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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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한 장소에서 몇 달씩 혹은 몇 년씩 묵는 사람들이 부럽다. 누군가 부러우면 지는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부러운건 어쩔 수 없다. 최근 코로나가 있기 전 추세가 어느 나라의 한 장소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며칠을 여행하는 것과는 다른 한 달씩 살아보며 그 장소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행자들이 주로 가는 곳보다는 실제 그곳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골목골목을 걸어보는 일이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알지 못하는 맛있는 빵집이라든지 신선한 생선을 파는 가게를 알 수 있고 그 사람들과 마치 주민처럼 친해질 수도 있다. 김영하가 작가가 머물렀던 시칠리아의 리파리섬에서처럼.

 

그러니까 이 책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이후에 나온 책이 아니라 십 년 전에 출간되었던 책을 다시 손봐 내놓은 책이다. 『여행의 이유』 이전에 나온 책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후에 나온 책이기도 하다. 서로 연결되는 여행이라는 주제가 있으니. 『여행의 이유』가 보다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보았던 여행에 대한 사유라면,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김영하의 눈으로 바라보는 보다 개인적인 시선이 담겨 있었다. 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마음, 여행지에서의 일상, 요리를 하는 한 여자의 남편이 비춰졌다. 물론 그의 사유가 빛이 안나는 건 아니다. 그가 머물렀던 장소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역시 해박하다.

 

 

 

십 년 전의 작가는 한국종합예술학교의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연재 소설 계약을 하고 소설을 쓸 것인가, 매달 정해진 급여가 나오는 학교일을 계속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소설에 더 집중하라는 작가의 아내는 분명 미래를 내다보는 천리안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무슨 일에서든 작가를 응원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시칠리아로 떠나기 전 작가는 한 방송사의 <세계테마기행>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함께 제작하며 외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작가는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를 말했고, 여행 프로그램을 찍었었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작가는 남은 기간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시칠리아로 향했다. 스마트폰도 없고 지도 한 장과 물어물어 원하는 장소로 향하는 모습은 오래전 우리들이 여행했던 그것과 닮았다.

 

이 책에서는 초판에서는 없었던 꼭지가 생겼다. 현지에서 요리하는 모습인데 꽤 인상적이다. 요리법이 TV만 틀면 나오는 요리가 백종원 못지 않다. 현지에서 나오는 재료로 스파게티 등을 만드는데 침을 삼키며 읽은 부분이다. 머릿속으로 그가 하는 요리를 따라하며 오늘은 스파게티를 해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주 상세하고도 간단한 몇가지의 요리를 소개했다. 오징어 스파게티, 봉골레 스파게티, 동서양 절충식 볶음밥, 해물 리소토를 가리켜 지중해식 생존요리법이라 칭했다. 궁금하지 않는가!

 

작가는 시칠리아의 북쪽 해안에 자리잡은 안토니나의 농장에서 개짖는 소리를 들으며 오래전 추억을 떠올린다. 군대의 대대장 관사에서 살았던 때 아버지를 따랐던 개 꾀돌이가 사라져 며칠이고 찾았던 그때를. 십수 년이 지난뒤 아버지를 찾아왔던 병사가 말하기를 부대원들이 꾀돌이를 산속으로 유인하여 잡아먹었다며, 이후 그 부대에서 안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래전 집에서 기르던 개를 떠올린 작가는 안토니나의 농장이 더이상 낯설지 않았다는 말을 읊조린다. 삶은 그런 것이다. 낯선 곳에서도 익숙한 기억들이 떠올라 더이상 낯설지 않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행을 떠나며 그가 가진 많은 것들을 정리했다는 점이다. 물건들을 정리하며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36페이지)

 

 

 

작가는 여행을 준비하며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집을 둘러본다. 거실에는 기억자로 된 커다란 책장에 책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안방 뿐만 아니라 다른 방들에 걸쳐 책에 둘러 쌓여 있다. 그렇다고 이 책들을 다시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몇 권에 한정된다. 헌책방에 팔아 누군가가 보게 할 수도 있다는 것. 작가의 말처럼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너무 천천히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어.

특히 여행 같은 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을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종일 얘기하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287페이지)

 

내가 이제야 느끼는 것들을 작가와 작가의 아내는 벌써 십 년 전에 느꼈다는 것이다. 그때 느꼈던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삶의 방식이 자유로운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는 삶. 여행자로 살아가는 그의 삶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곧 여행이므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과도 같은 삶인데 굳이 현실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래준비해온대답  #김영하  #복복서가  #여행  #여행에세이 #에세이  #에세이추천  #책추천 #여행의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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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20-05-1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책장 정리하면서 책이 많이 줄었다는것이 확실히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대략 300권정도 있던데, 함정은 읽지 않은책이 대부분이라는거죠. 더 열심히 읽어서 100권 미만으로 죽이는것이 목표랍니다~

Breeze 2020-05-19 09:04   좋아요 0 | URL
책을 좀 정리해야지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
 
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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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미래에서 아들이 찾아왔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믿을까? 대답은 아니다,가 많을 것 같다. 소설 속 아들이 말하길, '나는 당신 아들이야. 미래에서 왔어.'라고 얘기했다면 당신이라면 믿겠는가. 하지만 독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을 응원하게 된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 그 아들이 찾아왔음에도 알지 못하는 스물세 살의 철부지 청년에게 제발 아들이란 걸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필 왜 스물세 살의 다쿠미에게 아들이 찾아간 것일까. 그 의미를 찾느라 많은 생각을 거듭했던 것 같다. 스물세 살의 다쿠미는 한 방을 노리며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다. 하나야시키 놀이공원. 한때 야구선수이기도 했던 다쿠미는 공을 던지지만 제대로 맞지 않는다. 투구 폼 이때부터 그랬구나 라고 던진 젊은 청년이 다가오고 자신을 도키오라 칭한다. 바로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친척 쯤 된다고 말하는 도키오는 그 때부터 다쿠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앞서 소설의 첫부분은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에 걸린 아들 도키오가 침대에 자는 듯 누워있다. 깨어나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을까 하여 말을 건네지만 아들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들 도키오가 과거의 아버지 다쿠미에게 찾아온 설정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아직 엄마를 만나지 않은 시기, 지금의 아빠와는 많이 다른 철부지 청년에게 마치 친구처럼 다가가 그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다쿠미에게는 여자 친구 지즈루가 있었다. 지즈루는 술집에서 일했고 그에게 번듯한 직장을 찾길 바라 경비회사에 면접을 보러가라고 소개해주었지만 게임을 하다가 면접에 늦어버린 다쿠미였다. 면접에 늦은 사실을 숨겼던 다쿠미는 갑자기 이별 통보를 하고 사라진 지즈루를 찾았다. 다쿠미 앞에 수상한 남자들이 나타나 지즈루를 찾으며 거액의 돈을 제시한다. 지즈루를 찾으러 오사카로 향하게 된 다쿠미와 도키오의 여정이 진행된다. 그동안 다쿠미는 입양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언젠가 집에 찾아온 젊은 여성이 친어머니일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자기를 버렸다며 모든 걸 친어머니 탓을 한다. 자기를 버리고 부잣집에 재혼을 한 어머니가 탐탁치 않다. 생명이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았음에도 일절의 관심이 없다. 

 

이 소설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화해를 다룬다. 도키오의 이름이 되돌리는 시간이었듯,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아버지에게 찾아온 도키오는 철부지 아빠를 다독이며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가 친어머니 탓을 해도 낳아주지 않았느냐며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오사카로 가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뉴스에 나왔던 사실을 기억한 도키오가 건 말 또한 과거에 이름을 날렸던 말의 아들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엄마와 딸의 관계보다 더 묵직한 감정인 것 같다. 말없이 바라봐 주는 역할이면서 서로를 북돋아주는 관계라고 여겨도 될 것 같다. 십대 중반부터 온 몸이 굳어가는 희귀병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아이를 태어나게 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함께 했던 다쿠미의 현재는 울컥한 부성애를 불러 일으킨다.

 

과거의 시간 속 다쿠미와 도키오는 부모의 근원, 즉 다쿠미를 양자로 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찾게 한다. 철부지 스물세 살의 청년을 이끌어 부모의 근원을 알게 한다. 길러주지는 않았으나 태어나게 해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것이 행복임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종종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 소설을 만나곤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속 시간여행은 좀더 감동적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부모를 원망하는데, 낳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걸 말하였다.

 

추리와 미스테리, SF적인 요소, 그리고 아들과 조금씩 성장해 가는 한 젊은 청년. 왜 스물세 살의 다쿠미인가에 얽힌 귀한 인연들이 사랑이라는 형태로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아사쿠사의 하나야시키로! 아마 이 새로운 여행은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아들도키오  #도키오  #히가시노게이고  #비채  #소설  #소설추천  #추리소설  #미스테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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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땅
김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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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잠깐 보았던 장면이 있다. 러시아에서 사는 고려인들이 모여 한국 음식을 해먹는 풍경을 담은 프로그램이었다. 고려인으로 태어났으나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정착한 그들의 고향을 잊지않으려 음식을 해먹는 모습을 보고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그 때도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였던 듯하다. 그저 일제 치하에 만주나 러시아로 이주한 사람들이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김숨의 『떠도는 땅』을 읽으며 고려인 강제 이주에 대한 아픈 역사를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역사였다. 검색 사이트에 '고려인 강제 이주'에 대하여 검색해보고 글을 찾아 읽으며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살고자 하여 떠났으나 그곳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스탈린에 의하여 강제 이주를 당한 사실이 못내 가슴 아팠다.

 

 

 

소설을 읽으며 생각한 것이 왜 소련의 스탈린은 고려인들을 강제 이주하였는가 였다. 물론 소설에서도 나타났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중일 전쟁이 한창인 때 소련의 스탈린은 일본의 간첩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고려인들을 강제 이주 시켰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외모가 비슷해서 간첩 색출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1937년에 약 172,000 명의 고려인들을 극동지역에서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떠나기 사흘 전 일주일 치 식량과 당장 입을 옷을 준비하라는 이주 명령을 듣고 고려인들은 화물 열차에 태워졌다. 소시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말린 빵 등을 챙겨온 이들은 열차 칸에 모여 자신의 자리에 앉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열차 칸에는 식수로 사용하는 양철통과 분뇨통으로 사용하는 양철통이 있었다. 하나 있던 난로의 불은 꺼진지 오래 되었다. 온통 암흑인 열차 칸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어떤 이들은 아무도 몰래 싸 온 음식을 먹고,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된 젊은 부부, 7개월에 이르는 임신부, 아픈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들을 가지고 열차에 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생김새는 조선인이었던 이들은 왜 이주를 해야하는지도 모르게 열차에 태워졌다. 장사를 떠난 남편과 함께 떠나려고 했으나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릴 수 없었다. 조선에서 떠나온 사람들은 러시아에서는 땅을 나눠준다는 말을 믿어서 자신의 땅 한 뙈기 갖고 싶은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조선의 독립은 요원해 보였고 어떻게든 자식들과 살고자 했다.

 

열차에 탄 금실의 시어머니 소덕은 떠날 날이 다가오자 바느질을 해 작은 주머니를 만들었다. 그곳에 하나하나의 씨앗을 담았다. 도착하게 된 땅에서 심을 씨앗이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채소를 심으려 치마에 주머니를 매달았다. 내가 죽더라도 치마를 벗겨 가라는 말이 안타깝다.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먹지 않아 젖이 나오지 않은 아이 엄마, 기도하는 여자의 남편. 아이가 죽자 눈물을 흘리며 열차 밖으로 던지던 아이의 아빠의 행동에 가슴이 아렸다. 땅을 찾아 떠났지만 그 땅에서 쫓겨 나 다른 땅으로 향하는 조선인들의 간절한 염원이 느껴졌다.

 

 

 

땅이 떠도는 것인지, 내가 떠도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떠돌았지 ...... 첩첩산중 두멧골에서 태어난 내가 러시아 땅을 떠돌며 살 줄이야...... (183페이지)

 

 

최근 김숨 작가는 우리의 아픈 역사 속 인물들에게 천착한다. 그가 쓴 위안부에 관련된 소설을 두 권을 읽고는 일본이 우리에게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들이 떠올랐다. 또한 돌아온 위안부들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나는 우리의 이중인격을 바라보게 했다. 이제는 나라없는 설움에 살고자 하여 땅을 찾아 떠난 러시아에서 강제 이주를 당한 사람들을 말했다. 땅은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곳이다. 아무런 먹을 것이 없는 척박한 땅임에도 그곳에서 판자집을 짓고 쓴 물이 올라오는 풀 죽을 쑤어 먹는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젖 한 모금 나오지 않지만 살아가야 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김숨의 깊은 시선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가 말하는 사람들은 힘이 없는 약한 사람들이다. 누리고 산 사람들이 아니라 노비의 자식이면서 땅 한 뙈기를 갖기 위해 고국을 등진 사람이다. 살아가는 곳이 고국이라 여기며 돌아갈 곳이 없는 나라를 그리워했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땅은 고국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아닐까. 비록 아직 독립을 못했지만 어디선가 고국의 씨앗을 키우며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염원일 것이다.

 

#떠도는땅  #김숨  #은행나무출판사  #은행나무  #Axt  #한국소설  #고려인강제이주  #강제이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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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들은 공룡이 되고 싶다고 했다. 특히 티라노사우루스가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만큼 공룡에 심취해 있었다. 실물에 가까운 공룡 인형을 샀고 그 크기가 다양한 것들을 수집하였다. 여러 개의 공룡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숫자를 세기도 하며 공룡의 시대가 도래하는 세계를 노래하였다. 지금 그 아이는 커서 뭐가 되었느냐면 넷플릭스의 시트콤을 즐겨 보며 웃고 구제 옷에 빠져 있는 대학생일 뿐이다. 아마 많은 사내 아이들이 공룡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리라. 아들과 18개월 차이나는 조카 녀석도 커서 공룡이 되고 싶다고 했었으니. 마치 성장의 한 단계처럼.

 

그러한 연유로 이 책이 궁금하였다. 공룡은 인간보다 더 앞서 지구에 살았던 존재다. 공룡의 화석을 둘러싼 희대의 사기극처럼 여겨져 공룡 사냥꾼들과 고생물학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알수 있겠다 여겼다. 그 생각은 적중하였다. 페이지 윌리엄스의 『공룡 사냥꾼』은 같은 출판사인 흐름출판에서 나온 커크 월리스 존슨의 『깃털 도둑』처럼 자연사 적인 면에서 굉장히 두드러진 책이다. 

 

과학에 문외한인 나는 공룡이라는 것이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실제로 화석이 나타난 줄도 몰랐으며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공룡의 화석들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듯 하다. 우리 나라에도 공룡 발자국이 새겨져 있는 장소가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 찾아 갔었으면서도 인류 이전에 존재하였던 공룡을 그저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상상의 세계라 여겼던 것이 조금 부끄럽다.

 

 

이 책에서도 나타났지만 영화 <쥬라기 공원>을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인디아나 존스>를 만들 때 박물학자인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를 참고하였을 거라고 했다. 많은 고생물학자, 화석 사냥꾼들이 이 책에 소개되었다. 물론 이 책은 몽골의 고비 사막에서 화석들을 수입하여 표본 복원작업을 거쳐 실물 크기에 가까운 공룡 화석을 경매에 내놓은 에릭 프로코피라는 인물을 통해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자연사에 관련된 것들을 말한다. 화석들을 밀수출하여 미국으로 가져왔으나 그게 불법임을 알지 못하였고 그저 빚을 탕감할 수 있는 거대한 수입으로만 인식했다. 이 사건은 미국과 몽골의 국제 분쟁까지 일으켰다.

 

수영선수이기도 했던 에릭 프로코피는 어렸을 때부터 오래된 돌에 관심이 많았다. 바닷가에서 상어 이빨 등을 주워와 팔기도 하며 집에 화석들을 보관하는 창고도 가졌었다. 그저 화석에 관심을 가졌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사업의 일환으로 여겼다. 두 명의 유명한 영화배우에게 티라노사우루스의 두개골을 팔며 거대한 수익을 올렸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사촌 쯤으로 여겨지는 타르보 사우루스 바타르를 복원 작업해 거대한 경매회사 헤리티지 옥션스에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몽골에서 발굴된 뼈를 돌려받고 싶은 몽골의 고생물학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에릭은 빚더미에 오를 뿐만 아니라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화석이 없다면, 지구의 형성과 역사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석이 없다면, 46억 년이라는 지구의 나이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시기에 어떤 생물이 살았으며, 언제 죽었으며,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화석이 없다면, 자연사박물관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16페이지)

 

과거 1세기 동안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몽골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의 발돋음을 시작했다. 척추동물 고생물학자이자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과학 학장인 마이크 노바첵을 방문한 사람에 의해 몽골 고비 사막에 대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땅 표면에 흩어져 있는 공룡의 뼈뿐 아니라 많은 양의 알과 알의 파편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과 더불어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팔아치울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릭 프로코피에게 공룡의 뼈들을 판 이도 몽골의 투브신이었다. 화석들을 인부를 이용해 발굴하여 화석 사냥꾼들에게 많은 돈을 받고 팔았다.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가볍게 무시했다.

 

몽골의 고비 사막은 자연사의 보고와도 같았다. 수많은 고생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고비 사막을 찾았고, 돈이 될 수 있는 공룡 뼈들을 긁어모아 사갔던 공룡 사냥꾼들은 표본 복원 작업하여 비싼 값에 되팔았다. 몽골의 공룡 화석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 마치 자신의 나라에서 발굴한 것처럼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나라의 문화예술품들이 외국의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고 있는 것들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발굴해 간 사람과 그것들을 사서 박물관에 기증한 사람들이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수천 개의 화석이 여전히 미국, 러시아, 일본 등에 소장되어 있다. 몽골의 볼로르는 1920년대에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가 수집한 뼈를 포함해 모든 뼈가 몽골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또한 그러한 인물이 있었기에 비록 100년 대여 형식이지만 유물이 돌아온 전례가 있지 않는가.

 

고생물학자와 화석 사냥꾼의 이야기를 통해 공룡이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공룡의 두개골 뼈를 산 유명 영화배우의 실명이 그대로 드러난 것처럼 고대 화석을 향한 집착과 욕망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나타나기 마련인 것 같다. 하지만 볼로르 같은 몽골인이 있었기에 티 바타르는 살아남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학 분야의 책이라 어려우면 어떻게 할까라는 우려와는 달리 공룡에 대한 발굴과 그것을 되파는 화석 사냥꾼들의 집착과 욕망을 다룬 역사는 꽤 흥미로웠다. 마치 어드벤처 영화나 범죄 소설을 방불케하는 전개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많은 몽골인들이 자연 화석을 지키려는 끈기와 의지를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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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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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매가 살았던 동네 근처에서 한 여자가 실종된 소식을 들으며 소설은 시작된다. 언니와 함께 콘월에 집을 빌려 휴가를 보낼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런던 외곽의 말로로 향했다. 역에 마중나오기로 했던 언니가 없다. 간호사로 일하는 언니에게 무슨 사정이 생겼을 거라 생각했다. 언니의 집 문을 열었으나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계단을 바라보자 계단 꼭대기 기둥에 자기 목줄로 감긴 개 페노가 보인다. 그리고 계단을 오른다. 계단 벽에 핏자국이 묻은 걸 발견했다. 핏자국을 따라 계단으로 오르자 가슴에 피를 흘린채 언니가 죽어 있었다. 울부짖으며 언니를 안았으나 숨을 쉬지 않았다.

 

언니와 함께 할 예정이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리며 다시는 함께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무엇보다 누가 언니를 죽였는지 알아야 한다. 노라는 언니 레이첼의 죽음으로 경찰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사건에 대하여 생각한다. 십대의 언니가 누군가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후, 술을 마셨다는 말에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던 경찰들을 믿지 못해서였다. 자매의 죽음은 현재에서 자꾸 과거로 향한다. 언니와 콘월에서 즐거웠던 추억들을. 폭행이 일어났던 날 밤을 아무리 복기해보지만 언니는 다시는 자기와 함께 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상실감이 소설 전체에 자리잡고 있다.

 

 

 

 

작가의 장치이기도, 한데 소설의 처음부터 언니의 죽음이 누군가와 연관되었을거라는 사람이 존재하지만 관련이 없을 거라는 판단하게 놓치고 만다. 혹시 노라가 생각했던 것처럼 옆집 남자가 살인범일까. 언니와는 어떤 관계일까. 동네의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보지만 살인범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하게 소설의 처음부터 혹시 노라가 범인일까 라는 가정을 했었다. 어떠한 이유로 노라가 언니를 죽였을까. 언니와 함께하지 못할 시간을 생각하는 노라의 진심은 어디까지 일까. 일종의 트릭일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소설 속의 화자 노라가 들려주는 언니와의 이야기 중에서 자꾸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매지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질투의 관계에 엮이기도 한다. 콘월의 이사계획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한 페노가 방범견이었다는 것. 누구로부터 자신을 지키려했는지 알지 못했다.

 

 

 

 

노라는 언니의 집에 머물지 못하고 경찰이 구해준 헌터스에서 묵게 되었다. 헌터스의 매니저는 과거에 일어난 마을의 청년 캘럼에 이어 언니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사고가 났을 때 캘럼은 언니의 환자였다는 것이 기억났다. 마을의 카페에 들렀는데 캘럼과 함께 차에 타서 사고가 났던 흉터 투성이의 루이즈를 보고는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에 슬며시 미소를 교환한다.

 

언니를 살해한 용의자가 드디어 나타났다. 노라의 노력과 의도가 들어갔지만 곧 풀려나고 노라 또한 용의자가 되어 경찰에 붙잡혀 간다. 형사들이 질문했던 많은 것들이 자기를 살인범으로 보았던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구속할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드디어 베일을 벗는 건인가. 무척 기대감을 가졌었다. 기대감을 무참하게 저버렸다.  

 

 

 

 

레이첼은 노라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언니의 환자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도 말했었다. 언니가 말했던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지만 그 정체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디에선가는 항상 연결고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 연결고리를 찾자마자 급물살을 타게 된다. 살인 미스테리치고 약간 느슨하게 진행된다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이 소설은 자매를 잊은 남은 자매의 상실감을 다루었다. 책을 다 읽고 났더니 비로소 알겠다. 왜 살인 미스테리가 아니고 살아 남은 사람의 상실감인지. 다시는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지 못할 것을 나타냈다는 것도. 이제 영원히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지도, 자매들이 무척 좋아했던 콘월로의 여행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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