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
오키타 밧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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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에세이라고 해서 그냥 즐겁게 웃을 수 있는 만화인 줄 알았다. 아스퍼거 증후군과 주의력 결핍장애, 학습장애를 앓았던 작가의 에세이 형식의 만화였다. 일단 작가의 약력이 특이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별한 장애가 보이지 않을때 부모는 좀 늦되려니 했다. 작가인 오키타 밧카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아이들과 함께 초등학교를 들어갔고,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선생님이 다그치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자기가 정해놓은 규칙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도중에 들러야 해야 할 것들. 매일 그 일을 거쳐야만 집에 가야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못해가는 건 다반사였다. 이럴 경우 선생님은 아이에게 왜 숙제를 안해왔는지 다그칠 수 밖에 없다.

 

니트로의 이야기가 꽤 유쾌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분노가 일었다. 아이가 따라가지 못했을때 왜 그런지 자세히 살펴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던 것에 화가 났다고 해야겠다. 그저 공부 못하는 아이로 치부해 일반계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 예민한 사춘기 니트로를 혼낸다며 했던 남자 선생 나쁜 행동을 왜 부모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그저 조용하게 넘어가길 바랐던 니트로였다.

 

 

 

 

 

아픈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였다.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일했으나 발달장애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작가는 개성적인 그림과 센스를 칭찬한 만화가의 권유로 만화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다른 이야기에 비해 자신의 경험을 담은 것들이 많은가 보다.  

 

 

이 작품 또한 어렸을 적 이해받지 못한 경험들을 그려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니트로에게 함부로 대했던 이는 아주 잘 살고 있다던가. 작가는 그때의 경험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데 말이다. 이 또한 냉정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럼에도 긍정의 힘을 잃지 않았다. 아픈 과거의 이야기를 함에도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아니 미래의 자신이 찾아와 가만가만 위로를 건넨다. 많은 것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잘 하고 있다고 토닥인다.

 

니트로에게 중요했던 것은 친구였나 보다. 미래의 자신에게 친구가 생겼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남자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자아이들에게 친구란 정말 특별하다.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존재가 친구인 것이다. 때로는 상처받을 때도 있는게 친구지만 친구가 없다는 게 무엇보다 큰 아픔이다. 그저 이해받고 싶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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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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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이라는 의사를 잘 알지 못했다. TV를 잘 보지 않기에 그럴 수 있다. 여기저기서 이 책에 대한 말을 하는 걸 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고심해서 낸 책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중증외상 치료에 대한 의료 현실을 제대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글이었다. 우리같은 일반인은 의료계의 현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뉴스나 신문에서 전하는 단편적인 소식만 알 뿐이다. 뉴스에서 단편적으로 전하는 내용에 의료인들의 고충을 알 뿐이다.

 

이 책을 읽고 그가 나온 TV 프로그램이나 강연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랬지 그는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몇 년전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군인들이 해적을 소탕하게 도와준 선장을 치료한 의사다. 그 과정에서 여러 발의 총탄을 맞았고 그를 구하러 간 의사팀에 이국종 교수가 속해있었다. 석해균 선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내에 그를 데리고 한국으로 와야했으나 여건이 도와주지 않았다. 그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을때의 환호성을 기억한다. 국민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석해균 선장이 살기를 바랐다. 석해균 선장을 살리러 떠난 의사가 이국종이었다. 그를 살린 의사도 이국종이었다.  의사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는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제 이국종이라는 인물이 다시 보였다. 언젠가부터 의료계에서 외과는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라고 했다. 외과 중에서도 외상외과를 선택한 그가 펼치는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였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그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그는 쓴소리를 한다. 중증외상환자들은 소위 블루칼라들이 많다. 노동을 하는등 낙후된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있는 아는 사람들이 없다. 소위 지인을 이용해 큰 병원의 치료나 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 대형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몇 군데의 병원을 떠돌다가 거리에서 사망을 하기도 하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만약 대형병원들이 고개를 저을 때 인맥을 통해 수술을 받을 수 있는게 그들이다.

 

의사 이국종은 사람을 살리려는 거였다. 그가 속해있는 병원이 적자에 허덕이더라도 소방대원들과 의료팀과 함께 의료장비들을 챙겨 출동을 했고, 많은 이들을 살렸다. 그가 아끼는 의사 정경원이 1년에 집을 네 번 밖에 가지 않았을 정도로 의사와 간호사들은 힘겨운 싸움을 했다. 중증외상센터라는게 다쳐서 목숨이 위험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럼에도 다른 의사들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예산을 삼각하고 외상외과 팀들을 사지로 몰았다.

 

저자는 두 권의 책속에 한국의 중증외상 치료에 대한 현실을 말했다. 그는 독일이나 영국의 외상외과를 공부한 후 한국에 그대로 접목시키고자 했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영국 같은 경우 아파트 주차장이나 좁은 골목의 동네에서 닥터헬기를 출동시켜도 누구하나 민원을 넣는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닥터 헬기를 출동시키면 소음 문제를 들고 나온다. 중증외상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헬기에 오른 의사들에게 연락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증외상치료에 애써왔던 군 또는 행정관서의 직원들이 다른 곳으로 전보발령나고 퇴직하는 걸 안타까워 했다. 그 또한 외상외과의 일이 버겁다고 했다. 봉급을 받으니 일했을 뿐이라는. 어쩌면 사명감으로 일한다기 보다는 그저 직업인으로써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jtbc의 뉴스에 나온 모습을 보았다. 뉴스 진행자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질문했지만 이국종 교수는 웃지 않았다. 담담한 어투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중증외상 치료의 현실을 말했다. 그가 치료했던 석해균 선장이나 북한군 병사의 이야기가 잠깐의 이슈화가 되었다가 마치 거품이 꺼지듯 꺼지는게 안타깝다고 했다. 24시간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는 중증외상 치료 센터 직원들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중증외상 치료가 영국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응급환자의 신속한 이송을 다룰 전담 헬기 즉 닥터 헬기가 24시간 배치되길 바랐다. 그래야 중증외상 환자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이유가 있다. 그가 살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살리고 싶은 것이다.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서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그럴 수 없다. 수술을 받고 싶어도 거절을 당할 뿐이다. 그는 그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책 말미에 그의 책에서 거론 되었던 인물들을 하나하나 짚어 설명했다. 어디에서 자랐고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들의 수고로움이 우리 소시민들을 살리는 거였다. 그들의 이름을 거론한 이국종 교수의 마음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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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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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과연 어떤 작품을 모티프로 쓴 것인가. 정유정의 『종의 기원』인가.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나왔는가. 우리는 종종 우리의 기원이 어디에서 왔는가 수많은 질문을 건네게 된다. 결국 부모에서 왔는가. 그 사람의 본질은 그 부모에게 왔으리라는 게 정설이다. 수많은 작품에서 나타난 바와 같다.

 

박지리의 소설이 궁금했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한 작가. 제목마저 의미심장한 소설이기에 꼭 읽어보고 싶었던게 크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과 시기는 현재와는 동떨어졌다. 가상의 시대, 가상의 인물들. 그들의 이름 또한 외국식 이름이다.

 

열여섯 살의 소년 다윈 영, 프라임스쿨의 모범생이다. 그의 아버지 니스 영은 문교부 차관이며 죽은 친구의 추도식을 30년간 해주는 중이다. 그의 할아버지 러너는 12월의 폭동이후 9지구에서 1지구에 진입했다. 여기에서 프라임 스쿨은 거의 1지구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고, 1지구 아이들도 합격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할 정도로 어렵다.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인 루미는 30년 전에 죽은 삼촌의 죽음을 파헤치는 중이다. 그리고 프라임스쿨의 문제아 레오가 있다.  

 

 

 

 

다윈 영은 아빠의 친구 제이 아저씨의 추도식에 다니면서 제이 아저씨의 조카 루미를 좋아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나가는 외출에서 이번 추도식에 쪽지를 전하지 못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추도식에서 루미를 찾다가 제이 아저씨의 방에 들어가 그녀가 말하는 제이 아저씨에 대해 듣는다. 루미의 할아버지가 찍은 12월의 폭동장면을 찍은 사진 앨범 중 빠진 사진에서 의문점을 찾은 것이다. 제이를 죽인 사람은 9지구의 후디들이 아니라 1지구의 제이 삼촌을 아는 자라 여겼다. 루미는 다윈에게 삼촌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9지구에 가자고 했고 거절을 못한 다윈은 루미를 따라 나선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제이를 누가 죽였는가 이다. 루미와 다윈은 제이를 죽인 자를 찾고, 그걸 덮으려는 자가 존재한다. 추리 소설이 아니기에 독자들은 이미 예상가능하다. 제이를 죽인 자가 예상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가 왜 제이를 죽였느냐 이다. 이 또한 예상 가능하다. 그의 아버지의 출신이 어디였는지 알만하기 때문이다.

 

죄책감 때문에 누군가를 죽였다 하더라도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해 오랜시간동안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다시 없는 친구라 말한다. 정부의 요직에 있다보니 그의 도움을 받기 때문일까. 그를 대하는 태도가 어쩐지 이상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소설은 현재 열여섯 살의 다윈과 루미, 레오의 삼각 구도가 있고, 그 전 세대 즉 그들의 아버지인 니스와 버즈, 제이 혹은 조이의 삼각 구도로 펼쳐진다. 다윈은 사랑받는 아이라 천진난만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루미는 끝없이 자신의 아빠 조이를 부정한다. 아빠의 직업, 엄마의 출신, 차라리 모든 게 완벽했던 삼촌 제이의 딸이고 싶었다. 그래서 루미는 외출할때 항상 프리메라스쿨의 교복을 입고 다닌다. 사람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부러움의 눈으로 쳐다보는 걸 즐긴다.

 

모든 부모가 완벽하지는 않다. 또한 자식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비밀이라고 하기 보다는 숨기고 있을 않을 뿐이다. 그걸 알기 전의 자식들은 부모를 존경하고 우러르지만 어떤 사실을 알았을 때는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 그것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 '가족'이라는 딜레마다. '가족'이라는 딜레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진실의 가치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믿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진실이다. (429페이지)

 

 

 

 

 

진실에 맞닥뜨렸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다. 죄를 달게 받게 하거나 진실을 아는 자를 죽이면 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고통을 겪고 난 후에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그에 대한 대가가 뒤따르는 건 당연하다.

 

가족이라는 딜레마에 갇힌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아버지에 이은 단죄. 그들의 뿌리에서부터 나온다. 이것을 과연 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떤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 또한 이들을 응원하고 있기 때문인가. 상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현실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대를 이어 누군가를 단죄해야 비로소 내가 사는 길인지도 모른다. 어떤 하나의 것에 맞닥뜨려야 비로소 성큼 어른이 되는지도 모른다. 진화된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박지리라는 작가에게 열광하는지, 이 책 때문이었음을 알겠다. 벽돌 두께의 책이지만 책을 놓지 못하는 것, 인간의 본질은 비록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피력한 작품이었다. 결국 우리는 매일 진화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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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항설백물어 - 상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8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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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를 읽은지 몇 년. 다시 읽는 『항설백물어』는 전설 속 이야기에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에도 시대의 화가 다케하라 슈운센의 괴담집 「회본백물어繪本百物語」에 등장하는 고전 설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고 인과응보의 결과를 나타내는 소설을 썼다. 『항설백물어』와 『속 항설백물어』에 이어 『후 항설백물어』 상권이며 앞으로 하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어렸을 때 이불 속에서 눈만 빼꼼히 내밀고 보았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닮은 소설. 기묘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를 과거로 향하게 하고 이야기들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만나볼 수 있는 소설이다. 이번 이야기는 세 가지를 담았다. 하룻밤 사이에 가라앉았다는 섬에 관한 이야기  「붉은 가오리」와 원인 모를 불 소동을 담은  「하늘불」, 뱀을 수호신으로 모신 사당에서 뱀에 물려 죽은 이야기  「상처입은 뱀」이 그것이다.

 

세 이야기 모두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던 이야기 같다. 아마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거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붉은 가오리」 는 길이가 삼십 리를 넘어 등에 모래가 쌓이면 떨어 뜨리려고 바다위에 서게 되는데 배들이 지나가다가 섬 인줄 알고 이 등에 댄다는 것이다. 배를 등에 대면 이 물고기는 가라앉고 배는 좌초된다.

 

 

 

 

 

여기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번 소속의 가신이었으나 지금은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요지로가 그 한 사람이고, 도쿄 경시청 일등 순사인 겐노신, 막부 중신의 둘째 아들인 쇼마, 요지로와 같은 번 출신이었으나 검술을 배운 소베가 있다. 하나의 사건이 생기면 이들은 요지로가 알던 잇파쿠 옹을 만나 그의 말을 듣는다.

 

나이 팔십이 넘은 잇파쿠 옹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사람 중 주요 인물이다. 겐노신이 사건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하는데 설화와 경험이 교묘히 섞여 있는 느낌이다. 잇파쿠 옹과 함께 거주하는 사요는 잇파쿠 옹 즉 모모스케는 사건의 결말 즉 진실을 교묘히 숨긴다. 겐노신이나 요지로 등에서 다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가 숨겼던 뒷이야기는 진실을 꿰뚫는 소요나 독자만 아는 사실이 된다.

 

이런 부분이 기묘한 이야기 임에도 추리소설처럼 비춰지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을 해결하려는 자가 경험이 많은 노인에게 의견을 구하고 그들은 다 해결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가는데, 항상 뒷 이야기를 남겨둔다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던 우리는 어둠이 깊어지는 산을 거쳐가는 길을 건너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도깨비불이라는 게 있어서 그것에 홀리면 밤새도록 같은 장소를 맴돌았다고 했다. 그게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늘불」이었다.

 

또한 구렁이는 집을 지키는 뱀이라고 해서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집에 사는 구렁이를 죽이면 그 집안이 망한다거나 좋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마도  「상처입은 뱀」도 이런 이야기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뱀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도 인간의 이런 감정을 노린 참살극이었음을 밝혔다.

 

그러고보면 인간이란 참 알수 없는 존재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부리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걸 개의치 않는다. 과감하게 누군가와 짜고 그를 죽게 만들어 이득을 취한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꼬집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어렸을 적에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들었던 이야기 같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 계속 조르게 되고 그걸 즐기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끝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음 날에 조금씩 풀어놓는 식이다. 이야기에 목마른 우리처럼 요지로와 겐노신은 항상 잇파쿠 옹을 찾게 된다.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고전이나 기담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고쿠 나쓰히코가 이 소설을 계속 쓰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이야기에 목마른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역할. 작가가 하는 일이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후 항설백물어 』로 나오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용한 밤 이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밤은 훌쩍 지나고 아침이 찾아올 것이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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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2-0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었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잘 안 읽게 되더라구요. <후 항설백물어>는 읽어봐야겠다 싶네요^^

비연 2018-12-07 12:34   좋아요 0 | URL
지금 사왔어요! Breeze님 리뷰 읽고 정말 몇 년만에 교고쿠 나쓰히코 소설을 샀네요!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Breeze 2018-12-07 13:12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이래서 리뷰가 중요하군요. 하나의 리뷰가 구매로 이어지게 되니. 열심히 잘 써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년 봄 이 책의 리뷰를 쓰며 많은 위안을 받았었다. 아마 나에게 생소한 작가이며 또한 보노보노의 이야기 또한 처음이어서 그다지 기대를 안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보노보노의 짧은 만화를 보며 느꼈던 이런저런 감정들을 담은 저자의 에세이가 요란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왜  그 있잖나. 자분자분 건네는 말투. 그게 좋았다.

 

때로는 가만가만히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말이 더 가슴속 깊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작가의 글처럼.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에세이집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이었다. 아마 책이 출간되고 한동안 베스트셀러에도 올라와 있고, 이번 윈터 에디션을 읽으며 살펴보니 벌써 24쇄라고 하니 그 인기가 실감된다.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덕분에 우리나라 독자만을 위한 표지를 만들어  선물같은 윈터에디션을 선보였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온것처럼 설레는 빨간색 표지다. 보노보노와 친구들도 모두 빨간색 모자를 써 겨울을 빛냈다. 무엇보다 한겨울의 크리스마스는 빨간색이 갑이라고 할 수 있잖나.

 

 

 

 

작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는데, 역시나 비슷한 대목에서 감동을 했던지 포스트 잇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작년에 썼던 리뷰를 다시 훑어 보았다. 달라진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작년에 리뷰를 쓸때는 살아계셨던 엄마가 올해는 계시지 않는다는 거다. 포로리와 아빠는 매년 꽃구경을 갔다. 포로리 아빠가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느라 못갔던 꽃구경을 나중에야 가게 되었는데 노인네들과 하는 약속은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고 하며 젊은이들에게는 내일 혹은 내년이 있지만 노인네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나에게 다가올 줄이야. 리뷰를 쓴 뒤 몇개월 뒤에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어른들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잃은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일까. 영원히 살아계실 것 같은 부모가 어느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 비록 몇 컷의 만화로 이루어진 것이며 동물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새겨들을 말이 많다는 것이다.

 

 

 

 

매일 쓸데없는 짓만 벌이는 것 같은 보노보노와 친구들에게도 그들만의 관계 유지의 기술이 있다. 그건 상대라는 존재를 '그러려니'하는 마음이다. (31~32페이지)

 

때로 우리는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고 그가 없을 때 뒷말을 하고 이해할 수 없어한다. 하지만 사람이란 건 자기만의 고유한 행동이나 생각이 있지 않나. 하물며 가족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는데 다른 사람이야 오죽할까. 너부리의 괴팍함이나 보노보노의 소심함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 또한 그를 아끼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을 바꿀 수는 없다. 그 또한 아무리 변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게 있는 것처럼.

 

 

 

 

각설하고, 이 책을 아직 안보신 분이 있다면 윈터 에디션을 구매해서 보셔도 좋을 듯 싶다. 흰색 바탕에 보노보노가 그려진 표지보다는 윈터에디션이 훨씬 사랑스러우므로. 문득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판본별로 소유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똑같은 내용의 책을 왜 몇 권씩이나 사는가. 단지 표지가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책을 그렇게 판본별로 구매해본 사람만이 가지는 즐거움 혹은 행복감이 있다. 소유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리고 받았을 때의 기분을 즐기는 것이다. 다시 읽어도 좋은 김신회 작가의 글이었다. 특별한 선물같은 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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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1-2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까 윈터 에디션이 나오는 책들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이 책도 처음 표지도 좋았지만, 이 표지가 더 예쁜 것 같아요.
breeze님,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Breeze 2018-11-29 14: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사랑받는 책이 있으면 여러 판본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싶은게 출판사의 전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