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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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기억.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들. 그에게 느끼던 감정, 그리고 전해오던 감정들. 나에게 사랑의 기쁨 외에 사랑의 아픔까지 전해주던 그 때의 감정들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공지영 작가의 책을 읽어오며 이번 작품만큼 그의 연륜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듯한 느낌. 모든 감정을 끌어 모아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첫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울리게 만드는 단어. 아련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스무 살의 나, 열아홉 살의 이미호 로사와 스물두 살의 요셉의 사랑을 떠올린다. 첫사랑이라는 건 이루어지지 않아 불리는 이름인가 싶다.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랑, 미숙한 사랑을 표현하는 게 첫사랑이 아니던가.

 

곧 딸아이의 아이가 태어날 할머니가 될 이미호 로사. 우연히 첫사랑과 40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스물에 느꼈던 감정들과 40년이 지난 뒤에 느끼는 감정들은 어떻게 다를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깝고 그리운 감정들을 갖게 한다. 그 유명한 피천득의 산문 「인연」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어쩌면 첫사랑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끝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운 감정들을 기억 속에 갇혀 있게 해두고 어떠한 순간에 아주 잠깐 꺼내볼 수 있는 감정으로 남겨야 하는 거다.

 

 

 

사실 나이라는 건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본다. 사십 대에 첫사랑을 만나는 것과 오십 대 후반에 첫사랑을 만나는 건 확연히 다를 것이다.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해야할 나이. 어쩌면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르는 나이. 물론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들은 할머니가 될 로사와 이미 할아버지가 된 요셉이 어떠한 대화들을 나눌 것인가 였다. 과거에 사랑했던 기억들을 어떻게 표현할까가 관건이었던 것 같다.

 

40년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긴 것일까. 인간이 시간을 피해갈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을 간직할 수 있다면, 이미 영원을 사는 거라도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까? 그런 일이 없을 테니 영원은 영원히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으리라. (17페이지)

 

 

 

이미호는 대학의 영문과 선생들의 헤밍웨이 심포지엄이 열리는 문학 기행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김에 첫사랑에게 연락을 취했다. 40년 만에 만나게 되는 첫사랑이었다. 미호는 곧 할머니가 될 테고, 첫사랑의 그는 네 아들을 둔 아버지이며 벌써 손자들도 있는 거로 페이스북에 나타났다. 40년 만에 만나는 첫사랑과의 재회라.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하게 여겨졌다. 사랑에 관련된 소설이라 함은 그들이 이루어 질 것인가에 관심을 두게 된다. 하지만 소설은 마지막까지 독자들에게 긴장의 끈 놓게 하지 않는다.

 

돌아보니까, 아픈 것도 인생이야. 사람이 상처를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것을 겪는다고 하고 그게 맞지만, 외상후 성장도 있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가끔 성장한단다. 상처가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피하지 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251페이지)

 

첫사랑과의 대면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기억, 즉 로사의 기억과 요셉의 기억은 조금씩 다르다. 어떤 건 잊고 어떤 기억은 선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만난 요셉은 먼 바다까지 헤엄쳤던 일을 말하지만 로사에겐 생소하다. 즉 잊었던 기억이다. 헤어지는 장면 또한 그렇다. 로사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는 레스토랑에서 그의 계획들을 뒤로 하고 뛰쳐 나왔던 일은 40년 동안 늘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정작 요셉은 그 기억을 말끔하게 지워버렸던 것 같았다. 자신에게 너무 아픈 기억들은 종종 망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누군가 물었다면 대답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마치 태어나고 죽는 것처럼 모든 것이, 마치 예기치 않은 만남과 헤어짐이 그렇듯, 그저 운명이라고밖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라고. (260페이지)

 

그토록 사랑했는데 미호와 요셉은 왜 헤어졌는가. 40년이 지난 뒤의 이들의 첫사랑은 과연 이루어 질 것인가 애타게 만들었다. 첫사랑은 다시 만나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첫사랑과의 추억이 영원할 수 있는 건 다시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소설에서는 이들이 이루어지길 애타게 바라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해피 앤딩을 바라게 되넌 것이다.

 

삽입된 그림이 책의 퀄리트를 더 높였다는 건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 같다. 더불어 미호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광주 민주화운동은 이 책의 다른 한 페이지 즉 역사의 시간 속에 있게 한다. 잡혀 들어갔던 아버지의 죽음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상황들에 눈시울을 젖게 한다. 그러면서도 느낄 수 있는 건 어머니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도 같은 성격이어서 부딪쳤던 것들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공감력이 아닐까 싶다.  

 

40년만에 만나는 첫사랑과의 재회는 과거의 기억과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비로소 내 곁의 사람들과의 진실된 마음을 교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 봄, 맨 먼저 피어나는 금둔사의 홍매화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우리도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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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악센트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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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일상을 지내다보면 지겹다고 표현한다. 일상이 지겨울 때 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다. 나 같은 경우 내가 사는 도시를 떠나 여행을 하게 된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출발해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일상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지내다 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다고 여행지에서 어떤 특별한 것들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함께 간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해먹거나 사먹고 근처 가고 싶었던 곳들을 찾아 산책한다. 때로는 예쁜 카페가 될 수도 있겠고 때로는 은행나무 길이다. 또는 할 일 없이 바닷가를 거닐기도 한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다른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책이다. 마쓰우라 야타로의 책을 처음 읽는데 굉장히 사분사분하다. 여성 작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정한 언어로 우리를 일상의 악센트로 안내한다. 그것은 여행이 될 수도 있겠고, 오랫동안 알아왔던 사람과의 교제를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것에서부터 나다움 혹은 누군가를 위한 마음의 정돈까지 아우를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너그러운 마음의 눈으로 내 안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근사한 부분이나 자랑할 만한 모습, 숨어있던 다양한 면모가 보인다. 모두 얼핏 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33페이지)

 

 

사실 별 특별할 것 없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분사분한 언어로 말하는 그의 글에서 특별한 느낌들을 받는다. 가만가만히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 하다. 보통의 날들에서 누군가가 건네는 따스한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는 것처럼 이 책은 독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듯 쓰여진 글이다. 즉 그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해도 될까.

 

여행을 하면 바쁜 일상을 잊고 나다움을 되찾을 수 있다.

 

여행은 나를 되살린다. (48페이지)

 

 

잘 듣는다는 것은 감동을 잘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더라도 작은 부분에서 감동해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된다. 심지어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긍정하는 자세로 들어주기 때문에 껄끄럽지 않고 안심이 된다. (78페이지)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기 보다는 내 말을 더 많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뒤부터 말을 자제하고 누군가에게 귀 기울이고자 노력했다. 저자는 잘 듣는 것에 대한 말을 했다. 작은 부분에 감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한다고 서운해하지 말 것이며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언어를 쓰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것이라도 늘 생각한다. 평소 당연하게 사용하는 말에 얼마나 마음이 움직일 수 있을까. 내용이 어떻든 들으면 기쁠지 슬플지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까.

말 한마디로 사람은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언어를 쓸 때는 조금 더 마음을 써야 한다. 정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93페이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살면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배는 근사해 보인다. (121페이지)

 

사실 어디에선가 자주 읽어왔던 말들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별다른 생각없이 했던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입장을 바꾸어 말하다보면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필요도 없고 배려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다.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사고방식과 습관을 배우고 듬뿍 받아들여야 한다.

용기를 내 지금 있는 안전권에서 뛰쳐나올 것. 처음에는 고독해도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기면 생각하는 법뿐 아니라 시간 사용법이나 돈 쓰는 법 등 습관까지 바뀌어 훨씬 세련되어진 자신을 느낄 수 있다. (188페이지) 

 

포켓북처럼 작은 사이즈의 책이다. 글 또한 짧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어느 장소에서든 펼쳐볼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에 울적할 때나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펼쳐보기 좋은 책이다. 역사 책이나 무거운 주제를 가진 책을 읽다가 머리를 식힐 때 유용할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글이 매우 단정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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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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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의 몸을 살펴 보라. 속옷에서부터 양말까지 실로 짠 직물과 함께다. 인간과 뗄레야 뗄 수 없다. 직물과 실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는게 이 책이다. 굉장히 쉽게 설명되어 있었고, 어떻게 해서 실이 탄생되었는지 그 근원부터 시작한다. 죽은 사람을 감쌌던 이집트 미라에서부터 중국의 비단, 비단길이라 불렸던 교역 문화, 바이킹들의 돛을 만들었던 모직, 중세 시대의 양모 그리고 사치품인 레이스, 면직물, 에베레스트와 남극을 정복한 옷 등을 통해 실의 역사를 살펴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운명의 여신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들은 세 자매로,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반드시 찾아온다.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여신 클로토가 실뭉치를 손에 들고 운명의 실을 뽑아내면, 라케시스가 신중하게 그 실의 길이를 잰다. 그러고 나면 아트로포스가 그 실을 잘라내 아기가 언제 죽을지를 결정한다. (14페이지)

 

 

 

여기에서 중요한 게 실을 잣는 이들은 여성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페이메이르의 유명한 작품 「레이스 뜨는 여인」을 언급했던 것과 같이 레이스를 짜는 건 여성 고유의 직업이었다. 생계수단으로써 가정의 살림을 꾸려갔던 것이다.

 

레이스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의 사진이다. 깃을 높게 해 약간 우스꽝스럽게 비춰지기도 했던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를 기억해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겠다. 처음 레이스를 선물받은 엘리자베스 1세는 그후부터는 레이스로만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한다. 귀족들에게 사치품으로 비춰졌던게 당연하다. 여왕들만 그랬던 게 아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또한 무분별한 지출을 감행했다. 이는 1660년에 프랑스와 베네치아간에 레이스로 인한 국제 분쟁까지 생겼다.

 

레이스 장식을 좋아하는 여성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도 교수대에 오를 때에도 레이스 옷을 입었다고 했다. 그만큼 여성들에게 사랑받았던 레이스였던 것 같다. 그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2년전부터 레이스가 달린 옷이 강세였다.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레이스로 된 속치마나 치마, 레이스 장식의 옷을 착용한다. 나 또한 레이스로 된 이너 원피스를 비롯해 레이스 스카프 들을 몇 개 가지고 있을 정도다.

 

레이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노예 제도를 떠올릴 수 있는 목화 즉 면직물에 대한 부분과 세계 여러나라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청바지 즉 데님에 얽힌 역사도 말한다. 스포츠용 직물인 수영복에서부터 남극 탐험을 위해 제작되었던 깃털로 된 겉옷과 방수 방풍을 위한 고어텍스와 우주복의 탄생되었던 배경도 볼 수 있다. 

 

 

이집트 인들은 미라를 만들때 리넨으로 사람의 몸을 채우고 싸맸다. 사체를 보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미라를 해부할 때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것을 싸맨 천 즉 리넨에 신경쓰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미라를 쌌던 리넨은 바람에 날려 혹은 부스러지고 만다. 그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는 부분에 모든 고대의 것들은 연구 재료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을 잣고 옷감을 짜는 일과 관련이 있는 신들은 거의 다 여성이다. (29페이지)

 

사각형 리넨을 돛으로 쓴다는 발상은 배의 중앙에 가림막을 높이 매달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추측된다. 이런 풍경은 고대 유적에 묘사된 종교적 기념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배에 내걸린 가림막이 바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배가 물살을 거슬러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143페이지) 

 

실생활에서 접하는 실과 직물에 관한 역사라 상당히 재미있었다. 페이메이르의 그림이나 엘리자베스 1세의 사진 등을 게재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아주 잠시 하긴 했었다. 그 그림을 알고 있었던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실과 직물에 대한 역사를 통해 인간이 걸어왔던 발자취를 알 수 있어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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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숭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9
J. D. 바커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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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소설은 거의 없었다. 연쇄살인범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들고 단 검은색 리본이 묶여진 흰색 상자와 신었던 구두, 차고 있는 손목시계등. 모든 것이 사건의 단서를 가리키는 것 같지만 그것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연쇄살인범은 왜 이러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으며 죽었는가 이다. 이것을 밝혀내야 하는 수사관들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야 하는 게 또한 독자다.

 

시카고 경찰국의 형사 샘 포터는 아내 헤더를 잃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아직 복직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가 5년 동안 수사해왔던  4MK, 즉 네 번째 원숭이 킬러의 연쇄 살인을 다시 알리는 소식이었다. 네 번째 원숭이 킬러는 희생자의 귀와 눈과 혀를 차례로 배달시키는 인물이다. 네 번째 원숭이는 일본의 닛코 도쇼구 신사 입구에 있는 원숭이 상 중 첫 번째 원숭이는 귀를, 두 번째 원숭이는 눈을, 세 번째 원숭이는 입을 가리고 있다. 이들 원숭이는 악을 듣지 말고, 보지 말고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네 번째 원숭이는 '악을 행하지 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시 네 번째 원숭이 킬러의 살인이 시작된 것이다. 죽은 4MK의 범인을 조사하던 수사관들은 아직 살아있을 소녀를 찾기 위해 주소가 적힌 인물을 찾아 나선다.

 

 

 

다양한 사업을 하는 기업가인 탤벗의 아이로 밝혀진다. 탤벗은 어떠한 악행을 저질렀는가. 그들이 조사한 바로는 특별하게 기소될 만한 건수가 없었다. 샘 포터는 형사 내쉬와 클레어 노튼과 함께 사건을 수사하고 4MK가 남긴 단서를 찾아 그가 원하는 대로 나선다. 소설은 죽은 4MK가 남긴 일기장 속의 살인범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식이다. 살인범이 되어가는 과정은 역시 가정 환경에서 나오는 것인가. 그토록 사랑하는 부모로 보였던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죽이는지,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게 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살인범은 서로 사랑하는 부모밑에서 자란 행복한 가정의 아이처럼 비춰진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버지, 모든 이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가리치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사건이 진행되는 챕터에 따라 살인범이 살아온 이야기가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어떻게 자라왔는지 얼른 알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그게 또 추리소설의 묘미가 아니던가.

 

가장 진부한 말이지만 이 말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흡입력을 지닌 소설'이라는 점이다. 더디 읽으려고 했지만 다음 내용이 궁금해 책장을 넘기게 되었으며, 눈을 도려내려는 주인공의 이야기때문에 잠못드는 밤을 보내기도 했었다. 탤벗이 감춘 진실이 점점 드러나고  그가 감춘 진실은 추악했다.

 

리뷰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샘 포터가 4MK 사건 수사를 할 때 그의 곁에서 있던 한 남자의 존재 때문에 많이 놀랐다. 어쩌면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샘 포터 곁에서 그를 도왔단 말인가. 소설은 마지막까지 심장이 쫄깃거리게 만들었다. 어떤 식으로 결말이 될지 범인은 잡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무것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결말 때문에 더욱 애가 탔고, 다음 시리즈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J.D. 바커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다음에 이어질 작품들도 모두 기대해 볼만 할 것 같다. 샘 포터와 4MK의 다음 대결을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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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0-02-1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입부가 그렇다면 정말 흥미진진할 것 같아요 범죄 미드에서도 연쇄살인범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예가 있나, 머리를 굴려봅니다
 

어느 날 입양아 동생이 죽었다. 집에서 뛰쳐 나와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는 헬렌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숙부 님은 입양아 동생이 자살했다고 했다. 왜 양부모가 아니고 숙부가 전화했는가. 어릴 때부터 심한 구두쇠에 가까웠던 양부모의 생활습관 때문에 가난하지는 않았으나 몹시 절약하며 살았다. 예를 들면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 놀잇감을 찾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양부모에 대한 반감으로 유년 시절에 살았던 집을 뛰쳐나와 뉴욕에서 살았고, 양부모에게는 단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유년시절의 집으로 찾아오며 소설은 시작된다. 

 

입양이란 건 아이를 가진 사람이 키울 능력이 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키는 경우다. 자신을 버린 친부모를 전혀 찾지 않았던 헬렌은 양부모 또한 사랑하지 않았던 듯 하다. 어쩌면 지겨워했을 수도 있다. 백인들 틈인 세상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기가 버거웠을 터. 생물학적으로 아무 연관이 없는 한국인 입양아인 남동생에게는 그래도 동질감을 느꼈던 탓일까.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가 더 남동생과 가깝다고 여겼다. 죽기 얼마전에 뉴욕의 원룸으로 찾아왔던 거 하며 짧은 문자 메시지를 주었던 것들을 떠올린다. 사람은 그 사람을 잃고서야 그의 흔적을 찾기 마련인가 보다.

 

 

 

헬렌은 같은 한국인 입양아라서 동생에게 더 애틋했던 것 같다. 동생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찾고자 한다. 동생의 방을 들여다보고 동생이 알았던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헬렌이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동생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없었다. 헬렌 또한 동생의 진정한 모습을 모른다는 걸 알아가기 시작한다.

 

입양아 동생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면서 현재 헬렌의 상황이 나온다. 문제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뉴욕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다. 부자 동네에 가서 옷, 신발 등을 주워 입으면서 양부모가 주는 생활비를 계속 받아쓴다는 거다. 양부모를 멀리하고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주지하면서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백인이 되고 싶다고 했던 남동생, 역시나 백인이 되고 싶었던 헬렌.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실망스러워 누군가 국적을 물으면 입양아라고 대답했다. 유년 시절의 집에 돌아가서도 양부모에게 말 한 마디 다정하게 건네지 않는다. 남동생의 죽음이 마치 그들에게 있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도 헬렌보다는 남동생을 나름대로 더 사랑했던 것 같은데 남동생이 죽은 이유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남동생의 방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모든 데이터는 지워졌다. 휴지통을 뒤지다가 문서 하나를 발견했다. 문서에는 유서로 보이는 글이었다. 친엄마를 찾지 않겠다는 헬렌과 달리 동생은 친엄마를 찾았으며 만나러 갔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헬렌은 양부모를 부모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항상 양부모였고, 항상 입양아로 표현했다. 입양아라는 표현에서 그들이 느꼈을 차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헬렌이 기억하는 양부모는 그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굉장히 냉정하고 구두쇠로 그려졌지만 남동생이 죽은 뒤의 양부모는 늙고 자주 우는 모습을 보인다. 양부모를 거부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울며 말하는 모습에서 발견한다.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미안합니다. 라는 말은 주인공 헬렌이 자주 쓰는 말이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 백인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움츠러든 표현과 불안은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의 배경 때문에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읽힌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은 회고록이 아니라는 말로 일축했다 한다.

 

헬렌의 양부모처럼 자기 방식대로 자식들을 사랑하는 부모가 많다. 대부분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어느 한 계기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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