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문학과지성 시인선 574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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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는 건 언어의 사유를 품에 안는 것. 시를 읽음으로써 우리 안의 마음과 대화하는 일. 마음속에 침잠하는 일.

 


그저 시가 좋아서 읽는다. 한 편 두 편 읽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감정의 파도를 겪는다. 깊이 생각하여 이해하고자 다가가는 시도를 하게 된다. 정현종의 시는 그렇게 우리 마음속으로 다가와 똬리를 틀 듯 머물렀다.

 


출퇴근길에 일주일 동안 읽었다. 그럼에도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그저 읽었다고 해야겠다. 최승희 교수가 담근 살구 술을 생각해보고 정성을 다해 빚은 술을 마시며 살구나무를 바라보는 시인의 감성을 헤아려본다.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없었을 것이다. 눈에 띄는 게 살구나무였을 것이다. 내후년쯤 살구나무에 열매가 열리면 술을 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약간 불그스름한 빛을 띤 살구 술에서 우리의 노고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했다.

섬기려면 살구나무 같은 걸 섬기는 게

그래도 그중 나은 거라.

매년 가을 떨어진 나뭇잎을 모아

그 나무 밑을 파고 묻어

거름이 되게 한다고 하니 말인데,

아침저녁으로

그 살구나무에 절을 하는 게 좋겠다.

경배할 만한 건 필경

나무 정도가 아닐까 믿어 의심치 않는바…… (8~9페이지, 살구나무에 대한 경배중에서)

 


종이 신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지 좀 되었다. 신문의 역할과 중요성을 일깨우는 시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신문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들어있는 시다.

 


신문들은

그런 기관이어야 하리.

우리 사는 데가 살 만한 곳이 되기를 바라

생각과 느낌이 지극한

간곡한 마음들이 모이는

자리이어야 하리.

아침놀이어야 하리. (17~18페이지, 아침놀중에서)


 

신문의 날에 부쳐 쓴 시다. 신문이란 자고로 아침놀처럼 세상을 들어 올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편 가르기가 아닌 진실만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 오전, 친구들과 함께 이른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날씨가 추워 얼마 가지 못하고 돌아오긴 했으나 걷는 길의 공기는 상쾌했다. 길을 걷다 보면 느끼는 감정들. 두세 명이 걷는 길과 혼자 걷는 길은 그 차이가 크다. 오롯이 혼자 있는 광경은 처음 맞이하는 것처럼 설레기까지 한다. 그 길에서 유연한 사고를 한다. 갇혀 있지 않고, 열린 마음을 갖는 것. 산책의 효과가 아닐까.

 


이 단순한 활동은 얼마나 풍부한가.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듯한 시간이라니!

사물사물하는 보석,

이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세상의 시간이 아닌 때를

고해가 아닌 데를 걸어가느니. (42페이지, 산책중에서)


 

최근에 읽었던 소설에서 길을 걷는 것 자체를 철학하는 거라고 표현했다. 산책을 한다는 건 나를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는 일. 저 너머로 가는 나를 붙잡는 일.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일. 이제껏 느껴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펼칠 수도 있는 일. 깊이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책의 뒤편에 실린 시를 찾아서라는 산문은 시의 예술성과 우리가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시는 예술이며,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므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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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직업 - 20년 차 신문기자의 읽고 쓰는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곽아람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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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타지역으로 이사했을 때 느꼈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갑자기 시작된 육아에 적응할 수 없었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는 감옥에 가까웠다. 그 생활을 삼사 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좀 더 빨리 책을 읽을 걸 하고 후회했다. 물론 아이들 위주의 책은 읽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지 못했다는 뜻이다. 다시 직장을 나가면서 책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블로그에 적기 시작했다. 다양한 블로그를 탐색하던 중 만났던 게 곽아람 작가가 운영하던 블로그였다. 작가가 쓴 글에 감동을 받았다. 특히 그림에 관련된 글에 감탄했고, 자주 들여다보았다.


 

나만 아는 작가와의 인연이 좋았다. 작가가 펴낸 책을 꽤 읽었고, 신간 소식에 늘 귀 기울인다. 이번 책은 작가가 20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느끼는 쓰는 직업에 대하여 말한다. 작가의 글을 쓰는 직업과 주말에 쓰는 글로 인해 20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우리도 매일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린다. 어떤 사람들은 요리를 배우고 어떤 사람들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학원을 다닌다. 나는 요가를 하고 책을 읽었다. 퇴근 후 읽는 책으로 인해 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일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의 감정이나 문체가 들어가지 않은 건조한 글이 신문의 역할이다. 최대한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 전달할 것을 배우는 신문기자의 일을 좀 더 다르게 보게 된 거 같다. 신문기자라는 직업인이 가져야 할 냉정함이 있어야 하는데, 사적인 작가의 글은 무척 다정했다. 신문기자라는 직업과 잘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데, 이 말은 자주 듣는 모양이었다. 아마 여성적인 외모와 감성적인 글 때문일 것이다. 자기의 문체를 버리고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야 하는, 나를 버리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 기자도 녹록치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직장인에게 월요일은 맞이하고 싶지 않은 요일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주일에 한 번은 당직을 서고 토요일 출판팀을 이끄는 작가는 금요일까지 마감을 마쳐야 토요일 신문을 낼 수 있다. 월요일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는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있는 나도 일요일 저녁부터 부담스러워지니 모든 직장인의 애환이 아닐까.

 


토요일 책 관련 기사를 좋아하여 오랫동안 보수신문을 구독해왔다. 인터넷 기사가 일반화되고 신문을 읽지 않은 기간이 길어지자 구독 해지를 했었다. 정치면을 잘 보지 않기 때문에 관심 없었는데 보수신문을 읽는다고 주변에서 꽤 많은 말을 들었었다. 저자도 보수 신문인 조선일보의 기자로 20년을 근무하고 있다. 기사를 올렸을 때 정치적 성향이 다른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의 댓글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취재를 할 때마다 자문한다. 이 일은 옳은가? 기사를 쓸 때마다 생각한다. 이 글은 공정한가? 나 자신이나 회사의 이익보다 공익을, 옳고 그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직업을 가진 것에 때로 감사하다. (179페이지)

 


문화부 출판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의 직업의식을 제대로 알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오르한 파묵을 인터뷰하며 찍었던 사진이 표지에 사용됐고, 빨간 머리 앤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번역해 소개했던 역자 신지식 선생님을 향한 그리움, 키라 나이틀리를 인터뷰하며 느꼈던 감정을 말했다.




 


해마다 10월이면 출판계는 들썩인다. 노벨문학상을 누가 탈 것인가 인데, 늘 예상을 벗어난다. 노벨문학상에 관한 글은 직업인으로서 노벨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알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조이스 캐럴 오츠보다는 덜 유명한 사람일 것, 출판 자료가 적당한 맞춤형 수상자가 받기를 바랐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작가의 수상. 노벨문학상 특집을 준비해야 하는 노고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자들의 진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책을 꺼내 읽는다. 출퇴근 시 읽으려고 가방에 책 한 권은 꼭 가지고 다니고,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책을 읽어야 한다. 나를 버티게 하는 책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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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3-01-09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은근 다작이네요 .
저도 작가의 그림책 좋아했어서 새책소식이 반갑긴합니다. 공부의 위로는 좀 별로였는데 이책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4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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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태어나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여러 매체에서 나오는 성차별적인 언어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직장생활 20년 차가 넘어가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차별적인 발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 속 인물 스스로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하고 있다. 1983년생인 주인공은 억압과 불평등의 사회에서 자랐다. 몹시 마른 몸이어서 자신을 숨기듯 해야 했다. 너무 마른 몸을 가진 는 또래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반에서 가장 뚱뚱했던 아이도 괴롭힘을 당했다. 그 애와 놀면서 이중적인 마음을 가졌는데 이게 사람의 본심이 아닐까 싶다. ‘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놀았다.





 

두 여성의 화자로 된 소설로 1983년생인 1959년생인 엄마 미복 씨의 고백이 나타나는데 다르면서도 약자인 여성의 입장이 대두된다. 대학 때 사귀던 남자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웨딩 플래너로 일하면서 보아왔던 신부들, 이직한 직장에서 상사의 성희롱적인 발언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했던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 짓궂은 농담처럼 여겼다는 게 화가 날 정도다.

 


미복 씨의 경우는 마을에 사는 여자 사냥꾼과 길쭉한 몸을 가져 여러 사람으로부터 몸이 예쁘다는 찬탄을 들었다. 1959년생인 미복 씨가 헤쳐 나가야 할 세상은 더 고달팠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추행을 당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다. 봉제 공장이나 술 시중을 들었던 일을 했지만,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과거의 여성이 걸어왔던 길이었다.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하고 싶은 심리라고 해야 할까. 미복 씨가 이혼하겠다는 딸에게 건넨 말은 녹록치 않은 사회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지만 현실을 짚어주는 말이기도 하다.

 


저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들 중에서 유독 이라는 단어에 귀가 커졌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딸로 보지 않고 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몸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뒤 이혼을 감행했습니다.

-  나는 내 몸이 아니라 그냥 나야. 나는 내 몸으로 말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행하는 것으로 말해지는 존재야. (65페이지)

 


주인공 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응원하는 바다. 하지만 내 딸이 같은 이유로 이혼하겠다고 하면 나도 미복 씨처럼 말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넘을 수 없는 벽과 마주한 느낌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딸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이며, 딸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딸은 내가 살아왔던 사회적 차별을 겪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직도 어느 곳에서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게 안타깝다.

 





저마다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와 친하게 지냈던 영석 언니나 결혼을 앞둔 소연 언니도 자기만의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는 이제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언어로 성희롱하는 상사에게 맥주를 끼얹고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거리를 걷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각자의 삶을 사는 거라 이해했다.

 


이런 책들이 나올 때마다 우리의 의식을 높이고 사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젊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각해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작은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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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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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소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소설가가 보고 느끼는 감정들이 소설의 형태로 나타나기에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는 것 같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 글이 소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읽다 보니, 작가의 에세이가 정말 좋았다.

 


단독 주택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그곳에서 거주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편법으로 생각한 게 농막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서 지내보니 너무 좋아 주말마다 다녔다.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어 점점 좋아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작가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오래된 주택가가 주는 느낌이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옛정서가 남아있는 장소가 주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아마 그걸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서울의 외곽 오래되고 허름한 주택을 그려 본다. 골목이 좁아 차가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을버스도 없는 낙후된 주택에서 글을 쓰고 계절을 실감하게 되는 장소. 생활하는데 있어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기꺼이 감수하게 되는 곳. 글을 쓰는 노동자로서 피할 수 없는 허리 통증을 이기기 위해 걷기 위해 산책을 나서는 사람. 그가 백수린 작가다. 최근의 에세이에서 요리하는 작가로 다가오더니 이번 에세이에서는 반려견과 오래된 주택에서 기거하는 작가를 상상하게 된다.

 


노견이 된 봉봉이를 잃고 슬퍼하는 작가. 아직 반려묘를 저세상으로 보내지 않아 그 감정에 백 퍼센트 공감한다고 여기기는 어렵겠지만, 반려견을 잃은 친구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는 있다. 친구는 반려견을 보내고 1년 가까이 울면서 보냈다. 경험해보지 않아 유달리 심하다고 여기기는 했으나 그건 그 사람이 느끼는 고유한 감정인 거다.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봉봉을 사랑하게 된 이후 나는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조금 더 애틋한 눈을 바라보게 됐다. 나의 개가 소중한 만큼, 다른 모든 존재들 또한 그러할 것이므로 사랑은 고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곳을 향해 흐르는 강물일 것이므로. 끝내 모두를 살게 하는 것이므로. (151페이지)


 

내 의지는 아니었으나, 딸아이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 딸이 직장 때문에 멀리 떠난 후, 고양이 집사는 내 차지가 되었다. 딸아이만 졸졸 따라다닌 고양이가 의지할 데가 없어 나한테 딱 달라붙은 모양새였다. 자기도 누군가한테 의지하고 싶었으리라. 지금은 안방 침대의 발치에서 떠나지 않는다. 고양이를 키우며 길고양이들에게도 관심을 주었으며 안쓰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비로소 동물을 사랑하는 감정을 배운 것 같다. 고양이를 잃는다는 생각만 해도 울음을 나올 것처럼 푹 빠져 지낸다. 그러므로 작가의 봉봉이에 관한 애틋한 감정이 나에게까지 전이되었을 것이다.

 


낡은 주택에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담았다. 어느 때는 불편한 이웃 때문에 힘들고, 어떤 때는 살갑게 다가와 주는 아주머니 때문에 살만한 곳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유달리 추운 겨울에 옥상의 수도가 터져 골목길을 얼음장으로 만드는가 하면, 터진 수도를 봐주는 이웃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작가가 퍽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대하는 것을 보고 느꼈다. 일부러 모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자 했고, 일부러 주민센터에 전화해서 알아보는 걸 귀찮아하지 않았다. 또 살구를 파는 할머니에게는 어떻게 대했나. 마음이 밟혀 다시 돌아와 묻는 작가를 그려 본다.


 

엄마 산소에 갔다가 어렸을 적 살았던 마을을 돌아보았다. 빈터가 된 곳임에도 그 장소에서 머뭇거리며 오래전 일들이 떠올랐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곳이 되었지만 유년시절을 겪은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작가 또한 아빠의 고향을 다녀온 적이 있었기에 자기가 살고 집에 살았다는 여성들을 집에 들였다. 기억의 파편은 이처럼 오래가는 것이다. 과거의 흔적이 사라졌음에도 기억에 의존하여 그때의 감정을 떠올릴 것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간직한 옛집을 향한 그리움을 알기에 기꺼이 문을 열었을 작가의 마음에 다가가 본다.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가 되고 현재는 또 미래의 시간을 예견할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일이 곧 미래를 산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을 터득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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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3-01-01 2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이 너무 좋아 책도 작가도 궁금해져버렸어요.
 
진지하면 반칙이다 - 나보다 더 외로운 나에게
류근 지음 / 해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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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새로운 알림 글이 오면 아주 가끔씩 들여다보는데, 정치하는 친구를 가장 먼저, 그다음에 류근 시인의 페이지에서 한두 꼭지씩 글을 읽는다.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정도다. 신간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구매해 읽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전에 읽었던 산문과는 달랐다. 류근 시인 글 같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까. 유연해진 글들, 어린 시절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일화가 많았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들.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 때, 어머니가 건넨 한마디에 위로받던 시절의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주무시라고 촛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불이 났던 때에도 아들의 안부를 먼저 묻던 어머니를 기억하는 시인에게서 그리움을 엿본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와 박힌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공감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는 것일 수도 있다.


 

배낭의 무게가 줄어들고 걸음의 속도가 늦춰지면서 비로소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줄어들고 늦춰지는 만큼 여행은 나를 받아들였다.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을 믿으며 살아왔는지, 얼마나 과잉한 것들에 의지하면서 살아왔는지 깨닫는 여정이었다. 나는 점점 더 남에게 주거나 버리는 데 익숙해졌다. 행색이 거지꼴에 가까워질수록 내 표정은 맑아졌다. 가난이 주는 평화와 기쁨. (84페이지)

 


25년 전 인도, 배낭 속에 소주 한 박스, 라면 한 박스를 채우고 이등병의 속도로 걸었던 처음과 달리 짐의 무게가 가벼워질수록 비로소 여행다운 여행이 시작되었던 것을 말하는 부분이다. 우리의 현재는 어떠한가. 좀처럼 짐을 내려놓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바로 앞에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앞을 향해 달린다. 짐의 무게에 짓눌려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바쁜 연말, 출퇴근 시간에 꺼내어 조금씩 읽었던 책인데 금세 읽었다. 20181월부터 4년 여 동안 페이스북에서 사랑받았던 글 중 130여 편을 엄선하여 28컷의 일러스트와 함께 펴낸 산문집이다. 산문집에서 우리는 들비와 함께 산책하거나 아픈 들비를 돌보는 시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따뜻함이 배어있는 깊이 있는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별로 친하지 않았던 저자의 아버지가 생각나는 비 내리는 날의 풍경은 어쩐지 애잔하다. 나이가 들어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깨닫는 일. 비를 바라보며 들비와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라면을 끓이는 저자를 그려본다.


 

혼자서 술을 마시면 푸른 술잔에도 있고, 내 손등 위에도 있고, 창밖의 고단한 빗방울에도 있고, 늙은 가수의 목소리에도 있고, 발등에 툭 떨어진 눈물에도 있고, 천천히 오는 가을과 겨울에도 있네. 이름만 봐도 울고 싶어지는, 이름만 봐도 서둘러 정거장에 나아가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이름이 있다. 당신의 오래고 먼 이름이 있다. (139페이지)

 


외로움과 슬픔이 짙게 배어있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날것의 감정이 살아 있어 감정들에 침잠하게 된다. 위로와 공감의 언어에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시인의 깊은 사유는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준다. 가벼움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그처럼 진지하기 그지없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다시, 류근의 문장들을 음미한다. 비속어가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가벼운 농담 같다. 우리의 오늘을 시적인 문장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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