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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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시 전집과 그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을 읽을때 이처럼 고뇌하는 여성이 있는가, 끝없이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한 여성 소설가의 소설은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어느 한 사람의 내면은 우리가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알지 못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고 있지 않은 이상 알 수가 없다. 뜻모를 이야기, 뜻모를 행동으로도 알수가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읽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과 자전적 소설의 감흥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소설속 주인공 이사도라의 이야기를 만났다. 이 책이 나왔던 1973년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이 놓았던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라는 소설을 말이다. 이 작품을 내놓고 작가는 욕설을 담은 협박편지와 찬사를 가득 담은 편지들이 동시에 쏟아지는 나날이었다고 했다.

 

소설속에서는 비속어라고 해야 할 낱말들이 난무한다.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말, 아주 어렸을 때는 간혹 들렸던 말이지만, 우리가 금지하고 있는 말을. 책 속에서는 거의 보지 못하는 비속어 말이다. 이런 비속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불편할 소설이다. 그녀, 이사도라의 마음속에 낱말로 무수히 나타내는 낱말이므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읽어내다 보면 그녀의 마음속, 어쩌면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조금은 대변하는 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표현을 하지 않는다 뿐이지 성性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항상 고민하는 문제가 아니던가. 이사도라가 좀더 유별나게 표현한다 뿐이지.

 

사실 이사도라 식의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적나라한 그녀의 표현에 미리부터 질리기도 했지만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이며, 숨겨두고 있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사랑을 얻기 위한 나의 노력이야. (463페이지)

 

학회때문에 빈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사도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행기 안에는 117명의 정신분석 전문의가 탑승하고 있었고, 이사도라는 적어도 여섯 명에게 상담 치료를 받았고 일곱번째 의사와 결혼했다. 늘 정신분석을 받고 있었지만 그녀가 겪는 비행공포증은 해가 갈수록 더 심해졌다. 남편  베넷과 함께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지퍼 터지는 섹스를 경험하고 싶다. 아니 상상한다. 낯선 남자와 눈빛을 교환하고 어디론가 향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여기에서 이사도라는 꼭 낯선 남자여야 했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보지만 어느새 바람빠지는 풍선처럼 그 상상은 사라지고 만다. 그녀와 함께 5년째 살고 있는 남편 베넷은 이제 낯선 남자가 아니다. 때로 침대에서 그녀는 베넷을 낯선 남자라고 상상한다. 누군가 그랬다. 남편은 남자가 아니고 가족이라고. 문득 그말이 떠올랐다.

 

학회가 시작될 무렵, 정신분석에 관한 학회의 기사를 쓰겠다고 기자의 신분으로 그곳엘 갔지만 그녀에게 출입증은 건네지지 않았고, 그녀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상상 속 남자와 부합하는 인물이다. 눈빛 한번 마주치자마자 불꽃이 타오른다. 그 남자, 에이드리언은 말을 건네며 자신의 엉덩이를 꼬집는다. 이 남자는 자신의 환상속 지퍼 터지는 섹스의 대상자였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상상속 인물, 즉 낯선 남자인 에이드리언은 현재의 자신에게 최고의 남자가 될 것 같았다.  

 

 

이사도라는 적개심으로 불타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 명의 단짝 친구 정도는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결혼의 의미를 믿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결혼생활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때 고개드는 그 갈망 때문에 힘들어 할 뿐이었다. 그 불안감과 그 굶주림, 그 모든 것의 울림의 소리를, 욕망을 주체할 수 없을 뿐이었다.

 

침묵이야말로 악기 중에 가장 무딘 악기다. 침묵은 나를 땅으로 박아넣는 망치다. 침묵은 나를 죄책감의 심연으로 끌어내린다. 침묵은 내 머릿속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는 그 어떤 목소리보다 가혹하게 나를 비난하게 만든다.  (201페이지)

 

부분적으로는 그런 이유로 나는 글을 쓴다.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보지 않고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의 글쓰기는 내 머릿속 미지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줄 잠수함이고 우주선이다. 그 모험은 끝이 없고 무궁무진하다. (395페이지)

 

자신의 가족의 치부를 과감하게 드러냈고,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도 했던 에리카 종은 이사도라 윙의 입을 빌어 자신의 속내를 과감하게 쏟아냈다. 그럼에도 그녀가 하는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외로움, 여자로서 살아가는 삶, 사랑이 필요한 사람으로서의 내적 갈등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수치스럽고 은밀한 생각들을 이사도라 윙의 이름으로 말하며 자신의 자아를 찾는 여정이다.

 

에리카 종이 40년 전에 발표했던 소설이지만, 요즘의 세태와 별다를게 없다.

자신의 내밀한 감정들을 과감하게 표현하지 않을뿐, 지금의 많은 여성들도 이사도라 윙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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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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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감정은 이성을 사랑하는 것이 있고,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 있다.

또한 종교적 인물에 대해 사랑하는 감정을 갖는 경우가 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바치겠다고 한 이들이 수녀, 신부들이다. 일반인이 나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과연 인간에 대한 사랑이 찾아오면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늘 갖고 있었다. 예전에 어느 에세이에서 수녀를 사랑한 목사의 이야기가 나와, 사랑은 그처럼 거부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또한 얼마나 그를 사랑했으면 수녀라는 신분을 버리고 결혼을 했겠는가 이런 생각도 했던것 같다.  

 

사랑이 찾아 올때는 모든 삶이 사랑으로 비춰진다.

온 세상의 빛이 나를 향하는 것 같고, 세상은 우리 주변을 향하여 다가오는 것 처럼 느껴지는게 사랑할 때의 감정이다. 죽을때까지 신에게 헌신 하겠다고 한 사람에게 사랑이 찾아 왔을때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어느새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고 말것이다. 한창 젊을 때이므로. 자신에게 찾아온 떨림을 주체할 수 없는 때이므로.

 

공지영 작가의 신작『높고 푸른 사다리』는 한 젊은 수사의 사랑과 방황 그리고 구도에 이르게 되는 그의 성장이야기이다. W시의 수도원, 정요한 신부는 사무엘 아빠스로부터 조카 소희가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소식을 듣는다. 더군다나 자신을 만나러 오겠다는 것이다. 과거 10년전에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졌던 소희를,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소희를 추억한다.

 

수도원의 일과가 시작될 때 들리는 종소리. 종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때, 종소리가 듣기 싫어 수도원을 뛰쳐 나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수사 생활을 할때 요한의 곁에는 미카엘 신부와 안젤로 신부가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힘든 수사 생활도 견딜수 있었다. 요한은 대학을 2년 다니다가 수도원으로 들어왔고, 미카엘은 대학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들어왔고, 안젤로 신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두 살의 나이 차이가 났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이들이었다.  

 

요한은 아빠스님의 비서수사로 일하고 있었고, 아빠스님 미국의 조카가 연구 논문 때문에 수도원으로 오게 되었으니 도움을 주라는 것이었다. 연두색 스웨터에 나풀거리는 하얀색 스커트를 입었던 소희를 보고 떨림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느낀다.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보려하지만 쉽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고통때문에 하느님게 기도를 하지만 하느님은 침묵.침묵.침묵하고 있었다.

그토록 애타게 기도를 해도 침묵을 하던 하느님은 언젠가 자신에게 말을 거셨다. 사랑하라 더욱 사랑하라. 그 목소리에 요한은 대답을 받았다는 생각때문에 소희를 향한 사랑에 더욱 열을 올린다. 늦은 밤 함께 산책을 하고, 그들이 거닐었던 담벼락을 기억하고, 수줍게 손을 잡은 일, 그가 옷을 걸어두었던 목련나무에 대한 애틋함을 가졌다. 그녀가 머문 모든 공간이 그에게는 애틋함이었고 사랑이었다.

 

죽음처럼 강하고 저승처럼 억센 것, 큰물로도 끌 수 없고 강물로도 휩쓸지 못하는, 그런 사랑이 우리 두 사람을 적시는 것 같았다.  (150 페이지)

 

요한은 휴가를 내 집으로 가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한국전쟁이 한창인 때 만삭으로 배불러 있을때 피난을 가기 위해 흥남부두에 할아버지와 함께 서 있었던 때의 이야기, 피난민을 실었던 커다란 외국의 배를 탔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마리뉴튼 수도원의 인수 문제로 미국엘 가게 되고 그곳에서 요한은 마리너스 수사님의 한국전쟁 이야기를 듣는다. 예전에 수송선의 선장이었던 마리너스 수사의 이야기에서 마리너스 수사와 할머니의 이야기의 접점을 이루는 곳, 그것을 보며 인연과 고귀한 사랑에 대한 것을 깨우친다.

 

한 사람을 사랑할때의 고통이 밀려올때는 대체, 왜,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라고 기도를 하고 부르짖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침묵 뿐일때의 그 안타까움. 그 모든 것들은 그를 강하게 이끌기 위해서였는가. 하느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게 하는 소리없는 외침이었는가. 진정한 사랑의 깨달음. 사랑에 대한 고통때문에 힘겨워 할때도 그 또한 사랑을 하라는 침묵의 메시지 였는지 모른다. 

 

공지영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라는 이 한 구절을 떠올리고 소설을 쓰기로 했다고 했다. 젊은 수사에게 찾아온 사랑, 그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지만 더한 사랑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작가는 젊은 수사의 마음을 빌어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이 모든 사랑이 하나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랑도 숭고함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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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9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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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 -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황경신 지음, 김원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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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

평소에는 침대에 들어 책을 펴는 시간. 단 몇 페이지를 읽더라도 꼭 책을 펴야 하는 시간이 나의 밤 열한 시다. 그 시간에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책을 끼고 있다. 졸음이 와 잠깐잠깐 졸려도 붙들고 있는 책. 책을 읽다가 나는 책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내 일인양 꿈 속에서 만나기도 한다. 어떤 때, 먹먹한 책을 만날 때는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한참을 울고, 눈물을 훔치고 다시 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온전한 나 만의 시간을 가질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곁에 누워있는 이는 무슨 일 일어 났느냐며 울고 있는 나를 어이없어 한다. 책을 읽는 시간처럼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이지만, 마치 내 이야기인것처럼 책 속에 푹 빠지게 되는 이야기가 좋다. 그게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이건, 꾸며낸 이야기이건.

 

황경신의 글들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마음 속에 언제나 사랑을 담고 있는 이의 마음이 들여다 보여,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감성에 젖게 한다. 황경신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감성적이 될지 모른다. 그녀의 감성적인 글에 동화되고 말것이므로. 『눈을 감으면」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책 『밤 열한 시』에서도 그랬다. 김원의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엮어진 『밤 열한 시』는 밤의 감성을 느낄수 있게 해주었다.

 

밤에 쓴 연애편지를 보라.

아주아주 감성적이 되어 자신의 감정을 마구 쏟아놓고, 그 다음 날 읽은 글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감성이 풍부한 글이 보인다. 풍부하다 못해 감성이 넘치는 글 말이다. 어떤 이는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읽어보고 찢어 버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그 편지를 그대로 부쳤다. 그 시간, 그 시간을 즐기는 나만의 감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글이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내내 오는 시간이

내게는 내내 오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말해주세요, 사랑,

언제쯤이면 내게 올 것인지.  (「언제와」 중에서)

 

황경신 작가가 시를 쓰는지 몰랐는데, 이처럼 아름다운 시를 썼다.

위의 「언제와」라는 시를 보면,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그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마음들을 담았다. 시를 읽으면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지, 마음을 닫고 있는지, 열고 있는지. 우리가 작가에게 마음을 열듯, 시는 그렇게 우리의 감성을,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의 글이 거의 그랬다.

일기처럼 쓰여진 글,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있는 듯한 시, 밤 시간에 대한 감성, 밤을 지새우고 맞는 아침에 대한 인사, 작가가 만난 사람에 대한 단상들도 잔잔하게 다가왔다.  

 

 

밤 열한 시

하루가 다 지나고

또 다른 하루는 멀리 있는 시간

그리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사랑도 멈추고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시간

 

참 좋은 시간이야

밤 열한 시           (「밤 열한 시」 중에서)

 

혼자만의 오롯한 밤 시간. 사방이 조용해 풀벌레 소리만 들려오는 그 고요한 시간에 진정한 나를 찾는 아주 소중한 시간. 그 시간이 밤 열한 시가 아닐까. 황경신의 시「밤 열한 시」를 읽으며 든 느낌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시 전문을 리뷰에 옮겨 놓고 싶은 글들이 많았다. 짧은 에세이처럼 쓰여진 시에서 밤에 읽는 감성에 깊은 공감을 했다.  

 

황경신 작가의 『밤 열한 시』는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생각이 나서』의 그후 삼 년 동안의 이야기라고 한다. 『생각이 나서』를 읽지 않았지만, 이 책과 비슷한 감성의 책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내가 황경신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황경신 작가를 안지도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작가의 책을 읽노라면, 왠지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자꾸 책 장을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책 속의 글을, 책 속의 그림을 다시 음미해보고 싶은 책이었다. 어쩌면 이 가을의 감성과 딱 맞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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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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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조니 뎁이 주연한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란 영화에서 길버트 그레이프의 엄마가 엄청난 무게의 거구로 나왔다. 아버지의 자살의 충격을 견디지 못해 거구의 몸매를 가진 엄마를 보살피며 가족을 돌보는 길버트 그레이프의 이야기였다. 그 영화에서 엄마는 엄청난 무게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거의 침대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침대에라도 내려올라치면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 내려올수 있었던 영화였다. 그때의 난, 세상에 저런 거구의 몸을 사람도 다 있구나 싶어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침대에서 죽어가는 엄마 때문에 눈물을 흘렸었다. 이 책을 받아 책을 읽으려고 하며, 책의 내용을 훑어보니 문득 그 영화 생각이 났다. 아마 이 책 속의 아서 오프도 길버트 그레이프의 엄마의 무게만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삶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누군가 말하기를 자신이 충분히 이겨나갈 만한 시련이 찾아온다고 했다. 삶이 너무 허무하기 때문에 삶의 고통 또는 시련을 주는 것인지, 때때로 우리 삶에는 시련이 찾아온다. 우리는 그 시련을 견디고 곁에 있는 이들로 인해 그 시련에서 헤어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혼자 왔다가 혼자 스러지는 존재다.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삶을 이어가고, 삶 속에서 기쁨이 가득한 존재들을 만나기도 한다. 25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20년 가까이 집안에서만 은둔했던 아서 오프에게 한줄기 빛처럼 그를 만나러 오겠다는 샬린 터너의 편지를 받았다. 샬린은 과거 아서가 학생들을 가르칠때 자신의 학생이었다. 20년 가까이 지나도록 서로는 편지를 나누었고, 뜸하다가 최근에 다시 편지를 받은 것이었다.

 

집 밖에 나가지 않은지 20년 가까이 되는 은둔자 아서 오프. 거대한 무게를 자랑하는 자신의 몸, 몸무게를 재 보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던 그는 자신의 몸을, 집을 샬린에게 그대로 보일수 없어서 청소업체에 전화해 청소해 줄 사람을 구한다. 아서 오프는 샬린의 편지로 인해 세상과의 소통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해 본지도 꽤 오래되어 사람과의 관계에 수줍어 했던 그지만, 그보다 마흔살 가량 어린 청소부 욜란다를 향해 마음을 열게 되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서 움직이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굉장히 좋았던 아서는 욜란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과도한 자신의 무게때문에 집안에서만 은둔했지만, 샬린으로 인해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뗐던 것이다.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샬린의 부탁으로 샬린의 아들인 켈 켈러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켈 켈러에게 대학 입학을 향한 조언도 건네고 싶어졌고, 켈에게 전화도 여러번 했다. 켈과 통화를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매일 밤 나는 내일은 달라지고 새로워질 거라고, 좀 나아질 거라고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247 페이지)

 

자신과 이름이 같았던, 자신이 네살때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는 켈 켈러.

아버지의 부재 때문에 더욱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켈 켈러는 아픈 엄마를 돌보고 있다. 부자인 친구들과는 다른 가난한 동네 용커스에서 살지만, 늘 술에 취했는 엄마를 버릴수도 없다.

 

자신이 사는 곳을 숨기고, 엄마의 상황을 숨기고, 모든 것을 숨기고 싶었던 켈 켈러는 아픈 엄마 때문에, 늘 취해 있는 엄마 때문에 그 또한 늘 외로웠다.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여자 친구에게 가고 싶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 속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따스함 속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늘 사람들의 도움을 거절할 줄만 알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걸, 따뜻하게 대해주는 걸 저도 모르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켈 켈러 또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신들이 가진 외로움 때문에 샬린 터너와 아서 오프가 이어졌듯, 이제 켈 켈러와 아서 오프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들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가진 모든 무게, 그들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조금쯤 가벼워 질 때도 되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우리는 언제까지나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그건 너무 외로우므로, 그건 너무 슬픈 일이므로.

외롭게 움츠려있는 이들에게 따스한 손을 내밀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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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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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삶을 꿈꾸었다.

지지부진한 삶인 것 같아, 평범한 삶보다는 남보다는 다른 삶을 꿈꾸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삶을 보자면 그저 남들과 같은 삶이었다. 특별하게 누리고 사는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보통의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몇십 년 살다보니 특별한 일이 없는 나의 삶, 남들처럼 살아가는 내 모습이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남들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 가족이 있고, 곁에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의 소중함을 요즘 더 느끼고 있는데, 이처럼 보통의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굉장히 좋다는 걸 느끼고 있는 중이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내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일상의 풍경이 너무 무료할때 우린 여행을 꿈꾼다.

여러 여건 때문에 먼 곳에 가지 못하더라도,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와야 일상을 견딜수 있다.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걷고 있노라면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여행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전에는 가족과의 여행이 무조건적이었다면,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많아졌다. 자꾸 만나자고 하고 여행가자고 하는 그들의 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함께 하던 것이 거의 주말마다 만날 약속을 하게 되었다. 물론 멀리 가는 건 아직 못해봤지만, 우리들 마음속은 외국여행도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친구들이나 가족과 여행을 계획할때, 사람들이 많이 가 보았던 곳, 좋았다고 칭찬하던 곳을 사실 자주 가보고 싶다. 직장 때문에, 금전적인 이유때문에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하지만,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여행,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을 지내놓고 보면,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마치 그림처럼 떠오르는 걸 볼수 있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고 싶은게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을 읽으며 특별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특별한 여행을 하기 위해,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재난이 일어났던 곳의 흔적을 여행하는 일 말이다. 예를들면, 몇해 전 경남 지방에 세차게 몰아쳤던 쓰나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재난이 일어났던 그곳의 흔적들을 보며 우린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재난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 재난 여행 상품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마치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윤고은 작가의『밤의 여행자들』에서 여자 주인공 고요나는 재난 여행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현실 도피의 본능을 깨우치려 함인가. 재난 여행을 하는 회사 정글에서 자신이 퇴출대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건 요나 자신의 상사 김의 성추행이었다. 엘리베이터 CCTV로 촬영되고 있음에도 버젓이 성추행 할수 있다는 것, 김이 퇴출대상만을 노려 성추행 한다는 것 또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회사에서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정글의 재난 여행에 참여하는 요나는 가장 비싸보이고 모험적일 여행을 가게 된다. 물론 김은 머리를 식히고 여행을 다녀오라며, 다녀와서 그 여행이 퇴출대상 여행일지 아닐지에 대한 보고서만 써준다면 출장으로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퇴출대상일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랜만에 여행겸 출장 식으로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자신이 내난 여행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 때문에 정글에서 재난 여행 프로그래머가 되었던 사실도 기억해낸다.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요나가 가기로 한 곳은 베트남을 거쳐 가는 '무이'라는 섬이다. 요나가 가는 무이라는 섬은 작가의 상상속의 섬으로 거대한 싱크홀이 있는 곳이다.  재난이 지나간 자리에 있는 무이섬의 사람들. 왠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지만, 재난 여행지로서는 쓸모가 없어보였다. 그리고 요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여권이 든 지갑을 분실하고 다시 무이 섬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무이섬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고, 요나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넘나든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요나가 겪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그녀가 자주 꾸곤 하는 꿈속의 일인지 헷갈린다. 요나의 잊고 싶은 현실이 그녀의 꿈 속에는 새로운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나가 겪는 일들이 그녀의 꿈속이길 바랬다. 모든 상황이 다 끝나고 나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느낌말이다.

 

밤은 사람들에게 신비함을 준다.

평소에 운전을 잘 하는 사람도 밤에는 운전하기를 꺼려하기도 하고, 혼자서 운전하고 가는 길에 터널이라도 만나면 누군가가 장난을 거는 것처럼 현실속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도 볼수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주변 때문에 섬찟함을 느끼기도 하는게 사실이다. 낮과는 다른 것을 주는 밤의 현실.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낮을 여행하는 것과 밤을 여행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밤은 우리가 볼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만나기도 한다.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밤을 여행하는 사람들만이 볼수 있는 정경을 만난 책이다. 우리가 평소 하지 못했던 여행.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상황.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과 다시 현실속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던, 우리가 지지부진하다고 느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강하게 느꼈다. 지겨운 일상속으로 어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 아, 그럼에도, 때론, 밤의 여행자들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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