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조의 말 - 영어로 만나는 조의 명문장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공보경 옮김 / 윌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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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을 두 번 읽고, 영화까지 두 편을 읽으며 조 마치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린이판 축약본으로 읽을 때도 조 마치에게 나를 투영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특히 작가들이 조 마치를 롤모델 삼았다. 조 마치를 사랑하는 이들의 만족시켜 줄 책이 출간되었다. 『작은 아씨들』의 원문에 들어있는 조의 말만을 골라 엮은 책이다. 영어 원문까지 실려 있어 영어 공부하는데도 좋다.

 

『작은 아씨들』에서 조는 활기차며 무엇보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긴다.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한 살 언니인 메그와 수줍은 베스, 그리고 고집쟁이 에이미에게도 마음을 다한다. 이웃집의 외로운 소년 로리를 보았을때는 먼저 손을 내밀어 그와 친구로 지낸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그 시절에 머물고 싶은 소녀다. 때로는 사내아이처럼 뛰어다니지만 글을 써 자매들과 연극 공연을 하며 지내는 게 좋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조를 만날 수 있다.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익히신 거예요? 그게 너무 어려워요.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말들이 튀어나와요. 말을 할수록 점점 더 가시가 돋쳐요. 사람들이 상처받는 걸 알면서도, 고소해하면서 지독한 말을 해버린다니까요.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는지 방법을 알려주세요. 어머니.

How did you learn to keep still? That is what troubles me - for the sharp words fly out before I know what I'm about; and the more I say the worse I get, till it's a pleasure to hurt people's feelings, and say deradful things. Tell me how you do it, Marmee dear. (52페이지)

 

 

 

조와 메그가 로리와 함께 외출했을 때다. 에이미는 언니들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데리고 가지않은 조에게 화가 나 조가 가장 아끼던 것을 없애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조가 쓴 소설을 불에 태워버렸던 에이미는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조는 에이미를 무시했다. 조가 로리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간 날 뒤따라 나섰던 에이미는 살얼음이 깨져 물에 빠졌고 로리와 함께 구했다. 에이미가 죽을 뻔한 사실에 울며 어머니에게 했던 말이다.

 

우리 또한 금방 후회할 말들을 하곤 한다.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해놓곤 미안한 마음때문에 앓는다.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면 좋겠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조의 어머니 또한 지금도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늙어서 관절이 굳을 때까지,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 날까지 계속 뛸 거야. 나를 철들게 하려고 재촉하지는 마, 언니.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잖아. 나는 최대한 오래 아이로 살고 싶어.

Never til I'm stiff and old, and have to use a crutch. Don't try make me grow up before my time, Meg; it's hard enough to have you chang all of a sudden; let me be a little girl as long as I can. (75~76페이지)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많은 걸 보고 겪고 배우고 싶어요. 요즘 너무 사소한 일에 매달려 쓸데없는 고민만 해서 기분 전환이 필요해요. 올겨울에 둥지 밖으로 나가서 날갯짓을 해보고 싶어요.

I want something new; I feel restless, and anxious to be seeing, doing, and learning more than I am. I brood too much over my own small affairs, and need stirring up, so, as I can be spared this winter I'd like to hop a little way and try my wings. (148~149페이지)

 

할 수만 있다면 오랫동안 아이로 남고 싶다는 건 우리 모두의 소망일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되었다는 게 서글플 때 종종 어린아이였던 시절을 떠올린다. 조의 대고모는 자매들에게 부자인 사람을 만나 결혼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조는 대고모의 말에 반기를 들곤 했는데 남편에게 의지하는 삶 보다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고 싶은 바람을 내비쳤다. 조는 과감하게 새로운 세상을 찾아 뉴욕으로 향한다.

 

여기까지야. 난 아마 누구하고도 결혼하지 않을 거야. 이대로가 행복해. 자유롭게 사는 게 너무 좋아서 세상 어떤 남자를 위해서도 이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Nothing more - except that I don't believe I shall ever marry; I'm happy as I am, and love my liberty too well to be in any hurry to give it up for any mortal man. (178~179페이지)

 

처음 보았을 때부터 사랑하게 되었다는 로리의 고백을 받고 친구 관계마저 사라질까봐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영화 속에서 자신이 로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조가 함께 사용하던 우편함에 자기의 마음을 인정하는 편지를 넣어두었다. 그 뒤 에이미와 결혼하여 나타난 로리를 보고 실망하여 다시 그 편지를 빼오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기억난다. 절대 결혼 같은 거 하지 않겠다던 조에게도 진정한 사랑이 찾아오게 되었으니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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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결말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3
김서령 지음, 제딧 그림 / 폴앤니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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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게 허밍버드판 『빨강머리 앤』에서였다. 여러 판본 중 가장 예쁘게 빠진 책으로 내가 아끼는 책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그걸 번역한 작가였다. 그후 작가의 에세이 『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를 읽고서는 작가가 그냥 좋아졌다. 작가의 글 쓰는 스타일이 좋았다고 해야 옳다. 무던하면서도 유쾌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할 정도로 작가의 신작 소설을 기다려왔다.

 

『연애의 결말』은 작가의 소설집으로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일러스트레이터 제딧이 삽화를 그렸다. 소녀 감성이 물씬 풍기는 그림으로 소설집은 마치 순정 만화를 보는 듯 했다. 더군다나 에세이에서 느꼈던 작가의 느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었다. 서른이 넘은 여자의 사랑과 결혼관을 만날 수 있었다. 특별히 무엇이 되지도 않은 상태의 서른너머의 사람들. 동갑 내기를 만나 사랑을 하고 또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연애의 결말은 결혼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유쾌하다. 임신부터 덜컥 해버려 결혼해야 하는 처지의 남녀 관계에서도 각 부모가 느끼는 결혼과 그로인한 다양한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쳇말로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책방이나 해볼까. 카페나 해볼까는 자주 회자되는 말이다. 나 또한 그런 로망이 없잖아 있는데, 「어떤 일요일에 전하는 안부 인사」 같은 경우다.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연 친구 현하의 카페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여대 앞에서 카페를 했던 것과 주방장으로 있던 조부장의 기억들을 떠올린 글이다.

 

서울시 연정동 연정유치원의 김연정의 이야기는 연인을 위해 기획했던 프로그램(연구소의 개들을 안락사 시킨 일)으로 인해 어떠한 댓글들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퐁당」이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어디론가 사라진 지호를 어딘가에 퐁당 두고 왔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연탄집 아이들 「지우 연우 선우」 이야기는 한국의 경제사를 한눈에 보는 듯했다. 연탄집에서 기름집, 그리고 아파트, 투기로 이어지는 시기. 그 시기가 시작된 연탄집 아이들의 이야기는 결혼으로 이어지는 관계에서 다른 한편으로 무겁게 드러나는 내용이기도 했다.

 

작가의 경험이 아닐까 싶은 「모두 잘 지내나요」 는 덜컥 임신부터 해버려 결혼으로 이어지며 언니와 그동안 묻어왔던 상처와 용서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는 것과 미안하다고 용서를 비는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나 혼자서 언니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그걸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서 많이 울었던 시호. 결혼을 앞두고 언니와 통화를 하며 비로소 언니의 마음을 알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절망의 시간을 보냈을 언니를 조금쯤은 이해하지 않았을까.

 

연애의 결말이 꼭 결혼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자주 결혼이 거론되는 걸 보면 연애의 결말은 결혼일수도 있겠다. 이는 '공주와 왕자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처럼 동화를 너무 많이 읽었기 때문일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음직한 인물들의 이야기였고, 전체적으로 유쾌한 소설이었다. 작가의 장편소설을 아직 읽지못했지만 단편이 이렇게 재미있으면 장편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은 기대감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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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시인이자 에세이시트, 사상엔 북학파, 문학엔 백탑파인 이덕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이덕무의 문장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읽게 된 책이다. 『문장의 온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 『문장의 온도』 이 소품문 속 에세이를 다루었다면 『시의 온도』는 이덕무의 시를 모은 책이다. 그가 쓴 128편의 명시를 추려낸 책이다.

 

조선에서 시나 문장을 쓴 학자들이 중국의 문학을 참고로 했다고 알고 있다. 조선 시인의 책을 어렵게 구해 시를 베끼고 시인의 글들을 사랑하였다. 반면 이덕무는 중국의 문인들과는 전혀 다른 그만의 시를 썼다는 게 중요하다. 즉 어느 누구의 시와도 다른 조선의 시를 썼다는 거다.

 

이덕무 마니아로 스스로 칭하는 한정주는 이덕무의 글쓰기를 여덟 가지의 비결로 요약했다. 첫째,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글을 써라, 둘째,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라. 셋째, 일상 속에서 글을 찾고 일상 속에서 글을 써라. 넷째,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보고 적어라. 다섯째,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말고 자신만의 색깔로 글을 써라. 여섯째,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라. 일골째,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구속당하지 말고 자유롭고 활달하게 글을 써라. 여덟째, 온몸으로 글을 써라. 다시 말해 나의 삶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글에 담아 써라. (9~10페이지)

  

 

이덕무의 문장 들을 읽고 있노라면 일상의 삶의 그대로 보여진다. 쌀 한 톨 없이 가난한 삶에서도 글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 그대로 글을 썼다는 거다. 수많은 문장들 속에 그의 삶을 엿본다. 그가 교우했던 인물들이 그의 문장을 보고 칭찬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문장들을 말이다.

 

시를 지으려면 무엇보다 시에 대한 안목과 식견을 갖춰야 한다. 좋은 시와 나쁜 시를 볼 줄 아는 안목과 식견이 있어야 좋은 시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짓지 않는다고 해도 시를 감상하는 방법을 안다면 시 읽는 재미와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시는 시적 언어를 통한 압축과 생략의 문학이기 때문에 산문에 비해 읽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41페이지)

 

진실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한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박지원을 만난 이덕무의 삶은 최고의 행복을 누린 삶이었다고 할 만하다. (82페이지)

 

서얼 출신의 이덕무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백탑파의 일원들이었다.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를 비롯해 홍대용, 박지원, 서상수, 유금, 이만중, 이재성과도 교유했다. 무엇보다 이덕무의 괴이한 시를 깊이 이해하고 앞장서서 지지하고 옹호해 준 사람이 박지원이라는 사실이다. 박지원은 이덕무에게 롤 모델이자 스승이었으며 또한 벗이었다.

 

가을 샘 흐느끼며 무릎 아래 지나가니

어지러이 솟은 산속 책상다리하고 앉았네

낮에 먹은 술 저녁 무렵 올라오니

활활 달아오른 귀, 단풍 닮았네   - 『아정유고 1』 유득공, 박제가와 밤나무 아래에서 쉬며 (115페이지)

 

이덕무와 유득공은 가난함과 굶주림을 함께 나눈 벗이었다고 했다. 궁핍한 생활을 알고 있으니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집에서 가장 좋은 책을 팔아 배불리 먹었던 일화를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유득공 역시 아끼던 책을 팔아 술을 사서 서로 나눠 마셨다는 일화였다.

 

간혹 가난 때문에 병 얻으니

내 몸 돌보는 이 너무도 소홀하네

개미 섬돌에도 흰 쌀알 풍족하고

달팽이 벽에도 은 글씨 빛나네

약은 문하생 향해 구걸하고

죽은 아내 좇아 얻어먹네

병 얻어도 오히려 독서 열중하니

굳은 습관 일부러 고치기 어렵네    『아정유고 2』  여름날 병들어 누워 (167~168페이지)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병을 얻어도 독서에 열중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습관처럼 책을 읽는 이덕무의 모습과 굳은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는 말에 얼마나 책을 읽으면 그렇게 되나 싶다.

 

밀랍을 녹여 매화를 만드는 것을 윤회매라 한다. 벌이 꽃을 채집하여 꿀을 만들고 꿀이 다시 밀랍이 되고, 밀랍이 다시 꿀이 되는 변화가 마치 불교의 윤회설과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책 속에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굉장히 아름다운 매화를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남쪽이라 이른 꽃을 피운 매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적이 있는데 매화가 지고 다시 피는 것 보다 영원히 바라보려고 그런 게 아닐까. 

 

서얼 출신으로 가난하게 살았던 이덕무가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었을 때도 오두막집에 살며 권력을 좇거나 부귀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간서치라 불린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좋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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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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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기억.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들. 그에게 느끼던 감정, 그리고 전해오던 감정들. 나에게 사랑의 기쁨 외에 사랑의 아픔까지 전해주던 그 때의 감정들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공지영 작가의 책을 읽어오며 이번 작품만큼 그의 연륜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듯한 느낌. 모든 감정을 끌어 모아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첫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울리게 만드는 단어. 아련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스무 살의 나, 열아홉 살의 이미호 로사와 스물두 살의 요셉의 사랑을 떠올린다. 첫사랑이라는 건 이루어지지 않아 불리는 이름인가 싶다.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랑, 미숙한 사랑을 표현하는 게 첫사랑이 아니던가.

 

곧 딸아이의 아이가 태어날 할머니가 될 이미호 로사. 우연히 첫사랑과 40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스물에 느꼈던 감정들과 40년이 지난 뒤에 느끼는 감정들은 어떻게 다를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깝고 그리운 감정들을 갖게 한다. 그 유명한 피천득의 산문 「인연」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어쩌면 첫사랑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끝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운 감정들을 기억 속에 갇혀 있게 해두고 어떠한 순간에 아주 잠깐 꺼내볼 수 있는 감정으로 남겨야 하는 거다.

 

 

 

사실 나이라는 건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본다. 사십 대에 첫사랑을 만나는 것과 오십 대 후반에 첫사랑을 만나는 건 확연히 다를 것이다.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해야할 나이. 어쩌면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르는 나이. 물론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들은 할머니가 될 로사와 이미 할아버지가 된 요셉이 어떠한 대화들을 나눌 것인가 였다. 과거에 사랑했던 기억들을 어떻게 표현할까가 관건이었던 것 같다.

 

40년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긴 것일까. 인간이 시간을 피해갈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을 간직할 수 있다면, 이미 영원을 사는 거라도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까? 그런 일이 없을 테니 영원은 영원히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으리라. (17페이지)

 

 

 

이미호는 대학의 영문과 선생들의 헤밍웨이 심포지엄이 열리는 문학 기행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김에 첫사랑에게 연락을 취했다. 40년 만에 만나게 되는 첫사랑이었다. 미호는 곧 할머니가 될 테고, 첫사랑의 그는 네 아들을 둔 아버지이며 벌써 손자들도 있는 거로 페이스북에 나타났다. 40년 만에 만나는 첫사랑과의 재회라.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하게 여겨졌다. 사랑에 관련된 소설이라 함은 그들이 이루어 질 것인가에 관심을 두게 된다. 하지만 소설은 마지막까지 독자들에게 긴장의 끈 놓게 하지 않는다.

 

돌아보니까, 아픈 것도 인생이야. 사람이 상처를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것을 겪는다고 하고 그게 맞지만, 외상후 성장도 있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가끔 성장한단다. 상처가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피하지 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251페이지)

 

첫사랑과의 대면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기억, 즉 로사의 기억과 요셉의 기억은 조금씩 다르다. 어떤 건 잊고 어떤 기억은 선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만난 요셉은 먼 바다까지 헤엄쳤던 일을 말하지만 로사에겐 생소하다. 즉 잊었던 기억이다. 헤어지는 장면 또한 그렇다. 로사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는 레스토랑에서 그의 계획들을 뒤로 하고 뛰쳐 나왔던 일은 40년 동안 늘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정작 요셉은 그 기억을 말끔하게 지워버렸던 것 같았다. 자신에게 너무 아픈 기억들은 종종 망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누군가 물었다면 대답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마치 태어나고 죽는 것처럼 모든 것이, 마치 예기치 않은 만남과 헤어짐이 그렇듯, 그저 운명이라고밖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라고. (260페이지)

 

그토록 사랑했는데 미호와 요셉은 왜 헤어졌는가. 40년이 지난 뒤의 이들의 첫사랑은 과연 이루어 질 것인가 애타게 만들었다. 첫사랑은 다시 만나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첫사랑과의 추억이 영원할 수 있는 건 다시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소설에서는 이들이 이루어지길 애타게 바라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해피 앤딩을 바라게 되넌 것이다.

 

삽입된 그림이 책의 퀄리트를 더 높였다는 건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 같다. 더불어 미호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광주 민주화운동은 이 책의 다른 한 페이지 즉 역사의 시간 속에 있게 한다. 잡혀 들어갔던 아버지의 죽음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상황들에 눈시울을 젖게 한다. 그러면서도 느낄 수 있는 건 어머니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도 같은 성격이어서 부딪쳤던 것들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공감력이 아닐까 싶다.  

 

40년만에 만나는 첫사랑과의 재회는 과거의 기억과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비로소 내 곁의 사람들과의 진실된 마음을 교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 봄, 맨 먼저 피어나는 금둔사의 홍매화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우리도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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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악센트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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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일상을 지내다보면 지겹다고 표현한다. 일상이 지겨울 때 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다. 나 같은 경우 내가 사는 도시를 떠나 여행을 하게 된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출발해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일상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지내다 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다고 여행지에서 어떤 특별한 것들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함께 간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해먹거나 사먹고 근처 가고 싶었던 곳들을 찾아 산책한다. 때로는 예쁜 카페가 될 수도 있겠고 때로는 은행나무 길이다. 또는 할 일 없이 바닷가를 거닐기도 한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다른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책이다. 마쓰우라 야타로의 책을 처음 읽는데 굉장히 사분사분하다. 여성 작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정한 언어로 우리를 일상의 악센트로 안내한다. 그것은 여행이 될 수도 있겠고, 오랫동안 알아왔던 사람과의 교제를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것에서부터 나다움 혹은 누군가를 위한 마음의 정돈까지 아우를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너그러운 마음의 눈으로 내 안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근사한 부분이나 자랑할 만한 모습, 숨어있던 다양한 면모가 보인다. 모두 얼핏 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33페이지)

 

 

사실 별 특별할 것 없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분사분한 언어로 말하는 그의 글에서 특별한 느낌들을 받는다. 가만가만히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 하다. 보통의 날들에서 누군가가 건네는 따스한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는 것처럼 이 책은 독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듯 쓰여진 글이다. 즉 그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해도 될까.

 

여행을 하면 바쁜 일상을 잊고 나다움을 되찾을 수 있다.

 

여행은 나를 되살린다. (48페이지)

 

 

잘 듣는다는 것은 감동을 잘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더라도 작은 부분에서 감동해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된다. 심지어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긍정하는 자세로 들어주기 때문에 껄끄럽지 않고 안심이 된다. (78페이지)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기 보다는 내 말을 더 많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뒤부터 말을 자제하고 누군가에게 귀 기울이고자 노력했다. 저자는 잘 듣는 것에 대한 말을 했다. 작은 부분에 감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한다고 서운해하지 말 것이며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언어를 쓰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것이라도 늘 생각한다. 평소 당연하게 사용하는 말에 얼마나 마음이 움직일 수 있을까. 내용이 어떻든 들으면 기쁠지 슬플지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까.

말 한마디로 사람은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언어를 쓸 때는 조금 더 마음을 써야 한다. 정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93페이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살면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배는 근사해 보인다. (121페이지)

 

사실 어디에선가 자주 읽어왔던 말들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별다른 생각없이 했던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입장을 바꾸어 말하다보면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필요도 없고 배려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다.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사고방식과 습관을 배우고 듬뿍 받아들여야 한다.

용기를 내 지금 있는 안전권에서 뛰쳐나올 것. 처음에는 고독해도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기면 생각하는 법뿐 아니라 시간 사용법이나 돈 쓰는 법 등 습관까지 바뀌어 훨씬 세련되어진 자신을 느낄 수 있다. (188페이지) 

 

포켓북처럼 작은 사이즈의 책이다. 글 또한 짧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어느 장소에서든 펼쳐볼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에 울적할 때나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펼쳐보기 좋은 책이다. 역사 책이나 무거운 주제를 가진 책을 읽다가 머리를 식힐 때 유용할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글이 매우 단정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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