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전쟁
이종필 지음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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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한 건 알아도 양자역학에 대한 건 생소하다. 이는 과학적 용어로 일반인이 알기에는 버거운 일. 하지만 양자역학이나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고 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 SF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일은 근미래에 우리가 마주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그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영화속에서만 보았던 장치들이 십여 년이 지난후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것을 보면 과학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열정을 다하여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므로 더욱 감동하게 된다. 

 

 

이 소설은 물리학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도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저자가 쓴 첫 장편이다. 그가 가장 잘 아는 양자역학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SF와 범죄스릴러를 결합한 소설이다. 양자역학과 인공지능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해도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소설적 상황에 맞게 적절히 설명하여 그렇다.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동상에 머리가 없는 시체가 걸린 사건이 발생하였다. 누군가 찍은 동영상 속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드론 5대가 시신을 들고 왔으며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게 이순신 동상에 걸치게 했고 유유히 사라졌다. 얼마전에 본 영화 <#살아있다>에서도 드론으로 물건을 움직이더니 이제 드론은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굉장히 편리한 물건이 되었다.

 

 

물리학자 조성환 교수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과학전문기자인 하영란과 함께 이 사건을 수사하는 윤태형 형사를 만나며 시체의 가슴에 타카핀으로 그림이 박혀 있음을 발견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한쪽은 사람이 그린 것으로 보였으며, 다른 한쪽은 세심하고도 정교한 솜씨로 보아 인공지능이 한 것으로 보였다.

 

 

살인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건 물리학자인 조성환 교수였다. 아무래도 양자역학이나 물리학적 지식을 가졌으나 그럴 법 하다. 윤태형 형사와 하영란 기자와 함께 양자역학 연구소인 문혜진 교수를 만나 일본의 고바야시 그룹과 연관이 있는지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다. 조성환은 문혜진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는 이찬규에게 연락하여 만난다. 이찬규는 학부때 굉장히 친했던 후배였다. 함께 점심을 먹기로 약속한 날 이찬규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한후 사건은 다른 양상을 띈다.

 

 

SF 범죄 스릴러이며 역사, 양자역학과 인공지능을 아우르는 소설이었다. 조성환이 이 사건에 파고들수록 과거 역사의 한 페이지로 안내하며 이 사건에 국정원도 함께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문제는 살인사건이 왜 벌어졌느냐와 누가 했느냐가 중요하다. 조성환은 이찬규가 죽기전 자신에게 남긴 자료를 통해 시신의 머리를 찾으며 이 사건의 주체를 찾고자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카오스 데이터를 가지고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수 있으며 데이터를 통한 학습만으로도 인공지능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나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불어 지금의 데이터로부터 과거를 추적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이세돌이 바둑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펼쳤으며 알파고가 4승 1패를 하였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학습을 통하여  앞으로 나올 수를 미리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0년 전의 과거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그게 홀로그램 방식을 통하여 이미지로도 재생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이러한 결과물을 받을 수 있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가능한 일 같았다.

 

 

과학에 문외한이라 GAN이나 알고리즘, 초전도체, 이러한 용어들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샌가 소설이 끝나 있었다. 미국의 변호사 출신이 법정 스릴러를 써서 유명해졌듯(우리나라 추리소설 작가 중에서도 판사, 변호사 출신의 소설가가 있듯) 이종필 작가에게도 물리학 적인 지식을 통해 새로운 SF 소설가로서의 발돋음으로 보였다. 이러한 소설들이 계속 되어 미래의 과학 발전을 소설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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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방랑자의 원형에 가깝다. 삶이 나를 어느 한 공간에 가두고 버텨볼테면 버텨보라며 시험하듯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갇혀있는 것처럼 여겨진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가. 내가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일이 년 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만 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오랜 고민끝에 결정했다. 눈물을 흘리며 내면의 나와 대화한 덕분이다. 나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였고, 이로 인해 나에게 닥쳐올 세상이 두려웠지만 과감하게 결정했다.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부터 내가 방랑자의 원형의 상태에 있다고 여겼다. 아마도 내가 그걸 원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현재는 방랑자의 원형에 있다. 방랑자의 원형에서 탈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방랑자 편을 꽤 오랫동안 읽었었다. 다른 원형들을 읽다보니 내면의 나의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모습이 혼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심층심리학자이자 심리 상담가,  칼 융의 원형 이론 연구가이기도 한 캐럴 피어슨의 『나는 나』는 원제는 『내 안의 영웅 Hero within』으로 인간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여섯 가지의 원형들을 통해 삶의 영향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말하는 책이다. 이 여섯 가지의 원형들은 강한 자아를 갖도록 도우며, 자아의 경계를 넓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돕는다. 또한 자신 안의 원형을 이해하여 자신의 삶과 화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인간 내면의 원형을 알아차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여섯 가지의 원형들은 고아, 방랑자, 전사, 이타주의자, 순수주의자, 마법사로 구분된다. 고아 원형은 엄마 없는 아이 같다고 느끼고, 버림받고, 방치되고, 학대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삶에서 자주 무력감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 없다면 고아 단계를 통과하도록 심리상담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심리 치료나 정신분석,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고통의 원인이 외부에 있음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 원형의 특징은 고통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여기지 않게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방랑자는 고아와는 반대로 누군가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삶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 같고,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데 지친 사람을 가르킨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방랑자의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앞서 말했듯 방랑자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 홀로 길을 떠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창조한 외로움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성장을 돕는다.

 

 

전사는 삶과 자신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는 원형을 가리킨다. 자기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뼛속 깊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음을 던질 용기가 있을 때 집중력과 기술과 추진력을 준다.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값진 보상이 된다.

 

 

영웅은 모든 것을 다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세상을 돕는 사람이 아니다. 영웅은 남을 배려하는 모습과 진정한 자신의 모습 둘 다를 통해 죽어 가는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 다만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기꺼이 내줄 마음이 되어 있어야 한다. (169페이지)

 

 

이타주의자는 고통과 상실을 존재의 변화를 위한 계기로 삼는다. 자신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마음이다. 손해를 보는 것같이 느껴질 때에도 타인에게 베풀고 돌볼 수 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며 고결한 자선 행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라 믿는 이타주의자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차고, 삶이 꼭 힘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가? 그러면 순수주의자다. 여행의 경험을 통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감사히 받아들이게 되었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순수주의자는 자신의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도와준다.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 변화시켜야 할 상황에 둘러싸여 있으나 그럼에도 기적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건 마법사다. 저자는 마법사의 원형을 가리켜 자유로운 선택을 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겠다는 결단력과 관계가 깊다고 하였다.

 

 

그동안 읽어왔던 심리학 서적에 비해 내면의 나에 대하여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책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의 상황을 비교하여 그 원형을 파악할 수 있게 했고, 그 원형에서 미래를 향항 성장의 동력을 제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우리는 삶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아파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대부분 자신이 깨우치는 것이지 가르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하고도 단순한 심층 심리다. 우리는 고아를 거쳐 방랑자가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아울러 저자는 모든 사람의 여행을 존중하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원형을 억압할 필요는 없으며 우리 안에 원형들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다. 내 안의 심리적 원형을 파악해 내가 몰랐던 나를 파악하며 삶이라는 여행의 파도에 몸을 맡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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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7-09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아와 방랑자를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요;;; 외롭고 괴로운 마음이 들때도 있고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네요.. Breeze님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셨든 고민하셨던 그 과정 자체로 값지다는 생각도 듭니다. Breeze님의 삶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쇼팽의 녹턴 Op.48 No.1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 예전에 많이 들었으나 한동안 뜸했던 곡인데, 소설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음악이라 틀어 놓고 있자니, 마치 한밤에 듣는 양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연주자를 달리하여 두 번째로 듣고 있다. 피아노 소리에 귀기울여 창밖의 소음이 들리는듯 마는듯 그렇게 희미해져 갔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독고희는 현정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다섯 살의 희는 엄마가 아빠를 만나러 가는 걸 눈치 채었다. 엄마의 상자에서 반지를 꺼내어 끼고 갔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날 엄마는 밤늦게 술이 취해 들어왔고, 희의 옷에 토했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희는 엄마의 모든 것을 좇지만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귀신같이 알았다. 엄마가 글을 쓰고 있으면 궁금해하는 희에게 할머니는 아빠에 대한 글을 쓴다고 알려 주었다.

 

 

어느날 엄마가 데리고 갔던 음악회에서 처음 쇼팽의 녹턴을 들은 후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음악회에서 들었던 선율이 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음악소리때문에 심주호를 알게 되었다. 그 어느 누구보다 피아노를 좋아했던 주호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한다. 수많은 대회에서 상을 받았어도 현실이 그를 피아노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반면 부모의 강요로 피아노를 치는 소연은 늘 문 뒤에서 피아노 연습 소리를 듣는 엄마때문에 힘들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다.

 

 

독고희, 심주호, 소연은 피아노와 애증의 관계에 있다. 이 세 사람의 관계도 애증과 비슷한데,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지 못하고, 외부의 힘에 이끌려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 누구보다 피아노를 좋아하던 소년 주호가 피아노를 더이상 치지 못하게 되고,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소연은 부모에 의해 멀리 떠나게 된다. 관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랑하는 것과 받는 것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는 것 같다.

 

 

그토록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희는 대학에 가서 음악 대학생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주는 영도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그렇지만 영도 또한 엄마 처럼 자신에게 사랑을 나눠주지 못했다. 함께 살면서도 다른 여자와 만나느라 밤늦게 들어오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때 알바를 마치고 들어오니 다른 여자와 누워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영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러한 희를 보면 안타깝다.  

 

 

독고희와 엄마 현정민의 데면데면한 관계에서 나는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을 떠올렸다. 사랑을 받고 싶어 고개를 빼들고 엄마의 시선 안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에서, 소설을 쓰는 현정민과 역시 소설을 쓰는 희의 모습에서 영인과 김 작가가 겹쳐 보였다. 마치 엄마에게서 탈출을 하듯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하는 모습에서도. 가장 가까울 것 같은 딸과 엄마의 관계가 이처럼 서로를 겉도는 관계도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한다.

 

 

 

희와 현정민의 데면데면한 관계에서 뭔가 감동을 주는 해피앤딩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지만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는 듯 씁쓸한 결말이었다. 독고희와 현정민의 관계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보통의 소설들처럼 서로 화해하거나 품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이십대 중반의 나이인 작가임에도 소설의 주제는 꽤 묵직하였다. 철학 전공자 답게 철학적으로 풀어갔으며, 그 모든 배경에 쇼팽의 녹턴이 있었다. 진실과 상처는 고통으로 남는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아마 쇼팽의 녹턴이 없었으면 희는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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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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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라고 하면 일단 괴테부터 떠올리는 게 당연하다. 이반 투르게네프 하면 『첫사랑』을 떠올리듯 『파우스트』는 괴테의 고유명사처럼 여겨진 작품이라 다른 작가가 감히 사용하지 못할 제목이다. 그런데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과감히 동명의 제목을 붙였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때 드디어 유명한 고전을 읽게 되는구나 싶어 내심 반가웠다. 읽고 싶은 작품이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 못 읽게 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이니 일단 이 책부터 읽기로 한다. 

 

 

작가정신에서 펴낸 러시아 고전 산책시리즈 중의 한 권으로 세 편의 중편 소설이 수록된 작품이다. 투르게네프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로 「세 번의 만남」,「파우스트」, 「이상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앞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말했다. 세 작품 모두 일인칭 시점으로 쓰였으며 남자인 서술자가 한 여성을 바라보며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렸다. 능동적인 사랑을 하는 주인공이라기보다는 한 여성을 그저 바라보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표제작인 「파우스트」 부터 이야기하겠다. 주인공 파벨 알렉산드로비치가 친구 세몬 니콜라예비치에게 보내는 아홉 편의 서간문 형식으로 된 소설이다. 9 년 만에 영지로 돌아온 파벨은 우연히 대학 동기인 프리임코프를 만나게 되고 그의 아내가 오래전 좋아했던 베라 니콜라예브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초대로 방문하여 아직 소녀적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베라를 바라보며 그녀의 어머니에게 베라와의 청혼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파벨은 영지에 돌아온 후 언젠가 외국에서 가져온 책들 중 괴테의 『파우스트』를 발견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베라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 위해 책을 읽어 주는데 괴테의 『파우스트』였다. 베라의 어머니가 지나치게 엄격한 교육을 한 탓에 지금까지도 시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했다.

   

 

예나 지금이나 서간문 형식의 소설은 매력적이다. 파벨의 입장에서만 쓴 내용이기에 편지를 받는 상대방의 반응은 글 속에서 유추할 뿐이다. 이 소설은 마치 독자에게 들려주듯 하고 있어서 파벨이 『파우스트』를 읽어주고 난 뒤 베라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베라에게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쯤은 이해할 수도 있었다. 시나 소설을 읽으며 베라처럼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테니 말이다.

 

 

「세 번의 만남」은 읽는 내내 어쩐지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마 작품 속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성이 불렀던 노래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이탈리아의 소렌토에서 들었던 노래를 글린노예 마을로 사냥을 갔다가 다시 듣게 되었다. 어느 저택에 서서 노래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하여 시선을 돌렸고, 소렌토에서 우연히 보았던 여성임을 알아보았다. 아름다웠던 여성의 얼굴을 잊을리 없었다. 그때와 같이 이번에도 한 남자와 함께 있었는데, 그 저택을 지키는 노인 루키야느이치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세 번의 만남에도 그는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남자와 헤어졌다는 말에도 도망치는 그녀를 향해 달려가지 못했다.

 

 

「이상한 이야기」 또한 소피라는 소녀에 대한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죽은 사람을 보여준다는 바실리에게 다녀온 후 소피와 함께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순례자의 시중을 드는 허름한 옷을 걸친 여자를 보았는데 그녀가 소피였다.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순례자로 인식된 그는 죽은 프랑스 가정교사를 보여주었던 바실리였다. 소피는 삶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는 스승을 원했다. 그녀가 찾았던 스승이 바실리라는게 아이러니다.

 

 

 

 

베라도 그렇고, 소피도 자신의 의지에 반하게 되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피를 순례자로부터 데려왔지만 일찍 죽은 것처럼 베라 또한 파벨에게 마음을 고백한 뒤 앓아 누웠다. 노래를 부르던 여성도 결국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고 울며 달려나갔다. 욕망에 대한 말로가 어디인지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굉장히 시적인 문장이었다. 간결하면서도 어렵지 않고, 다른 작가들처럼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욕망과 절제, 감정에 충실하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언젠가 이웃분이 선물해주신 『첫사랑』이 있는데 그 작품에서는 또 어떤 스토리를 만들었을지 몹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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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생각하는 인간 편 -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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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가지의 물건이 필요할 때 우리는 근처 편의점을 찾는다. 편의점은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건들이 많이 있어 곧잘 방문하곤 한다. 필요한 물건을 사서 나오는 발걸음은 가볍다. 반면 찾던 물건이 없을 때의 난감함이라니. 그렇다고 이 책이 난감하다는 뜻은 아니다. 일반 편의점이 그렇다는 말이지.

 

 

tvN의 <책 읽어드립니다>의 도서 선정 위원이었던 이시한 작가의 『지식 편의점』은 지적인 현대인을 책이라는 모토를 달고 있다. 우리가 읽었음 직한, 누구나 읽었다고 여길 만한 책을 말하는데, 책들 중에서는 어려운 책들도 끼어있다. 어렵다고 여겨 읽지 않은 책들이 비교적 많다는 사실에 저자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알겠다. 

 

 

 

 

저자는 총 18권의 책을 소개하며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 위한 지식의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였다. 처음엔 질문하는 인간에서 시작하여 탐구하는 인간을 거쳐 생각하는 인간이 된다. 그 책의 처음은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부터 시작한다. 읽은 사람마다 책이 좋다고 말해왔으나 여태 읽지 못한 작품이다. 인류의 미래를 말하는 『호모데우스』만 읽었을 뿐이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의 공감을 느끼지 못해서다.

 

 

작가는  『사피엔스』를 가리켜 '인류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발전했으며, 그래서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기억 회귀의 장치이자 예측의 도구로서 인류의 역사를 풀어놓습니다.' (35페이지) 라고 했다. 인류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유발 하라리가 그리는 인류의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이었다. 많은 SF영화가 그렇듯 말이다.  『사피엔스』 또한 기술 발달 속도를 보면 2100년이면 현생 인류를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화두를 안겨 준다.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래도록 올랐던  『총, 균, 쇠』는 '식물의 작물화'와 '동물의 가축화'라는 핵심 개념만 잘 알아도 절반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인이 콜롬비아 등 라틴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고자 했을 때 그들이 가져온 천연두로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저자는 천연두 균에 내성이 생긴 유럽의 가축들을 풀어 놓아 원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의 균은  『총, 균. 쇠』의 하나에 속한다. 이러한 의미를 알고 보니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무엇을 우려했는지 알수 있겠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이들과 함께 만화로도 읽고, 일반 서적으로도 읽었다. 아마 이 작품을 한두 번쯤 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성경에 모티프를 두고 창작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행적과 비슷하다는 점을 들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이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또한 너무도 유명하다.  『장미의 이름』 은 영화로 만났기에 읽었다고 여긴 작품이었으나 역시 읽지 않은 작품이었다.  『군주론』은 '새로운 지역을 다스리게 된군주가 그 지역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라는 주제를 다루었는데, 이 책은 피린체라는 새로운 지역을 다스리게 된 메디치 가를 위해 쓴 책' 이라는 사실이다. 정작 마키아 벨리는 새로운 통치 세력인 메디치 가에 잘 보여서 관직에 복귀하려는 개인적인 욕망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장미의 이름』은  『셜록 홈스』의 오마주라고도 표현했다. 윌리엄 수사와 조수인 아드소의 역할은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와 흡사하다고 말이다. 아울러 저자는  『장미의 이름』에서 과학에 위협을 받고 있는 종교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썼는지 그 탐욕스러움과 위선을 상징했다고 표현했다.

 

 

 

질문하는 인간 편에서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러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를 담았다. 탐구하는 인간편에서는 꽤 많은 작품을 수록했는데 그 작품들을 보자면, 플라톤의  『국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등 총 10편의 책을 소개한다. 공교롭게 생각하는 인간편에서 언급하는 책들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다른 작품이야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지만 읽으려고 구매해 두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지금이라도 읽기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저자도  『코스모스』를 가리켜 '우주 과학 서사시를 통해 오늘 날 인류를 있게 한 코스모스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와 우주적으로 생각하면 인간은 멸종 위기종과 다름없으니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304페이지) 라고 했고, 인터넷 서점의 한 블로그 이웃도 상당히 재미있다고 해서 책장의 높은 곳에 위치한 책을 침대 옆 협탁의 목록에 올려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보면 의무적인 책읽기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한번 느낀다. 읽고 싶어서 구매한 책들이 많다. 그 책을 다 읽었느냐면 그렇지 않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뿐만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  『천일야화』,  『수용소군도』,  『비잔티움 연대기』등 수많은 책들이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지 다른 신간들에 밀려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책을 소개하는 책들을 만날 때면 책 제목을 메모하고 갖고 있던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인 독후감 형식이 아닌 현대인들을 위한 지식의 편의를 위해 만든 책이었다. 책을 읽는 즐거움과 지식을 습득한다는 느낌이 커 유익한 독서였다. 앞으로  『지식 편의점』 시리즈가 계속 될 것 같은데, 다음에 출간될 「성장하는 인간」 편이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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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0-07-06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책방 갈다에서 [코스모스] 읽기 모임 할 때마다 늘, 등록해야할까 갈등.
반 강제 의무적 책읽기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