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다 1 - 헬로 스트레인저 길에서 만나다 1
쥬드 프라이데이 글.그림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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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거닐기를 좋아한다.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나무들의 향기를 맡으며, 하늘도 쳐다보며 거리를 걷다보면 쌓여있던 스트레스는 다 날아가버리고 만다. 나무들 사이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소리,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햇볕이 반사되는 바닥. 그렇게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속에 있는 상념들도 사라져 버린다. 이렇듯 서울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서울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쓴 글에 사진을 입힌 글도 좋았지만, 거리들의 모든 모습들을 그림으로 그린 경우는 더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물론 한 지역의 골목길을 그림으로 그린 경우는 드물다. 사진과 다르게 그림은 커다란 나무잎 하나하나를 그려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다. 만화라고 하기엔 풍경들의 그림이 너무도 이뻐 수채화쯤 된다고 해야 할까. 한 청년이 있다. 은희수 라는 이름을 가진 이로 아직 데뷔하지 못한 시나리오 작가이다.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릴수도 없어 서울을 방황한다. 우연히 길을 걷다 미키라는 여자를 만난다. 둘은 그렇게 서울의 거리를 걷는다. 미키는 서울의 거리를 사진에 담고, 말주변이 없는 은희수에게 자꾸 말을 시킨다.

 

사람의 얼굴처럼 길에도 표정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감촉을 느끼고 싶은 돌담이 있는가 하면 차가운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골목도 있고 담쟁이넝쿨이 뒤덮여 계절에 따라 극단적으로 표정을 바꾸는 길도 있다.

       어느 동네의 골목을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8페이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났던 사람을 정말 우연이 다른 장소에서 마주쳤을때의 반가움이 있다. 더군다나 몇마디의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평소에는 낯선 사람이 무섭게 생각되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친한 이웃처럼 미소를 건네고, 먹고 있던 약간의 간식도 건네는 모습을 볼수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지만, 같은 길을, 낯모르는 사람과 걸었을때 처음의 어색함과는 다르게 어느새 친해진 걸 볼수 있다. 이 책에서처럼. 

 

 

희수와 미키는 서울의 거리를 걷는다.

남산 N서울타워에서 처음 만나 후암동 골목길과 연대 동문길을 거닐며 그들은 이야기한다. 길에서 만난 사람이 이렇게 편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들에게는 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

영화 일을 그만두게 된 일과 조용하고 말없는 희수에게도 전엔 즐겁게 만나던 사람이 있었으니. 또한 서울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미키에게도 사연은 있었다. 우연히 일본에서 만난 제이라는 남자를 찾아 한국에 오게 되지만, 일부러 찾지 않고, 우연한 만남을 기다리게 된다. 왜 그런 말이 있잖은가.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고. 서울의 거리를 희수와 거닐며 사진을 찍다가, 같이 일해보자는 선배의 말을 듣고 찾아 갔던 곳에서 제이를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젊은 청춘들인 은희수와 호시노 미키가 함께 걷는 길을 그림으로 표현한 책은 참으로 따스했다.

함께 걷고 싶은 길, 따스한 사연이 있는 길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사연이 있고, 자신만의 표정이 있다. 책속에서 말한 사람의 얼굴처럼 길에도 표정이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걸으면 우리의 마음도 삭막해지지만,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걷다보면 우리 마음의 어느 순간이 편안해짐을 느끼는 것처럼, 나무가 있는 길, 멋진 건물들이 있는 길은 저마다의 표정으로 우리의 마음을 압도한다.  그 길을 걷고 싶게 만든다. 따스한 그림들이 있는 책이기에 더더욱 책 속의 길들을 걷고 싶다. 그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도 반가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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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 케이스북 셜록 시리즈
가이 애덤스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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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이 연기한 배우중에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상당히 매력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적이 있다. 처음 사진을 접했을때는 얼굴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계속 바라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는 배우라는 것을 느꼈다. 영국이 BBC 방송국에서 시리즈로 제작된 드라마를 나는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셜록 홈스를 제대로 느끼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갈수록 내가 느꼈던 묘한 매력의 베네딕트 검버배치가 셜록으로써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셜록이 다시 태어나기 까지의 과정이 흥미로웠다. 셜록을 연기할 배우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낙점시켜놓고, 그와 어울릴 왓슨 박사를 찾았다 했다. 최근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두 번째 시리즈 까지 나왔지만,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만약 보았다면 이 책을 이해하고 비교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거라 생각되었다. 책을 처음 읽어볼때는 왓슨 역의 배우 마틴 프리먼이 어쩐지 얼굴이 좀 익숙한 것 같더라니, 책을 다 읽고 셜록에 대해 다시 검색해보니 영화 '호빗'에서 나온 배우였다. 반가울 따름이다.

 

 

책에서는 현대의 셜록이기때문에 원작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예를 들면, 원작에서 사악한 모르몬교도들에 대한 회상 장면이 있었다면, 스티븐 모팻의 각본에는 그 장면을 뺐다 했다. 또한 셜록 홈스를 문제가 있는 탐정으로 그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홈스를 정말로 싫어한다. 홈스 역시 남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28페이지)

 

드라마 속에서 나왔던 장면 그대로, 사건기록부가 펼쳐져 있다.

드라마를 전혀 보지 못했어도, 한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처럼 사건 기록부를 따라가기도 한다. 사건 기록부를 보면 드라마 속의 장면들, 신문 스크랩 사진, 그리고 노란 포스트잇으로 된 메모지가 그대로 펼쳐져 있다. 노란색 메모지에 적힌 글을 보면, 사건을 해결하려는 왓슨과 셜록의 의지가 들어있다. 메모지에 쓰인 글씨는 마치 진짜 메모지인듯, 글씨체 까지도 많은 신경을 썼다. 손글쓰로 된 노트처럼 왓슨의 사건기록부가 있다. 그들이 사용했을 각종 영수증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런던 지하철 영수증과 택시 영수증도 그대로 그려내 마치 사건속으로 들어와 있는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최근에 본 영화 '감시자들'의 제임스의 방에 있었던, 수많은 스크랩 자료와 지도, 겹겹이 붙어 있는 메모장들이 보여, 메모지를 들어낼 수도 있을것처럼 그렇게 사실적으로 편집되었다. 

 

 

 

책 속에서 보면, 코니 프린스라는 여자가 죽었는데, 보톡스 주사액을 늘리는 방법으로 살해했다고 나와 있었다. 보톨리누스 독으로 인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보톡스라는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은 얼굴의 주름이 펴지게 하여, 얼굴이 팽팽하게 보이는 효과를 준다고 알고 있었다. 텔레비젼에 보면 많은 배우들이 어려 보이게 사용하고 있고, 일반인들도 한번 사용해 보면 어떨까 고민해보지만, 표정이 없어진다는 것과 효과가 6개월 정도 밖에 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많은 양을 사용했을때 보톨리누스 독으로 사람이 죽을수도 있다는 걸 알고는 상당히 무섭게 느껴졌다. 이제 보톡스 한번 넣어보면 어떨까 라는 말이 쏙 들어가게 생겼다.

 

 

 

 

독자들과 편집자 들은 셜록 홈스를 원했지만, 셜록 홈스를 만들어낸 작가, 아서 코난 도일 경은 진지한 작품을 쓰고 싶어 했다 한다. 셜록 홈스의 작가로 알려진다는 걸 싫어했던 코난 도일 경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아서 코난 도일 경을 '셜록 홈스의 작가'라고 알고 있지 않는가. 독자들이 의중을 잘 짚어내는 것도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베네딕트가 한 독자 투표에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되었다고 나와 있던데, 그만큼 TV 시리즈가 사랑받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되었을 것이고, 드라마를 이처럼 완벽하게 분석한 책이 나온것 같다. 책 속에서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셜록을 바라보는 이야기도 함께 건넨다. 또한 그동안 셜록 홈스를 연기했던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수록되어, 영국에서 셜록 홈스 시리즈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수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리즈를 완벽하게 분석했고, 또한 시즌 3의 셜록까지 잔뜩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셜록'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다짐까지 할 기세다.

이전에 방영되었던 셜록과, 앞으로 방영될 시즌 3의 셜록까지 꼭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셜록 시리즈가 더욱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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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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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994년은 어땠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신랑을 다시 만났던 해였구나. 나의 1994년을 생각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헤어졌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나던 해였다. 한참 방황을 할 때였나 보다. 이십 대의 나를 기억해보면 거의 방황이었다. 그이를 만나 방황하는 내 삶을 그만 접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이렇게 곰곰 생각하게 하는 1994년.

다들 각자의 해로 기억할 것이다. 나는 신랑을 다시 만나던 해로. 또 누군가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김일성이 죽은 해로, 또 누군가는 온 국민을 아프게 했던 성수대교 참사로 기억할 것이다. 책 속의 열일곱 살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책은 2011년 현재의 그들이 열일곱의 시간들을 기억하는 내용들이다.

 

 

다른 어느 누구도 그들 틈에 끼어들지 못했던 세 사람, 지혜, 준모, 나, 세미 그들의 이야기이다. 지혜는 보는 것, 듣는 것,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아이이다. 그 모든 것들이 세세하게 기억이 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는 아이, 더 이상 그 어떤 새로운 것도 뇌속에 넣고 싶지 않는 이다. 다른 한 친구 준모는 뚜렛 증후군에 음성 틱 장애가 있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욕설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나, 세미는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후 정이 없는 할머니 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아이로, 친한 친구들인 지혜나 준모에게도 자신이 살고 있는, 으리으리한 집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머니 집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세미에게는 두 친구들만 있으면 되었다.

 

 

학생은 꽃이에요. 절벽에 핀 풀꽃. 잊고 잊히며 살아야 해요.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오래 안고 가지 말아요. 무슨 일이더라도.

  

사무쳐도, 아파도, 다 흘려보내요. 내 것이 아닌 듯. 그러면 꺾이지도 밟히지도 않을 거예요.  (88페이지)

 

2011년의 화자는 지혜다. 지혜는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하고, 1994년의 대부분은 세미가 이야기 하고, 한 꼭지 준모도 이야기한다. 같은 시간을 지냈는데도, 생각의 차이, 바라보는 것의 차이는 각자의 기억속에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림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는 지혜의 기억들도 때로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대부분을 이끄는 세미는 자신들의 이야기, 다시는 오지 않을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아직 십대의 그들. 스무살이 되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돌아보면 가장 생각나는 건 그때 십대 시절이다. 십대 시절을 오로지 셋과 지냈던 그들의 이야기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의 추억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그들만의 모든 것들을 '안녕'하고 외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이현 작가의 소설은 담담하게 읽혀진다.

내가 읽었던 소설 중 가족문제를 날카롭고도 담담하게 써내려갔던『너는 모른다』도 그렇고, 연애소설이라는 『사랑의 기초_연인들』또한 그랬다.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그것은 꿈일뿐, 그토록 설레하던 사랑에 감정은 시들해지고, 덤덤해지는 사랑을 이야기했다. 세친구들 세미, 준모, 지혜의 십대를 이야기하는 『안녕, 내 모든 것』도 그랬다. 고모가 고모부에게 맞는 부분을 볼때도 그렇고, 누군가와 하룻밤을 보낼때도 그랬다. 십대의 사랑도 격정적일줄 알았지만, 이상하게 정이현 작가의 소설은 담담하게 읽혀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아침, 우리는 날마다 그 시간들에 안녕하고 있다.

내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는 그 시간들은 지나고보면 기억하고 싶은, 때론 기억하기 싫은 순간들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의 모든 내 시간들에게 나도 '안녕'하고 말 한 마디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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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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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로 처음 김려령 작가를 만났다. 그 전에 아이들 독서 관련 책으로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가 집 책꽂이에 있었지만 읽을 생각을 못했고, 『완득이』로 인해 책을 닳도록 아이들과 나, 신랑까지 온 집안 식구가 몇 번씩 돌려보았다. 중학생인 둘째 아이는 김려령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느냐며 자주 질문할 정도이다. 물론 『완득이』를 영화로 만든 것까지 봤을 정도로 우리집의 스타 작가이다. 작가, 김려령은. 지인으로부터 김려령 작가의 신작, 그것도 청소년 문학이 아닌 일반 문학으로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책을 구입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열심히 클릭질을 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이번에 새롭게 청소년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다가올 『너를 봤어』는 역시 김려령 작가의 필력을 알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에서 동화 작가에만 머물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다른 청소년 문학을 읽었을때도 그녀가 동화 작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도 읽지만, 어른이 더 많이 읽지 않나.

 

 

우선 『너를 봤어』는 연애소설이라고 분류되어 있다.

맞다. 연애소설이다. 하지만 연애소설에서 주로 볼수 있는 달달함은 거의 없었다. 3,40대가 가지는 그들만의 열정과 약간의 건조함이 있는 사랑 얘기랄까. 또는 한 사람에게는 간절한 사랑이야기이기도 했다. 작가 김려령은 이 연애소설에서 폭력을 이야기하고, 또는 죽음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사랑' 으로 다가온 소설가, 여자 서영재. 그 여자를 바라보는 중견 소설가인 한 남자 정수현의 이야기이다. 또한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정수현의 아내의 이야기, 또는 모든 소설가 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것은 다 가졌으면 좋겠는 사람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163페이지)

 직업이 소설가 인 사람들, 책을 읽는 독자들이 보는 소설가들은 연예인 못지 않게 관심의 대상이다. 소설가인 주인공들 답게 그들은 모이면 책이야기를 한다. 모여서 책 이야기를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면서도 온통 책이야기 뿐이다. 소설가들에게 다른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그저 소소한 것들이다. 글이 써지지 않음에 대한 것,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걸려온 전화 때문에 쓰던 원고를 다 버려야 했던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래서 은둔하듯 글을 쓰는 구나 싶었다. 하물며 이 작은 리뷰를 쓰는데도 맥이 끊기면 문맥이 이상하잖나.

 

 

 

 

잘나가는 중견 소설가에다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는 수현에겐, 수현을 콕 찍어 편집 일을 맡기며 수현과 결혼하고 싶어했던 아내가 있었다. 그런 아내를 수현은 집안의 정물처럼 바라보았다. 수현에게는 오랜시간동안 수현의 마음을 어지럽혀 온, 손밑의 가시같은, 엄마가 있다. 수현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소설가 답지 않게, 살인자이기도 하다. 그가 살인자라는게 어쩌면 그가 쓰는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는 수현을 살인자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형에게, 형은 수현에게 했던 폭력 때문이었는지, 수현이 살인자라는 걸 믿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아마도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이었을수도 있다. 소설가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인지도. 

 

 

그런 그가 처음으로 사랑에 눈을 떴다. 내 것이었으면 하는 사람, 서영재를.

서영재는 아직 젊지만 여러번 문학상을 받은 촉망받는 신예 작가이기도 하다. 주로 소설 속에서 누군가를 많이 죽이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런 예쁜 작가를 마음에 품었다. 그가 가는 곳엔 언제나 아내의 환영이 보였다. 사랑하지 않는 아내였지만, 아내를 위해 냅킨을 깔고 물잔을 놓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는 수현이다. 영재를 만나 사랑하면서 수현은 자신의 아내를 조금쯤은 이해를 하고 보내고 있었다.

 

몰라. 그냥 좋아. 처음으로 내 것이었으면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가졌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또 그렇게 나를 가졌으면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기까지 사십육년 걸렸다.  (124페이지)

 『너를 봤어』라는 제목은 소설속에서 수현이 차기작으로 정해놓은 제목이다.

또한 서영재와 윤도하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제목에서의 너는 수현이 바라 보는 영재의 모습이다. 김려령 작가는 서영재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 같았다. 집필 과정이나 원고를 썼다가 버리는 습관도 닮았다 했다. 또한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하는 것들, 작가는 밥을 먹듯이 글을 썼다 했다. 밥을 먹듯 책을 읽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은 것도 같다.

 

저수지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 도하랑 영재랑, 또는 영재랑 수현이랑.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조금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발칙하다. 그들의 시선이 얽히는 곳, 저수지의 물결과 그 끝이 왠지 아련하다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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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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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보이고, 눈을 감으면 들리고, 눈을 감으면 안다. (133페이지)

 

 

그림을 좋아한다. 책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림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한참을 들여다 보곤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희망」이란 그림. 그림을 넣어 둔 거울속에서 만난 그림을 보며 저자는 절망 만이 가득한 그림 속에서 간절한 희망을 빛을 보는 것이다. 희망을 빛을 가리게 하얀 천으로 눈을 가렸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게 말은 신발도 신지 않는 맨발이다. 그곳에서 희망을 엿본 저자의 그림을 보는 방법을 배웠다.

 

 

저자 황경신은 33편의 그림을 이야기한다.

그림을 보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황경신이 이야기하는 상상력 속으로 들어가 그림을 속속들이 바라보게 된다. 대부분의 그림에 관련 된 책들은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돈이 없어 모델을 살수 없는 화가와 모델의 이야기를.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화가에 대한 마음을 열고 그림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황경신은 그림을 달리 보는 방법을 가르켜 준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 「희망」

 

 

그림을 보며 그림속에 깃든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그림속의 이야기는 정말 진실인것만 같다. 아래 그림 「새장을 든 소녀」도 왠지 사랑을 기다리는 한 소녀가 새장 속의 새에게 노래를 가려켜주려는 것만 같다. 이렇게 그림속의 소녀의 이야기는 사실처럼 다가든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다.

 

 

요제프 리플로너이. 「새장을 든 소녀」 

 

 

황경신이 이야기하는 제임스 티소의 「지나가는 폭풍」을 말할때는 폭소를 터트렸다.

자신을 들여다 보는 남자, 그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서도 폭풍이 오기를 바라는 여자의 바램을 말했다. 폭풍이 오면 비가 내릴테고, 비를 피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는 여인, 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저 여인을 보라. 때로는 평범하게 다가드는 사랑이 좋음을 모르는 것 같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랑, 잊을 수 없는 기억 한 자락을 갖기 위한 여자의 모습이다.

 

 

제임스 티소. 「지나가는 폭풍」 

 

 

글의 첫머리에 있는 말처럼,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이 들린다. 언젠가 친구들과 등산을 할 때이다. 시끄럽게 이야기하며 산행을 하고 있을 때는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게 걷고 있을 때의 새의 지저귐은 굉장히 기분을 싱그럽게 만들었다. 산속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 하나의 새가 지저귀면, 다른 새는 다른 지저귐으로 답을 하고 있었다. 조용한 산속이었기에 들리는 새소리, 평소에 듣지 않았던 새소리가 들리는 것은 우리가 눈을 감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가를 하면서 명상의 시간을 가질때, 눈을 감고 명상을 하게 된다.

무념무상의 시간을 갖가고 하는 명상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한참이 걸린다. 눈을 감으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이 난다. 마치 그림처럼 그 광경이 보이는 것이다. 갖가지 생각들을 버리고자 하지만 그 생각들은 날개가 되어 춤을 춘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 애써 지우고자 했던 것들도 생각나, 때로는 지우고자 고개을 흔들기도 한다.

 

 

로렌스 알마-태디마. 「실버 페이버리츠」

 

 

 여태 그림에 관련된 책을 읽어왔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과 화가의 이야기가 있는 글들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그림을 보는 일은 즐겁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심미안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 속의 그림과 작가가 그림을 보고난 뒤, 눈을 감고 생각난 것들을 그린 이야기들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지어낼 수도 있을것 같다. 그림을 본 뒤,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우리만의 감성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황경신이 눈을 감고 이야기하는 이별, 슬픔, 성장,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열고 읽고 본다. 그림을, 그림속의 이야기들을. 그림속의 이야기들을 우리만의 이야기로 만든다. 눈을 감으면, 이제 그림이 보인다. 그림속의 이야기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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