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전히 아들녀석때문에 구매하게 되었다. 백수린의 소설이 좋은 건 알았지만, 신작 소식에 바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종이책으로 구매할까, 전자책으로 구매할까 갈등중이었다고 해도 될까. 그러던 차에 백수린의 다른 소설을 읽고 있던 아들이 작가의 소설이 너무 좋다며 신작 구매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구매를 결정했다. 



여태 읽어왔던 백수린의 소설답게 단정했고 거의 여성의 서사였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다양한 주인공들을 만났다. 때로는 사람때문에 힘겨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이별을 한후 뒤늦게야 후회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고해도 이별한 사람에게 연락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몇 작품은 읽은 소설이라서 반가웠고, 다시 읽는 소설은 처음 읽었던 것과는 다른 감동을 주었다. 아무래도 소설을 다시 읽다보면 더 깊이 빠지게 된다.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은 게 없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매력적이었다는 말이다.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시간의 궤적」이나  「고요한 사건」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다시한번 작가가 주는 매력에 빠졌다. 작품들 모두다 좋았지만 특히 언급하고 싶은 작품이  「흑설탕 캔디」와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이었다.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같은 경우, 내가 백수린 작가의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뭔가 백수린 작가 답지 않은 소설이라 여겼다. 사춘기,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게 된 시기.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며 만나는 친구들 또한 다양한 감정으로 만나게 된다. 부모님에게는 공부 잘하고 착한 딸이지만 사춘기를 지나는 주인공 '나'는 엄마가 사 준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밤마다 몰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고 있는 성에 눈뜨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찍힌 다미와 우연히 말을 하게 되며 그 아이가 말하는 직접적인 호기심으로 점점 다가간다. 소설 속에서 언급하던 것과는 다른 실제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다미는 베프 선주와는 다른 느낌의 친구다. 소설은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을 주로 다뤘는데 그때는 금기의 단어였지만 이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그저 한 시기의 추억이었음을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기에는 엄청 큰 사건이지만 지나고 보면 그저 삶의 궤적임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흑설탕 캔디」를 읽는데 어쩐지 그리움에 젖은 듯 울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래전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았던 증조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한 단편이었다.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이 느꼈을 상황같은 건 없었다. 프랑스에 가지도 않았고 많이 배운 할머니도 아니었다. 기억나는 건 곰방대를 들고 앉아 계신 것만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왜 증조 할머니를 떠올렸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게 할머니라곤 그 분밖에 없어 그랬는지도. 상우 말 때문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꿈을 꾼 주인공 '나'는 오래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자기들을 키워준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의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 교육을 받은 할머니때문에 어렸을때 죽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가 프랑스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후 프랑스로 건너갔던 '나'의 가족은 가지 않겠다던 할머니와 함께 였다.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던 '나'는 그곳에 적응하는 게 바빠 할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본어는 잘하지만 프랑스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타국에서 겪어야 했던 마음에 신경쓰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일기장을 들춰보며 그때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살았던 1층에 거주한 브뤼니에 씨와 얽힌 이야기들을. 할머니는 피아노 곡이 들리는 소리에 그 집앞 창문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멈춰있었는데, 그 뒤로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는 불한 사전과 한불 사전을 놓고 이야기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동안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느꼈을 향수를 음악과 브뤼니에 씨 때문에 버티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약간의 자책과 그리움이 물씬 풍겼다.   






표제작 「여름의 빌라」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9월이긴 하지만 여름에 나왔으므로, 또 여름에 구매하였으므로 여름에 어울리는 제목의 책이다.  「여름의 빌라」의 주아는 배낭 여행중 알게 되었던 독일에 살고 있는 베레나와 한스 의 초대로 캄보디아의 시엠레아프의 한 빌라로 향하게 된다. 다른 소설에서도 나타났지만 연인 혹은 부부가 둘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초대하거나 그들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걸 볼 수 있었다. 주아도 남편 지호와 함께 베레나와 한스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배낭 여행때 만났었고, 지호의 유학시절을 포함해 5년 넘게 알아온 관계였다. 같은 공간에 머물다보면 서로의 생각이 달라 마찰을 빚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살아온 환경때문일 수도 있고, 각자가 처한 상황때문일 수도 있다. 



사원들을 구경하고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수상가옥 마을에 가기로 했다. 건기에는 육지이지만 우기에는 톤레사프 호수가 범람해 모든 집들이 물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을이었다. 수상가옥 마을을 다녀온 후 한스는 날씨 걱정도 없고 삶이 여유로웠다고 말하며 그곳으로 어떻게 돌아갈까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지호는 수상가옥 마을의 아이들이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거라고 한다. 나중에야 베레나와 한스의 딸이 한 사건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주아가 베레나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소설인데 결말에 그만 울컥하고 만다. 손녀딸 레오니와 있었던 일화였다. 네모난 선을 그렸던 레오니. 캄보디아의 아이들이 오자 그 아이들에게 다른 선을 그어 주었던 레오니였다. 선 밖에 있던 아이들에게도 선을 그어 선 안으로 들어오게 했던 것이다. 이처럼 생각지 못했던 것에서 어른과 아이의 다른 점을 알게 된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이 피부 색깔이 달라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된다. 하나의 선은 두 개가 될 수 있고, 세 개, 네 개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마음을 어떻게 여느냐에 다르지 않을까. 다양한 경험이 우리 삶의 커다란 자양분이듯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 또한 우리 삶의 다른 자양분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친구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재산과도 같지 않은가. 다시 백수린의 소설에 매혹당했다. 



#여름의빌라  #백수린  #문학동네  #책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책리뷰  #한국소설  #한국문학  #시간의궤적  #고요한사건  #폭설  #아직집에는가지않을래요  #흑설탕캔디  #아주잠깐동안에  #아카시아숲첫입맞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도쿄의 한복판. 한 남자가 운전중이다. 쿵하고 차에 무언가가 부딪혔다. 좀비였다. 차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헤치고 가다보니 더 많은 좀비들이 차를 가로막고 있었다. 차에서 쇠지레를 꺼내 좀비들을 찌르며 탑으로 보이는 계단을 올랐다. 좀비들을 피해 옥상으로 갔더니 하늘에 누군가 떠 있었다. 금빛 머리카락에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미친 세상에서 자기를 데려가 달라며, 구원해 달라며 천사에게로 다가갔다. 많은 사상자를 내고 그 남자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천사님'을 부르며.

 

 

이 부분을 읽는데, 또 좀비가 나오는 것인가 생각했었다. 좀비물이 지겨워질 즈음이어서 반갑지 않은 소재였다. 그러한 나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책을 읽다보니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좀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남자가 천사를 부르며 옥상에서 떨어졌다는 게 중요하다. 마약과 같은 의존 약물에 대한 것들을 파헤치는 이야기였다.

 

 

 

형사였던 진자이 아키라는 히와라 쇼코와 함께 변호사 부부의 죽음을 수사하던 중 히와라 쇼코가 죽임을 당하자 다섯 명의 남자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도망쳤다. 물론 경찰 신분을 버리고 말이다. 그가 도망친 이유는 사건을 계속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막노동을 해가며 값싼 호텔을 전전하는 중이다. 그의 상사였던 기자키 헤이스케가 찾아와 어떤 여성을 만나볼 것을 권한다. 먀악 단속관 미즈키 쇼코였다. 도쿄 한복판에서 수십 명을 무차별하게 살해후 투신한 사건, 즉 신종 합성 약물인 스노우 엔젤을 복용했을 것으로 우려되는 사건을 수사하는 마토리(마약 단속관)였다. 그녀는 그 사건을 추적하는데 도와달라며 진자이를 찾아왔던 것. 마약상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얼굴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전직 경찰관이었던 신분을 속이고 마약을 만들어 파는 하쿠류 노보류를 잡기 위해서는 일명 푸셔(pusher)라고 부르는 판매상과 접촉을 해야 했다. 푸셔로 활동하는 이사 도모히코가 사는 곳을 알아내 그와 접촉하기 시작한다. 그에게 다가가 마약을 하나 사고 결국 그와 함께 푸셔로 활동하게 된다. 눈치빠른 이사가 혹시나 알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읽게 된다. 더군다나 한때 경찰관을 했던 진자이는 자기가 마약을 거래한다는 게 양심에 꺼려졌다. 이사가 수입액의 20%를 현금으로 건네도 금액도 확인하지 않을 뿐더러 그 돈을 미즈키 쇼코에게 주어버린다. 문제는 가정주부에서부터 청소년들까지 약물에 의존한다는 거다. 돈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단속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2인 1조로 움직이며 술집 혹은 패밀리 레스토랑 등지에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게 진자이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더러 미즈키 쇼코의 사고방식과도 차이가 있었다.

 

 

스노우 엔젤은 한번 의존하면 끝장인,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약물이었다. 이사는 새로운 마약 루트를 위해 갱생 프로그램을 하는 장소에 방문해서 그들에게도 마약을 팔고자 한다. 마약 판매상인 이사의 말이 인상적이다. ' 정신성 물질이 위법이며 얼마나 위험한지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해요. 요컨대 절대 시작하지 못하도록 할것. 지금 현재 약쟁이가 얼마나 있건 간에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차피 몇십 년 후에는 약쟁이들이 다 죽고 없을 테고, 그때가 되면 샤브는 절멸합니다. 간단한 이치예요.' (194~195페이지) 라고 했다. 불어 담배 금지도 외쳤는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다른 좀더 유해한 약물로 나아가기가 쉬워진다는 의미였다. 각성제 사용자 중 약 9할이 흡연자라는 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약을 판매하는 자들이 마약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나. 절대 없다. 마약의 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진자이는 이사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신종 약물인 스노우 엔젤을 흡입하게 되는데 이 장면은 영화 <마약왕>의 송강호, <독전>의 조진웅을 떠올리면 된다. 마약을 하게 되었을 때의 그 기분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고 빛났다. 너무도 고요하고 편안해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그러나 약기운이 사라지자 약을 갈구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고 창문으로 야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날개달린 천사가 부르는 것 같아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로써 진자이는 알게 된 것이다. 스노우 엔젤이 단순한 약물이 아님을. 전 세계 사람들을 의존하게 만드는 궁극의 의존물질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기 출간된 『데블 인 헤븐』의 프리퀄 형태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일본 정부가 도입한 카지노와 함께 어떤 것이 사회에 유익한 것인지를 묻는데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의존약물이라는 점이었다. 굉장히 흔한 주제이면서도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전직 경찰관이자 범법자인 진자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우리 사회에 깃든 악의 무리를 파헤치는 내용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데블 인 헤븐』의 내용 또한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러한 내용이 영화속에서나 볼 법한 내용이었으면 한다. 제발 우리 사회에서는 퍼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바랐던 것처럼, 아무도 몰래 우리 곁으로 다가와 의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스노우엔젤  #가와이간지  #작가정신  #책  #책추천  #책리뷰  #소설  #소설추천  #일본문학  #일본소설  #미스테리  #미스테리소설  #데블인헤븐  #프리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50년대의 세계적 상황을 그려본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이 있었고,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러시아 즉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냉전체제로 나뉘었다. 러시아의 상황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예술가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물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의 한 명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였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를 쓰고 있었고 그로인해 그의 뮤즈이자 연인인 올가 이빈스카야는 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올가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보리스는 『닥터 지바고』를 완성했고 이제 출간할 일만 남았다.  

 

이 소설은 올가 이빈스카야와 새롭게 CIA에 타자수로 취직된 이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스파이로 맹활약했던 샐리, 이 세 명의 시점으로 소설을 이끌어간다. 이리나는 러시아 출신으로 정보국에서 타자수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그녀의 평범함이 지바고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녀를 가르치는 인물로 샐리가 선택되어 이리나를 훈련시켰다.

 

 

 

 

스파이 소설이 그렇듯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반입 작전은 짜릿함을 준다. 타자수의 업무가 끝난 뒤에 이루어졌는데, 사람들을 관찰하는 방법, 물건을 놓고 가져가는 방법. 가장 중요한 것,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방법 등이었다. 그 모든 것을 배우고 실전의 날이 다가왔다. 『닥터 지바고』를 무사히 반입하여 출간할 수 있게 해 이리나는 스파이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파스테르나크와 올가 이빈스카야의 일화는 자서전과 회고록을 참고로 하여 쓰여졌다. 올가 이빈스카야는 다방면으로 출판하고자 했다.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의 작가 동맹에서도 제명되었을 뿐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닥터 지바고』를 출판하지 못했다.  원본이 작가로부터 이탈리아 출신의 편집자에게 건네져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이후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미국의 워싱턴 즉 CIA로 첩보 작전으로 원고 파일을 반입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첩보 소설답게 사랑이 빠질 수 없다. 이리나가 정보국에서 요원으로 훈련받으며 같은 정보국 내의 남자와 인연을 이어가는데 그 와중에 금지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분히 영화적이다. 스토리 또한 그렇고 『닥터 지바고』를 출간하기 위해서 반입시키기 위한 과정도 그렇다. 

 

 

 

소설에도 나타났지만  『닥터 지바고』를 쓴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수락한다고 했다가 다시 수상을 사양한다는 전보를 보냈다고 한다. 이는 러시아 정권의 정치적 탄압때문이었다. 오래된 영화 안내 프로그램에서 조금만 접했기때문에 『닥터 지바고』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닥터 지바고 유리의 현신인 작가 파스테르나크와 라라 안티포바는 올가의 현신이다. 그들의 사랑과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이 자못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이처럼 한 권의 소설은 오래된 고전문학을 되살리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원작으로 한 영화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 그때의 러시아와 미국의 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했다. 동과 서로 챕터를 나누어 동은 파스테르나크와 올가의 상황을 서는 미국 정보국 요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는다. 대학을 나왔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타자수로밖에 보지 않았던 남성들의 무지를. 열심히 일하면 남성들처럼 고위직으로 승진하며 좀더 책임있는 업무를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성 요원들의 활약을 인정하면서도 그저 타자수로만 보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우리가간직한비밀  #라라프레스콧  #현암사  #책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책리뷰  #영미소설  #영미문학  #닥터지바고  #보리스파스테르나크  #올가이빈스카야  #첩보소설  #스파이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SF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소설은 읽다보면 너무너무 재미있어 책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보면 아무리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소설이 몰입감이 있는지, 재미가 있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하다든지 무언가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것이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반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다른 책들을 다 찾아 읽고 싶을만큼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말한다. 가장 최근에 읽은 작품이 『시선으로부터』였다. 책이 나오자마자 구매하였던 책이기도 하다.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게 『옥상에서 만나요』였다. 그 작품을 읽고나서 『보건교사 안은영』과 『지구에서 한아뿐』을 구매하였던 듯하다. 작가의 전작읽기를 하려고 전자책으로 구매하려던 작품이 꽤 된다.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호감도가 높아져 작가의 팬덤에 나도 끼고 싶은 마음이랄까. 작가가 책을 내면 무조건 사고 싶은 마음.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 속에 들고 싶은 마음. 어쩐지 무한한 애정을 주고 싶은 작품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 책 『지구에서 한아뿐』은 정확히 말하면 SF소설이다. 저 멀리 유성우를 보러갔다가 운석이 떨어지더니 스무 살 때부터 만났던 남자친구 경민이 바뀌어져 온 것 같다는 다소 황당한 스토리였다. 소설을 읽으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떠올랐다. 약간의 상황은 다르지만 아무래도 외계에서 온 사람이 맞으니. 사람이긴 한건가. 껍데기만 경민인데.

 

 

'환생-지구를 사랑하는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아. 남자친구 경민과는 스무 살때부터 11년을 알아왔지만 한아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고 경민은 늘 어딘가를 떠나고 있었다. 유성우를 보러가겠다는 경민을 말리지 못했다. 경민이 떠난 뒤 캐나다로 운석이 떨어져 같은 시기에 갔던 아폴로는 실종상태가 되었다. 돌아온 경민은 어쩐지 낯설다. 무심하였던 예전의 경민에 비해 지금의 경민은 한아에게 다정하게 대한다. 가게 한쪽에서 그림을 그리는 유리와 경민은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는 여행에서 돌아온 경민이 어쩐지 싫지 않다. 더군다나 한아에게 어떻게 프로포즈를 할지 물어보는 모양새가 예전의 경민과 다르다.

 

 

소설의 등장 인물은 헌 옷을 이용해 새로운 옷으로 만드는 한아와 자유분방한 발명가 경민. 화가인 유리. 연예인 아폴로를 따라다녔던 팬클럽회장인 대학생 주영과 수상한 전화를 받는 국정원 직원 정규다. 한아는 캐나다 여행에서 돌아온 경민이 말을 하거나 음료수를 마실 때 입에서 초록색의 빛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불량배가 따라왔을때, 한아의 부모에게 결혼승낙을 받으러 왔던 경민이 초록색의 빛을 쏘아 그들을 다치게 했던 것이다. 경민은 지구의 인간이 아니었다. 저 머나먼 행성에서 무지막지한 빚을 내어 경민의 유전자 정보를 빌려 지구로 온 것이었다. 오로지 한아를 만나기 위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 고려해달라는 거야.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내 바람을 말하는 거야. 필요한 만큼 생각해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98페이지)

 

 

이런 사랑꾼 같으니라고! 이렇듯 한아에게 고백하는데 어떻게 안넘어갈까. 그가 아무리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지. 그러니까, 이 소설은 SF를 빙자한 연애소설이며 또한 지구 환경을 지키자는 메시지로 읽힌다. 소설에서 한아가 하는 옷 가게 이름도 '환생 - 지구를 사랑하는 옷 가게'다. 유리와 유리의 남편과 한아와 경민이 함께 갔던 장소도 비건 레스토랑이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다. '사람들이 소고기만 안 먹어도 온난화를 늦추는 데 큰 도움이 될 텐데....' 하고 말이다. 기후 변화를 위해 밀웜을 먹어보면 어떨까 싶다는 말까지 한다. 여기에서 밀웜이란 반려동물의 먹이 혹은 식용 곤충이다. 기후 변화도 좋지만(지구 온난화에 대하여 관심이 많긴 하지만) 나는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 (으웩)

 

 

뿐만 아니라 유리의 남편과 경민은 친환경 주택을 위해 태양광 전지와 지열 온수 시스템, 조광 및 환기 문제, 단열재 등에 대하여 심도깊은 토론을 한다. 한아가 결혼을 할 때도 지구 친화적인 음식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야말로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하여 고심하는 한아였다. 즉 작가가 이러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지구 온난화나 기후 변화에 대응하자고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소설로 말한 것으로 읽혔다. 여기에서, 외계에서 온 경민은 광물이다. 한아는 재미삼아 돌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가 연필심을 우걱우걱 씹었다가 뱉으면 다이아몬드 원석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멋진 남자를 보았나. 경민이 경민이 아니더라도 반하고 싶게 만든다.

 

 

무척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가독성도 좋고, 한아와 경민의 연애가 로맨스 소설처럼 달달하다. 그 외에 지구 온난화에 대하여 여러모로 생각해보면 좋을 내용이다. 정세랑을 읽어보시라! 반하고 말 것이다.아무래도 정세랑 전작 읽기를 할 것 같다! 

 

 

#지구에서한아뿐  #정세랑  #난다  #책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한국문학  #한국소설  #SF  #SF소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0-09-0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려고 지금 옆에 두고 있는 책인데 빨리 읽어야겠네요. ^^ 시선으로부터는 좋았는데 이 책도 좋겠죠?
 
그 사랑 놓치지 마라 - 수도원에서 보내는 마음의 시 산문
이해인 지음 / 마음산책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해인 시인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민들레의 영토』 초판본을 구매해놓고는 비닐을 뜯기 아까워 그저 보관만 하고 있다가 시인의 신간 산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어쩐지 애틋해졌다.

 

시와 함께 읽는 산문을 읽으며 마음이 정화 됨을 느꼈다.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찌꺼기들이 책을 다 읽고난 순간에 없어진 느낌이랄까. 내가 욕심부리는 것, 쌓아놓는 물건들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들 

 

산 너머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의 마음

그리고 가장 완전한

꿈속의 어떤 사람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가까운 행복」 전문 『작은 기쁨』 에서)

 

시인의 시와 함께 수록된 산문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움키고 살려고 하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다. 가장 진부한 말이기도 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한다.

 

공기나 햇빛은 너무도 가까이 있어 우리가 누리는 축복을 자주 잊게 되고 고마워하는 마음 또한 그리 절절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43페이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공기나 햇빛, 그것들을 마음껏 느끼며 거리를 활보했던 게 먼 옛날인것만 같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감염병때문에 공기나 햇빛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다. 누군가가 전하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고자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나 깨닫는다. 43페이지의 위 문장을 읽은데 너무도 공감하였다.

 

날마다 순간마다

숨을 쉬고 살면서도

숨 쉬는 고마움을

잊고 살았네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 또한

당연히 마시는 공기처럼

늘 잊고 살았네

 

잊지 말자

잊지 말자

다짐을 하면서

 

다시 숨을 쉬고

다시 사랑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

새롭게 사랑하니

행복 또한 새롭네  (「행복도 새로워」 전문 『작은 기쁨』 에서)

 

최근 행복하다 여기지 못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다. 코로나 때문인데, 코로나 때문에 계획했던 여행도 가지 못하고 집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우울하다. 그래도 조심조심 국내를 여러 번 가기는 했지만 우울한 건 우울한 거다.

 

오늘 가족 톡에서 딸이 재작년에 다녀온 대만을 가고 싶다며 ㅠ.ㅠ 표시를 했다. 예전에 갔던 여행사진을 들춰보며 몇 장씩 투척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게 참 슬프다. 하지만 「행복도 새로워」라는 수녀님의 시를 읽으면 그저 숙연해진다. 지금의 상황과 너무 똑같은 시어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소중함. 그 행복을 새롭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사랑놓치지마라  #이해인  #이해인수녀  #마음산책  #책  #책추천  #책리뷰  #에세이  #에세이추천  #한국에세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