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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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아름다운정원 #심윤경 #한겨레출판

 

사랑스러운 동구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글의 아름다움을, 소설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좋은 소설이란 다시 읽어도 감동적이다. 이 책을 읽은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읽으며 동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공유하며 새로 읽는 것 같았다. 동구는 행복했을까?

 


다시 읽은 소설은 새로웠다. 내가 읽었다고 착각한 걸까, 라고 생각할 만큼. 할머니가 이렇게 엄마를 욕하고 무시하고 괴롭혔던가. 4대 독자라면서 손자한테 이 새끼야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던가. 아버지는 또 얼마나 가부장적인 사람인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힘든 건 알겠는데 아내를 때리거나 해서는 안 되지 않나. 과거 우리 부모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건가, 소설의 내용을 어렴풋하게 기억할 뿐이었나.





 


1979년에서 1981년에 걸쳐 한 소년이 바라보는 세계를 담았다. 할머니를 비롯해 아버지, 어머니,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소년 동구의 시점에서 말한다. 동구는 계산은 잘하나 글을 또박또박 읽지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난독증이었다. 박영은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뒤 동구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다. 선생님에게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마음이 편해야 했다. 동구의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동구가 속이 깊다는 걸 알고 동구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그런 선생님이 좋은 동구다. 훗날 선생님과 결혼하는 꿈을 꾸기까지 했다.

 


동구가 사는 동네는 인왕산이 내려다보이는 장소로 청와대가 가깝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나왔다시피 1980년대는 계엄령을 선포했던 해였다. 광주에 할머니를 뵈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박영은 선생님, 시국은 불안했다. 1980년대 광주 사태가 있던 때였다. 그건 대외적으로 드러난 사건이고, 동구의 가족에게도 비극적인 사고가 생겼다.


 

동구의 가족과 더불어 시대적 역사도 함께 흘러간다. 사고가 생기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해와 용서가 필요하다. 아픔을 감추지 못하고 남 탓만 하다가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구에게 영주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영주를 업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예쁨을 자랑했을 뿐 아니라 난독증이 있어 제대로 글을 읽지 못하는 동구에 비해 친구들 앞에서 글을 또박또박 읽는 영주를 바라보는 동구의 눈빛은 자랑스러움이었다. 불평불만 가득했던 할머니는 어땠나.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의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이 하나로 인해 가족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국을 강력하게 논하지 않으면서,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삶을 말하는 소설이었다. 열 살 소년 동구가 박영은 선생님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얼마나 귀여운가. 소주 두 잔을 마시고 취해 주사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박 선생님이나 주리 삼촌, 이태혁이 웃는 장면은 다시 읽어도 웃긴다. 아이에게 정치나 민주주의, 계엄령에 대해 말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곁에 사람이 없다는 것, 다시는 오지 못한다는 거로 안타까워할 뿐이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난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369페이지)

 


엄마를 살게 할 방법을 생각해낸 대로 동구는 행복했을까. 엄마랑 아버지도 행복했을까. 더 큰 아픔이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따로 또 같이 행복할 수도 있는 법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그립고도 애틋한 시간을 말해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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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9-1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아무튼, 헌책 - 책에 남은 흔적들의 우주 아무튼 시리즈 65
오경철 지음 / 제철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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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헌책 #오경철 #제철소

 

어떤 헌책이든 그저 헌책일 뿐이라서 나는 그것을 사랑해마지않는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제일 먼저 정리한 게 책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었던 책 중에서 한두 번쯤 들여다볼 책을 남겨 두었었다. 지금은 읽지 않은 책들과 출판사에서 증정 도서로 받았던 책 위주로 정리했다. 3~400권의 책이 바닥에 쌓였다. 절판된 도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작가의 책, 일 년에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을뿐더러 더 이상 신간을 읽지 않을 작가의 책들이었다. 헌책방에 팔려고 했으나 헌책방이 거의 사라지고 인터넷으로만 판매하는 상태여서 인터넷 서점에서 운영하는 중고 서점에 몇 박스를 들고 갔고, 나머지는 폐지로 버렸다. 책이 좋아서, 절판된 책을 찾고자 전국의 헌책방을 수소문해 찾았으면서도 지금은 신간에 밀려 먼지만 쌓인 책들이 많았다. 정리했는데도 정리한 것 같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고 싶은 혹은 갖고 싶은 책을 찾을 때, 그게 절판본이라면 헌책방을 뒤져보았을 것이다. 애타게 찾으면서 누군가 갖고 있기를, 복간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분명 애서가다. 아무튼 시리즈를 간간이 읽으면서 하나의 주제로 된 산문을 읽는 게 좋았다. 헌책이라는 단어 하나에 구매하고 마는 나는 애서가인 게 분명하다.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오경철 작가의 에세이는 헌책에 대한 찬사이며 책들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책이다. 책을 소유하지 말자고 애써 다짐했지만, 다시금 그가 말하는 책들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었다. 읽어보고 싶다, 갖고 싶다, 생각하며 말이다. 책은 책을 부른다.

 


책을 버리고 온 날, 하필 TV프로그램에서 1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영화평론가가 나와 서점 같은 책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법, 책을 읽는 것과 소장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저자 오경철은 주로 헌책방에서 모습을 비춘다. 마치 산책하듯 헌책방을 어슬렁거리다가 좋은 책을 발견하여 구매한다. 그가 소장하는 책들은 아주 귀하다. ‘초판본반드시 소장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책외에는 어지간한 책은 집에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할 만하다.

 


책이 잘 팔리지 않자 출판사에서는 새로운 책을 출간하는 것 외에 기존의 도서를 특별판으로 구성해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나 또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판본별로 구매하기도 하는데 저자가 번역서는 어지간해서 사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읽힐 만한 책들은 끊임없이 다시, 새로 번역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헌책방은 기실 이러한 책들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찾는 장소다. 이러한 발견 자체에 책 수집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발견하는 순간 고스란히 생명력을 다시 얻는 책,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나만은 그 소중한 가치를 알기에 더없이 귀한 책, 내가 헌책방을 들락날락하는 까닭은 이러한 책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146페이지)

 


안목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는 눈에 따라 좋은 책을 발견하고 소장할 수 있다. 미술을 보는 눈처럼 책을 보는 눈도 아주 중요하다. 헌책방에 있는 책 중에서 좋은 책이어도 보는 눈이 없으면 헌책방의 그저 한 권의 책일 뿐이다. 좋은 그림을 판별하듯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도 필요한 법이다. ‘진귀한 고서를 알아보는 데에는 과거의 언어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하다.

 


나는 가끔 헌책방이야말로 책의 우주 같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곳은 책에 남은 흔적들의 우주이기도 하다고. (198페이지)


 

공감하며 또 배웠다. 책을 사랑하는 방법을, 책에 대한 안목을 배웠다. 하릴없이 헌책방을 거닐고 싶다고 생각했다. 혹시 아나, 좋은, 귀한 책을 발견할지. 책을 부르는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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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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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땅식료품점 #제임스맥브라이드 #미래지향

 

차별은 언제나 존재했다. 과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가가 생긴 때부터다. 미국의 예를 들자면, 피부색으로 구별했으며 유색인이라 하여 함께 버스 타는 것도 금지했던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백인과 구별하여 차별했다. 긴 역사상 존재해왔던 차별과 정의, 종교, 인권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과 경험의 역사로 인한 인종 차별과 종교를 소설로 풀어낸다. 어메이징 브루클린1960년대의 커즈하우스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었다면, 하늘과 땅 식료품점더 앞서간 1930년대의 이야기다. 인종 차별이 더 심했던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시기에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초나와 치킨힐 주민들을 말하는 소설이다.

 


도시개발업자들에 의해 새로운 타운하우스를 계획 중이던 치킨힐의 오래된 우물에서 시체 한 구가 떠오르며 소설은 시작된다. 경찰은 이곳에 남은 유일한 유대인 노인 말라가를 살인 용의자로 점찍고 찾아가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기 전으로 돌아간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흑인들에게 물건을 파는 식료품점이었다. 식료품점의 딸인 다리가 불편한 초나는 식료품점의 2층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초나의 남편 모셰는 유대인으로 극장을 운영한다. 백인들에게만 열었던 극장을 흑인들도 오게 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소설의 큰 축은 초나와 모셰다. 초나와 모셰를 돕는 네이트와 애디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진행되어 각자가 처한 상황에 삶의 다양성과 차별에 대처하는 법을 보여준다. 마을에서 흑인과 유대인, 백인이 서로를 대처하여 개인이 가진 것과 구별하기 위해 행동한다. 어떠한 일이 닥쳤을 때 가만히 앉아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정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의 차이다. 초나는 불의를 참지 못했다. 여성이라고 해서 주눅 들지 않았고, 배고픈 흑인들에게 말없이 먹을 것을 건네주는 사람이었다.


 

여기에 한 소년이 있다. 사고로 귀가 들리지 않은 아이, 부모가 없는 소년이었다. 네이트의 여동생의 아들 도도는 그를 시설로 보내려는 사람을 피해 초나의 보살핌을 받았다. 백인이자 KKK단원인 닥 로버츠에 의해 초나가 죽고 도도가 잡혀가자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도도를 구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편견과 차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가 다르고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고 하여 차별했던 과거의 역사는 어쩌면 지금도 진행 중일지도 모르겠다. 방식만 달라졌을 뿐 인간의 마음에 뿌리 깊게 자리한 미국의 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은 현재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정작 우물에서 발견된 시체는 누구인가를 잠시 잊었다. 중요한 사건은 잊고 차별과 종교적 이해 부족에서 오는 갈등에 집중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누군가 죽었었다는 걸 기억했다. 누군가는 여러 사람에게 오래도록 기억하는 삶을 살고, 누군가는 죽어 마땅한 삶을 사는 걸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도도가 갇혀있던 펜허스트처럼 인권은 무시된 장소에 감금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악조건에서도 도도는 몽키팬츠를 만나 위안을 받고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게 맞다. 몸짓 언어로 서로 소통하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행동한다. 치킨힐에서 영웅과도 같았던 초나와 비슷하다. 차별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사람을 기리기 마련이지 않겠나.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미래다. 역사를 비추는 거울처럼 이야기는 재탄생되어 우리에게 배울 점을 준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 종교적 갈등을 넘어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과거보다는 현재,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나아야 하지 않겠나.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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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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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플라이트 #줄리클라크 #밝은세상

 

여름이다 보니, 추리소설이 더 끌린다. 계속되는 무더위에 잠 못 이루는 밤, 짜릿한 소설 하나가 그나마 위안을 준다. 더위를 잊고 사건 속에 빠져들며 어떤 결과로 진행될까 궁금함 때문이다. 책을 읽을수록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에 따라 다양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비슷한 아픔을 가질지언정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통하는 게 있다.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두 여성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삶을 꿈꾼다. 그들이 가진 해결책은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데 있다. 선택권은 많지 않았다. 항공권을 바꾸고, 옷을 바꾸고, 신분증을 바꿨다. 누군가는 순진했고, 누군가는 계획하에 이루어졌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였다.

 


첫 번째 여성은 클레어 쿡이다. 상원의원이었던 마조리 쿡의 상속자 로리의 아내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가족적인 삶을 살았던 클레어는 로리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에게 가스라이팅과 폭력을 당하는 게 일상이었다. 파티에 가서 다른 사람과 다정하게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로리는 처음엔 손바닥으로 때리다가 나중에는 주먹으로 쳤다. 일거수일투족이 로리에게 들어가고 그의 시선이 두려웠다. 클레어는 유일한 친구인 페트라(로리가 모르는)를 만나 로리의 곁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두 번째는 이바 제임스로 마약중독인 어머니를 떠나 수녀원에서 자랐다. 버클리 대학 화학과에 재학 중에 남자친구 웨이드의 꼬임에 넘어가 마약을 만들어주었다가 퇴학당한다. 갈 곳을 잃은 이바에게 덱스가 다가와 머물 거처를 주며 마약을 만들어 팔자고 한다. 마약 거래를 하며 돈은 모았으나 불안한 삶, 즉 배신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마약단속 경찰관에게 협조하여 증인보호프로그램을 받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자 그동안 모았던 자료를 집에 그대로 두고 사라지기로 했다.

 


두 여성이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스치며 소설이 시작된다. 계획했던 디트로이트 행이 들통 나 푸에리토리코로 떠나야 하는 클레어와 오클랜드 행 항공권을 들고 있었던 이바가 서로 항공권을 바꿔 타기로 한다. 신분을 바꾸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간절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신분을 바꾸었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바에게 말했던 리즈의 충고처럼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면에서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비행기가 출발한 시간에서 이바는 과거에서 현재로 오고, 클레어는 현재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진행방식이었다. 비행기 추락과 전원 사망, 과연 비행기에 탔던 사람은 살았을 것인가, 죽었을 것인가. 어딘가로 사라졌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어딘가에서 정정당당하게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았다.

 


단순한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다. 평범한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임을, 별일 없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면 삶은 비로소 내 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잃은 게 있을 수 있겠지만, 얻는 게 많아 질 것이다. 내가 원했던 삶을 위해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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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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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양귀자 #쓰다

 

모순을 우연히 발견했다. 양귀자 작가라고 하면 내 또래에 유명했던 작가인데 새로 쓴 작품이 아닌 1998년에 나온 소설이 사람들이 인생작이라고 한다고?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읽지 않은 베스트셀러는 고민하는 편인데 왠지 자꾸 눈에 띄어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가 인생책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지 않고서는 어떤 판단을 하는 것도 잘못이지 않나. 읽고 판단을 해야겠다.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구매했던 것 같다. 왜 인생책이라고 하느냐고? 1998년이면 우리나라는 IMF로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던 때였다. 그때 출간한 책이 지금도 공감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말끔히 없애준 책이었다. 시대가 갖는 아픔과 청춘들의 방황과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스물다섯 살의 안진진.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채 이모부가 소개해준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중이다. 진진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라고 부르짖었다. 이제 진진은 온 생애를 다 걸고 살아내야 한다. 시장에서 양말을 파는 어머니, 술 취하면 온 집안의 물건을 깨트리고 지금은 가출상태인 아버지, <대부>의 말론 브랜도나 최민수처럼 조직의 보스가 꿈인 동생 진모가 가족이다. 이 소설에서 진진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 어머니의 쌍둥이 동생 이모다. 이모는 어머니와 달리 돈 잘 버는 이모부의 그늘 아래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촌 동생들과 평탄한 삶을 산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아버지의 뒤치다꺼리하랴 진모 뒤치다꺼리하랴 인생이 쉴 틈 없이 바쁜 사람이다. 누군가는 불행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겠다. 누구나 그렇듯, 진진은 이모의 딸이었으면 했다.





 

스물다섯 살인 만큼, 진진은 결혼에 관한 고민을 한다. 두 남자 중에서 저울질 중이다. 매사에 계획적이며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몹시 언짢아하는 나영규와, 어딘가 훌쩍 떠나서 야생화 사진을 찍는 예술가 김장우가 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 데이트 일정을 조율하며 고민한다. 나영규가 주는 계획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면서도 마음은 김장우를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세상에 둘도 없는 형제애를 보이는 건 훗날 의견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 진진이 누구를 선택할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모처럼 다소 심심한 사람과 지리멸렬한 삶을 살 것인가, 어머니처럼 불행에 앞장서 스스로 헤쳐가느라 불행할 틈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다소 역설적인 삶이긴 하다.

 


다분히 편파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고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지켜보는 진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진진이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직의 보스가 꿈인 동생에게 삶에 대한 충고의 말을 하지 않는다. 더불어 집을 나간 지 5년이 넘도록 오지 않은 아버지를 탓하는 거 없이 그저 담담하게 서술할 뿐이다. 여기에서 양귀자 작가의 필력이 빛난다. 심각한 것일 수도 있는 상황을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의 삶을 함부로 쥐락펴락할 수 있겠나. 삶이란 알 수 없는 것.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작가의 생각에 깊이 이입되는 지점이었다.


 

1998년에 첫 출간된 작품인 만큼 지금과는 다른 데이트 양상을 볼 수 있다. 전화기다.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 아무 때나 통화할 수 있고 약속을 정할 수 있지만, 그때는 집 전화로 연락해야 통화할 수 있었다. 다르게 보면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전화기 앞에서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을 상상해보면 설레지 않은가 말이다. 다소 답답해도 느린 미학이 있었다. 그 시절을 상상해보며 진진이 바라보는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대비해보며 삶의 통찰이 빛나는 작품이다. 문학적 서사와 삶의 철학, 무릇 삶이란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296페이지)


 

실수하는 인간에 가깝다. 실수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고 또 이겨내는 게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라. 오늘을 살며 삶을 탐구하고, 또 내일을 삶의 기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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