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시민들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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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풍경은 아름답다. 비록 사진으로 만나는 풍경이지만, 그곳의 풍경을 전하는 말을 읽다보면 저절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 자리에 서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어리거나 젊거나 늙은 사람들. 여행자들의 발길로 붐비는 곳이 될 수도 있고, 여행자들이 적어 한산한 거리의 풍경을 만날 수도 있는 곳. 직접 가보지 못하지만 사진 속에서, 작가가 뿜어내는 글 속에서 그곳의 풍경을 그린다.

 

새빨간 표지의, 어쩐지 강렬한 붉은 태양 같기만한 눈부신 표지 속에서 우리는 아바나라는 도시의 강렬함을 느낀다. 백민석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에 그만 눈을 감을 뿐이다. 백인이거나 갈색의 피부를 가졌거나 아예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풍경이 보인다. 젊은이들으 젊은이들 대로 젊음을 발산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순수하고도 부끄러워하는 미소를 짓는다. 늙은 노인들은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있으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잠시의 스쳐지나감이 아닌 한동안 머물고 있었던 작가는 아바나의 이곳 저곳을 떠돌았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서 거리를 걸었다. 거리의 풍경들을, 거리의 풍경이 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곳 아바나는 이미 추억의 풍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는 날, 사진을 찍고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가방의 지퍼를 채 닫지 못하고 비오는 거리를 우산을 쓰고 걸었다. 배낭 속 카메라는 우산에서 내리는 빗물로 젖어갔고, 고장이 나 버렸다. 아바나는 카메라를 제대로 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녀봐도 구할 수 없어 결국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나머지 풍경들은 머릿속에, 가슴 속에 깊이 새겼다. 물론 저렴한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긴 했다. 사진을 찍어야 하므로.

 

사진으로 채 보이지 않는 풍경은 머릿속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장된다. 시간이 가면 흐릿해지는 기억일 수도 있지만, 한동안 선명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 빗 속을 우산이 있다며 힘차게 걸었던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카메라가 젖어가는지도 모른 채, 우산을 들고 힘차게 걸었을 작가의 당당함을. 곧 비에 젖은 카메라를 발견할 테지만, 이것 또한 여행의 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무언가를 새롭게 찾게 되는 것들. 

 

 

아바나에서는 아주 오래된 원색의 월드카 행렬이다. 빨간 색 혹은 파란색의 클래식 카가 아직도 거리를 달리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고,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를 혁명으로 이끌었던 체 게바라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물라토라 불리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족이 국민의 반을 차지하는 곳이다. 백인이 가장 많고 좀더 희거나 좀더 갈색이거나 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곳의 풍경을 작가는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영화속에서나 보았던 사람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 뜨거운 열정과 수줍은 표정을 간직한 아바나의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아바나의 진정한 볼거리는 자연경관이나 유적보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아바나의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를 짊어지고 미래를 향해가는 시민들인데.  (136페이지)

 

작가는 '당신'이라는 표현으로 아바나의 풍경들을 전한다. 그의 말처럼 자연 경관이나 유적들을 나타내는 사진보다는 아바나 시민들의 모습들이 있는 사진들이다. 제복을 입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람들,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수줍은 표정으로 포착된 학생들. 그리고 인생의 한 부분을 열정적으로 보내는 젊은이들의 즐거워 보이는 표정들. 그들의 자유로움과 생동감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작가는 그런 아바나의 사람들을 담았다.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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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 모중석 스릴러 클럽 43
제프리 디버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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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나 가수를 스토킹하는 경우가 있다는 기사를 종종 접한다. 스타들은 일반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존재다. TV나 영화속 스타가 실제로 내 앞에 온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자신의 이상을 스타들에게서 찾는데, 이 경우 감정이 격해져 스토킹 하는 존재들이 나타난다. 그저 스타를 좋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스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 잠금장치를 몰래 풀어 집안에 들어가 무언가를 훔치기도 한다. 스토커 들의 광기와 집착은 대상자들의 생명의 위협을 가하기도 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소설은 컨트리 송을 부르는 가수와 그를 스토킹하는 남자,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경찰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 3편이기도 하다. 제목에서처럼 'XO'는 '키스와 포옹'을 나타낸다. 연인 사이의 이모티콘으로 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스타들에게 보내는 팬레터에 대한 답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건네지는 표현이 'XO'다. 이 표현을 자신에게만 보낸 것이라 오해하고, 스타도 자기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가진 남자의 집착과 광기는 살인을 불러오기까지 한다.

 

스토킹이 심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토킹을 하는 사람의 집착과 광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를 보는 기분은 좋지 못했다. 스타를 좋아하는 것과 스타를 스토킹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살지만, 그들만의 삶이 있을텐데, 스토커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스타를 사랑하는 것만큼 스타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긴다는 것이 문제다. 스토킹은 스타의 주변 인물을 질투하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살인하기까지 한다.

 

제프리 디버의 소설이 그렇듯, 컨트리송 스타 케일리와 그녀를 스토킹하는 에드윈 샤프, 그리고 휴가기간 동안 맞닥뜨린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캐트린 댄스의 이야기는 우리를 긴장하게 했다가, 안심시키고 뒤통수를 치듯 반전의 반전의 연속이다. 한 마디로 안심할 수 없다. 에드윈 샤프의 영리함과 치밀함이 그를 살인범으로 보이게 했다가도 한 순간에 스토커라는 이유 때문에 이용당하는 캐릭터로 보이게 만들었다. 케일리의 측근 보비 프레스콧을 죽인 살인의 증거들은 에드윈 샤프를 가리켰지만, 작가는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다른 장치를 심어 우리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했다.

 

 

 

사람의 작은 몸짓 등을 보고 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에게마저 에드윈 샤프의 동작은 그 사람의 제대로 된 심리를 들려주지 못했다. 그만큼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뜻인가. 사건이 일어난 일요일에서부터 금요일까지 6일간의 이야기가 숨막히게 이어진다. 소설에서 케일리 타운의 노래 '유어 섀도 (Your Shadow)' 의 가사는 이 소설에서 큰 영향을 끼친다. 작가는 '유어 섀도'를 직접 음원까지 제작해 소설 뒷편에 가사가 친절하게 수록되어 있을 정도다. 소설에서는 케일리의 가사대로 그녀의 주변 인물이 죽게 된다. 1절 가사내용에 따라 케일리의 음악적 동반자 보비 프레스콧이 죽고, 2절의 내용처럼 케일리의 음원을 불법 파일 공유했던 프레데릭 블랜턴이 죽는다. 3절의 음악이 어디선가 흘러나오고 캐트린 댄스와 보안관들은 다음 타겟이 누가 될 것인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가 캐트린 댄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와 링컨 라임 방식의 프로파일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동작학 전문가인 캐트린 댄스와는 다르게 링컨 라임은 순전히 수집된 증거물을 분석해 프로파일링을 한다. 링컨 라임 시리즈에 캐트린 댄스가 나오면 반갑듯이 캐트린 댄스 시리즈에 링컨 라임의 등장도 무척 반갑다. 사건이 해결되는 듯 하지만 제대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에드윈 샤프가 과연 그냥 케일리 타운을 사랑하는 순수한 팬일 뿐인가, 아니면 케일리의 주변 인물들을 죽인 살인범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에드윈 샤프가 스토커라는 이유로 그의 흔적을 남기는 등의 사건까지 발생했다.

 

개인적인 삶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로, 두 남자 사이에서 아이들에게는 아빠와도 같은 남자의 진심을 걱정하는 보통의 인간으로서의 캐트린 댄스를 만날 수 있다. 직업과는 별도로 여성으로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해결되었다고 생각한 사건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분석한다. 동작학 전문가로서 자신이 놓쳤던 것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을 용의선상에 두고 면밀히 살피는 캐트린 댄스 식의 심리 파악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다시 한번 캐트린 댄스의 매력에 빠졌다. 링컨 라임과는 별개의 매력이 있는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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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7-08-0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신작을 벌써 읽으셨네요. 아직 캐트린 시리즈는 한권도 읽질 않아서 잘 모르지만 재밌어보여요 ㅎㅎ

Breeze 2017-08-01 17:07   좋아요 1 | URL
정말 재미있어요. 이번 편도 재미있었지만 다른 작품도 좋았거든요. 특히 <잠자는 인형>이요. ㅋㅋ
 
예언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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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가을, KAL기 격추 사건이 벌어졌다. 내가 기억하기로 KAL기 격추 사건은 김현희가 관련된 사건이었다. 오래전 사건을 검색해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일단 사건이 일어난 연도가 달랐고, 북한이 관련된 것이 아닌 냉전체제의 미국과 소련이 연관되어 있었다. 1983년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대한항공 007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을 맞고 격추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소련은 붕괴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뉴욕을 출발, 알래스카를 경유해 서울로 오는 비행기였다. 대한항공 007기는 왜 알래스카를 거쳐 소련의 하늘을 날았을까. 소련의 하늘을 날고 있는데도 미국은 왜 가만히 내버려두었을까.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게 이 소설이 쓰여진 이유라고 저자는 밝혔다.

 

항공기에는 자동항법장치가 있어서 궤도를 이탈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소련 영공을 날고 있던 민항기라는 사실에 유도 착륙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미국은 그것을 삭제하고 발표 했다. 지지도가 떨어져가고 있는 레이건을 위해 공산 국가인 소련의 행태를 유도해 레이건의 기사회생을 바랐던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세 나라 미국과 소련 그리고 일본의 이기심이 나타난 사건이었다. 소의 희생으로 대의명분을 살린다는 취지였을까. 약소국인 한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김진명의 소설은 이처럼 묻어두었던 지나간 역사를 헤집는다. 대한항공 007기 격추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어났다는 사실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는 가. 경각심이라기 보다는 오래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읽혔다.  

 

KAL 007기에 탑승했던 여동생을 잃은 지민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믿을 수 없었던 여동생의 죽음과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문을 만나 사건의 개요를 듣는다. 자기가 직접 소련으로 건너가 당시 KAL 007기를 격추시켰던 인물인 전투기 조종사 오시포비치를 죽이고자 했다. 소설은 이러한 과정들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지민에게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 문선명 통일교 교주다. 소설에서는 그의 이름은 정확하게 나오지 않고 그저 '문'으로 불린다. 대신 문의 아내의 이름은 실명 그대로 나온다. 솔직히 통일교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누군가에게 전해들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결혼으로 하나의 관계를 맺었다는 것 정도다. 그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고 모스크바에 까지 가게 되어 오시포비치를 만난다는 설정은 과히 소설적이었다. 물론 실제로 북한을 방문해 남북 통일에 대한 생각을 비추기도 했다.

 

작가의 생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게 작품이다. 작품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염원을 말한다. 그가 역사적 사건을 소설화하여 우리에게 역사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고 있다. 우리가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역사를 소설 속에서 접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받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건네게 된다.

 

이렇듯 작품속에서 작가의 염원을 담은 게 그의 통일에 대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문 총재의 발언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던 것이다. 2025년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문 총재가 7년 후 소련의 공산주의가 멸망한다고 예언했듯, 작가가 염원하는 2025년의 통일도 과연 이루어질까. 북한은 여전히 핵을 만들고, 미사일 발사 준비를 한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나타난 카메라를 향해 총을 겨눈 북한 병사의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을 보며 과연 통일은 될까. 바짝 마른 얼굴로 반소매 군복을 입은 북한 군인도 통일을 원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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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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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작가의 성별에 대해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어떤 작품이느냐에 따라 작가의 작품을 파고드는데, 어떠한 작품을 읽는 경우 여성 작가이기에 더욱 와닿게 되는 내용이 있다. 여성 작가만이 갖는 고유한 감정에 동감을 표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을 보면.

 

『여자의 독서』라는 제목을 보고는 그저그런 책소개 책이려니 했던 게 사실이다. 시중에 많은 책 소개 관련 책이 나와 있다. 어떤 책을 소개하나 싶은 마음에 궁금해 그런 책을 읽어보고 싶어하는 게 사실이다. 그저그런 책이라 여겼으면서도 자꾸 궁금함에 펼쳐보게 된다. 책을 읽고는 늘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기도 하는 나. 이번엔 저자가 읽고 소개한 많은 책에 대해서 공감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메모하면서도 즐겁게 했던 것 같다. 일단 작가는 여성이 쓴 작품들을 소개했다. 여성이 쓴 책이 이토록 많았다니. 그리고 저자가 소개한 아주 많은 책들 중에서 함께 읽은 책이 많았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일단 작가는 이십 대에 읽은 책의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인간의 조건』의 한나 아렌트, 『자기만의 방』의 버지니아 울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제인 제이콥스다. 저자는 이 작품들을 소개하며, '불멸의 존재이자 지속가능한 멘토, 시시때때로 영감을 주는 존재' 라고 표현했다. 박경리 작가의 책만 읽었을 뿐, 다른 작가의 책은 읽어보지 않아 이 작가들의 책을 읽어봐야되지 않나 하는 의무감이 들 정도였다. 우리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저자가 소개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읽고, 작품들 속에 더 파고들다 보면 미래의 삶에 멘토가 되어 줄 수 있다고 했다.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책은 총 8장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개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어떤 캐릭터로 살아갈까?'라는 주제를 가진 챕터가 가장 재미있었다. 성장 스토리를 다룬 책인데, 어렸을 때부터 읽어왔던 책들의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작은 아씨들』의 조, 『빨강머리 앤』의 앤, 『제인 에어』의 제인,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 『토지』에서의 윤씨 부인, 마지막으로 『캔디 캔디』의 캔디 캐릭터다. 다양한 성격들을 가진 주인공들의 성장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다 좋아하는 책이며, 캐릭터였을 것이다. 몇 번을 읽어도 늘 감동을 받는 책이다.

 

 

 

아마 성장 스토리를 다룬 부분때문에 김진애 작가의 글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연대하고 있는 자매들의 모임을 '디어 걸즈' 혹은 '십자매' 라고 했다. 삶의 한 부분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 함께 하는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다.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데, 다 여자들로만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디어 걸즈' 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 더불어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의 면면은 무척 다양하다.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은 책을 안 읽은 사람보다 여러 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말도 잘하게 되고 글도 잘 쓰게 된다. 훨씬 더 세련되고 수준이 깊어지고 또 높아진다. 논리적이 되고 전체를 조감하는 통찰력이 커진다. 사실을 포착하는 구조적 능력도 높아지고 윤리적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 전후좌우를 살피고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비교 안목이 높아지니 균형 감각이 높아질 수 있다. 상상력이 높아짐은 물론 창조 역량도 높아진다. (325페이지) 

 

여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여성 작가들이 쓴 책들을 읽으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어렸을 때는 차별 받고 컸지만, 차별 받지 않고 살길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책들의 홍수 속에서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면 무척 기분좋은 일이다. 우리는 각 분야별 책 속에서 우리가 닮고 싶어하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여름 날,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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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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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매케이가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으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끈질기게. 소설의 첫 문장이다. 서재에서 자살하려는 순간 누군가 찾아왔다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할까, 아니면 계획했던대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을까. 자살을 계획했다면 집안에 아무도 없는 척하고 있을 것이며 지쳐서 돌아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라고 소리친다면, 누구길래 자신의 이름을 알고 소리를 지르는 걸까 궁금해진다. 이제 그만 돌아갔겠지 하는 순간 테드 매케이는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자신이 쓴 기억은 없지만 자신의 글씨였다.

 

문을 열어.

그게 네 유일한 탈출구야.

 

그저 자신의 죽음을 말리려는 사람이겠지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그는 처음 본 사람이다. 마치 자신을 자세히 안듯 그가 자살을 하려는 순간 나타났고, 사랑하는 딸과 홀리의 이름까지 꿰고 있는 자였다. 젊어 보이는 그는 저스틴 린치라는 남자로 자살하는 대신 누군가를 죽이라는 말을 한다. 자살로 인해 가족이 고통을 받기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그 고통이 덜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들어보니 맞는 소리 같기도 했다. 자신 또한 서재의 열쇠를 숨기고 홀리 혼자서 서재에 들어오기를 바랐던 것이다.  

 

린치는 살인청부를 제시하며 폭행 전과가 있으며 한 여자의 살해용의자였던 에드워드 블레인과 역시 자살클럽에 가입된 기업인 웬델을 죽이라는 소리였다. 그 다음에 자살하려는 테드를 다른 사람이 죽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는 너무도 쉽게 블레인의 집에 숨어 들어 블레인의 이마에 총을 쏘았고, 웬델의 집에 숨어들어서도 그의 가족들이 들어오기 직전에 죽였다. 그가 블레인과 웬델을 분명히 죽였다. 하지만 테드는 웬델과 마주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웬델과 살인청부를 했던 저스틴 린치가 대학교에서 만났다는 사실이다.

 

테드는 꿈 속에서 주머니쥐가 홀리의 다리를 갉아먹는 꿈을 꾸게 되면 혼란스럽다. 정신과 의사인 로라 힐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로라 힐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테드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다. 궁금했던 몇 마디의 질문을 하며 테드가 꾸었던 꿈 이야기와 그의 환상 속 장면들을 말해주기를 원했다. 테드는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했고, 중요한 인물의 이야기는 슬쩍 빼는 식으로 감춰두기도 했다.

 

 

 

소설에서 테드가 자살을 하려고 했던 시간으로 자꾸 되돌아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은 마치 영화 「인셉트」의 한 부분을 엿보게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주인공과 비슷하고 꿈을 꾸며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고 과거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모습이 비슷했다. 꿈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 쥐가 나타나 위해를 가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서 주머니쥐가 테드에게 어떤 의미인가가 궁금했다. 주머니쥐는 테드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인가 그를 도우려는 존재인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변환점인가.

 

왜 테드는 끊임없이 죽으려고 하는가. 그의 주변 인물들은 그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그들을 죽이려 했는가. 그가 어떠한 일을 겪었길래 그는 기억을 잃고 기억을 변형시키는가. 그의 기억들은 반복되고 변형되어 나타났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들이 뒤섞여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대부분의 과거의 기억들을 자신이 유리한 방향대로 기억되는 반면, 그는 무언가를 잊기 위해 마치 단죄하듯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했다.

 

그의 기억들을 헤집어 이야기의 구성을 맞춰가며 그를 이끄는 인물이 로라 힐이라는 정신과 의사였다. 변형된 과거의 기억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는 인물 또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야 할 테드 매케이였다. 꿈과 환상의 형식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들을 재구성해야 했다.

 

소설에서는 테드가 변형된 과거의 기억들에게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게 체스보드였다. 체스 신동이었던 테드. 체스 시합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차에 태우고 다녔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봉합되었던 매듭도 체스보드에서 풀어져야 했던 것이다.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사건의 전개와 변화 때문에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짜릿함을 선사하는 소설, 뜨거운 올여름을 잠시나가 쉬어가게 해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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