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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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소녀'라는 이야기를 읽고 자란 소녀들(히나타 에미와 유메)은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내용에 깊이 파고들었다. 대학생이 되자 '하늘을 나는 소녀' 같은 민담을 공부하고 싶어했다. 학교에 갔다가 이공계 학생을 만나 민들레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민담 속에서 나왔던 민들레 마을을 떠올리고 반가움이 앞섰다. 이 소녀의 이름은 히나타 에미. 16년 전의 1998년이었다. 

 

2014년의 현재. 고모와 함께 사는 히메노 히로미가 등장한다. 경시청에서 온 전화를 받고 나간 곳에서 하나의 사건을 접한다. 폐목장의 사일로 안에서 하늘을 나는 듯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신분증으로 보아 그녀는 16년전에 실종된 히나타 에미의 시신이었다. 에미는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자세로 쇠파이프에 의해 찔려 있었다. 사일로 안쪽으로 빗장이 지어져 있고, 밖으로는 잠금 장치가 되어 있었다. 높다란 곳에 위치한 창문 뿐인 밀실인 사일로에서 히나타 에미는 어떻게 죽었나가 의문이다.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호텔의 옥상에서 한 남자가 불에 태워져 죽는다. 의원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가와호리 데쓰지라는 남자다. 데쓰지는 히나타 에미와 함께 민들레 모임을 했던 남자다. 에미와 데쓰지는 어떤 이유로 죽었는가. 누가 죽였는가. 여기에서 경시청에 근무하는 히메노 히로미는 히나타 에미를 알고 있었다. 16년 전 자신의 옆집으로 이사 온 대학생이었으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히메노에게 음식을 해주었을 뿐 아니라 빨간색 차를 타고 에미의 시체가 발견된 목장을 데리고 가기도 했었다. 그래서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 싶었던건지도 모른다.

 

 

 

히메노 히로미가 주인공인줄 알았다. 하지만 히메노는 가부라기의 부하 직원이었을 뿐, 가부라기가 주요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라는 걸 알았다. 봄이면 노랗게 피는 민들레가 화단에 가득이다. 노랗게 꽃을 피우다가 꽃이 시들면 하얗게 솜털처럼 남게 되는데 이 홀씨가 날아가 다른 꽃에 뿌리를 내린다고 알고 있었다. 민들레가 영어로 단델라이언(dandelion)이라는 것을 이 소설로 알게 되었다. 사자의 이빨 혹은 사자의 송곳니라는 뜻을 가진 민들레. 아마도 민들레 홀씨의 모습이 뾰족뽀족한게 사자의 이빨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민들레는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다. 소설의 첫 부분에 '하늘의 나는 소녀' 속 내용에서도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마을이었고, 히나타 에미가 든 대학 동아리의 모임도 민들레 라는 이름을 가졌다. 페트병 뚜껑 등을 재활용하자는 환경운동에 앞장서겠다는 모임의 이름을 민들레 모임이라고 한 이유는 민들레의 가지가 기형적으로 휘어져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원자력발전소 때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민들레가 피어 있는 나라는 민들레 모임 회원들에게 그들만의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꿨던 그들에게 그들을 조종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유토피아는 꿈이었을 뿐이었다.

 

노부세는 역시 피터 팬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저 높은 하늘을 동경하기만 할 뿐, 하늘을 날지 못하는 피터 팬.

그리고 나는, 날지 못하는 피터 팬을 사랑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손을 잡아끄는 대로 뒤를 따라가는 어리석은 웬디였다. (342페이지)

 

가부라기 시리즈라고 하는데 그가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팀원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인물로 보였다. 물론 다른 사람이 생각지 못하는 것을 파악하는 건 그의 역량인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보이는 대로 사건을 바라보지 않고, 불안한 감정을 바꾸어 생각하므로써 사건 해결의 키포인트를 적중해내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 의문에 차 있었던 히나타 에미의 존재, 히메노 히로미 아버지의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이 소설의 또다른 매력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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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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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히데오는 『64』라는 작품으로 만났다. 『64』라는 작품 또한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이야기를 담았는데, 유괴살인사건을 다룬 내용이었다. 시기상으로 『루팡의 소식』보다 나중에 출간한 작품으로 가출한 딸이 있는 경찰관이지만 유괴살인사건의 홍보담당관으로서의 일을 해야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꽤 매력적인 작품이었기에 그의 초기작 또한 기대를 갖게 했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소시효만료를 앞둔 이야기를 한다. 십오 년전 자살로 처리된 여교사의 사건이 사실은 타살이었으며 그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가 오늘 하루, 24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살한 여교사의 제자 세 명이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제보였다. 일명 루팡 작전이라고 불렸던 관계자 세 명이 차례대로 경찰에 의해 입건되고, 경찰은 각자 세 사람을 심문하며 십오 년 전의 일을 듣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 만료가 15년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공소시효 만료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TV에서도 방영한 드라마에서도 그러한 말을 하긴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피해자들에게 시효 만료라는 것으로 더이상의 고통을 줘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였다.   

 

소설은 현재의 경찰서 직원들이 루팡 작전의 인물인 기타 요시오, 다쓰미 조지로, 다치바나 소이치를 심문하는 과정을 담은 것과 동시에 기타 요시오의 자백으로 드러나는 십오 년 전의 이야기가 한 축이다. 십오 년 전의 그들, 학교에서 겉돌아 카페 루팡이라는 이름의 장소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기말 시험을 앞두고 교장실의 금고에 있는 시험지를 훔치기로 모의하고 작전명을 그들의 아지트인 카페의 이름을 따 '루팡 작전'이라 부른다. 카페 루팡의 사장 또한 한때 은행 차를 탈취해 3억 엔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었다.

 

루팡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학교의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최대의 난관은 숙직실에서 기거하며 두시간 마다 순찰하는 화학교사 가네코 모키치가 문제였다. 주로 하이드 씨라고 불리는 그의 순찰 시간을 피해 교장실의 시험지를 훔쳐야 했다. 교무실의 출입문 자물쇠를 미리 손봐두고 옥상에서 사다리를 내려 문제의 시험지를 훔치기로 했다. 첫 날, 둘째 날, 셋째 날까지는 무리없이 훔쳤고, 넷째 날 시험지를 훔치려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교무실에 여교사로 보이는 구두와 여학생의 다리로 보이는 하얀 구두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소설을 읽다가 한가지 의문이 든 게 있었다. 시험지를 훔치더라도 과연 답을 맞게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과서를 보고 답을 맞출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미리 시험지를 풀어 답을 표기해놓고 시험 날에 새 시험지와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들의 계획이 들통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것일까. 지금같으면야 어림도 없는 일이다. 마지막 날의 시험지를 훔치기 위해 교장실의 금고를 열었을 때 영어 교사인 미네 마이코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놀란 그들은 마이코의 시신을 서둘러 금고에 넣어 닫고 급히 그 장소를 떴다. 교장실에서는 정체 불명의 한 사람이 숨어 있었고 그는 창밖으로 뛰어 내렸다.

 

기타와 다쓰미의 자백으로 경찰들은 십오 년 전의 사건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가 마이코를 죽였던 말인가. 마이코를 죽인 이유는? 살인 동기를 알아야 했다. 기타의 자백이 길어질 수록 사건은 새로운 양상을 띤다. 기타와 다쓰미, 다치바나의 십오 년 전과 현재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그토록 친했던 그들도 서로 뿔뿔이 흩어져 연락도 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아마 그 날의 상황을 덮어두려 했던 마음이 강했던 게 아닐까.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은 이처럼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경찰과 사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밝힌다. 누군가는 괴로워하고 누군가는 상처를 헤집는 걸 원치 않았다.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비교적 세심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아울러 기자 출신 작가답게 사건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보인다. 물론 두 편의 작품을 읽어서인지는 모르나, 공소시효 만료라는 주제를 선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누군가는 공소시효 만료때문에 뒤돌아 서서 안도의 미소를 지을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살인범이 잡히지 않아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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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7-07-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4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 역시 공소시효가 주요한 화제군요. 읽고 싶어집니다.

Breeze 2017-07-11 16:54   좋아요 0 | URL
네에.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

chika 2017-07-1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지뿐 아니라 답안지도 같이 훔쳤기 때문에 답을 찾아 쓸 수 있었지요. ^^

Breeze 2017-07-12 18:38   좋아요 0 | URL
교과서 보고 답 찾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ㅋㅋㅋ

chika 2017-07-12 18:42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그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거든요. 근데 152쪽 보면 - 마침 책이 바로 옆에 있어서 바로 찾았어요;;;

˝문제와 해답 용지 둘 다 여분이 있잖아˝라고 다쓰미가 말하거든요. 그래서 해답지까지 있었다는 것을... ^^;;;

Breeze 2017-07-12 19:00   좋아요 1 | URL
아. 저는 해답용지를 OMR카드로 봤거든요. 다시 살펴봐야겠네요.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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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요양병원에 계시는 엄마를 뵙고 왔다. 지난 번에 뵈었을 때보다 살이 내린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텃밭에서 따 간 빨간 자두를 드렸을때 달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고, 잘게 썰어진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또 안도했다. 엄마에게 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무심코 보낸 하루가 엄마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울컥해진다. 만일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를 모시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뒤늦은 후회다. 이렇듯 엄마에게 갈 때마다 나는 엄마와의 이별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나눴던 이야기, 우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 아직은 우리를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 등을 눈에 담는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서도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이런 마음과 비슷한 책을 만났다. 유쾌하면서도 가슴 뭉클해지는 글을 주로 쓰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다. 길지 않는 짧은 소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원래 아빠는 바쁜 법이어서 아들이 어렸을 때 제대로 놀아주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는 아들의 아들, 손자에게 애정을 쏟는다. 아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정성을 쏟는다. 아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숫자 게임이라든가,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며 손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애틋한 이야기, 할아버지의 뇌가 졸아들어 점점 작아지는 기억의 공간을 따스한 이야기로 헤집는다. 자꾸만 기억의 공간이 작아지지만 기억 속에서 애틋했던 이야기는 살아 남는다. 먼저 간 할머니와 처음 만났던 이야기, 손자의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려준다. 물론 할아버지의 또다른 자아다. 할머니의 기억과 손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여기는 내 머릿속이란다, 노아노아.

그런데 하룻밤 새 또 저보다 작아졌구나.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들이 재기발랄 했다면, 이번 중편 소설은 우리의 주변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함이 있다. 우리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몇번이고 거듭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별 생각없이 오늘 하루를 보낸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일. 뇌가 쪼그라 들면서 머릿 속 기억들은 점점 자취를 감춰다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며 말을 하곤 한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를 대하는 아들과 손자의 대화는 다정하다. 꽤 많은 시간을 작별 연습을 하는데 군더더기가 없다. 담담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손자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시간을 훌쩍 넘겨 다 자란 청년의 모습으로 할아버지 곁에서 위로의 말을 할 줄 알게 된다.

 

노아노아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약속해주겠니?

완벽하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되면

나를 떠나서 돌아보지 않겠다고.

네 인생을 살겠다고 말이다.

아직 남아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거든.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을 그리워 할지 모른다. 느리게 이별 연습을 했던 시간. 후회하지 않을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 아마 작가도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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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5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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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작가가 현직 판사일때 쓴 책이 간간이 출간되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한번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했다는 그의 신간 소식에 이번에는 반갑게 읽게 되었다. 일단 단편으로 된 추리소설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웬걸 나는 밤에 책을 읽다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소설의 내용 때문에 갑자기 싸해 지는게 굉장히 이입되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법조인이 쓴 소설이라는 편견을 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거야, 하는 놀라움이 일었던 것 같다.

 

총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표제작인 「악마의 증명」에서부터 도진기 만의 추리소설의 매력을 느꼈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살인을 저지르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죄를 다시 물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형이 증인으로 나오게 해 사건의 내용을 뒤집는다는 이야기였다. 법학 전공자답게 법을 이용해 무죄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물론 우리가 예상한 식의 결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허를 찌르는 반전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반전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정도다. 쌍둥이 중 동생이 강도 살인을 하고, CCTV도 증거로 확보된 마당에 당연히 그가 유죄를 받을 줄 알았지만, 그것을 예상한 검사가 있었으니 바로 호연정이라는 검사였다. 이렇게 영특한 검사가 있으면 우발적 범행이든, 계획적 범행이든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제대로 찾아내어 단죄를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의 증명」에서의 호연정은 「선택」이라는 단편에서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인물로 나와 또다른 재미를 즐거움을 준다.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변호사를 그만 둔 호연정은 하나의 사건을 맡았다. 외과의인 딸이 둘째 아이와 함께 교통사고로 죽은후 첫째 아이를 돌봐야 하는 한 할머니의 사건 의뢰였다. 죽기 전 생명보험에 들었으나 딸의 죽음을 자살로 본 경찰 때문에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딱해 보인 연정은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서를 찾아가게 되고, 다시 사건을 구성해본다. 남편이 죽은후 아이들밖에 없었던 딸이 자살할 리 없다고 한 할머니의 말과 딸이 근무했던 병원 관계자들,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서 직원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선택」의 결말은 감동적이며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결말을 이끌어낸 호연정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왠지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적인 캐릭터라서 일까. 아니면 여성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 호연정 만의 시선이어서 일까. 자살과 타살의 경계에서 좀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연정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선택」을 선택하지 않을까.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만 소설 속 딸과 둘째 아이는 죽었지만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이외에도 약간은 환상적인 어쩌면 괴기스러운 소설도 들어 있었다. 여자 무당과 한 남자의 시신이 있던 곳에 칼을 들고 있었던 살인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 유죄로 인정되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판사에게 편지로 보내 온 진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며 사건의 전말을 적었던 「죽음이 갈라 놓을때」와 법정안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노인 때문에 놓친 사건의 정황을 알게 된다는 「구석의 노인」이란 단편도 즐겁게 보았다.

 

판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것 때문에 보게 된 사건과 사람들의 모습을 추리소설의 형태로 나타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직업때문에 소설의 소재는 아주 다양하게 찾을 수 있으리라. 좀더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소설과 괴기스러운 판타지를 나타내는 소설 때문에 다양한 즐거움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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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죽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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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 속에서 악인을 만난다. 우리 주변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경험한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한 발자국 건너면 이런 일들이 어디선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안다. 얼마전에는 전봇대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음악을 크게 틀어놨다고 의지하고 있던 줄을 잘라 사망하게 한 사람도 있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처럼 어디선가는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존 버든은 『658, 우연히』라는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숫자 게임과 퍼즐 맞추기식의 추리소설로 꽤 강력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 신작을 읽으며 다시 한번 존 버든식 퍼즐 맞추기에 대해 놀라운 경험을 했다. 존 버든의 소설 속 데이브 거니는 마흔아홉 살의 전직 형사다. 어떤 사건으로 세 발의 총격을 받아 경찰을 그만두고 집에서 은둔하고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바라볼때 그의 형사적인 감각은 상당히 날카롭고 예리하다. 심지어 사건을 파헤치느라 자기가 점점 자기 안으로 파고들었던 감각을 잊을 정도로 사건에 집중한다.

 

'착한 양치기 사건'에서도 그렇다. 저널리스트인 코니 클라크의 딸, 킴은 저널리즘 박사과정의 일환으로 살인사건 희생자의 유가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희생자의 가족, 자녀이야기로, 부모가 살해되었는데 사건이 끝내 해결되지 않은 경우, 그 사건이 가족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피해자의 가족을 인터뷰 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코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착한 양치기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메르세데스 벤츠 운전자 6명을 죽인 사건으로 피해자 차량 근처에서는 플라스틱 장난감 6개가 종류별로 한 개씩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방송에 '탐욕이 모든 악의 근원이며 탐욕을 일삼는 인간은 탐욕의 숙주, 즉 숙주를 제거 한다'라는 착한 양치기 선언문을 보내왔다. 데이브 거니는 킴과 함께 피해자 가족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되는데, 이 사건이 어딘가 퍼즐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연쇄살인범의 동기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송을 위해 피해자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킴과 데이브 거니의 집엔 누군가가 그 사건을 막는 듯한 일이 일어난다. 킴의 집에는 칼이 사라지거나, 바닥이 핏방울이 맺힌 것을 보이기도 하고, 데이브 거니의 헛간은 불타버렸다. 누군가 사건을 파헤치는 걸 방해하고 경고를 보내는 것 같은데, 그가 누구인지, 킴의 전 남친인 로버트 미스인지, 착한 양치기 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데이브 거니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된다. 10년 전의 사건 파일을 훑고, 그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건이 발생한 순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모든 사건이 동일한 중요성을 지녔는가, 발생한 여섯 차례의 사건 중 나머지 사건의 필요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없었는가, 등이다. 범죄심리학자가 쓴 살인범에 대한 프로필 또한 믿을 수 없었고, FBI가 사건을 양치기가 원하는 대로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데이브 거니는 살인범인 착한 양치기의 신경증적인 살해 동기를 의심했던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자는 동기가 있기 마련인데, 착한 양치기는 자신의 동기를 교묘하게 감춰두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바라보기를 바랐고, 10년간을 아주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을 킴과 거니가 깨우고 있었다. 사건을 수면에 드러내자 '악마를 깨우자 마'라는 경고를 나타냈던 것이다.

 

데이브 거니가 가장 의문을 가졌던 점은 실제 표적을 죽이기 위해 특정한 차를 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가 였다. 데이브의 아내 매들린이 말하는 <검은 우산을 쓴 남자>라는 영화의 내용은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도움을 준다기 보다는 사건을 바라보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방법을 내보인달까.

 

언젠가 작가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설 속 데이브 거니 또한 형사로서의 직감, 일반 경찰들이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른 생각들을 지녔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사건은 다른 양상을 띤다. 살인범이 교묘하게 감춰둔 살해 동기를 파악하는 것과 살인범이 원하는 방식의 수사가 어떠한 결과를 나타내는지를 말했다.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꿔보는 것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된다는 것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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