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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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SF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소설은 읽다보면 너무너무 재미있어 책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보면 아무리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소설이 몰입감이 있는지, 재미가 있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하다든지 무언가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 것이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반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다른 책들을 다 찾아 읽고 싶을만큼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말한다. 가장 최근에 읽은 작품이 『시선으로부터』였다. 책이 나오자마자 구매하였던 책이기도 하다.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게 『옥상에서 만나요』였다. 그 작품을 읽고나서 『보건교사 안은영』과 『지구에서 한아뿐』을 구매하였던 듯하다. 작가의 전작읽기를 하려고 전자책으로 구매하려던 작품이 꽤 된다.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호감도가 높아져 작가의 팬덤에 나도 끼고 싶은 마음이랄까. 작가가 책을 내면 무조건 사고 싶은 마음.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 속에 들고 싶은 마음. 어쩐지 무한한 애정을 주고 싶은 작품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 책 『지구에서 한아뿐』은 정확히 말하면 SF소설이다. 저 멀리 유성우를 보러갔다가 운석이 떨어지더니 스무 살 때부터 만났던 남자친구 경민이 바뀌어져 온 것 같다는 다소 황당한 스토리였다. 소설을 읽으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떠올랐다. 약간의 상황은 다르지만 아무래도 외계에서 온 사람이 맞으니. 사람이긴 한건가. 껍데기만 경민인데.

 

 

'환생-지구를 사랑하는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아. 남자친구 경민과는 스무 살때부터 11년을 알아왔지만 한아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고 경민은 늘 어딘가를 떠나고 있었다. 유성우를 보러가겠다는 경민을 말리지 못했다. 경민이 떠난 뒤 캐나다로 운석이 떨어져 같은 시기에 갔던 아폴로는 실종상태가 되었다. 돌아온 경민은 어쩐지 낯설다. 무심하였던 예전의 경민에 비해 지금의 경민은 한아에게 다정하게 대한다. 가게 한쪽에서 그림을 그리는 유리와 경민은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는 여행에서 돌아온 경민이 어쩐지 싫지 않다. 더군다나 한아에게 어떻게 프로포즈를 할지 물어보는 모양새가 예전의 경민과 다르다.

 

 

소설의 등장 인물은 헌 옷을 이용해 새로운 옷으로 만드는 한아와 자유분방한 발명가 경민. 화가인 유리. 연예인 아폴로를 따라다녔던 팬클럽회장인 대학생 주영과 수상한 전화를 받는 국정원 직원 정규다. 한아는 캐나다 여행에서 돌아온 경민이 말을 하거나 음료수를 마실 때 입에서 초록색의 빛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불량배가 따라왔을때, 한아의 부모에게 결혼승낙을 받으러 왔던 경민이 초록색의 빛을 쏘아 그들을 다치게 했던 것이다. 경민은 지구의 인간이 아니었다. 저 머나먼 행성에서 무지막지한 빚을 내어 경민의 유전자 정보를 빌려 지구로 온 것이었다. 오로지 한아를 만나기 위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 고려해달라는 거야.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내 바람을 말하는 거야. 필요한 만큼 생각해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98페이지)

 

 

이런 사랑꾼 같으니라고! 이렇듯 한아에게 고백하는데 어떻게 안넘어갈까. 그가 아무리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지. 그러니까, 이 소설은 SF를 빙자한 연애소설이며 또한 지구 환경을 지키자는 메시지로 읽힌다. 소설에서 한아가 하는 옷 가게 이름도 '환생 - 지구를 사랑하는 옷 가게'다. 유리와 유리의 남편과 한아와 경민이 함께 갔던 장소도 비건 레스토랑이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다. '사람들이 소고기만 안 먹어도 온난화를 늦추는 데 큰 도움이 될 텐데....' 하고 말이다. 기후 변화를 위해 밀웜을 먹어보면 어떨까 싶다는 말까지 한다. 여기에서 밀웜이란 반려동물의 먹이 혹은 식용 곤충이다. 기후 변화도 좋지만(지구 온난화에 대하여 관심이 많긴 하지만) 나는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 (으웩)

 

 

뿐만 아니라 유리의 남편과 경민은 친환경 주택을 위해 태양광 전지와 지열 온수 시스템, 조광 및 환기 문제, 단열재 등에 대하여 심도깊은 토론을 한다. 한아가 결혼을 할 때도 지구 친화적인 음식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야말로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하여 고심하는 한아였다. 즉 작가가 이러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지구 온난화나 기후 변화에 대응하자고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소설로 말한 것으로 읽혔다. 여기에서, 외계에서 온 경민은 광물이다. 한아는 재미삼아 돌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가 연필심을 우걱우걱 씹었다가 뱉으면 다이아몬드 원석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멋진 남자를 보았나. 경민이 경민이 아니더라도 반하고 싶게 만든다.

 

 

무척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가독성도 좋고, 한아와 경민의 연애가 로맨스 소설처럼 달달하다. 그 외에 지구 온난화에 대하여 여러모로 생각해보면 좋을 내용이다. 정세랑을 읽어보시라! 반하고 말 것이다.아무래도 정세랑 전작 읽기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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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0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려고 지금 옆에 두고 있는 책인데 빨리 읽어야겠네요. ^^ 시선으로부터는 좋았는데 이 책도 좋겠죠?
 
그 사랑 놓치지 마라 - 수도원에서 보내는 마음의 시 산문
이해인 지음 / 마음산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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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시인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민들레의 영토』 초판본을 구매해놓고는 비닐을 뜯기 아까워 그저 보관만 하고 있다가 시인의 신간 산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어쩐지 애틋해졌다.

 

시와 함께 읽는 산문을 읽으며 마음이 정화 됨을 느꼈다.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찌꺼기들이 책을 다 읽고난 순간에 없어진 느낌이랄까. 내가 욕심부리는 것, 쌓아놓는 물건들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들 

 

산 너머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의 마음

그리고 가장 완전한

꿈속의 어떤 사람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가까운 행복」 전문 『작은 기쁨』 에서)

 

시인의 시와 함께 수록된 산문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움키고 살려고 하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다. 가장 진부한 말이기도 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한다.

 

공기나 햇빛은 너무도 가까이 있어 우리가 누리는 축복을 자주 잊게 되고 고마워하는 마음 또한 그리 절절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43페이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공기나 햇빛, 그것들을 마음껏 느끼며 거리를 활보했던 게 먼 옛날인것만 같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감염병때문에 공기나 햇빛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다. 누군가가 전하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고자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나 깨닫는다. 43페이지의 위 문장을 읽은데 너무도 공감하였다.

 

날마다 순간마다

숨을 쉬고 살면서도

숨 쉬는 고마움을

잊고 살았네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 또한

당연히 마시는 공기처럼

늘 잊고 살았네

 

잊지 말자

잊지 말자

다짐을 하면서

 

다시 숨을 쉬고

다시 사랑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

새롭게 사랑하니

행복 또한 새롭네  (「행복도 새로워」 전문 『작은 기쁨』 에서)

 

최근 행복하다 여기지 못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다. 코로나 때문인데, 코로나 때문에 계획했던 여행도 가지 못하고 집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우울하다. 그래도 조심조심 국내를 여러 번 가기는 했지만 우울한 건 우울한 거다.

 

오늘 가족 톡에서 딸이 재작년에 다녀온 대만을 가고 싶다며 ㅠ.ㅠ 표시를 했다. 예전에 갔던 여행사진을 들춰보며 몇 장씩 투척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게 참 슬프다. 하지만 「행복도 새로워」라는 수녀님의 시를 읽으면 그저 숙연해진다. 지금의 상황과 너무 똑같은 시어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소중함. 그 행복을 새롭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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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꽤 오랜만에 읽었다. 단편 만을 읽었기에 장편을 구매해두고 읽으려고 했으나 아직까지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이 책은 구입한지 일년이 가까워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웃 분의 리뷰에서 이 책을 발견했기 때문에 얼른 읽고 싶었다. 보라색의 패브릭 양장본으로 고급스러움이 더해 녹색광선이라는 출판사에 대한 호감지수가 높아졌다.

 

30년간의 교수생활을 기념하여 어문학자들이 헌정한 기념 문집 발간후 그 첫 권은 전기문과도 같다. 그 책 속에 밝혀진 내용은 진실이나 본질적인 내용이 들어있지 않아 비밀로 간직해두었던 감정의 고백으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된다.

 

 

 

 

장교나 선원,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던 롤란트는 베를린 대학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공부만큼은 마쳐야 한다는 아버지의 바람을 거부하지 못해서였다. 수업시간은 도저히 참기 힘들었고 베를린에서 그는 자유로웠다. 학문의 세계와는 담쌓은 그의 생활을 목격한 아버지는 작은 대학으로 갈 것을 바랐다. 영어영문학과 선생님을 찾아 지정된 장소를 찾아가 강의실에 들어섰다. 학생들과 하나가 되어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심장이 찔린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내 자신이 스스로의 열정을 동원해 감각을 고양시킬 수는 있었지만, 내가 한 인간에게, 선생님에게 사로잡힌 것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나의 의무인 동시에 기쁨이었습니다. (46페이지)

 

이로써 롤란트는 그 교수에게서 빛의 광채가 나는 걸 목격했다. 교수의 집 위층에 세를 얻어 교수와 가까이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교수의 저작이 이십 년전에 멈춰져 있다는 걸 알고 그의 저작을 위해 받아쓰겠다는 수고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라도 써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롤란트와 교수는 밤마다 모여 교수가 불러주는 글을 받아쓰는 작업을 하게 된다. 어떤 날은 열정적인 젊은 교수의 모습을 하고 어떤 날은 몹시 상심한 듯한 노인의 얼굴의 교수를 롤란트는 그에게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때때로 열정적이었다가 혹은 말도 없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교수에 대한 감정이 혼란스러워지는 건 당연했다. 교수가 사라졌을때 교수의 아내와 함께 어울리기도 했었는데 교수가 그의 아내를 대하는 방식 또한 여러모로 의심스러웠다. 교수나 그의 아내나 롤란트에게 고백의 말을 하려했다가도 망설이는 이유 또한 짐작하였다. 그가 받을 상처를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나중에야 교수의 고백을 듣게 되는데, 조금쯤은 예상했던 결과였다. 청춘의 시절은 이처럼 열정적이면서도 금지된 것들을 찾아 헤맨다. 그 또한 인정하는 바다. 그러고보면 아무리 감추고 싶은 비밀일지라도 그것이 탄로나기를 바라는 것도 같다. 누군가 자기 비밀을 말하여 주기를, 그래서 자기를 이해해 주기를 바란 것이다.  

 

 

 

사실,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아름다움을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청춘의 힘은 활력이 지나치게 넘쳐흘러서 비극적인 것으로 치닫기도 하고,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피를 달콤하게 흠뻑 빨아들이기까지 합니다. 또, 그런 이유로 정신적 고뇌 속에서도 청춘은 위험을 받아들이고 형제 같은 마음으로 내민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87페이지)

 

200페이지의 비교적 짧은 소설이다. 청춘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적절하게 묘사하였는데, 이미 나이가 든 우리는 롤란트의 감정적 혼란에 조금쯤은 이해할 수가 있다. 그가 60세의 생일에 맞춰 발간된 기념 문집을 보고는 그 또한 감춰두었던 비밀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 또한. 한때의 스치고 간 감정일지라도 삶을 살아가는 오랜 시간동안 마음 한구석에 있었을 감정들을 언젠가는 인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또한 청춘의 기록이므로.  

 

섬세한 감정을 다룬 심리 묘사가 압권이었다. 이제 시간을 내어 그의 작품 『초조한 마음』을 읽어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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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규조토 컵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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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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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 소설을 읽고 다시 읽었다. 그러니까 6 년 전 내가 제대로 읽었던가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의 내용이 낯설었다. 책을 다 읽고 느낀 점은 그때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구나. 이해했더라도 나의 감정이 아니라 여겼었다는 걸 알았다. 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을까. 작가의 소설은 이토록 감동적인데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같은 책을 여러 번 꺼내읽는가 보다.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지상의 노래』는 이승우 작가의 여느 작품들처럼 종교와 성경, 그것에 역사적인 사건을 드러내어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가진 이야기는 여러 갈래다. 여러 갈래가 하나의 이야기로 합해지며 커다란 감동을 준다.

 

 

 

소설은 천산의 벽서로 부터 시작된다. 강영호의 유고집을 준비하던 강상호가 형이 준비했던 수도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사진 여러 장을 발견하고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책 속의 장소를 다 갈수는 없었고 몇 곳을 둘러보았는데 천산 수도원이 그 중의 한 곳이었다. 헤브론 성 혹은 하늘집이라 불린 그곳은 ㄹ 자를 두 개 이어붙인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곳의 벽에는 성경이 필사되어 있고 색깔을 입혀 쓰기도 했다. 교회사 강사는 이 천산 벽서를 가리켜 '켈스의 책'과 비견할 수 있다고 했다. '켈스의 책'은 여러 개의 물감으로 직접 복음서를 베껴 썼다.  

 

 

이제 소설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흘러간다. 박 중위를 칼로 찌르고 아버지를 따라 하늘집으로 오게 된 후는 그곳에서 성경을 베껴 쓰는 필사를 하게 되며 진정한 형제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성경을 읽으며 과거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떠올리는데 암논과 다말, 그리고 압살롬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룬 내용을 보며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윗에게는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었으며 그의 누이 다말은 매우 아름다웠다. 다윗의 다른 아들인 암논은 이복동생인 다말에게 반하여 그녀를 취했다. 그녀를 취한 암논은 다말을 버렸고, 다말의 친 오빠인 압살롬은 그녀를 보호하다가 암논에게 복수를 하였다. 압살롬은 태어난 딸들 중 하나에게 다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성경에서 후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성경이 우리를 비추는 거울임을. 성경의 압살롬에게서 자신을 보았다.

 

 

성경이 비추지 못하는 것, 비출 수 없는 것은 없다..... 거울을 들여다볼수록 형제는 거울이 아니라 형제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을 읽을수록 형제는 성경이 아니라 형제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129페이지)

 

 

군인들이 들어와 수도원의 형제들을 반 이상 걸러내어 후가 나가게 되고 수도원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온다. 한정효는 군사 쿠데타때 함께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인물이다. 그가 장군에게 자꾸 쓴소리를 하게 되자 수도원에 갇히게 된다. 수도원은 그에게 감옥이 되었으나 그곳에서 아내가 읽던 성경책을 읽기 시작한다. 이로써 한정효도 수도원에서 그들의 형제가 되었다.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후나 한정효는 성경 구절에 집착한다.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성경을 읽고 그것을 필사하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후가 성경을 읽으며 발견한 것 또한 자신과 똑같은 상황이지 않는가. 연희 누나를 사랑한다며 사랑에 울었던 박 중위가 누나를 버리게 된 경위. 그리고 박 중위를 상해입힌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성경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비춘다. 우리가 피하고 싶은 상황이나 숨겼던 자신의 마음까지 성경에 수록되어 있다. 성경을 읽는 일은 자신을 마주하는 일과도 같다. 마치 거울처럼 자신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천산 수도원을 카타콤이나 체메테리움이라 칭할 수밖에 없다. 한정효가 낯선 곳을 향하여 걸었던 것처럼 길에서 만난 후에게 그는 길을 걸을 것을 권한다. 한곳에 이틀이상 머물지 않고 걷는 걸음을 우리는 순례라 부른다. 순례길을 걷는 자의 마음은 자신을 거울처럼 마주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쓰고 바라보았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비로소 자신을 깨닫는 일이었다.

 

 

왜 이승우의 소설에 감동하는지 다시한번 깨달았다. 우리가 들여다보지 못한 나를 거울처럼 바라보는 과정을 나타내기에 그렇다. 타인의 고행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독자가 책을 읽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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