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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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플라이트 #줄리클라크 #밝은세상

 

여름이다 보니, 추리소설이 더 끌린다. 계속되는 무더위에 잠 못 이루는 밤, 짜릿한 소설 하나가 그나마 위안을 준다. 더위를 잊고 사건 속에 빠져들며 어떤 결과로 진행될까 궁금함 때문이다. 책을 읽을수록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에 따라 다양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비슷한 아픔을 가질지언정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통하는 게 있다.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두 여성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삶을 꿈꾼다. 그들이 가진 해결책은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데 있다. 선택권은 많지 않았다. 항공권을 바꾸고, 옷을 바꾸고, 신분증을 바꿨다. 누군가는 순진했고, 누군가는 계획하에 이루어졌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였다.

 


첫 번째 여성은 클레어 쿡이다. 상원의원이었던 마조리 쿡의 상속자 로리의 아내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가족적인 삶을 살았던 클레어는 로리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에게 가스라이팅과 폭력을 당하는 게 일상이었다. 파티에 가서 다른 사람과 다정하게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로리는 처음엔 손바닥으로 때리다가 나중에는 주먹으로 쳤다. 일거수일투족이 로리에게 들어가고 그의 시선이 두려웠다. 클레어는 유일한 친구인 페트라(로리가 모르는)를 만나 로리의 곁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두 번째는 이바 제임스로 마약중독인 어머니를 떠나 수녀원에서 자랐다. 버클리 대학 화학과에 재학 중에 남자친구 웨이드의 꼬임에 넘어가 마약을 만들어주었다가 퇴학당한다. 갈 곳을 잃은 이바에게 덱스가 다가와 머물 거처를 주며 마약을 만들어 팔자고 한다. 마약 거래를 하며 돈은 모았으나 불안한 삶, 즉 배신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마약단속 경찰관에게 협조하여 증인보호프로그램을 받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자 그동안 모았던 자료를 집에 그대로 두고 사라지기로 했다.

 


두 여성이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스치며 소설이 시작된다. 계획했던 디트로이트 행이 들통 나 푸에리토리코로 떠나야 하는 클레어와 오클랜드 행 항공권을 들고 있었던 이바가 서로 항공권을 바꿔 타기로 한다. 신분을 바꾸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간절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신분을 바꾸었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바에게 말했던 리즈의 충고처럼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면에서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비행기가 출발한 시간에서 이바는 과거에서 현재로 오고, 클레어는 현재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진행방식이었다. 비행기 추락과 전원 사망, 과연 비행기에 탔던 사람은 살았을 것인가, 죽었을 것인가. 어딘가로 사라졌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어딘가에서 정정당당하게 웃으며 나타날 것만 같았다.

 


단순한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다. 평범한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임을, 별일 없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면 삶은 비로소 내 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잃은 게 있을 수 있겠지만, 얻는 게 많아 질 것이다. 내가 원했던 삶을 위해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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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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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양귀자 #쓰다

 

모순을 우연히 발견했다. 양귀자 작가라고 하면 내 또래에 유명했던 작가인데 새로 쓴 작품이 아닌 1998년에 나온 소설이 사람들이 인생작이라고 한다고?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읽지 않은 베스트셀러는 고민하는 편인데 왠지 자꾸 눈에 띄어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가 인생책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지 않고서는 어떤 판단을 하는 것도 잘못이지 않나. 읽고 판단을 해야겠다.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구매했던 것 같다. 왜 인생책이라고 하느냐고? 1998년이면 우리나라는 IMF로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던 때였다. 그때 출간한 책이 지금도 공감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말끔히 없애준 책이었다. 시대가 갖는 아픔과 청춘들의 방황과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스물다섯 살의 안진진.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채 이모부가 소개해준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중이다. 진진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라고 부르짖었다. 이제 진진은 온 생애를 다 걸고 살아내야 한다. 시장에서 양말을 파는 어머니, 술 취하면 온 집안의 물건을 깨트리고 지금은 가출상태인 아버지, <대부>의 말론 브랜도나 최민수처럼 조직의 보스가 꿈인 동생 진모가 가족이다. 이 소설에서 진진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 어머니의 쌍둥이 동생 이모다. 이모는 어머니와 달리 돈 잘 버는 이모부의 그늘 아래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촌 동생들과 평탄한 삶을 산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아버지의 뒤치다꺼리하랴 진모 뒤치다꺼리하랴 인생이 쉴 틈 없이 바쁜 사람이다. 누군가는 불행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겠다. 누구나 그렇듯, 진진은 이모의 딸이었으면 했다.





 

스물다섯 살인 만큼, 진진은 결혼에 관한 고민을 한다. 두 남자 중에서 저울질 중이다. 매사에 계획적이며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몹시 언짢아하는 나영규와, 어딘가 훌쩍 떠나서 야생화 사진을 찍는 예술가 김장우가 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 데이트 일정을 조율하며 고민한다. 나영규가 주는 계획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면서도 마음은 김장우를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세상에 둘도 없는 형제애를 보이는 건 훗날 의견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 진진이 누구를 선택할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모처럼 다소 심심한 사람과 지리멸렬한 삶을 살 것인가, 어머니처럼 불행에 앞장서 스스로 헤쳐가느라 불행할 틈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다소 역설적인 삶이긴 하다.

 


다분히 편파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고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지켜보는 진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진진이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직의 보스가 꿈인 동생에게 삶에 대한 충고의 말을 하지 않는다. 더불어 집을 나간 지 5년이 넘도록 오지 않은 아버지를 탓하는 거 없이 그저 담담하게 서술할 뿐이다. 여기에서 양귀자 작가의 필력이 빛난다. 심각한 것일 수도 있는 상황을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의 삶을 함부로 쥐락펴락할 수 있겠나. 삶이란 알 수 없는 것.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작가의 생각에 깊이 이입되는 지점이었다.


 

1998년에 첫 출간된 작품인 만큼 지금과는 다른 데이트 양상을 볼 수 있다. 전화기다.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 아무 때나 통화할 수 있고 약속을 정할 수 있지만, 그때는 집 전화로 연락해야 통화할 수 있었다. 다르게 보면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전화기 앞에서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을 상상해보면 설레지 않은가 말이다. 다소 답답해도 느린 미학이 있었다. 그 시절을 상상해보며 진진이 바라보는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대비해보며 삶의 통찰이 빛나는 작품이다. 문학적 서사와 삶의 철학, 무릇 삶이란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296페이지)


 

실수하는 인간에 가깝다. 실수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고 또 이겨내는 게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라. 오늘을 살며 삶을 탐구하고, 또 내일을 삶의 기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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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질리언 매캘리스터 지음, 이경 옮김 / 시옷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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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장소잘못된시간 #질리언매캘리스터 #시옷북스

 

만약 내 아들이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그래서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었다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먼저 왜 죽였는지 궁금할 것이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묻고 싶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경찰에 체포되지 않았으면 할 것이다. 부모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은 무력감일 것이다.



 

열여덟 살이 된 아들 토드가 자신의 집 앞에서 낯선 남자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사랑스러운 아들이 왜 살인자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경찰에 체포되어 경찰서에 찾아가지만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젠이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사건이 일어나기 전, 즉 어제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남편 켈리에게 어제로 돌아왔다는 사실과 함께 내일 아들 토드가 한 남자를 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걸 누가 믿겠나.





 

변호사로서 늘 바빠 아들 토드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젠은 과거의 시간에서 이유를 찾고자 한다. 죽은 남자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젠은 과거의 시간으로 가며 토드를 살핀다. 토드의 차를 미행하고 그가 만나는 사람을 알고자 한다. 타임리프 소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가 대부분인 경우에 반해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은 점점 더 과거로 향한다. 토드에게 있었던 중요한 일들의 시간 속으로 가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침묵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꺼렸던 남편 켈리를 조금씩 의심하며 독자를 미스테리 속으로 이끈다. 즉 남편 켈리가 숨기는 것이 있었을 거로 짐작한다.



 

젠이 과거의 시간 속으로 향하는 도중 이제 막 신임 경찰관이 된 라이언 하일스의 상황이 전개된다. 긴급출동 업무는 지루했으나 리오의 권유로 조사하는 비밀 업무를 맡는 과정이 젠의 상황과 함께 반대로 진행되는 식이다. 젠은 과거 속으로, 라이언은 점점 현재로 향한다. 라이언이 누구인가를 파악하며 소설이 맞물리는 지점을 찾게 한다. 라이언이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를 밝혀내고자 조사하는 업무는 과거와 현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시간여행을 다루는 소설을 읽다 보면 정해진 게 있다. 과거를 바꾸면 미래도 변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과거에 누군가의 목숨을 구했다면 인과관계의 변화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젠이 과거로 향할수록 드러나는 진실에 숨을 쉴 수 없다. 누군가 속이고자 계획한다면 말려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젠이 알아낸 일과 과거의 기억이 맞물려 하나의 사건으로 향한다. 속수무책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추리소설 형식임에도 가족의 관계란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모로서 자식을 양육한다는 것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 서로가 바라는 게 다르겠지만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짜 중요한 것임을 밝힌다.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어렸던 아이들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싶다. 반복되는 과거, 점점 어려지는 자녀와 젊은 남편, 젊은 나,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관건일 것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타임슬립과는 차별되는 작품이다. 과거로 갈수록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진실과 마주치게 된다. 어쩌면 절대 의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진부하지만, 짜릿하고 소위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몰입감이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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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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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제스틱극장에빛이쏟아지면 #매튜퀵 #창비

 

미국의 총기 학살 소식이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줄만 알았다.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칼부림을 하거나 등산로에서 여성을 공격하는 사건이 나날이 발생하고 있다. 주변에서 이런 사건이 생길 때마다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사회가 두렵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고 깊은 슬픔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방법 하나가 심리 치료를 받는 것이고 두 번째가 적극적인 행동으로 사고가 일어났던 장소를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만약 사건 발생 당사자, 즉 가해자의 동생이 우리 집으로 왔다면 제대로 반겨줄 수 있을까.

 


머제스틱 극장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루카스가 칼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칼은 융 심리학을 전공한 정신분석가다. 칼 또한 머제스틱 극장에서 아내를 잃고 비통해했다. 칼이 더 이상 분석을 할 수 없다고 전했지만, 루카스는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칼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의 감정, 슬픔, 사건이 일어난 후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전하며 이제 그가 고통에서 벗어나 자신을 분석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루카스는 아내 다아시를 사고로 잃었지만 천사로 변하여 날개 달린 모습으로 곁에서 안아주고 살아갈 방법을 전한다. 칼에서 편지를 쓰라고 한 것도 다아시였다. 다아시의 친구인 질이 그를 보살피려 집으로 들어와 함께 지낸다. 어느 날 그의 집 뒷마당에 엘리가 들어와 텐트에 불을 밝힌다. 엘리는 머제스틱 극장에서 총기를 난사했던 제이콥의 동생이었다. 엘리는 고등학교에서 자신에게 상담을 받았던 학생이었다. 루카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엘리를 보살피며 그가 학교로 돌아가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를 바랐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마제스틱 극장에서 일어났던 사고를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당신이라는 존재를 떠올리기만 해도 도움이 됐어요. 오늘 밤 여기서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도움이 돼요. 당신이 없었다면 분명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269페이지)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고통받는 생존자와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마음과 영혼을 달리기 위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가해자의 동생인 엘리를 처음엔 배척했으나 그게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는 일임을 깨닫고 동참하기로 했다. 일련의 과정을 글로 쓰는 작업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하나되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저 빛 속에 우리가 있어.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와 머제스틱 마을 사람들이.

우리.

우리가 빛이에요. (338페이지)


 

고통과 치유의 시간을 갖는 것과 동시에 루카스는 엘리의 미래를 위해 길을 열어주며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보살피듯 했다. 정신분석가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받았던 상처에서 치유 받는 모습을 보인다. 아내 외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던 루카스는 엘리와 함께 영화를 만들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타인에게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한 것 같다.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 마음의 변화가 필요한 순간,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

 


작가 스스로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었기에 융 심리학을 외울 정도로 읽었다고 했다. 자기의 경험을 살려 융 분석심리학이 소설 전체적으로 내포되어있다. 융 심리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대비는 학문이기도 하다. 답장 없는 칼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다 보면 소설의 말미에는 답장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생각지 못한 결말이 안타까웠다. 타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과 나 자신의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다른 것 같다. 치유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랑에 관한 이야기, 희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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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레터 - 잎맥의 사랑 연대기
황모과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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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레터 #황모과 #다산책방

 

소설은 상상의 산물이다. 물론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인 건 상상력의 세계를 글로 표현한 것이다. 아울러 작가의 상상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여, 부디 건강하길, 어디서든 안전하고 평안하길. (51페이지)

 



책 소개글에 혹해 구매 후 읽게 된 책이다. 보라. ‘얼음산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이륀이 비티스디아라는 식물의 잎을 해석하려고 애쓴다. 비티스디아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희귀종 식물이다. 키우는 사람의 마음을 들어 잎새에 간직하고 그걸 해석하는 이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잎맥의 사랑 연대기'라니.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황모과의 그린 레터는 디아스포라의 소설이면서도 사랑의 연대기여서 마음 한구석에 따뜻해지는 작품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세계를 그리는 대부분의 작품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린 레터는 식물을 매개로 하여 인연과 그로 인해 평생의 사랑을 간직하고 찾아 헤매는 내용이다. 희망의 메시지, 사랑의 메시지로 가득하여 디아스포라라는 생각을 잠시 잊었다.





 



식물을 기를 때, 음악을 들려주거나 사람에게 하듯 다정하게 말을 건네라는 말을 남편에게 들었다. 처음엔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지만, 지금은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말을 건넨다. 어서 잘 자라라고, 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라는 마음을 담는다. 만약 식물이 인간과 소통할 수 있다면, 쿠진족의 비티스디아처럼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잎맥을 받은 사람은 그걸 해석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굳이 잎밖에 내어 말하지 않아도 잎맥 하나로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소설이다. SF 혹은 판타지로만 끝나는 소설도 아니다. 분쟁국가의 한 가운데서 양쪽으로 갈라져 오갈 수 없는 지역이 되고, 쿠진족이라는 세계에 있었던 이들은 그들이 속한 얼음산국에 가기 위해서 종이로 된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했었다. 분단국가가 된 우리나라를 짐작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푸룬이 로밀야에게 향하는 마음을 담은 엽첩과 반대로 로밀야가 푸룬에게 마음을 전하는 엽첩은 사랑이라는 건 어떤 순간에도 스러질 수 없는 깊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증조 할아버지가 키우던 비티스디아 잎맥을 해석하는 연구에 매달렸던 이륀에게 비티스디아의 해독키를 가지고 있다는 메일이 오는데 어찌 궁금하지 않을까. 쿠진족을 일컫는 무시의 대명사(, 쿠진족이야? 같은)로 치부되지 않기 위해 비록 4분의 1이지만 쿠진족이라는 말을 숨겼던 이륀이었다. 증조 할아버지와 비티스디아 해독키를 가지고 있었던 마을을 만든 선조 할머니가 서로에게 건네는 마음은 감동하기에 충분하다. 푸룬이 가족에게 겉돌았던 이유도 사랑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사랑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원래 비티스디아는 결혼을 앞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 식물을 키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잎사귀를 건네는 풍습이었다. 비티스디아 잎사귀를 편지 삼아 건넸던 것이다. 비티스디아 정원을 보고 싶다는 이륀의 말에 부끄러워하는 발루의 표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생각나게 하는 게 몇몇 보인다. 돈을 벌기 위해 탄광에 가서 일했던 결과와 무참히 살인을 저지르는 국가, 독립을 외치는 단체와 그들을 무시하는 발언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보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해 식물을 키우고, 잎맥에 깃든 마음을 알게 되는 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이처럼 어떠한 순간에도 꽃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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