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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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자란 동물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라는 말들을 하고는 한다.

내가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남자의 어떤 행동이 여자들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행할때 이런 말들을 하는 걸 많이 들었다.

 

김형경 작가는 소설로 먼저 만난 작가인데, 어느 순간 심리 에세이가 더 눈에 띄고, 작가가 하는 말에 귀기울이게되는 효과를 준다. 작가의 소설들, 작가의 심리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주어서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다. 전의 책 『사람풍경』이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등이 여성으로서 느끼는 심리, 우리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데 반해, 이 책 『남자를 위하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심리를 들여다 볼수 있는 글이었다.

 

『남자를 위하여』는 여자도 남자를 잘 모르고, 남자 역시 남자를 모르는 이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남자분들이 읽어도, '아, 우리가 이랬구나'하고 자신들을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인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남자들에게 이런 심리가 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는 점이 많았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여자의 심리, 여자에게 처한 상황을 말하는 작품이 더 눈에 들어왔는데, 남자를 제대로 알아야 여자도 그에 따른 행동과 대처를 할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여자의 첫사랑은 아버지라고들 하는데, 역시 남자의 첫사랑은 어머니라고 한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아버지에 뺏기게 되어 그로 인한 내면의 상처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엄마와 가장 비슷한 여자를 찾는다고 한다. 나 또한 남자들의 첫사랑은 사춘기 때 만났던 소녀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여자들에게서 이상화된 엄마의 모습을 찾는 남자들은, 어디에도 없는 여자를 원하는 것이다. 한때 남자들의 이상형이 백의의 천사 간호사 였던 것처럼, 자기를 보살펴주고 챙겨줄 여자를 꿈꾸었던 것이다.

 

 

최근에 집에 있는 남자를 보며 조금 느낀 것인데, 역시 작가는 남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창구가 성性임을 밝히고 있었다. 그들은 성교를 함으로써 안정감, 이해받는 느낌, 편안함을 느끼며, 불안하거나 우울함을 느낄 때, 외로울 때, 파트너와 화해하고자 할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에, 여자가 요구하는 친밀한 감정에 대응할 수 없을 때 성교를 한다고 말했다. 이 부분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고, 집에 있는 남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남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거려진다.

 

저자는 책에서 프로파일러 배상훈 교수가 '폭력 사회, 폭력 가정'이라는 주제로 강의할때, 여성단체에서 규정한 데이트 폭력요소를 소개했다고 한다. 열두가지의 위험요소 중 가장 심각해 보이는 여섯 가지를 보자면,

 

7. 여자의 의견, 주장을 못 받아들인다.

8. 교제 상대를 자기 소유물처럼 여긴다.

9. 콘돔 사용을 꺼린다.

10. 여자의 가족을 욕한다.

11. '너 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며 상대를 협박한다.

12.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하면서 화를 낸다.  (149페이지) 이다.

 

여성단체에서는 열두가지 요소 중 세가지 성향 이상이 보이면 데이트를 중단하고 헤어지라고 권유한다고 했다. 또한 프로파일러 배상훈 교수는 위의 요소 중 한가지만 있어도 위험하며, 데이트 폭력은 어김없이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보면 가정불화를 겪는 부부들이 많은 것을 볼수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할수 없이 사는 부부들. 남자의 폭력과 의심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보아왔다. 부부 끼리 만났을때는 잘 모르는 부부도 자세히 들어가보면 그 남자가 커온 환경을 생각해보며, 그런 이유들 때문에 남자가 아내를 의심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남자들의 언어 폭력이나 의심을 하는 등의 일들이 가정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알수 있었다. 어렸을때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이들,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이들은 자신의 내면아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문화에서든 아이의 성장을 돕는 통과의례를 주도하는 어른이 있다. 그들의 보호와 도움 아래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밟는다. 어른이 먼저 사랑, 인내, 용기, 관대함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아이의 미숙함으로 수용해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어른들은 아이를 자기 뜻대로 만들려 하지 말고, 아이가 자기 뜻대로 하려는 시도를 지켜봐주어야 한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어야 한다.  (268페이지)

 

갱년기가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줄 알고 있었더니, 남자도 여자의 폐경기와 똑같은 갱년기 증상을 겪는다고 한다. 호르몬의 분비가 여성에게는 남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고, 남성에게는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더 많이 돼 중년의 남성들이 여성화 되어간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그렇게 밖으로만 돌던 사람이 퇴근만 하면 집에 일찍 들어온다던가, 스포츠만 보던 사람들이 드라마에 열광하고,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남자들도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남자가 잔소리가 많아졌다'라는 것이다. 남성에게 내재되어 있는 여성성 아니마, 여성에게 내재되어 있는 남성성 아니무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처럼 남자의 심리에 대해,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알 수 있는 글이었다. '남자는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늘 달고 살았던 여자들이 읽으면 남자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행동을 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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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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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TV에서 하는 재방송을 보았다. 힐링캠프 '신경숙편'이었다. 신경숙 작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게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외국어로도 번역되어 외국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또 가장 원천적인 단어가 아닐까. 듣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느낌을 갖게 하는 '엄마'라는 소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가슴먹먹하게하는 단어인가 보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읽었고, 그토록 많은 사람을 울리게 하는 감동적인 책이었으므로. 드라마를 보면서 출연진들이 각자 엄마의 이야기를 하는데, TV를 보고 있는 나도 울컥해져 눈물이 나왔다. 그들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되어지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열 달 동안 담고 있다가, 낳아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를 키워내셨던 존재, '엄마'. 그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우리를 먹먹하게 하는 단어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이자 인생의 목표가 되는 목적어를 말하는 책이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 50가지를 말하는 책. 50개의 단어에 대한 책을 읽으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경쓰지 않았던 것, 우리 자신에게 꼭 필요한 단어 들이라는 걸 느꼈다.

 

사실 정철 이라는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의 글을 이웃분의 글에서는 만난적이 있지만 책으로 만나본 건 처음이었다. 이름에서 '송강 정철'을 떠올렸고, 이런 글을 쓰시는 분도 있구나 싶었다. 이번에 이 책 『인생의 목적어』를 읽으면서 저자가 카피라이터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카피라이터로 글을 썼던 저자 박웅현을 떠올렸다. 그분의 책을 두 권 있었고, 책들이 울림을 주었으므로 정철이라는 작가의 글을 만났을때 호감이 먼저 앞섰다. 한 줄의 카피를 위해 많은 것을 생각해야했고, 번뜩이는 재치를 가진 그들이 글도 잘 쓰는 구나 싶은 마음이 컸달까.

 

인생의 목적어로 지목한 단어를 설문조사로 받아 그 단어들에 그의 생각을 불어 넣은 책은 마음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설문조사로 답한 단어중 44위 까지의 단어와 저자가 생각한 여섯 단어를 합한 단어가 총 오십 단어이다. 설문에 응했던 이들이 제일 많이 써낸 단어는 역시 '가족'이었다. 이웃분들의 리뷰를 읽으며, 이 책을 읽으며 내 인생의 목적어는 무얼까 열심히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첫번째 떠오른 단어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저자 정철은 여섯 가지의 챕터로 구분해 첫번째 챕터의 첫번째 단어를 '엄마'로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고, 가장 먼저 말하는 단어가 엄마가 아닐까. 내가 가장 위로 받고 싶을때 듣고 싶은 목소리도 엄마이고, 슬플때나 사랑에 실패했을때 엄마의 품속으로 들어가고 싶은게 엄마라는 단어이다. 딸의 엄마인 아내를 바라보며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건넸다. 누구나 다른 엄마를 보며 내 엄마를 생각하는가 보다.

 

 

당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더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탈옥하십시오.   (47페이지, '자유' 중에서)

 

많은 단어들 중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책'에 관련된 단어도 역시 마음에 들어왔다.

책이라고 하면, 신문에서도 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니까 말이다. 저자는 책이라는 단어 속에서 책은 말을 거는 물건이라고 표현했다. 이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우리는 책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들을 생각하게 되고, 작가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며, 작가의 느낌을 공유하고자 하는게 책이 아닌가 말이다. 또한 책 한 권을 산다는 것은 그 책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을 허락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저자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 셋을 물었다면 사람, 사람,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 우리가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 우리를 있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우리는 사람이 있어 우리가 살아가기도 하는 것. 사람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내가 무심했던 사람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 지금의 시간들이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 중의 첫번째가 아닌가.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를 좀더 깊게 들여다 볼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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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앙상블
시월야 지음 / 청어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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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를 즐겨 읽지만(최근에는 생각보다 많이 읽지는 못한다) 시대물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아니면 잘 읽게 되지 않는데, 이 책은 내가 모르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단 책소개에 있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 그것도 여인의 몸으로 남자에게 혼인을 청한다는 내용에 혹 했음이다.

 

여인의 몸으로 쉽지 않음에도 남자에게 혼인을 청해야 한다는 사실은 여자 주인공에게 어쩔수 없는 사연이 있을테니 말이다. 책 뒷 표지에 보면, '꼭 혼인을 하자는 확답을 받아와야 한다. 알겠느냐? 그 자리에서 옷고름을 푸는 한이 있더라도 꼭 확답을 받아야 이 집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이야'라고 적혀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효진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효진의 처지, 어떠한 사연이 있길래 여자의 몸으로 혼담을 청해야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로맨스 소설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캐릭터는 여자 주인공이 강한 캐릭터다.

남자의 말에 꼼짝을 못하는 청순가련형 보다는 자신의 일을 직접 헤쳐 나갈수 있는 강단이 있고, 명민한 여자주인공이 좋다. 책 속의 여자 주인공 효진이 그런 캐릭터여서 반가웠고, 효진을 만나게 되는 남자 주인공 준수 또한 효진의 그런 면에 호감을 갖는다. 물론 외모가 출중하니 반하는 건 당연지사고. 이에 맞서는 준수 또한 그 이름처럼 준수한 남자다.

 

그들이 사는 시대에서 사는 이들 김준수와 윤효진은 보통 가문의 사람들이 아니다.

양반 출신이되 조양상단을 이끄는 대행수 김준수는 도성에서 이름난 부자다. 그런 그를 사위로 삼아 자신의 출세길에 발판을 삼으려는 양부 윤정한에 의해 김준수와의 혼담을 진행해야 하는게 효진의 과제다.

 

 

둘의 첫 만남, 준수는 효진을 시험하기 위해, 또는 효진의 양부를 다스리기 위해 기루에서 만나자고 청한다. 아직 혼례를 올리지도 않았을뿐더라 처자에게 기루에 나오라는 처사는 옳지 못했지만, 기루에까지 나갈수 밖에 없었던 양부의 처지였다. 로맨스 소설의 공식 답게,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혼담이 오고 갔지만, 당차고 강단있는 성격과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그들은 서로를 많이 좋아한다. 그 둘 사이에는 그 흔한 삼각관계가 없는게 또 마음에 들었다. 둘을 향한 사랑과 둘의 사랑에 걸림돌이 될 사람들을 가볍게 정리하는 준수의 행동이 후련하기까지 하다.

 

사랑에 냉정할 것 같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헤어나오지를 못한다더니 준수가 그 꼴이다.

뭐,, 준수가 효진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흐뭇하기까지 했으니까. 로맨스 소설은 역시 달달해야 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게 진짜 좋은 것 같다. 기분이 우울해지지도 않고 읽으면서 즐거웠던 소설이었다. 시월야 라는 작가 처음이었고, 작품도 첫작품인것 같은데 생각보다 느낌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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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못한 숲 오늘의 젊은 작가 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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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우연히 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드라마 스페셜이던가 했다. 중간 즈음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는 한 젊은 여자와 한 젊은 남자가 나오는 드라마 였고, 그 둘은 우연히 서로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서로는 모르지만 시청자만 알고 있는 사실, 둘은 같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빚때문에, 한 달만 버텨보자며 들어온 고시원. 그곳은 햇볕이 들어오는 창 하나 없었고, 앞날에 대한 희망 한 자락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사치로 보일만큼. 서로의 상대방이 돈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졌을 것이다. 병원의 산소호흡기를 꼽고 있는 엄마, 오랜시간 동안 병원비를 대고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저 여자를 택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 한 마디가 참 가슴 아팠다. 아주 오래전 베스트극장을 보던 그런 감정들이 살아난 내용이었다. 이웃분들의 리뷰에서 간혹 만나곤 하던 연작 드라마 식의 감동적인 내용이 있어 반가움이 일었다.

 

간결하면서도 감정을 건드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읽었던 책 『아무도 보지 못한 숲』처럼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과 상관없는 내용이었지만, 왠지 비슷한 감성을 느꼈던 것이다. 갈 곳 없는 삶, 가로막힌 듯한 삶. 모든 것이 암담한 삶인것 처럼 보여도 한가닥 희망을 안고 있는. 사랑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간직한 그 모습들이 묘하게 비슷한 감성을 느끼게 했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이 이런 느낌이구나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조해진 작가를 처음 만난 작품이 『로기완을 만났다』였다. 속으로 침잠하는, 얇은 책이지만 오래 붙잡고 싶은 책이어서 조해진 작가를 머릿속에 새겨 넣은 작품이기도 했다. 그 작품을 읽고 나는 리뷰 말미에 '좋은 작가를 만났다.' 라고 썼으니까.

 

이렇듯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신작을 써냈고, 출판사에서 '오늘의 젊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책이 나왔으니 더욱 궁금할 수 밖에.

 

미수라는 젊은 여자가 있고, 한 소년이 있고, 미수에게는 윤이 있다. 하지만 이들 셋 모두 함께 하지 못하고 서로의 주변에서만 맴도는 존재들이다. 마음에 품고 있지만, 그 앞에 당당하게 다가설 수 없는 사람들이다. 미수는 윤을 좋아하지만, 윤의 어떠한 진실 하나를 안뒤 모른척하는 그를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다. 소년은 M이라 부르는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주변에서 맴돌고 있으나 그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지 못한다. 미수는 어렸을때 죽은 동생 현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들 셋은 모두 숲 가장자리에 그렇게 떠돌고 있었다. 깊은 숲속, 호수가 숨어있는 그 깊은 숲속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모두 구름 위에서 태어난다고, 구름 위 상자 같은 작은 방 안에서 얼굴을 완성하고 심장을 만들고 손발을 꼼지락거리며 준비를 하다가 때가 되면 세상에 나오는 거라고 할머니는 얘기해 주었다.  (13페이지)

 

간절하게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버그나 몬스터의 배역 따위 없는 곳, 갚아야 할 빚도 없고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하는 기억도 없는 곳, 칼이나 날카로운 유리 조각도 없는 곳, 사람이 상하지 않는 곳, 사라지거나 위장되는 자도 없는 곳, 그런 곳. 숲이라면 좋을 듯 했다. 호수가 있는 숲, M 외에는 그 누구도 가 본 적 없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M만의 숲이라면 남은 인생이 긴 낮잠으로만 소모된다 해도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31페이지)

 

숲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존재다. 커다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 자신의 숲 밖에서 버그의 삶이든, 몬스터의 삶을 살았다해도, 이들이 꿈꾸는 숲속엔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속에서는 서로를 찾는 오누이의 시선과 꿈만 있을 뿐이다. 깊은 숲속엔 그들을 품어줄 따스한 호수가 있고, 호숫가에는 역시 따스함을 품어줄 커다란 거인같은 여자가 앉아 있다. 목마른 그들에게 젖이라도 내줄 그런 따스한 품속에 안길 수 있는 여자가 손짓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할 수 있는 그 숲은 그들을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다.

아무도 몰라야 하며, 보지 못하는 숲이다. 그 숲속에서 오누이는 그들의 삶을 꿈꿀수가 있게 되었다. 그들이 숨어 있는 깊은 숲속에 다른 어떤 것도 들어오지 말아야 할텐데. 조그만 염려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토록 찾아헤맸던 그들이기에, 삶이 힘들때마다 꿈속에서 만나왔던 존재이므로 그들은 그 숲속에서 편안할 수 있다. 그들에겐 안식의 숲이 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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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 프로젝트
그레임 심시언 지음, 송경아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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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을 만나면 굉장히 힘들것 같다.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을 뿐더러 동문서답하고 있을게 뻔해 보이니까. 하지만 나에게 그런 사람이 다가왔을때 어떤 느낌일까. 더구나 속절없이 마음에 들어오면 어떻게 할까. 자꾸만 부딪히면서도 눈길이 향하게 되고 자주 만나고 싶어할까. 사회성은 결여되었지만 밉지 않은 남자,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남자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돈 틸먼이라고 39세이며, 유전학 교수이고 잘생기고 똑똑한 데다 요리 실력까지 뛰어난 남자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결혼할 여자를 찾는다. 그는 아내 프로젝트 일환으로 열여섯 장으로 된 설문지를 돌리며 결혼 상대자를 찾고자 한다. 그가 싫어하는 여자는 약속 시간 늦는 여자와 담배 피우는 여자, 채식주의자 등등 이다. 그런데 그녀 로지는 이 모든 것에 해당되는게 많다.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채식주의자 일 뿐더러 담배도 피우는 여자다. 아내 프로젝트의 대상자에서 뺏지만 왠지 그녀가 싫지 않다.

 

그녀 로지 자먼, 29세이며 바메이드이다. 자신의 아버지인 필이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고자 한다. 엄마가 의대생일때 만난 남자가 생물학적 아버지 일것이라 생각하며 유전학 교수인 돈 틸먼을 찾아온다. 친아버지가 분명 엄마의 의대 동기 중의 한 명 일거라고 생각하고 아버지를 찾기 위한 아버지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어머니와 사진을 찍었던 졸업생 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그들의 DNA를 채취하게 된다. 로지의 가족과 친구처럼 지냈던 의대 교수등을 만나며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일까 궁금하다.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로지의 아버지를 찾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 로지는 그를 달리 보게 된다.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을까.

 

 

『로지 프로젝트』는 그레임 심시언의 장편소설로 꽤 유쾌한 소설이었다. 또한 로맨틱한 소설이었으며 한 남자가 자신의 계획하에 삶을 살아가다가 어쩌면 무계획적으로 살고 있는 듯한 한 여자를 향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는 부분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진짜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보아주고, 사랑하는 일이다. 로지가 돈에게 마음을 열면서도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것이 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돈은 자신의 나름의 감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조금쯤은 변화된 모습으로 다가서게 된다. 나의 어떤 모습이 상대방이 싫어하는 거라면, 나의 말투가 그에게 거슬린다면 말투를 바꾸려고 하고, 상대방이 싫어할 행동을 삼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고, 사랑하는 상대방에 대한 조그만 배려이다.  

 

추운 겨울과 어울리는 소설.

누군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가 점점 좋아진다면 읽어볼 소설. 또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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