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하자면, 전과자라고 하면 일단 두려울 것 같다. 그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를 떠나 전과자라는 그 단어 하나 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건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렇게 여기지 않을까.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고 그 사람이 가진 사연이나 진심은 알려고 들지 않는다. 그저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까. 전과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방을 내줄 수 있겠는가. 직업을 구할 때 채용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것들을 묻는 소설을 만났다. 혼다 데쓰야가 전하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진 편견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 소설이었다.

 

'해변'이라는 뜻을 가진 셰어하우스 '플라주'에 입주하게 된 청년이 있다. 여행사에 다니던 그는 술을 진탕 마신 뒤 한 번의 실수로 각성제 복용을 하여 집행유예 상태다. 직장에서 해고 된 건 당연하고, 사는 집마저 윗층에서 불이나 거의 다 타버렸다. 겨우 옷과 지갑만 들고 빠져나와 보호사를 찾아가 사정을 말했다. 보호사와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셰어하우스를 소개 받았다. 겉모습은 카페였고, 카페를 지나면 붙박이 침대와 목재 선반이 있었고, 방에는 문이 없고 그 자리에 커텐이 있었다. 그곳은 다양한 사연들을 가진 전과자들이 모였다. 한 달에 5만엔, 그가 머물 곳이었다.

 

각성제 복용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다카오는 플라주에서 머물며 카페에서 집주인 준코를 돕는다. 셰어하우스 집주인 준코는 살인자 아버지를 두어 힘든 생활을 했다. 나카하라 미치히코는 데이트 도중에 생긴 시비에서 살인을 했고, 가토 도모키는 친구를 살해했다는 죄로 구속되었으나 무죄로 판명났지만 다시 재심을 기다리는 처지고, 노구치 아키라는 어떤 죄를 지었는지 정확하게 나타난 건 없다. 여성 입주자인 야베 시오리는 과거의 연인에게 이용당해 죄를 뒤집어 쓴 경우고, 고이케 미와는 학교 폭력에 휘말려 한 아이가 죽고 몇 명에게는 상해를 입힌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가졌다.

 

다카오는 그들이 죄를 저질르기는 했으나 어떤 죄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고백으로 사람을 죽인 죄를 지은 이를 바라보는 것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카페의 저녁은 자주 오는 손님들과 셰어하우스 거주자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가진 사연과 죄를 떠나 그들에에게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각자의 사연들을 말하는 중간에 한 기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한 사건을 쫒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글로 쓸 예정이다. 즉 친구를 죽인 살인자가 무죄로 풀려나온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마치 숙명처럼 말이다.

 

 

 

분명하다.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사람을 달라 보이게 한다.

얼굴도 몸도 목소리도 동작도 웃는 얼굴도 눈물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는데 근본부터 인간이 달라 보인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고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아니, 인간이 가진 말言이다. (176페이지)

 

준코가 플라주를 만든 동기는 아주 의미심장하다. 실수로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아버지를 지켜보며 느낀 게 있어서였다. 그 사람이 제대로 갱생했는지, 재범 가능성이 있는지, 벌을 받은 사람에게도 재출발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플라주를 발판 삼아 다음 걸음을 내딛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소설 속 주인공들은 계획을 세워 살인자가 된 사람이 아니다. 실수로 과잉 방어로 인해 생긴 일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품어주는 곳이 있으면 안정을 찾게 되고 얼굴의 표정도 변하기 마련이다. 한껏 긴장하던 눈빛에서 점점 부드러운 표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플라주에서 머물렀던 사람들은 사회복귀를 위한 준코의 응원으로 이곳에 머물다 떠날 수 있을 것이었다.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좋다. 전과자가 가진 사연들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과연 옳은지를 묻는다. 물론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살인자는 그가 어떤 뜻을 가졌든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그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실수로 했던 행동들에게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살인사건을 뒤쫓았던 기자의 마지막 이야기는 뭉클해진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준코가 전과자들을 받아들였던 동기와도 맞물리는 부분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소설이 마지막에 가서는 감동을 준다. 그러고보면, 처음부터 악인인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들의 사연을 듣다보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가진 편견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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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8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0-06-09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진을 예쁘게 찍으셔서 한번 더 보게됩니다.
오늘 날씨가 무척 더웠어요. 이젠 여름 같습니다.
Breeze님,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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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클로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건 로맨틱한 감성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로맨틱한 소설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로맨틱한 소설이면서도 다름에 대한 편견과 시선에 대하여 말하는 글이었다. 프랑스 작가들 중에서 꽤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라고 하는데 정작 마르크 레비의 소설을 처음 읽게 되었다. 그 느낌은 오래 읽어왔던 것처럼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맨해튼 5번가 12번지의 아파트에 있는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는 디팍이라는 인물과 9층에 거주하는 클로이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언젠가 영화속에서 보았던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본 적이 있었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모두 그런 모양으로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굉장한 느낌을 주었었다. 맨해튼 5번가 12번지의 아파트는 부유층이 사는 아파트 임에도 엘리베이터는 아직 옛것 그대로 수동식이다. 물론 수동식 엘리베이터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운전해야만 하고 24시간 대기하여 주민이 호출시 운행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들은 왜 아직도 전동식 엘리베이터로 바꾸지 않았나. 30년 넘게 근무했던 엘리베이터 승무원을 해고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수동식 엘리베이터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물론 주민 자치 책임자는 전동식으로 교체하기 위해 자동화 설비 시스템을 몰래 사두었다. 어느 날 야간 승무원이 계단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생기고 주민들은 야간 승무원이 없어 외출 때문에 힘든 상황을 겪게 된다. 물론 주민대표는 이 것을 계기로 수동식 엘리베이터에서 자동식으로 교체하고자 한다.

 

아파트는 총 9층으로 한 층에 한 가족만 살고 있다. 엘리베이터 운행을 하며 산악인이 기록을 재듯 난다데비산 높이의 3천배를 수직 이동하는 꿈이 있는 디팍은 인도인이다. 아파트에는 매일같이 술이 취해 귀가하는 사람, 2층의 주민 대표이자 회계사, 앵무새를 키우는 노부인, TV 소리가 클 때는 늘 사랑을 나누는 부부, 마음씨 고약한 부부, 사고로 휠체어를 타는 9층의 클로이가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과 승강기 승무원인 디팍, 그리고 디팍의 조카(아내의 조카)인 인도인 산지가 사업 확장 때문에 미국으로 날아와 클로이와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소설에서 콜린스 부인의 귀걸이가 사라지고 사고가 난 리베라 씨를 대신해 야간 승무원인 산지가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도둑으로 몰린다. 산지는 뭄바이의 최대 호텔인 팔레스 호텔의 대주주이자 스타트업 회사의 대표다. 그가 야간 승무원으로 근무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클로이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산지가 도둑으로 몰릴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산지가 밤에 너무 피곤해서, 또 이튿날 아침에 미팅이 있어 콜린스 부인의 집에 스페어 키를 열고 들어가 자긴 했다.

 

 

 

산지의 피부가 갈색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난한 인도인으로 본다는 게 그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또한 휠체어를 타고 있는 클로이는 사고가 있던 날의 시간 14시 50분으로 멈춰 있다.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면 휠체어를 바라본다고 생각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안에 갇혀있다. 공원에서 트럼펫을 부는 사람들 틈에서 산지와 클로이는 만나게 되는데 산지는 클로이를 휠체어에 탄 여자가 아니라 그녀, 클로이로만 바라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5년 전의 사고때문에 클로이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고, 아파트 주민들은 산지나 디팍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날이 서 있다. 전체적으로는 산지와 클로이의 사랑이 크게 차지하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보면 다름에 대한 주제 의식이 강하다. 그럼에도 산지와 클로이의 로맨스가 다름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여자, 클로이로 바라보는 산지의 애정어린 시선이 그녀를 비로소 자유로워지게 하였다.  

 

* 덧 ; 소설 뒷편에 마르크 레비의 엘르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는데, '아내를 홀리기 위해 소설을 쓴다'라는 작가의 말이 너무도 로맨틱하다. 또한 '그 인물을 죽이면 나 당신 떠날거야' 라고 경고성 멘트를 날려 작중 인물이 살아남기도 한단다. 그래서 이러한 소설이 나오는가 보다. 소설을 읽으며, 산지가 실수로라도 목걸이를 훔쳐간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요, 라고 응원했으니까.

 

#그녀클로이  #마르크레비  #이원희  #작가정신  #소설  #소설추천  #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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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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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특수 청소를 하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기억나는 작품은 강지영 작가의 『하품은 맛있다』와 정명섭 작가의 『유품정리사』인데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다. 일본 작가가 쓴 작품도 읽었던 것 같은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생각한 게 살아가는 모습보다 오히려 죽음 이후의 모습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커다란 빙산이다. 죽음 이후의 모습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죽음은 세상의 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작품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나서는 그 생각이 바뀌었다. 한낱 오물을 뿜어내는 그래서 온갖 구더기가 생길 수밖에 없는 존재거늘 너무 집착하고 욕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 김완은 특수청소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죽은 자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청소한다. 죽음의 냄새를 먼저 맡고 죽은 자가 남긴 흔적들을 청소하면서 삶과 죽음의 이면을 생각한다. 최근 일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고독사가 끊이지 않는데, 고독사를 하는 이의 나이는 점점 어려진다는 것이 문제다. 일본의 경우 70~80대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50대가 가장 많고 점점 더 나이대가 내려가는 수준이라 한다. 고독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다. 자신의 삶이 버거워 누군가를 챙기는것이 부담스러워 그런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다양한 죽음의 현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살 현장에서 발견한 캠핑장, 화장실 위 천장의 도시가스 배관에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다. 모든 틈에 청록색 천면테이프로 꼼꼼하게 막아 밀실을 만들어 놓고 착화탄 여러개를 얹어 불을 피웠다. 그런데 그의 집 수거함엔 완벽하게 분리수거가 되어 있었다.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모든 준비를 하였던 것일까.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현자가 있어, 이 생각이 그저 가난에 눈이 먼 자의 틀에 박힌 시선에 불과하다고 깨우쳐주면 좋으련만. (47페이지)

 

가난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자 누가 있으랴. 나는 아직 죽음을 생각할 만큼 가난해보지 않아서 그 마음을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현장에 갔을 때 태반이 전기요금 연체로 전기공급 제한 통지서나 도시가스 체납으로 공급을 제한하겠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가난은 사람을 궁지로 몰아가며 죽음을 부르는 것 같다. 

 

죽은 자가 남긴 쓰레기를 치우며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 라고 하였다. 수술용 글러브와 신발 덮개, 그 안에 신는 비닐로 만든 신발 덮개, 방진 마스크와 방독 마스크를 착용하고 쓰레기를 치우며 그곳에 살았던 이의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 묵묵히 죽은 이의 흔적을 치우는 시간은 마치 고행을 하는 것과도 같다.

 

죽은 이가 남긴 흔적을 치우는 시간을 1장에서 그렸다면, 2장은 특수청소 일을 하며 느낀 점들을 말했다. 일할 때 괴롭지 않은지, 도저히 즐거운 점이라곤 없냐곤 물으면 딱 잘라서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고 했다. '벽지가 뜯겨 나가고, 장판 한 장 없이 오로지 시멘트 벽만 남은 집을 보면 그제야 어깨에 긴장이 풀리고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낀다.' 라고 했다. 앞서 말했던 고행의 시간이리라.

 

네 평 남짓한 고시원 단칸방의 온 집안에 쓰레기 더미로 문을 열 수 없는 집에서 화장실에 가득 쌓여 말라붙은 똥 덩어리를 청소하는 장면에서는 특수청소의 어려움을 다시 실감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똥을 그러모아 봉지에 옮겨 담고 나서 화장실 청소를 마친후 느낀 점은 너그러워 진다는 거다. 평소 우울감에 시달려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화장실 청소를 추천하고 싶다. 그 화장실이 더럽고 끔찍할수록 더 좋다. (221페이지) 라고 하였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그에게 걸려오는 자살을 예고하는 전화를 받을 때 경찰서에 신고를 한다고 했다. 비슷한 이야기는 책에서도 언급되었는데 미리 죽음 이후에 치울 청소 비용을 물어본다든지, 착화탄으로 자살을 하게 되면 괴로움을 느낀다는데 진짜인지를 묻는 전화였다. 그 경우 어렵게 전화 위치추적을 하여 살려낸다고 하니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겠다.

 

저자의 말처럼,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를 비롯해 삶과 죽음의 의미와 이유를 알 수 있어 숙연해졌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 이후의 우리의 모습들을 생각하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삶이 힘들다고 여기는 분들,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죽은자의집청소  #김완  #김영사  #특수청소부 #에세이  #에세이추천  #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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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알고 있다 다카노 시리즈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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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숲은 알고 있다』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숲은 알고 있다』에 이어 『워터 게임』으로 이어지는 다카노 시리즈 두 번째로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즉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다카노의 스파이가 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다카노는 스파이 훈련을 받는 열일곱 살의 예비 요원으로서 평소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 외워야 할 사항들을 외우고 사건으로 첩보 활동의 일환으로 미리 만나야 할 사람과 친해져야 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다카노는 친모가 다섯 살의 그와 동생과 함께 집에 방치되어 있었다. 작가는 일본에서 실제 일어났던 오사카 아동 방치 사건을 보고 이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자고 결심했다. 다카노는 어머니가 창문과 문에 테이프를 붙여놓고 방치해 동생은 죽고 살아남은 아이였다. AN 통신에서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골라 첩보활동을 하는 예비 요원으로 길러왔다. 나란토라는 섬에서 야나기와 함께 예비 첩보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AN요원이 18세가 되면 첩보원으로서 가슴에 폭탄을 심어 놓고 35살이 될 때까지 그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매일 보고를 하지 않으면 폭탄은 터지게 장치되어 있고 서른다섯 살이 넘으면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일본 배우 후지와라 다쓰야와 한국 배우 한효주와 변요한이 출연한 영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때문에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을 작품으로 생각된다. 변요한이 맡은 데이비드 김은 다카노가 파리에서 예비 임무를 수행할 때 기숙사에 다녀간 흔적이 보이는 한국인으로 다카노와 함께 많은 사건에서 부딪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부모가 없는 다카노 가즈히코는 오키나와 나란토의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도모코 아줌마의 도움을 받는다. 나란토로 오기 전에도 후미코의 보살핌을 받았는데 그가 첩보 요원으로 길러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같은 애정을 갖고 있다. 다카노가 겪은 일들을 다 알고 있는 가자마 다케시는 그가 그 고통속에서 벗어나게 도움을 주는 존재다.

 

 

 

친구 야나기 또한 AN통신의 예비 첩보요원이었으나 활동중 중요한 정보를 훔쳐 달아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야나기가 써 둔 편지를 발견하고 야나기를 도와야 할지, 이것 또한 첩보 요원으로서의 시험을 당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현재의 다카노를 있게 한 인물이 가자마라고 할 수도 있다. 가자마는 다카노가 과거의 기억때문에 괴로워할때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게 괴로우면 언제든 죽어도 좋아! 하지만 생각해봐! 오늘 죽든 내일 죽든 별로 다를 게 없어! 그렇다면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아 .....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봐! 그리고 그날을 살아내면, 또 하루만 시도해보는거야. 네가 두려워서 견딜 수 없는 것에서는 평생 도망칠 수 없어. 그렇지만 하루뿐이면, 단 하루뿐이면, 너도 견딜 수 있어. 넌 지금까지도 그걸 견뎌냈어. 하루야. 단 하루라도 좋으니 살아봐! 내가 지킨다! 넌 내가 반드시 지켜!. (326~327페이지)

 

비정한 첩보원의 세계이지만 가자마라는 인물을 내세워 살라고 간절하게 말하는 부분이 작가의 메시지였다. 어떻게든 살아내라고 울분을 토하듯 말하는 가자마의 외침이 다카노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카노는 나란토 섬에서 만난 시오리에게도 그 말을 전해주는데 시오리 또한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첩보 소설임에도 휴머니즘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다. 다카노에게도 가자마의 말 때문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고, 상처를 가득 안고 의연한 척 하는 어린 다카노를 엄마의 품처럼 지켜주었던 것도 후미코였다. 후미코는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늘 가자마에게 다카노의 안부를 묻는다. 열여덟 살이 되어 정식으로 임무를 받을때 성공했는지 그 한 마디만 전해달라는 마음에서 모성이 느껴졌다.

 

첩보 요원이 나오는 소설이라 꽤 박진감이 넘치고 인간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이는 요시다 슈이치 소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쓴 소설이 첩보요원들의 활동을 나타냈다고 하더라고 기저엔 휴머니즘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의 프리퀄에 해당되는 작품이어서 그 다음 이야기가 될 시리즈의 첫 편인 소설이 무척 궁금해진다. 『숲은 알고 있다』에서부터 거론되었던 상하수도 사업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 『워터 게임』도 읽고 싶다. 모든 시리즈는 함께 읽어주어야 제맛이므로. 그 다음 이야기들이 기대되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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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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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렸을적부터 이야기와 함께 자란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옛날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던 때부터 시작이다. 그런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된후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때도 이야기를 해달라는 아이에게 해준 건 동화였다. 동화를 읽어주다보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느냐고 질문의 질문을 거듭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거듭하다보면 하나의 이야기는 곁가지를 들어내며 여러 개의 이야기로 된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늘 이야기에 목말라있는 것 같다. 유년 시절의 기억때문일 수도 있고, 현실의 힘든 상황을 이야기로 잊고 싶은 것일수도 있다. 영화, 연극, 뮤지컬, 소설 그리고 드라마 등, 수많은 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와도 같다.

 

기자이자 소설가인 윌 스토는 이야기가 빚어내는 뇌과학적인 측면의 비슷한 점을 들어 설명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들이 우리 뇌에서 빚어지는 감정들의 연관성을 피력했다. 제4장에 걸쳐 스토리 텔링의 과학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1장에서는 만들어진 세계, 2장에서는 결함 있는 자아, 3장에서는 극적 질문, 4장에서는 플롯과 결말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많은 이야기가 예기치 못한 변화의 순간에 시작된다, (30페이지) 라고 하였다.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평범하지 않는 삶 혹은 생각을 가진 내용들이 나오면 그것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어 깊이 빠지게 된다. 이것은 뇌가 변화를 감지하여 신경 활동이 급격히 증가된다. 신경 활동은 삶의 경험에서 나온다. 즉 우리의 모든 경험들이 뇌 속에 정보로 저장되어 통제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야기 흐름에 예기치 못한 순간을 넣어서 주인공의 주의를 끌고, 나아가 독자나 관객의 관심으 끌여들인다. 역사적으로 이야기의 비밀을 밝히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변화의 의미를 알았다. (중략) 변화의 순간은 결정적이므로 대개 첫 문장에 응축된다. (32페이지)

 

수많은 작품들에서 첫문장은 무척 중요하다.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할까 강조하기도 하는데,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게 만드는 것이 첫 문장이기 때문이다. 많은 작품들 속 첫 문장들 중에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그 작품이 가진 소설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떠한 내용이 첫 문장 다음에 올 것인지 궁금함에 계속 읽게 되는 순간이다.

 

시각을 완벽한 것처럼 경험하는 것은 변화에 대한 뇌의 집착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밝혔다. 우리가 꾸는 꿈과 독서의 원리 또한 뇌가 그 파장을 받아 신경계 모형으로 변환시킨다는 것이다. 책에 적힌 단어나 혹은 마법사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면 뇌는 그 마법사의 모형을 만들어 작가가 만든 세계를 각자 구축한다는 설명이었다.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장면들을 상상하게 되는데 그 것을 말하는 부분이었다. 신경과학자 벤저민 베르겐에 따르면 우리가 단어를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형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작가가 배치하는 단어의 순서는 무척 중요하다. 매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처럼 괴물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정확한 묘사여야 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묘사하여야 한다.  

 

이야기에서 인물은 중요하다.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건 완벽하지 않는 인물 때문이다. 영화로도 보고 소설로도 읽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설명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유능한 집사인 스티븐스를 결함을 가진 인간이라 여기지 못했었는데 저자는 스티븐스가 가진 결함을 설명한다. 저택의 중요한 행사를 총괄하는데 있어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보러 올라갔음에도 행사 때문에 그냥 내려왔고 스티븐스 시니어의 죽음이 임박했음에도 집사의 의무를 다하려 했었다. 불완전한 존재를 만들어 독자의 머릿속에 환각을 심어 환각 속에 갇히게 만든다.

 

우리는 작품 속 인물의 시선으로 사건을 경험하기 때문에 우리도 인물처럼 흥미진진하고 변화무쌍한 극에 주의를 빼앗긴다.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게 만드는 인물이 없다면 사건은 아무런 의믿 없는 현상일 뿐이다. (135페이지)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극적 질문이 필요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극적 질문에 대한 답이 명쾌할 수도 있지만 실제 현실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 완벽한 삶이 없듯 완벽한 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의 패니 프라이스가 부유한 친척 토머스 경에게 차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패니 프라이스가 되어 화를 내며 지켜보게 된다. 몇 년 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나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이것이 나보코프가 그린 장치였음이 밝혀졌다. 계속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는 험버트를 부족하고도 결함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야 했고, 잘생기고 좋은 옷을 입고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했다. 또한 험버트가 롤리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롤리타가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몰고 가야 했다. 즉 롤리타의 어머니가 사라져야 했고, 롤리타가 험버트를 만나기 전에 클레어 퀄티라는 남자와 도망쳐야 했다. 나보코프의 생각대로 험버트를 미워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성인이 된 우리가 진실이라고 경험하는 환각은 우리의 과거에 구축된 것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의 상처를 통해 세계를 보고 느끼고 설명한다. (224페이지)

 

이야기는 진실한 위안을 준다. 고도로 사회화된 종인 우리가 받은 저주는 우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두가 타인과 잘 어울리고 성공하고 싶어하므로 우리는 거의 항상 상대에게 조종의 대상이 된다. (중략) 이야기에서 누군가의 결함 있는 마음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 (266페이지)

 

우리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위의 발췌 문장에서처럼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공감이다.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으면 재미없는 책이 된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그려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음을, 우리보다 더 못한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다해도 나보다 힘든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공감을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이야기의 탄생을 뇌과학 측면에서 바라본 글이었다. 이야기 속에 빠지기 위해 필요한 인물의 결함과 극적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들에서 뇌 속에 저장된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이야기가 탄생되었다. 우리가 인물들에게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 놀라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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