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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평점 :
좋아하는 작가들의 신작 소식 알림을 받고 있다. 대부분 예약판매 시점부터 구매하게 되는데 작가의 사인본이라도 있으면 알림 문자를 받자마자 구매에 들어간다. 그 중의 하나인 이기호 작가의 신작 알림 문자를 받자마자 구입했던 소설이다. 이번에도 짧은 소설이다. 그의 유쾌함이 가득한 짧은 소설을 읽는 느낌은 남다르다.
서른 편의 짧은 소설들을 아껴가며 읽었다. 책장은 왜 이렇게 빨리 넘어가는지.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소설은 또 왜 이렇게 얇은 것이냐. 오래도록 읽을 수 있게 두꺼운 책을 써주길 바라지만 이것도 어디냐 싶다. 그의 신작 소식을 무척 기다려왔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엔 표지의 글자도 분홍분홍한 책이다. 제목도 분홍, 내용도 분홍분홍한 무려 연애소설이라는 점이다.
소설은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오래전부터 써왔겠지만 현재의 시점인 재난지원금 사용법까지 수록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재난지원금 사용법」의 내용을 볼까. 재난지원금이 카드에 들어왔다는 알림을 받고 성구는 대학 동기인 유정을 만나러 갔다.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유정과 잘해보려는 성구는 돼지갈비집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재난지원금 카드로 결제했다. 자기를 불쌍하게 여겨 잘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씁쓸하다. 더군다나 친구가 없으니 누구 봐주고 뇌물 받고 그러진 않을 거라며 경찰 공무원 준비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듣는데 돼지갈비집에서 쓴 6만원을 쓴 문자는 왜 안오는 것인지, 불쌍해 보였다는 것과 재난지원금 사용 문자가 안오는 것 중 어떤게 서글픈 것인지 알 수 없다.
첫사랑과의 재회는 어디서 하는 게 좋을까. 첫 소설인 「녹색 재회」는 첫사랑과의 재회에 대한 이야기다. 10개월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성오 씨는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 대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아이가 있는 성오 씨는 어머니들만 나오는 녹색어머니회 봉사가 있는 날 아내 한테 대신 가달라고, 가지 않겠다고 버텼으나 할 수 없이 가게 되었다.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하는데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십수 년 만에 첫사랑 그녀를 마주쳤다. 남들은 공항이나 하다못해 극장에서 만나는데 말이다. 뻔하지 않는가. 서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신호등을 자주 놓쳤다. 녹색어머니회 봉사가 끝나고 함께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할 생각이라는 다른 어머니들의 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첫사랑을 다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출산후 부기가 떨 빠졌을 때였다. 화장도 안한 상태에서 마주쳤는데 아 정말 그 자리가 정말 싫었다. 예쁘게 화장하고 옷도 제대로 갖춰입은 상태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말이다. 성오 씨와 최민아 씨의 상황에 마구마구 공감되었다.
사회가 사회이니만큼 오늘 죽기로 한 남자가 있다. 새벽 1시, 고시원 옥상 철제 난간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툭 뛰어내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아래를 내려다 보았더니 고시원의 같은 층 302호에 사는 새벽 배송일을 하는 남자의 차가 있었다. 남한테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몇 걸음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며칠 전에 헤어진 미연에게 아홉 통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 미연에게 계속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아 마음을 바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302호 남자가 출근하려고 나왔다. 새벽에 배송 일을 하려면 힘들지 않느냐는 말을 건네지만 그에게서 들려오는 답은 다르다. 자신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 「뭘 잘 모르는 남자」 였다. 이 작품에서 남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잠시만 머리를 식힌답시고 피시방에 가서 4시간을 게임하고 오다가 기다리고 있던 미연과 마주친 거였다. 그 생활을 벌써 4년째 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시험이라는 게 운도 따라줘야 하고 시간이 갈수록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 남자는 뭘 잘 모른다.
좋아하는 여자애의 감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 독감에 걸린 예은이가 썼던 마스크를 가지고 간 박지호를 바라보는 민규의 이야기 「독감」을 비롯해 호수 공원에서 산책하다 마주친 여자에게 말 붙일 기회를 얻으려고 애견 숍에서 비숑 한 마리를 산 남수. 여자가 흰색 말티즈 몽이를 데리고 산책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강아지와 산책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으나 아직 어린 자기 강아지가 몽이에게 물릴 뻔하자 자신도 모르게 성질을 냈던 이야기 「사랑은 그렇게」도 사랑스러운 소설이었다.
웹에서 만났지만 더할나위없이 모든게 잘 맞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 공감하며 막히는 주제가 없는데 실제로 만났을 때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아 데면데면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페이스 북의 한 페이지 그룹에서 여행에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각자가 찍은 사진을 올리는 페이지였다.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며 서로 많은 것이 통한다고 여겨 실제로 만났으나 그 만남 이후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차마 전할 수 없는」 은 요즘에 자주 있게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대화가 잘 통해 실제 만남에서도 똑같은 경우가 있어 커플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전혀 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리라. '좋아요' 라고 누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3년째 중등 교사 임용 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성민은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하러 영국으로 떠나는 민지를 배웅하고자 공항에서의 시간을 즐긴다. 출발 시각을 앞두고 비행기가 연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후 보내면 될 것 같았다. 두 차례 더 연착을 하자 피곤함에 졸렸다. 민지를 영국으로 보내는게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픈데 왜 이리 피곤하고 졸린 것인지 계속 하품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예상했던 이별의 시간을 보낸 후에는 이처럼 힘든 법인가.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도 피곤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피곤하면 자꾸 하품을 하는 나를 닮은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우리의 사랑이 그렇지 않은가. 그토록 사랑했어도 사랑이 끝난후에 냉정해지는 것처럼 이별의 의식 또한 그 시각을 넘어가면 피곤한 법이다. 보낼 사람은 제 시간에 보내야 덜 피곤한 법이지.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웃기는 이야기들 속에서 평범한 우리를 떠올릴 수 있다. 누가 봐도 이기호식 연애소설이다. 이기호의 소설은 재미있다. 위트와 유쾌함은 덤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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