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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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속으로 들여다 보거나 강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그 물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갖고는 했다. 어르신 들이 하는 말씀이 있었다. 물을 그렇게 들여다 보지 말라고. 물속에 있는 귀신이 사람을 유혹해 잡아간다고. 지금이야 우스개 소리지만, 그때는 그 말이 무서웠다. 정말이지 물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물이 우리의 혼을 빼앗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 말은 곧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요정 '세이렌'을 지칭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싶다. 물이란 우리를 사유하게 만들기도 하고 재앙을 주는 두려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베니스라 불리는 후쿠오카의 물의 도시 야나가와를 모티프로 상상의 도시 '야나쿠라' 를 만들어 물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수로가 도시 전체를 가로 지르는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이 연속적으로 실종된다. 실종된 기간 동안의 기억을 잃은 채로 돌아오는 그들.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지만 사라진 그들의 집이 공통적으로 수로가 면해있다. 교이치로는 그의 제자 다몬을 부른다. 대학시절 다몬을 좋아했던 교이치로의 딸 아이코도 야나쿠라 역에 도착하고, 연쇄 실종사건을 조사하던 신문기자 다카야스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실종되었다 돌아온 이들을 인터뷰한 다카야스는 녹음 테이프를 들려준다. 음반 작업을 하는 특성상 다몬은 소리에 민감하다. 녹음 테이프를 듣던 중 인터뷰 도중에 들리는 미세한 소리를 듣는다. 왠지 그리움을 닮은 듯한 소리. 그 소리는 그리운 과거의 어떤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 설명 안 해도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군요. (71페이지 중에서)

 

사건을 조사하던중 도서관에서 다몬과 아이코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습한 장마철, 비가 끊이지 않는 그곳 야나쿠라는 물을 떼놓고는 생각할수가 없다. 5 센티미터 가량의 물의 흐름이 어떤 일을 벌이고 갔는지. 그곳에 있던 사람들 조차 충격에 빠지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오고 만다. 다만 도서관에 있던 개 한 마리만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다. 야나쿠라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어떤 일이 닥쳐올 것인가.

 

기억을 '도둑맞은' 그들.

도둑맞은 건 그들의 기억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모든 것이 도둑 맞았다. 우리가 보는 그들의 참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의식이 불러온 무의식의 세계는 어린 날의 그리움이다. 두렵기만 했던 것도 어느새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멀리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발하는 달의 모습을 우리가 제대로 알수 없는 것처럼. 달의 이면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지, 추악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우리 인간의 모습도 그러한 것 같다. 그처럼 순수해 보이는 사람의 이면에 감추고 있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확신을 못한다.

 

처음엔 지지부진한듯 산만하게 느껴졌던 글이 어느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깊이 빠지게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에. 수로로 연결된 물이 우리를 덮쳐올 것 같아 두려움에 떨어 읽게 되었다. 한여름에 찾아오는 장마. 햇볕은 구경할 수 없고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릴 즈음, 창문 열어 놓고 자는게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는 밤, 잠이 들려 할때 내 맨발의 시원함이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소리와 함께 스르륵 거리며 뭔가 다가올수도 있으므로. 우리가 자고 있는 사이에 내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르므로. 몇 일간의 기억이 사라질수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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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집 - 갖고 싶은 나만의 공간, 책으로 꾸미는 집
데이미언 톰슨 지음, 정주연 옮김 / 오브제(다산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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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부터 바닥까지 책이 쌓여있는 곳. 방의 사면을 책으로 가득 채워놓은 곳. 그 공간의 유리창으로 비추는 햇볕을 받으며 푹신한 쇼파에 앉아 책을 읽는 나. 그곳에서의 생활을 꿈꿨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좋은 책을 보면 갖고 싶은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공통점이리라. 집을 약간 넓혀 이사하면서 아예 책방을 하나 만들어야지 했다. 잡동사니들을 채워놓을 공간들이 필요해 책방으로 쓰려 했던 곳을 결국에는 사면을 다 책으로 채워넣지 못했다. 거실의 부엌벽의 한쪽 면을 아예 책장으로 채웠다. 그 책장도 모자라 거실의 넓은 탁자에 몇 권의 책, 거실 한쪽 귀퉁이의 낮은 탁자에 또 책이 여러 권, 침대 옆 테이블에 역시 책 몇 권. 우리집엔 책 외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았다.

 

 

책으로 집안을 꾸미는 이야기를 담았다.

디자이너, 건축가, 화가, 사업가 등 여러 책 수집가들의 개인 서재의 집안 곳곳의 풍경을 담은 책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계단 밑의 작은 공간이라든지 문 옆과 문 위 공간까지 책장을 짜 만들어 책을 수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변호사 서재 라고 불리는 판례집 등이 먼지가 쌓이지 않게 유리창이 달린 책장. 침대 머리맡에도 몇 칸의 책장을 짜 넣어 책을 수납하는 모습들은 좋아하는 책을 꽂아 두는 곳의 인테리어 효과를 주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쌓아두고 있는 책들은 색깔 별로 혹은 크기별로 진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책좀 읽는 다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습성, 읽지 않은 책이 쌓여있는데도 읽고 싶은 책이 보이면 책부터 구입하고 보는 그런 습성 말이다.

 

 

내 아이들의 집안 장식은 필요한 만큼의 책꽂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작가 애나 퀸들런) 의 이말에 나도 공감 백배 하고 있다. 책은 장식의 효과도 크고 과시용으로 사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책을 진열하려는 애서가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하나의 요소가 있으니, 바로 "책을 빌려가는 사람들, 즉 전집의 이를 빼놓고, 책꽂이의 균형을 파괴하며, 짝 잃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피터 드러커)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그대로 아는지. 또한 비평가 애너톨 브로야드의 말을 예로 들고 있었다.  "나는 책을 빌려줄 때, 결혼하지 않고 남자와 동거하는 딸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된다."  (86페이지 중에서) 애너톨 브로야드의 이 말에 무릎을 치는 애서가 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가 책을 빌려 달라고 할때가 제일 곤혹스럽다. 빌려 준 책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자꾸 책장의 빈 곳을 초조하게 들여다 보는 나를 발견하고 있으니  할 말 다 했다.

 

 

 

 

거실, 서재와 작업실, 부엌과 식당, 침실과 욕실, 계단과 복도, 어린이방에 이르기 까지 책은 우리 들의 곁에서 늘 함께하고 있다. 페인트가 벗겨져 나뭇결이 얼룩져 보이는 오래된 의자나, 책상. 오래된 책의 벗겨진 책등 들도 정겹게만 보였다. 책 제목이 보이게 책들을 탑처럼 쌓아 만든 선반은 어떻게 보면 불안하게 보이기도 한다. 책 한 권을 빼면 책더미가 무너지고 말 것 같다. 책만 쌓아둘 줄 알았지 인형이라든가 무얼 꾸밀 줄을 모르는 나는 부러운 풍경이기도 하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한 쪽의 계단참을 차지한 책들이다. 좁은 아파트를 이용해 계단참의 한쪽에 책을 쌓아두고 있다.  꽤 많아 보이는 책들의 무게로 인해 책들이 무너지지는 않을지, 계단을 오를때 나무로 만든 계단이 망가지지는 않을지 조금 불안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내가 책을 사랑하듯이 아이들도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책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이 없는 집은 창이 없는 방과 같다. 책을 살 돈이 있는데도 아이들 주변에 책을 두지 않고 아이들을 키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라고 했던 호레이스 만의 말처럼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책 속에서 많은 걸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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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든 당신
김하인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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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50이 넘으신 여자 분이 계신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말도 어눌하고, 걷는것조차 불안해 보일 정도다. 그 분 곁에는 도우미 한 분이 계셨다. 휠체어에 밀고 시장도 보러 다니고 곁에서 많은 것을 챙겨주시는 듯한 분이었다. 그분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신 줄 알았다.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시나보다 그랬다. 그런데 아는 분 한 분이 그러셨다. 원래 학교 선생님이셨다고. 교통사고를 당해 그렇게 된거라고. 교통사고가 나면 나는 다리 쪽만 불편하려니 했다. 하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그 여자분처럼 그렇게 될수도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났다고 하는데 여자분의 남편이 참 대단하시다는 말씀을 하셨다. 직장생활하면서 십 년 넘게 아내를 챙기신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종종 길거리에서 아내 분을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이나 시장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이 한결 같기가 힘든 법인데 그 남편 분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이 책을 읽는데 이상하게 그 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책의 주인공인 훤칠한 석민과 약간 까무잡잡한 그 남편 분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난 솔직히 친정 엄마가 병원에 누워 계셔도 드시고 싶은 음식이나 돈은 좀 내드렸지만 수발을 잘 하지 못했다. 허리가 좋지 않아 간병을 이틀쯤 하고 오면 한의원을 몇일 다녀야 할 정도로 요통을 고질병처럼 안고 있다. 그래서 시부모님도 제발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병간호 하는게 자신이 없어서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과연 내가 이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잠시 하는건 쉽지만 일 년이 넘게 병간호 할수 있을까? 의식도 없는 뇌사상태에 가까운 사람을. 이처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석민이 참 대단했다. 더군다나 아내 선영의 뱃속에 아이까지 있었다. 이런 상황이 난감했다. 뇌사 상태에 빠져도 환자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다 들을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의학적으로 그처럼 누워있는 상태에서 아이가 자랄수 있다는 것이 믿을수 없었다. 아이가 무사히 자라고 있는 모습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선영이 입원해 있는 동안 직장도 휴직을 하고 지극 정성을 다해 아내를 돌보는 석민의 모습은 우리를 참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동네의 그 아저씨처럼.

 

 

김하인 작가의 이름을 유명하게 했던 작품『국화꽃 향기』를 기억한다.

그 작품을 영화화 한 <국화꽃 향기>라는 영화에서의 배우 장진영이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에서처럼 암에 걸려 유명을 달리했던 배우. 너무 젋은 나이에 가서 많이도 우리를 안타까워했던 배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작품은 해피 앤딩을 다루었으나 『국화꽃 향기』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같은 작가의 죽음을 다룬 비슷한 작품이라 그럴 것이다. 서정 소설이되 좀 밝은 내용의 소설이었으면 하고 바랬나보다.

 

 

선영과의 결혼을 허락 받으러 선영의 집에 갔을때 석민을 향한 선영 아버지의 당부 말씀을 기억하고 싶다.

 

나는 자네가 부자가 되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숨차게 흘려보내는 것을 바라지 않네.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그 하루가 삶의 마지막인 듯 애틋하고 살갑게 내 딸을 보듬어주면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네. (66 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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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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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지러워 도무지 책이 읽혀지지 않았다.

읽고 싶었던 소설책 몇 권을 뒤적거렸다. 이상하게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서너 권의 책을 겨우 몇 장씩 읽다가 덮어버렸다. 책장 앞을 서성거렸다. 소설 책에 집중하지 못할때는 여행서나 그림에 관한 책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걸 생각해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글에 대한 리뷰를 보자마자 읽고 싶어 구입했던 책. 그림과 문학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잖나. '문학 작품으로 본 옛그림 감상법'이란 소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마음이 풍랑이 이는 듯 춤을 추더니 어느 새 고요해진다. 저자가 소개해주는 옛그림과 시를 읽으며 어느새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림은 그런 존재인것 같다. 얼어붙었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게 내겐 그림이다.

 

옛그림 속에 숨어든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글이다.

옛그림에 담긴 문학작품을 설명하며 그 시대의 우리의 문화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문학작품(시)가 애호되던 그 시절의 상황과 중국의 작품을 좋아했던 우리 선조들의 문화적 코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과 문학을 사랑했던 우리 선조들의 여유로움도 엿볼수 있었다. 저자도 책머리에서 밝혔지만 우리나라의 뛰어난 문인인 최치원이나 대문학자인 이율곡의 작품도 더러 있지만 중국 당나라나 송나라의 명시들이 대부분이고 오랜 중국의 사상서나 역사서도 포함을 시켰다고 말했다. 중국의 훌륭한 작품들을 외우고, 그런 문학작품을 그림으로 표현해 문학과 그림이 어우러져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주고 그림을 감상하게 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의 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소식. 조선의 문인들은 좋아했던 동파 선생의 모습과 그가 유배지의 뱃놀이를 읊은 '적벽부'와 안견이 그린 「적벽부도」를 감상했다. 여름 지나는 강물에 배를 띄우고 소식이 흥을 내어 노래하기 시작하는데 배 안의 손님 한 명이 구슬픈 가락의 피리를 분다. 삶의 덧없음을 지적하고 죽은 영웅(조조)의 시를 읊는다. 소식과 손님은 삶은 한때 위대했던 영웅과 그의 참패 장면과 영웅의 죽음을 떠올리고 인생의 유한함을 절감한다. 손님에게 술을 권하며 마음을 달래주는 소식의 초월적 철학과 우정을 볼수 있는 글이다. 조선 문인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받았던 소식은 정작 우리의 선조들을 변방의 오랑캐라 부르면서 고려에 책을 하사하거나 팔지 못하도록 진정을 고하고 우리 사신들이 강남으로 들어가는 것도 차단시켰다 한다. 중국의 귀한 책이 고려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하니 이것 참 아이러니다. 소식을 향한 우리 선조들의 외사랑이 보이지 않는가.

 

벼슬을 그만 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순간의 기쁨과 전원생활의 평화를 노래하고 있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설명한다. 유배의 명을 받고 전원으로 쫓겨 왔던 한 어의 요청을 받고 조선 후기의 중인화가인 전기가 그린 「귀거래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초라한 집이지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와 높은 기상의 소나무가 나룻배를 타고 도착하려는 도연명을 반기는 듯한 그림. 그림 속에서 우리는 전원 생활을 향한 기대감과 설렘을 볼 수 있는 듯하다. 우리 또한 힘겨운 생활을 정리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꿈을 늘 꾸곤 한다. 우리의 마음과 닮았다.

 

전기, 「귀거래도」, 종이에 수묵담채

 

소나무 아래 소년 신선이 앉아 생황을 부는 장면인 김홍도의 많은 걸작들 중의 대표작인 「송하취생도」이다. 당나라 시인인 나업의 「제생」이란 글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제생」에서 나업은 생황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중국 주나라의 태자로 태어났으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산수山水에만 뜻이 있었던 그는 나이 열다섯 살에 도사를 만나 생황을 배웠다. 그 다음 해 왕자진은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는데 왕자진은 생황을 연주하며 눈같이 흰 학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김홍도가 「송하취생도」로 나타냈다. 힘찬 기백이 보이는 소나무의 그림과 금방이라도 생황을 불며 일어서 그림속에서 빠져 나올것 같은 소년의 모습이 생동적이다. 생황가락의 신비로움과 맑음을 볼 수 있는 글과 그에 대한 그림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생황가락이 들려온다.

 

김홍도, 「송하취생도」, 종이에 수묵담채

 

우리나라의 옛그림은 문학적 흥취가 있다.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서양화도 물론 좋아하지만 은은함 속에 숨겨진 열정이 엿보이는 듯한 옛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오를때는 그 화를 누그러뜨려주기도 하고 슬플때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게 우리의 그림인 것 같다. 그림 속에서 문학 작품을 볼 수 있었고 문학 작품을 이해하며 옛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문학에 취하고 그림에 흠뻑 빠질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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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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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있을 총선에 대비해 지금은 어디를 가도 선거 벽보가 보이고 선거 유세 방송을 많이 볼수 있다. 각 정당을 나타내는 색깔의 옷을 입고 소중한 한 표에 대해서 다시한번 고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토록 싫어했던 정치에 대해서도 여러 책과 인물 들로 인해 어느 정도 마음을 열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선거에 대해서도 호의적이고 후보들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만약에 여당의 한 젊은 국회의원과 거의 빨갱이 수준에 가까운 골수 야당 대표가 만나 사랑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둘이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에 이 내용들을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전 판사 출신에, 현직 여당인 새한국당 국회의원에, 검도장 바지 사장을 하고 있는 또라이 기질이 있는 김수영. 단 두 명 있는 진보노동당 대표 오소영이 만나는 장면들. 운명처럼 엮인 건지 우연이 겹친건지 좋지 않는 일로 만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되어 버린다. 거부할 수 없는 사과나무. 불꽃처럼 타오르듯 꽃피는 사과나무, 그 사과나무에 어느새 꽃이 피고 탐스러운 사과가 열릴 듯하다.

 

 

김수영과 오소영이 만나게 되는 설정이 끊임없이 해석된다.

정각이 되면 땡땡땡 울리는 괘종시계와 손목시계를 비롯해 그외 문학 작품들을 설명하며 둘의 만남에 대해 잭슨 폴록의 추상화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시턴 동물기』나『삼국지』, 겨우 몇일만에 사랑에 빠지고 죽음을 맞이한 『로미오와 줄리엣』등의 여러 작품을 파고 또 파고들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컸다.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던, 서로 다른 당의 대표들이 사랑에 빠져 버렸다. 얼마전에는 빨간 소화기를 든 오소영이 김수영의 머리통을 갈겨버린 사건으로 인해 온 대한민국 국민이 야유를 퍼부어대고 있었다. 국회의원 사임하려던 김수영은 그만두지도 못해버렸다. 그들의 뜨거운 마음을 나눌 곳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둘이서만 있을 곳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웃기다.

 

 

사랑에 빠져있을때, 누군가를 사랑하면 왜 그렇게 입이 근질거리는지.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스스로의 일을 가까운이에게 말하고 싶어 어쩔줄을 모른다. 이들처럼 서로 견제해야 하고 적대적인 정치 정당을 사이에 두고,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너무 힘들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자문을 구하고 싶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그 답답한 심정을 말하는 그들이 재미있었다.

 

 

바람은 모습이 없다.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로써 바람의 모습을 본다. 시간은 모습이 없다. 대신 시간에 흘러가는 것들로써 시간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마음이 죽어 있는 자에게는 바람도,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도 없다. 시간도, 시간에 흘러가는 것들도 없다. 그 모두를 보거나 듣게 만드는 것은 결국 마음이기 때문이다. (143페이지 중에서)

 

 

새로운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역시 즐거운 일이다.

환한 연두색 바탕에 빨간 사과가 앞면, 주황색 바탕에 덜익은 초록색 사과가 있는 표지가 뒷면.

표지와 제목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나에게 이 책은 제목과 책표지가 둘다 마음에 든 경우였다. 우리에게 확실한 열매를 맺게 해주는 듯한 표지와 색감이 예술이다.

이응준이라는 작가, 처음 접하는데 시니컬하면서도 우리의 허를 찌르는 위트가 있다.

발칙한 상상이 돋보이는 작품. 정치와 로맨틱 코미디가 만나도 이렇게 재미있을수가 있구나. 국회의원들도 사람이란 말이지. 사랑 앞에 별수 있나. 그이가 내 인생의 사과나무 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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