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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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어오면서 미출간된 시리즈 때문에 비어 있는 부분이 있어 안타까웠다. 드디어 해리 홀레 시리즈 완전체가 출간되었다. 바로 『리디머』다. 『데빌스 스타』의 다음 이야기 이자 『스노우맨』의 직전 이야기. 물론 시리즈와 상관없이 읽어도 무방하지만 이왕이면 순서에 맞게 읽어 보는게 독자의 큰 즐거움 아니겠는가. 책들이 거의 벽돌 두께라 처음부터 정주행 해보겠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날때마다 정주행하고 싶은 책이 해리 홀레 시리즈인 건 분명하다.

 

그동안 출간되었던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서 왜 이 책이 맨 나중에 출간되었는지, 추리소설 속에서 구원을 말한 소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구세주나 구원을 말하는 소설이 추리 소설 독자들에게 얼마만큼의 호기심과 짜릿함을 자극할까, 아무래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전에는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구세군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있는 곳엔 마치 하나의 정적인 장면처럼 빨간 구세군 남비와 그 옆의 구세군을 볼 수 있었다. 구세군과 구세군의 구제사업, 구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게 소설의 내용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대로에서 구세군이 죽었다.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았다.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해리는 자신의 상관 묄레르가 물러나고 새로운 후임 군나르 하겐 경정과 부딪히는 한편 프린스라 불렸던 톰 볼레르의 우두머리가 있지 않을까 나름의 방식으로 조사하고 있었다.

 

오슬로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마약을 합법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지정 장소에서만 팔고 있는데,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해리 홀레 시리즈 중 『팬텀』에서 사랑했던 라켈의 아들 올레그가 마약에 중독되어 살인사건에 연류되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마약에 중독되면 자신 뿐만 아니라 부모 또한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한다. 소설의 첫 부분 마약 중독자의 자살로 그 부모에게 죽음의 사자 역할을 했던 해리의 고뇌만 보아도 그렇다. 물론 자살이 아닌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한 살인 사건이었다는 걸 밝혀내지만 말이다.

 

 

소설은 한 구세군에 소속된 한 소녀를 강간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미성년자의 강간. 마치 습관처럼 하게 되는데, 어린 소녀를 강간하며 구원을 얻는다는 것부터가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닐까. 억압된 생활을 하는 자들이 자신만의 탈출구를 찾기 마련인데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일이었다는 게 마음아프게 다가온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습관처럼 계속된다는게 문제다. 누군가를 구원하는 일이 무엇인가, 나를 구원하는 게 어떤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해리는 사건의 첫인상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뇌에서 걸러지지 않은 첫 장면의 느낌을 강조했던 해리. 형사들에게 주로 묻는 질문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느꼈던 첫 장면을 그들의 말로 듣기를 바랐다. 그 장면들에서 번뜩이는 재치, 사건에 대한 감각, 해리 홀레만의 수사 방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해리의 깊은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살인범을 잡아야 하는 그가 살인범을 잡아야 할 것인가, 구세주 앞에서 맹세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아들을 살려줄 것인가. 구세군을 통해 구원받은 자로서 타인을 구제하고 구원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채웠던 그를 벌할 것인가. 해리는 누구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건네는 소설이었다. 라켈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한편 해리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장면이 좋았다. 그가 알코올에 중독되지 않고 맨정신으로 수사하는 장면 또한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해리 홀레를 응원하는 팬이므로. 부디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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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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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주 얇은 책이 좋은 경우가 있다.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고, 잠깐의 시간 동안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같은 경우 두꺼운 책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렇게 얇은 책은 좀 서운한 감이 있지만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다면 이것 또한 굿이다. 그림과 글의 조합이 좋기 때문이다. 글이 없이 그림만 있는 책을 볼 경우가 있다. 글이 더 좋다고 여겼으나 그림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글이 있지 않아도 그림만으로도 우리는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건 어른들 보다는 아이들이 더 잘할지도 모른다.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이게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아닌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버스데이 걸』은 아주 짧은 소설이다. 카트 멘시크의 그림이 수록된 단편으로 스무 살 생일에 무얼 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각자 스무 살 생일에 무얼 했더라 열심히 생각한다. 스무 살이었던 시절이 너무 오래되어 한참을 생각해보지만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때라 친구들에게 장미를 받았을테고, 남자 친구가 없었으니 친구들과 어울려 생일파티를 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밤바다,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겠지.

 

스무 살 생일이 맞이하는 여성이 있다. 이탈리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생일날 근무를 바꾸지 못했다. 생일 날 근무중 한 번도 아프지 않던 플로어 매니저가 복통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갔다. 플로어 매니저에게는 고유의 업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식당 사장에게 저녁 식사를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 일을 그녀가 하게 되었다. 식당 6층에 있는 사장의 방으로 웨건을 밀고 갔다. 생일이라는 그녀에게 사장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한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원. 소원은 단 한 가지여야 했다.

 

 

 

아가씨, 자네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거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34페이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단지 그것 뿐이야. (57페이지)

 

그 소원이 무엇인지 나타나 있지는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스무 살 생일을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주인공 또한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걸리는 소원을 빌었을 것이라는 것뿐.

 

담백한 문장의 담백한 단편이었다. 우리의 스무 살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어떠한 소원을 빌었든 우리의 삶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 다른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나의 삶은 나의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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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디슨 애비뉴를 떠났다! - 광고, 그 따뜻함을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기
김세영 지음 / 베가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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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앞에 앉아 있을때면 보는 게 예능 프로그램 한두 개와 여행 프로그램이다. 특히 EBS에서 하는 세계테마여행에 채널을 멈춘다. 특히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더더욱 집중해서 보게 된다. 아마 이 프로그램에서 김세영 작가를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인상이 낯익은 걸 보면. 여행자들이 부럽다.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 일이든 여행이든 어딘가로 향한다는 자체가 부러운 것 같다.

 

여행하는 광고인 김세영의 에세이다. 여행 국가나 장소의 특이점,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자극하는 게 여행에세이인데, 김세영의 글에서는 그의 직업상 느낄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담았다. 광고인으로서 바라보는 세계, 그 나라의 특색, 편견으로 가득차있던 마음을 어느새 열 수 있는 글이었다고 해야겠다.

 

생각하기에 공산주의 국가도 광고를 하겠나, 제대로 이루어지겠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 또한 편견이라는 걸, 저자의 여행 기록에서 나타났다. 우리 삶에서 고민은 때로는 낯선 곳을 향하게 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발상을 얻기도 한다. 생각지 못했던 경험이 우리를 다른 삶으로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광고라고 하면, 선진국 특히 자유주의 국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작가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책 속에 세 곳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슬람 세계 즉 터키와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중국, 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의 광고를 탐색했다. 그 나라의 유명한 광고인을 직접 만나 광고 이야기를 듣고 편견을 깨는 시간들의 기록이었다.

 

15초의 시간에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는 게 광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명한 카피가 있다. 순간의 기록일텐데 카피 한 줄이 사람들의 눈을 혹은 귀를 사로잡는다. 최근 몇년 동안 라디오의 광고를 듣다보니 외울 정도가 되는데 TV의 광고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제품의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광고가 참 재미있게 느껴져 일부러 챙겨보기까지 한다. 광고인의 발상이 신선해서다.   

 

 

저는 어느 순간 알게 되었어요. 그런 큰 이야기들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요. 오히려 세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것은 그런 크고 거창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정말 작은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었어요. (252페이지)

 

크리에이티브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길 위에서,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거죠. 그리고 모든 사회 영역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게 크리에이티브에요. 만일 단순히 멋진 TV광고를 만드는 일이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큰 오산이에요. (288페이지) 

 

 

 

작가는 책 중간중간에 '광고인의 노트'를 실어 광고인으로서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담았다. 광고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마음가짐을 말하는 글이라고 해도 되겠다. 말미에 '광고인이 되는 길'이라는 글이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 전공을 추천했다. 예전에 어떤 가수 한 명도 이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굳이 자기가 되고 싶은 걸 전공하는 것 보다는 뭔가 다른 걸 공부해 보라는 말이었다. 김세영 작가 또한 '지나치게 실용화된 전공보다는 인문학을 전공할 것을 꼭 권하고 싶다'라고 했다. '깊이 있는 고민과 사람에 대한 성찰이 튼튼한 토양처럼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문장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인문학적인 교양이란, 교양서적의 제목을 달달 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적 교양이란, 바로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기술"을 말한다! (301페이지)

 

여행을 하면 시각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다.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일은 분명 나의 삶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결국 많은 것을 보고 겪는 다양한 경험이 삶의 질도 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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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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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을 읽어오면서 참 따뜻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 여겼다. 처음엔 잔소리꾼에, 깔끔쟁이에 보통 사람이 싫어할 말만 하고 다녀 독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주인공들이지만 어느새 그들에게 빠지게 하는 효과를 지녔다. 주인공들이 했던 행동들이 타인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왔던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소설은 초반부터 인물들이 너무 많았다. 많은 인물들을 파악하느라 더디 읽혔다고 보는게 옳다. 베어타운의 가족들의 이름, 아이들, 그들의 친구들의 이름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는 쉴새 없이 읽히는 게 이 소설의 장점이다. 베어타운은 하키로 똘똘 뭉친 공동체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하키 선수이며 그들의 가족이며, 하키부가 소속된 위원회이며 혹은 하키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곳이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1페이지)로 소설이 시작된다.

 

주요 인물들을 파악하느라 소설의 첫 장이 잊힐즈음 서서히 드러나는 게 이 소설의 백미다. 기타를 사랑하는 소녀 마야, 그 소녀의 단짝 아나, 하키부 단장인 아빠 페테르, 변호사인 엄마 미라가 있다. 하키부 단장인 아빠 페테르는 자신의 스승 소네를 A팀 코치 자리에서 잘라야 한다. 그 자리를 청소년팀 코치인 다비드를 보내야 한다는 이사회의 결정을 들었다. 다비드 또한 소네의 제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하키팀을 이끄는 코치나 단장, 사장, 이사회는 '이겼느냐'가 중요하다. 과정은 필요없다. 다비드가 청소년팀에게 하는 말도 '이겨라'다. 그 어떤 말도 필요없다. 이기는게 중요했다. 청소년팀을 승리로 이끌 선수는 케빈이다. 케빈을 전담 마크하는 이들을 물리치는 아이가 케빈의 친구 벤이(벤야민)고. 준결승전에서 승리한 날 베어타운의 모든 사람들은 승리를 축하하고, 아이들만의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를 모른척 허락해 주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술을 마시던 이들. 서로에게 호감이 있던 소년과 소녀. 열여덟 살의 소년이 열다섯 살의 소녀를 성폭행했다.

 

 

 

성폭행 당한 아이는 방에 틀어박히고, 가해자는 버젓이 운동을 계속한다. 성폭행 사건이 본격화되자 베어타운의 사람들은 소녀를 탓한다. 좋아서 같이 자놓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베어타운 하키팀의 승리와 한 아이의 고통을 놓고 보았을 때 무엇이 중요한가, 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모른척 했던 부모의 심정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소녀와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모른척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부모가 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나 또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리라.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245페이지)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소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비난해도 한 아이의 고백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허리가 아픈 엄마의 편한 일자리와 5천 크로네의 큰 돈이 있었음에도 용기를 냈던 것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비록 성폭행 가해자인 소년이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전해졌을 것이다. 이것이 소설이 가진 힘이다. 물론 소설의 첫 문장에서처럼 스스로 단죄를 가해 그가 영원히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수도 있다. 한 마을의 공동의 이익도 중요하겠지만 한 개인의 안위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똘똘 뭉쳐 소녀를 비난하고 소년을 환호했다. 마을의 영웅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말은 하찮은 것이다. 다들 얘기하길 말로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들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322페이지)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374페이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나는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엿보았다. 어떤 행동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집단과 개인의 차원에서 세세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사건을 똑바로 보고 고통을 느끼는 이들의 입장에 서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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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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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자연 친화적이 되어간다.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도시에서의 삶을 좋아하는데, 특히 남자들이 자연에 귀의하고 싶어한다. 우리집 남자를 포함해 주변의 많은 남자들이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고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이랄까. 자연속에 스며들어 사는 삶을 부러워하고 소망한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들은 목가적인 내용을 다룬 것들이 대부분이다.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라고도 한다.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다. 비채에서는 김성곤의 번역으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다. 의무감에서 시작한 독서가 어느 새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의 자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아주 재미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라는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읽고나면 여운이 남는다. 이런 삶은 어떨까. 이런 작품의 느낌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라는.

 

우리는 이 소설에서 '빅서'라는 장소에 심취하게 된다. 남북전쟁시 남부연합의 소속이었던 곳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해본 빅서의 풍경은 장관이다. 절벽과 검은 바위, 파도치는 풍경이 꽤 인상적인 곳이다. 이곳에서 남부연합 소속의 장군이었던 리 장군의 후손이라는 리 멜론과의 만남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리 멜론의 자꾸 변해가는 치아 갯수와 도서관을 뒤져 오거스터스 리 장군의 이름을 찾았으니 명단에 없는 걸 보고 허무함에 빠졌던 감정들과 함께.

 

 

 

 

그동안 읽어왔던 작품들과 함께 이 작품 또한 목가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작가가 친구가 있었던 빅서에 한달 가량 머물렀던 그 경험들을 소설로 나타낸 것이다. 전화기도, 전기도 없는 시골의 오두막. 있는 거라곤 엄청 많은 숫자의 개구리들 뿐이었다. 우연히 악어 두 마리를 들여와 연못가는 고요해 졌지만, 제시와 리는 배가 고팠다.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트럭의 휘발유를 훔치려는 소년들을 잡아 총알이 없는 총으로 그들을 위협해 가진 돈을 다 털게 해 그 돈으로 여자를 사려고 했던 리 멜론이었다.

 

소설에서 엘리자베스가 나오는데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녀는 이곳에 있을 때와는 달리 돈을 벌러 도시로 갈 때는 한껏 치장하고 일을 했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그녀는 아름다웠고, 번 돈으로 빅서로 돌아와 아이들을 보살폈다. 제시에게는 일레인이라는 여자 친구가 생겼고, 빅서로 와 함께 지낸다. 돈이 엄청 많은 미친 남자와 리, 제시, 엘리자베스, 일레인이 머무는 빅서는 어쩐지 그들의 이상향과도 같다.

 

까마귀가 광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 주위에 거미줄을 쳤다. 다른 동물들, 지, 딱정벌레, 토끼도 거미줄을 쳤다. 지금은 땅벌레처럼 길고 날씬해진 거미처럼, 무덤의 입구에서 기다리며.

 

지진에 부서진 운동장처럼 찢어진 군복을 입은 16세 소년이, 군복을 입은 59세 된 노인 옆에, 교회처럼 장엄하고 완벽하게 죽은 채 땅에 누워 있었다. (163~164페이지)

 

다섯 사람의 이야기와 함께 남북 전쟁시 오거스터스 장군의 이야기가 다른 한편으로 전해진다. 이후의 이야기는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결말이 이어지며 수많은 결말들로 이루어지는 게 우리의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열린 결말과 함께 소설은 막이 내린다. 어쩐지 빅서에서 머물렀던 오두막과 연못의 풍경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파도 치는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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