 것 같아 온실을 지킨다는 상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봤지만, 되지 않았다. 따뜻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으로 상상의 내용을 바꾸는 것도 되지 않았다. 찬영의 상상 속에선 늘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나 데일 듯 뜨거운 바람만 불었다. 찬영은 안절부절 못하며 온실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209페이지)

 


찬영은 아내 희영이 마음속에 저수지를 품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가 우울증이었던 이유로 아내 또한 그 늪에 갇히자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무관심으로 대하는 게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느끼기에 어쩐지 가족으로서 잘못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희영이 저녁마다 망원경을 들고 건너편 아파트 발코니를 쳐다보는 일.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걸. 그는 알지 못한다. 그저 아내의 시린 마음이 자기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몰랐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찾는 사람이 희영이었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앞장서 해결하려고 했다. 오지랖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그것. 반면, 필성은 필희 언니가 블랙홀로 사라졌을 거라 여기고 미확인 홀을 찾는 공무원이 되었다. 필희 언니와 친구였던 희영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블랙홀이라는 메모를 건네 희영을 번민하게 만든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가기는 하지만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순옥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다른 여자의 남편과 달아났다. 몇 년 후, 그 남자는 다시 돌아갔지만 순옥이 낳은 아이와 함께 버림을 받았다. 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연락처를 남겼지만, 볼 수 없었다. 중학생인 동네 소녀 이든이 수학 여행비를 마련한다며 노래방 알바를 시작했다가 잘리자 슈퍼에서 일하게 한다. 순옥은 버리고 온 딸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든 또래였던 자기의 딸들에게 속죄하듯 했다. 더 이상 이든을 잃고 싶지 않았다.


 

미확인 홀은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겠다. 홀 경계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사람들. 좀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삶일지도 모른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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