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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 굉장히 우울했다. 이십 대에 바라본 마흔은 우리가 넘지 못할 선으로 여겼었다. 마지노선처럼 여겼던 마흔을 눈앞에 두었을때 세상을 등지는 것마냥 그렇게 방황했었던 것 같다. 마흔을 넘기고 후반부에 들어서자 그제서야 적응을 하게 되었다. 마흔이 가진 나이를 인정하니 마흔이 가진 많은 것들이 보였다. 조금쯤은 삶을 제대로 살아볼 나이이기도 하다. 여전히 방황하고 조그만 것에도 흔들리지만 사십 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말한다. 지금이 훨씬 좋다고. 아스라히 떠오르는 이십 대의 기억은 아픔 뿐이어서, 내가 선택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후회가 남지만 다시 돌아가도 역시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걸 조금쯤은 알아챘다고나 할까.
오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쉬고 있다. 잠시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직장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과 내가 계획했던 것처럼 1년의 시간을 휴식으로 채울 것인가 여전히 생각중이다. 오후가 되면 나는 집을 나선다.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긴팔 티셔츠에 긴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햇빛 차단용 마스크를 쓰고 산책길을 향한다. 처음엔 가지만 앙상했던 산책길의 메타세콰이어는 지금은 푸르른 초록으로 변했다. 변해가는 초록의 향연에 눈이 부셨다. 메타세콰이어 아래쪽에는 맥문동이 자리잡고 있다. 작년에 보라색으로 예쁘게 피었던 기억이 떠올라 하루하루 변해가는 나무 색깔에 기대하는 마음을 품었다. 메타세콰이어가 조금씩 푸르러지더니 초록으로 무성해졌고, 햇볕이 비치는 맥문동이 하나씩 꽃을 피우더니 활짝 피워 우리들을 즐겁게 했다.
맥문동이 피기 전 분홍색 상사화가 먼저 피기 시작했고, 꽃댕강나무도 꽃을 피웠다. 개망초도 피고 산책길 바깥에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 때문에 도라지꽃, 깨꽃 등 변해가는 들꽃들의 아름다움때문에 걷는 일이 즐거웠다. 그래서 개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별것 아닌 들꽃에도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불안하여도 초록으로 피어난 들꽃으로 보고 있으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저자는 가평의 설악면에서 작은 책방 '북유럽(Book You Love)'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에세이스트다. 벌써 세 권의 책을 냈다고 했는데 저자를 인스타에서 팔로우하고 있었음에도 작가라는 걸 몰랐다. 짧은 글과 사진을 바라보며 멋진 곳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구나, 라고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 게 다였다. 저자가 걸었던 길을 글로 읽으며 나는 길가에 소담하게 피어있는 꽃들의 이름을 익히고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새로운 이름도 있어 들꽃들도 이렇게 예쁜 게 많구나 했다.
어떤 것이든 어떻게 바라보느야에 따라 그것이 소중하고 어여쁜 법이다. 하루의 일상인 산책길에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들꽃의 이름을 알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쉽지 않다. 어느 나이건 흔들리는 법이다.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아닌 자발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우리의 현재를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딸아이를 바라보는 마음 또한 우리가 겪어왔던 일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세 번씩 아파트 내의 요가교실에서 요가를 했다. 코로나-19때문에 요가 수업이 중단되어 몸이 굳어 있었는데 다시 연다는 문자를 받았다. 반가웠다. 다시 몸을 정돈할 수 있겠다. 저자 또한 주민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요가를 한다고 했다. 느린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고 서서히 몸을 움직이는 과정은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는 과정과도 닮았다. 하루에 쌓아 둔 묵은 마음들을 내려보내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묵묵히 그 시간을 견디는 것 또한 마음을 버리는 과정이다.
작은 것들은 작아서 더 오래 내 곁에 남는다. 크고 무거운 것들은 생의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져 헤어짐의 수순을 밟는다. 비싸게 돈 들여 산 옷이라도 옷장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애물단지가 되고 결국 버려지고 만다. 작은 드리퍼가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208페이지)
소소한 일상과 일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들꽃과 더불어 잔잔하게 빛났다. 저자가 찍은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 보고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냥 지나치지 않는 조그만 들꽃 하나에 마음을 주는 이야기에 감동했다.
성공한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돈을 많이 벌고 여백 없이 빵빵하게 명예까지 얻는 삶이 아니라 결핍을 축복이자 행운으로 치환할 수 있는 삶. 그래서 편안하고 평화롭게, 자주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니,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다. 누구나 한 가지쯤 남보다 못한 무엇, 남이 가지지 못한 무엇이 있다. 그 모자란 부분이 언제 어느 때 아름답게 빛날지 모르는 일이다. (139페이지)
보라색으로 물들인 맥문동 길은 전국의 사진작가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불어 걷는 나도 매일이 행복하다. 점점 짙어져가는 보라색 꽃, 꽃 모양이 점점 커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 길을 매일 걸으며 생각을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내 마음에게 귀를 기울이며 오늘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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