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뇌과학 -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가
리사 제노바 지음, 윤승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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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에는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데 탁월하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다. 분명히 아는 인물이 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입에서 맴돌기만 할 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검색 사이트에 연관어를 검색해보고 찾는 과정을 겪는다.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내 이야기라 여기면서 책을 읽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다만, 알츠하이머를 늦출 수 있다면, 이왕이면 죽을 때까지 온전한 기억을 가지고 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리사 제노바가 쓴 소설 스틸 앨리스의 동명 영화에서 주인공은 차라리 암에 걸리고 말지 기억을 잃어간다는 건 너무 슬프다고 했었다. 물론 정확한 대사는 아니다.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온전한 존재가 아닌 것만 같다. 곁에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슬프다. 그토록 총명하던 분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은 안타깝다. 그게 슬프다. 우리도 얼마 뒤 똑같은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노인이 되었을 때 우리의 반 이상이 알츠하이머라고 한다. 어느 시기가 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다. 우리라고 피해 갈 수 없다.

 


뇌는 지루하고 익숙한 것들은 지독하게 잘 잊어버리지만 의미 있고, 감정을 자극하고, 예측을 벗어나는 경험들은 기가 막히게 기억한다. 기억에 남는 저녁 식사가 있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모두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기억들은 점점 희미해지다가 사라진다. (91페이지)

 


의미 있는 일이 아닌 일상적인 일이라면 대부분 그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감정을 자극하는 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무엇이든 맥락이 중요하다. 기억에 관련된 용어를 살펴보자. 일화기억은 내 인생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기억이며, 섬광기억은 충격적이고 의미 있으면서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경험들에 대한 기억이다. 어제 뭐 먹었는지도 기억하기 힘든 요즘 일화기억들을 엮어 자서전적 기억을 만들어도 좋겠다. 일상에서 벗어나 안 가본 도시로 휴가를 떠나는 방법이 있을 거고, 모바일 기기를 끄고 세상을 바라보는 법,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지 스스로와 소통하기, 반복하여 기능을 강화하고, 오늘 경험한 일을 일기로 남기는 방법이 있다. SNS를 활용하여 기록을 남기는 방법도 있다. 특별한 일이 있었을 때 느낌을 간단하게 적어 사진과 함께 올렸던 페이지를 들여다보면 그때의 감정과 기억이 떠오르는 걸 느낄 수 있다. 즉 뇌에 저장한 정보를 유지하고 싶다면 계속 활성화하면 된다. 정보를 자꾸 되뇌고, 회상하고 되뇌는 것을 반복하는 거다.

 


일 년 정도 직장을 쉴 때 휴대폰에 시간대별로 알람을 설정하여 사용했다. 미래기억을 위한 단서 남기기다. 어마어마한 고가의 첼로를 깜박하고 택시 트렁크에서 꺼내지 않고 내렸던 요요마처럼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갈 때 잊지 않으려고 현관에 두었던 물건이 쌓여가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한편으로는 웃기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거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잊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이십 대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심하게 된다.

 


시간의 무게를 피할 수는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노화로 인한 기억저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건강을 위해 누구나 강조하는 것. 지중해식 식단을 실천하고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매일 명상하고, 매일 여덟 시간씩 수면을 취한다면 기억 나이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잠이야말로 진정한 슈퍼히어로인 셈이다! (226페이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장 두려운 게 알츠하이머가 아닐까. 고혈압, 비만. 당뇨, 흡연,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등은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뿐만 아니라 만성적 수면 부족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위험 요소다. 알츠하이머병에 좋은 운동은 수면 부족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니 더할 나위 없다. 뇌에 인지자극을 주고 싶다면 운동하고, 새 친구를 사귀고, 안 가본 도시를 여행하는 것이다.

 


낯선 장소를 여행하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잠이 기억을 좋게 한다는 것, 알츠하이머병에 좋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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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과 나의 사막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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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보던 로봇이 우리 실생활에 처음부터 있던 존재처럼 살아갈 날이 머잖았을까. 로봇이 나오는 소설을 읽어도 어쩐지 근 미래의 우리 모습인 것만 같다. 우리 곁에서 숨 쉬고 먹고 시간을 보내는, 어쩌면 없어서는 안 될 단 하나의 친구인 것만 같다.

 


멸망한 세계, 사막에서 함께 살던 인간, 랑이 죽었다. 다른 인간들보다 이른 나이에, 랑의 엄마 조가 죽은 나이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랑을 묻고 함께 떠나자던 지카의 권유를 뒤로하고 랑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곳으로 떠났다. 과거로 갈 수 있다는 땅이었다. 그 여정에서 고고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아는 자 버진,

푸른 스카프를 두른 인간의 시체,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데도 주인을 위해 트랙터에 부딪치며 길을 만드는 로봇 알아이아이,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외계인 살리.

 


전쟁 시대에 만들어진 고고는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지구를 망하게 하는, 즉 인간을 죽이기 위한 로봇이었을까 봐 두렵다. 과거를 아는 자, 과거의 땅을 향해 고고는 거친 사막을 가로지른다. 삶의 목적을 찾는 동시에 고고의 그리움에 대한 여정이 펼쳐진다. 로봇에게 마음이 없다고 여겼지만, 불쑥 떠오르는 랑의 영상이 그를 살아있게 한다. 사막에 파묻혀져 있던 그를 발견해 고쳐서 고고라는 이름을 주었던 랑. 랑의 엄마 조가 죽고 묻은 자리에 물을 뿌려주며 눈물을 머금던 랑. 랑은 그것을 마음이라고 했고,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건 그리움이라고 했다.


 

너도 감정이 있다는 말처럼 들려. 너는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처럼 느껴져.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132페이지)

 

감정은 교류야. 흐르는 거야. 옮겨지는 거고, 오해하는 거야. (133페이지)

 


고고는 랑이 그리운 것이다. 랑과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게 슬픈 것이다. 오로지 랑을 추억하며 사막을 건넜다. 마치 희망의 땅이 저 너머에 있는 것처럼 나아갔다. 애도의 여행일망정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는 로봇 알아이아이에게 팔 하나를 떼어줄 수 있었던 것도 랑에게 배운 것이었다. 랑에게 배운 그대로 애틋함을 느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측은함, 안타까움.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도 랑에게 배웠다.


 

삶의 목적을 잃었다고 해서 죽을 수는 없다. 가르친 대로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랑이 주었던 마음과 감정에 대하여 생각하고 삶의 목적이 다른 데 있지 않음을 느낀다. 랑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시간이 곧 랑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자기의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생각하던 바대로 움직이니 과거의 땅을 아는 살리를 만날 수 있었다.

 




랑을 다시 만나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만난 사막에 대해. 너를 만나기 위해 걸어온 나의 사막에 대해. 그렇게 늙어가는 랑의 곁에서, 조금씩 망가져 가는 내 몸으로 이야기 하겠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랑과 시간이 맞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이번에는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랑을 떠올리며,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간다.

간절하게. (144페이지)


 

살리의 모습에서 어린 왕자를 떠올렸다. 마차부자리라고 부르는 별에서 온 살리, 황금빛 홍채와 머리칼을 가졌으며 아직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살리. 사막에서 혼자 나무를 친구 삼아 지냈던 그는 고고를 보자마자 쉴새 없이 말을 늘어놓았던 살리였다. 인간처럼 생긴 로봇을 보며 친구를 기다렸던 감정을 공유했다. 친구를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을 것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듯하다.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끼고 의지가 되는 듯하다. 그게 꼭 인간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로봇이든 내 마음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게 친구인 것이다. 상실의 아픔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듯하다. 상실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고고를 보며 우리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가 친구라고 여기는 것에 대하여,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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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서정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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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의 그림 몇 편과 함께 화가의 삶을 짧게 접했었다. 화가의 탄생부터 사고가 일어난 후, 의사에서 진로를 바꾸어 화가의 길로 들어선 이야기에서,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작품을 보며 삶이 곧 작품의 모토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프리다 칼로의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화가로서의 발자취가 곧 작품이 된 것을 마주했다.

 


그림이 주는 위로가 크다. 우리가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듯, 작가 또한 마음속 깊은 곳의 울분과 슬픔을 그림으로 나타내며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스스로 그림에 파고들며 삶의 고통을 표현했고, 그림 작업이 곧 그녀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프리다 칼로가 탄 버스의 사고로 쇠 파이프가 그녀의 가슴을 뚫고 골반을 통해 허벅지로 나왔다. 3개월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던 그녀는 사고의 순간을 극복하고 그 순간을 그리기로 했다. 사고 이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내가 접했던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강렬했다. 제대로 된 지식이 없어 독특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만 여겼던 듯하다. 물론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바람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한 화가의 삶을 망라하는 작품과 그것을 설명하는 글 때문에 프리다 칼로를 제대로 알게 된 거 같다. 깊이 있게 안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온전한 지식이 중요한 법이다.

 




프리다 칼로는 그림 속에 모든 것을 표현했다. 작품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을 보면 남편 디에고가 잘나가는 화가답게 거대하게, 프리다는 그 옆에 수줍은 모습으로 작게 표현했다. 물론 디에고의 실제 체형이 크다는 것은 사진을 통해 살펴보았다. 프리다 칼로는 지혜의 눈을 자주 그렸다. 특히 디에고의 이마에 두 눈보다 더 큰 지혜의 눈을 그려 남편을 향한 사랑의 크기를 나타냈다.


 

남편을 사랑했던 프리다는 끊임없는 바람기 때문에 이혼했다가 다시 재혼하는 과정을 겪으며 남편을 향한 사랑은 변함없지만, 자신이 품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자화상에서 프리다는 피를 흘리거나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그렸다. 그림에서나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할 당시 프리다는 남편의 바람기를 알고 있었다. 남편보다 스무 살 이상 어렸던 그녀는 변하게 만들 줄 알았다.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없는 법. 프리다와 가장 가까웠던 여동생과도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에 큰 상처를 받았다.




 


4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사고가 났을 때를 그리기 시작했던 작품부터 남자친구에게 주려고 그렸던 그림, 친구, 의사에게 주려던 자화상, 아이를 낳고 싶은 애틋한 마음, 아이를 유산했던 슬픔을,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작품 등은 화가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안타까웠다. 작가의 복잡한 심경은 그림에 담기기 마련이다. 자화상의 표정부터 다른 법이다. 주변에 놓인 물체 하나에도 마음이 깃들어 있다. 수줍은 미소, 어두운 커튼, 검푸른 바다, 눈물을 흘리는 화가. 피가 낭자한 모습까지 그대로 드러난다.

 


서정욱 미술토크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자세한 그림 설명으로 인하여 그림에 더 집중하는 효과를 주었다. 프리다 칼로의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느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생각났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여러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던 프리다 칼로는 신체의 고통 또한 만만치 않았다. 평생 자화상 등을 그렸지만 죽기 8일 전에 그린 그림은 정물화다. 여러 개의 수박이 있는 그림으로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라고 적었다. 프리다가 생각했던 인생의 한 페이지, 희망에 찬 미래에 대한 꿈이 사그라들 즈음, 먹음직스러운 수박은 그녀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비추는 것만 같다. 우리의 인생도,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마지막은 환한 빛으로 가득 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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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 시대 -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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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은 회복력 시대는 지구의 기후 위기에 대한 명료한 해답을 내놓는다. 인간이 지배하는 지구라고 여겼지만, 인간은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라는 것을. 대멸종을 촉발할 수도 있는 지구에서 생존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적응력이 뛰어난 인간종의 특성을 살려 회복력의 시대로 가는 것이다. 효율성을 추구했던 것에서 회복력을 우선시해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토양은 식물을 고정하고 성장시키며 물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토양은 작은 생태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생명이 가득 차 있다. 토양 침식의 원인이 되는 큰 해를 끼치는 것은 삼림 벌채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토양을 황폐화하는 것 중 석유화학 농법뿐만 아니라 또 다른 원인은 가축 방목으로 소 방목을 위해 열대우림이 불태워지고 있다.

 


가장 엄격한 생리학적 의미에서 우리가 생물의 한 종으로서 진정 누구인가를 깨닫는 일은 생명이 있는 진화하는 지구로 돌아가는 새로운 길로 우리를 인도할 해방의 구원인 셈이다. (174페이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표현은 지구가 야생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거다. 그동안 기후변화 때문에, 지구에 위기가 닥쳤다는 것은 알았지만 심각하게 자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다른 나라의 일이었다고 여겼던 바이러스가 우리 곁에서 웅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호우나 산불, 가뭄, 허리케인이 끊이질 않는다. 내가 거주하는 도시에서는 가뭄이 심해 내년부터 제한급수를 하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댐의 30%밖에 차지 않은 물의 양을 보고 놀랐다. 이 모두가 기후변화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수권이라고 하면 바다와 호수, , 지하 대수층은 물론 대기 중의 구름과 안개 등 지구상의 모든 물을 포함한다. 바다는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이 항해하거나 낚시할 수 있는 개방된 영역으로 여겨졌다. 바다를 통한 지구의 공유 해양을 둘러싼 싸움은 끊이질 않는다.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싸웠던 이유 중의 하나가 화석연료를 채취할 수 있는 권리를 얻고자 했다. 중국과 타이완, 일본, 한국, 스페인 등 다섯 나라는 공해 어획량으로 큰 수익을 차지했다. 상수와 위생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는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더욱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할 것이다. 지구의 일부 지역은 물 순환의 극적인 변화로 생태계가 붕괴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며 대량 이주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생명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물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회복력 관행을 도입하고 수자원 체제를 보호하는 방법을 철저하게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격변하는 기후에 대한 적응성은 분명 우리의 강점이다. 우리를 지구상에서 가장 회복력이 뛰어난 생물 종으로 만든 것도 적응성이다. 아마도 이것은 회복력 시대에 들어서는 우리가 열정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한 고무적인 소식이다. (234페이지)




 

회복력 시대는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의 집중 매장지에 대한 통제권에 집착하는 군사력 중심의 지정학에서 우리 인류를 해방해 대륙과 바다, 시간대를 가로지르는 디지털 판게아에서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의 공유를 장려하는 생물권 정치의 새로운 시대로 안내한다. (253페이지)

 


과학계에서는 지구의 절반을 야생으로 복원한다는 사명하에 생태 지역 거버넌스의 맥락과 일정을 수립했다. 생명체의 대멸종을 막으려면 지구의 평균온도가 섭씨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지구온난화 배출량을 제한해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했다. 지구 평균온도의 1.5도 상승은 생태계의 붕괴와 생물 종의 대규모 멸종을 피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울러 기후변화는 대비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 당장 맞서 싸우고 적응해야 할 현재의 비상사태자 위기다.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자 인공적인 환경의 실내에 갇히는 상황은 절망감을 키웠다. 젊은 사람들은 답답함과 절망감에서 벗어나고자 국립공원 등 자연 친화적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상호작용적 접근 방식이라고 했다. 자율성이 아닌 표용성에서 비롯된 생명애 의식의 표출이었다. 공감의 행위에서 비롯된 공감적 표용이다.


 

생명의 숨결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탄소의 발생률을 줄이기 위한 아주 작은 습관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상 속 일회용품을 줄이고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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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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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에 쓰인 SF소설이라고 하여 많은 부분이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웬걸, 나도 모르게 푹 빠져 소설 속 내용을 복기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점에 대하여 나름대로 고민했었던 것 같다.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거에 절대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를 보고 났더니 소설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거에 다가선 느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슬픔과 고통에 오래도록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할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여길 것이다. 그게 현실이든, 현실 너머의 가상 세계든.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는 안락사를 받아들였고 자기의 기억을 저장해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고 했다. 남편 김홀은 아내가 죽은 후 슬픔에 빠져 살았다. 어느 날 죽은 아내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자기를 만나러 오라는 메시지였다. 바이앤바이에서 홀로그램처럼 빛나는 차이후의 아바타가 있었다. 생전 모습 그대로, 기억 속 모습으로 말이다. 그곳에서 피치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를 만나고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바이앤바이는 죽음 이후의 세계인 욘더로 가는 길이었다. 생전의 기록을 바탕으로 가상 세계인 욘더에서 행복한 기억만을 간직한 채 삶을 영위하는 곳이었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모습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사람들은 욘더로 가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욘더의 생활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저마다 웃음꽃이 피었고, 우리가 꿈꾸는 모습 그대로의 생활이었다.

 


희로애락이 있기에 삶이 아름다운 게 아닐까. 별다른 일 없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삶이 단조롭지 않을까. 우리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은 삶이 과연 가능할까.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없는 장소. 영원히 같은 시간대에 같은 삶을 산다면 천국이라 여겼던 곳은 곧 지옥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천국이나 지옥이나 나름대로 삶이 있을 테지만, 글쎄 현실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만 같았다.

 


바이앤바이나 욘더로 이끄는 자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이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위험에 빠뜨린 인물로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했던 님프다.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했던 김홀은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에 의해 오르페우스와 연결된다.

 




삶과 죽음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인가.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드라마 속 재현(신하균)이 닥터 K를 향해 외쳤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천국이라는 타이틀로 사람들을 가둬놓고 행복을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 모두의 천국이 아닌 각자의 천국이라 하지만 죽음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완전한 천국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찰나의 기억과 염원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가보지 않았기에 꿈꾸고 간절히 바란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애틋함 때문에,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다만, 옳은 선택인가가 중요하다. 각자가 원하는 바가 다르기에 무엇이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어떤 걸 간절히 원하는가, 그게 중요하다.

 


.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어떻게 제작되었을지 궁금했다. 드라마는 군더더기 없었고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깔끔하게 표현했다. 과연, 이준익 감독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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