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세설 상.하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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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와 여행을 자주 다닌다. 한 자매가 멀리 있을 때는 자주 보지 못했다. 내가 사는 곳으로 직장을 구해 이사 오면서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열심히 친해지는 중이다. 사람은 타인이든 가족이든 자주 만날수록 가까워지는 거 같다. 함께 밥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고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자매들이 나오는 소설을 읽게 되면 어쩐지 내 자매들과 비교해보게 된다. 이번에 읽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이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성적인 시각과 여성의 문화를 표현한 작품으로 오사카의 마키오카 집안의 네 자매 이야기다. 네 자매 중에서 셋째 딸인 유키코의 혼담을 주제로 하여 오사카 지방의 다양한 문화를 나타낸다. 자매들의 결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비교되기도 한데 자매간의 관계가 더 주를 이룬 게 특색이다.


 


 

 

소설 속에서 몇 번 언급하는데, 편지나 전화에서 받았던 자매간의 갈등도 마주보면 그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의견이 달라 다투지만, 결국엔 미워할 수 없는 자매들의 특성을 나타냈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일본식 미인으로 비치는 유키코의 결혼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남자들은 왜 유키코의 매력을 보지 못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니 우울하게 비치는 것도 있었다. 유키코와 혼담이 오갔던 남자들은 정숙하고 조용한 여성을 바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들을 더 선호하는 거 같았다. 미용실을 하는 이타니 씨가 화려한 외모를 가진 언니 사치코나 다에코가 함께 나오는 걸 주저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키코가 빛나야 할 자리에 다른 사람이 눈에 띄는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신부보다 화려한 옷을 입지 않은 것과 비슷했다. 가장 빛이 나야 할 사람을 가리게 되므로 그렇다.


 

유키코와 다에코, 사치코의 맏언니인 쓰루코를 내심 미워했다. 비록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였다지만 유키코와 다에코를 돌봐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쓰루코와 남편 다쓰오는 사치코의 집에 머무는 것을 은근히 바라는 듯했다. 물론 쓰루코의 자식들은 여섯 명이나 되어 경제적으로 빠듯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소설의 전개상 계산적인 면을 내보이는 데서 나타난 이유 때문이었다.


 

반대로 사치코와 데이노스케의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좋았다. 자매들에게 헌신적인 사치코를 이해했고 아끼는 모습에서다. 원래는 유키코나 다에코는 큰집에 있어야 마땅하지만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도쿄나 우에혼마치의 집을 불편하게 여겼고, 무엇보다 유키코는 사치코와 데이노스케 부부의 딸 에쓰코를 자기의 친딸처럼 아꼈다. 유키코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를 바랐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처럼 다아시 씨 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바랐다. 우리의 희망에 불과했다.

 


유키코와 대조적인 인물로 넷째 딸인 다에코를 들 수 있겠다. 인형 만드는 손재주가 있어 그 시대에는 드문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나온다. 자유분방한 여성으로 비치는데 일찍이 오쿠바타케와 가출한 전력도 있었다. 오쿠바타케나 그의 점원이었다가 사진사가 된 이타쿠라와 염문을 뿌리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자매들은 유키코의 혼담이 깨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다에코의 행실을 든다. 아무래도 이 시대는 혼담이 오가는 사람의 가족들 면면을 상세히 알아보고 결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여성인 다에코를 응원했다. 유키코와 다르게 자신의 마음을 똑 부러지게 표현할 줄 알고 양재 기술과 인형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충분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여성이 되길 바랐던 거 같다.


 



 

 

통속소설은 그 시대를 거울처럼 비춘다. 전쟁 중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임에도 다양한 문화를 즐길 줄 알았던 것들에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화려함을 엿보았다. 자매들과 함께 벚꽃놀이를 즐기고 여행을 즐기는 모습에서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의 문화를 볼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우리의 삶과 비교해보게 된다. 지금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 행복을 이루는 요소 중에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기도 하다.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한 달쯤 뒷면 벚꽃이 피는 계절이다. 매화가 필 무렵이나 벚꽃 필 무렵에 자매들과 다시 꽃놀이를 가야겠다. 거창한 게 필요하겠나. 그저 마키오카 가 자매들처럼 다음 해에는 함께 여행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떠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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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2-21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 자매여행 부럽습니다. 형제보다 자매의 연이 더 끈끈한가 싶기도 하고 같이 나이 들어가며 비슷한 연대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여동생과의 여행이 편하더군요.
앞으론 좀 자주 하면 좋겠다 싶어요.
세설 리뷰 잘 읽었습니다 ^^

Breeze 2022-03-10 16:31   좋아요 1 | URL
여동생과는 더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댓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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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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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소설처럼 우리 삶의 모든 것과 관통하는 것은 없다. 사실적이며 풍자적이다. 소설 속 인물 묘사에 감탄하며 우리 삶과 비교해보게 된다. 주인공이 가리키는 삶의 한 형태에서 서머싯 몸이 가진 삶의 통찰을 엿본다.

 


이전에 읽었던 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읽은 책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나타낸 글이다. 소설 속 인물로 회자된 토마스 하디나 작가의 친구인 휴 월폴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아마 사실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가늠해본다.


 


 

 

작가 어셴든은 동료 작가 앨로이 키어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게 되었다며 소년 시절 알고 지냈던 어셴든으로부터 과거의 드리필드의 이야기를 적어 달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어셴든은 과거 에드워드 드리필드와 그의 첫 번째 부인 로지를 떠올린다. 술집 여급 출신이었지만 천진한 매력을 가졌던 로지, 드리필드와 함께 했던 시절을 회상한다.


 

케이크와 맥주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다. 케이크와 맥주는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로지를 쾌락과 유희에 빠진 인물로, 드리필드를 성공에 눈이 먼 작가로 그린다.


 

어떤 사람의 전기를 쓴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이룬 업적 위주로 쓴 글로 포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드리필드의 전기를 쓸 때 앨로이와 드리필드 부인은 드리필드의 첫 번째 부인 로지의 이야기를 깎아내리고 축약하여 나타내고 싶다. 드리필드의 유명한 작품은 모두 로지와 함께 살 때 썼던 글이다. 로지가 나이든 남자 조지 경과 달아났을 때 그 원인 한가지로 트래퍼드 부인을 꼽을 수 있다.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트래퍼드 부인이 소개한 사람만 만날 수 있게 했으며, 모든 역할을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성공을 거머쥘 수 있었으나 잃었던 것이 더 많음을 나타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흔히 위대한 작가라고 말할 때, 100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작가를 가리키는 말과 같다. 현시대에는 위대한 작가라는 칭호를 받지 못했지만, 후대에 지칭할 수 있는 작가라고 해도 좋겠다. 하지만 서머싯 몸이 주장하는 위대한 작가란 누군가에 의해 추켜세워지는 작가가 아니다. 화자 어셴든이 드리필드의 작품을 재미있는 작품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을 보면 된다.

 


책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작가란 어떤 존재인지 작품 속 인물을 창조하는 것에 대하여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자신과 동일시되는 작중 인물이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형태의 인물로 묘사되고, 신적인 존재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작가가 추구하는 인물일 것이며 여러 사람에게서 따와 하나의 인물을 창조했음을 밝히기도 한다.


 

작가의 삶이란 가시밭길이다. 우선 가난과 세상의 냉대를 견뎌야 한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나서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대중에 휘둘린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인터뷰를 하려는 신문 기자들,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 원고를 달라는 편집자들, 소득세를 긁어가는 세금 징수원들, 오찬을 같이 하자는 귀한 몸들, 강연을 부탁하는 협회 국장들,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들, (중략)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든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294~295페이지)

 


서머싯 몸의 명쾌한 논리가 파악되지 않는가. 작가의 역할, 작가를 이루는 요소들, 그 모든 것들에서도 무엇이든 글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작가의 냉소를 드러내는 문장이다.

 


인간의 굴레에서의 못다 한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이런 까닭에 전작이라도 해도 좋을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서머싯 몸의 책은 인간의 굴레에서. 인간사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데, 아이가 죽은 날에도 천진난만하게 다른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고 온 로지와 비슷한 삶을 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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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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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무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유리의 입장에 서서 소설을 읽게 되었다. 유리가 가진 가족이, 그것을 이루는 관계가 너무 아팠다. 가족이라는 것은 꼭 피와 연결되지 않아도 끈끈해진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느꼈다.

 


입양하는 부모의 역할과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어느 한순간에 의지해 입양하는 건 옳지 않다.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게 입양이 아닐까 한다.


 


 

 

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 유리. 2년을 어서 채워 대학 합격을 빌미로 훌훌 집을 떠날 계획만 세우고 있다. 자신을 입양한 엄마 서정희 씨의 죽음으로 서정희 씨의 아들 연우가 왔다. 함께 살고 있던 할아버지는 일말의 대화조차 나누지 않은 상태다. 유리에게 연우를 맡겨두고 할아버지가 여행 비슷한 것을 떠난다. 엄마의 친아들인 연우조차 제대로 된 삶을 살지 않은 듯하다. 유리는 연우를 돌보며 연우에 대하여 생각하고, 자기를 입양했다가 할아버지 집에 버려두고 떠난 서정희 씨의 삶에 대하여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연우를 왜 학대했는지도 궁금하다. 이로써 암이 아닐까 싶은 할아버지와의 관계의 변화도 생긴다.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안전했다. 어떤 상처도, 어떤 부대낌도, 어떤 위태로운 기대나 상처가 되고 말 애정도 할아버지와 내게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 집을 훌훌 떠나면 됐다. (172페이지)


 

유리가 비로소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우도 자기처럼 생각하고 살아갈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병원 치료인 듯했던 짧은 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에게도 캐물어 그가 복막암인 것도 알게 된다.


 

무덤덤하고 무감각하게 사는 유리에게는 친구 미희와 주봉이가 있었다. 자기가 입양된 아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편한 관계였다. 동아리 때문에 함께 어울리게 된 세윤이 입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유리는 자기의 입양을 터놓고 말할 수 있었다. 자기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엄마는 왜 자기를 입양했다가 버렸는지, 친부모를 만나면 자기를 왜 버렸는지 당당하게 이유를 듣고 싶었던 유리였다. 인정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유리에게 다정한 다른 한 사람 담임 고향숙 선생님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 유리를 바라봐 줄줄 알고 말없이 위로해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품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안정감을 느낀다. 엄마에게 학대를 당했던 연우가 유리에게 말을 놓기 시작하면서 표정이 밝아졌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각 다른 것 같더라. 감당해 낼 여건도 다르고. 설령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 (207페이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어느 누군가 그랬다. 고통은 자기가 감당할 무게만큼 오는 거라고. 그 고통이 아무리 커도 아이들한테 전가하는 건 옳지 않다. 눈 앞의 고통을 모른척하고 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무덤덤하게 살아가려는 유리에게 연우의 등장은 파문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서 같았다. 이렇듯 사람이 우리의 삶에 등불처럼 환하게 밝혀주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된다.


 

마음을 여는 순간 잡게 되는 손. 그것을 알려주는 관계의 힘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피로 이어진 가족도 얇은 유리처럼 쉽게 깨어질 관계인 경우가 많다.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서로 마음을 열고 내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한 관계. 진짜 가족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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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1~08 세트 - 전8권 전지적 독자 시점
싱숑 지음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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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 한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만약 우리에게 소설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더구나 내가 읽은 소설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이 세계가 멸망하는 이야기라면.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런 일에 대처할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 거 같다. 만약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고 칠 때 그 전에는 좀비 그 자체가 무서워 벌벌 떨기만 했다. 지금은 어떤가 하면 좀비가 되어가는 그 장면에 공감하게 된다. 어버버 하는 사이에 좀비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소설의 첫 시작, 세계가 멸망하는 시점, 퇴근 시간의 지하철에 내가 있었다면 아마 소설 초반에 죽어버리지 않았을까. 조연급도 되지 않은 엑스트라급 정도일 것이다.

 


스물여덟 살의 계약직 사원 김독자. 그러니까 이름이 독자(讀者). 그의 유일한 취미는 웹 소설을 보는 것.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소설이 연재되는 십 년 동안 유일한 독자였다. 소설을 완결한 작가는 마지막 연재까지 읽은 독자에게 한 가지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리고 퇴근길 열차 안에 도깨비가 나타나 이 세계가 멸망했으며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그가 소설에서 보았던 일과 똑같다. 같은 열차에 탄 소설 속 인물 김남운이 보였고, 건너편 열차 안에는 멸살법의 주인공 유중혁이 있었다.


 


 

 

마치 게임 속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 코인을 얻게 되고 성좌들로부터 코인을 선물로 받는다. 배후를 선택하여 그가 가진 능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될 수 있고, 코인을 주고 필요한 능력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인물들은 모두 한가지씩 자기만의 독특한 스킬이 있다. 멸살법의 주인공 유중혁은 잘생기기도 했지만, 회귀자로 지금이 3회차의 삶이다. 회차를 거쳐 오며 그 능력치가 올라 함부로 범접할 수 없다.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김독자의 스킬이 궁금할 것이다. 작가에게 선물받은 텍스트(txt)로 인해 등장인물들의 정보와 상대방이 가진 전용 스킬을 알 수 있다. 독자의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이 발동되면 상대방의 속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책갈피 스킬이 활성화되면 멸살법에서의 장면이 그대로 떠오른다. 그 누구도 김독자의 스킬을 따라올 자가 없다. 김독자는 멸망된 세계에서 결말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가진 전용 스킬을 이용해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게 되며 그의 입지는 커 가고, 소설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등장인물의 스킬이 멸살법 속 회차보다 더 빨리 진행된다.


 


 

 

그런 세계에서 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나라든가 영혼이라든가. 그런 건 원래부터 존재했을까? 아니면, 이런 나조차 작가가 만든 이야기의 일부일까? (3,138페이지)

 


독자는 소설의 모든 내용을 알고 있으며, 십 년 동안 아무도 읽지 않은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 작가가 독자 한 사람을 위해서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독자 한 사람을 위한 소설이며 멸망한 세계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및 환웅 등 건국 신화, 제주 설화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 속 인물들이 성좌로 나온다. 그만큼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등장인물들은 신화 속 인물의 성좌가 가진 스킬을 이용해 공격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꿰뚫는 지식과 공격 스킬로 미루어 볼 때 독자를 위한 멸살법이다. 결국 독자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인물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나는 독자고, 독자는 독자의 선택을 한다. (5, 18페이지)

 


이야기는 곧 사람이 되었다. (8, 254페이지)

 


독자라는 이름도 그렇고, 발췌 문장에서처럼 독자의 역할과 선택, 그리고 이야기를 쓰는 이유를 보면 독자의 역할에 대하여 고민했음을 알 수 있다. 소설도 결국 독자를 위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멸살법의 유일한 독자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독자의 역할을 보자면 역시 이야기가 가진 힘을 알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책을 읽는 독자가 없으면 이야기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이야기를 읽는 독자로 인해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있으며 우리의 주인공이 있는 것이다. 곧 이 소설은 작가와 독자, 주인공의 역할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왜 소설을 읽는가. 소설 속 인물을 동일시하여 마치 그 장면에 있는 것처럼 울고 웃고 감동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즐거움이 어디까지 향하는지 그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 내용의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아 주말에 칩거한 상태로 읽은 책이다. 네이버 시리즈 누적다운로드 1, 문피아 누적 판매 1, 세계 9개 언어 번역 등 그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지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PART 1, 8권을 읽는데 아직도 이야기가 머릿속을 부유한다.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다. 후속편 PART 2, 3 페이퍼백 및 PART 1 하드커버가 하반기에 나온다고 하니 기대할 볼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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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막는 제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7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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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쓰인 태평양을 막는 제방은 영화로도 제작된 연인과 한 몸이라고 할 만한 자전적인 소설이다. 열여덟 살의 쉬잔을 주인공으로 하는 3인칭으로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 태평양을 막는 제방에서도 쉬잔을 좋아하는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조 씨가 나오는데 많은 돈을 가진 데다 쉬잔을 사랑하는 남자로 나온다. 연인에서와 달리 못생기고 도저히 사랑에 빠질 만한 남자가 아니다. 쉬잔을 사랑하는 것을 아는 어머니는 그가 청혼하기를 바라고, 오빠 조제프와 쉬잔은 그런 조 씨가 혐오스럽다.

 


커다란 꿈을 안고 새로운 삶을 위해 식민지 땅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이주해 왔다. 아버지가 죽은 후 식민지를 지배하는 토지국으로부터 땅을 매입해 가진 돈 전부를 들여 제방을 쌓았다. 바닷물이 제방을 넘어 들어왔고 농작물이 전혀 자라지 않는 불모지의 땅이었다. 조제프와 엄마, 쉬잔이 함께 람에 갔다가 부유한 조 씨를 만나게 된다. 조 씨의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 때문에 조 씨가 쉬잔에게 시선을 주는 걸 즐겼는지도 몰랐다.


 


 

 

차라리 쉬잔이 조 씨의 마음을 받아들이길 바랐던 거 같다. 연인처럼 말이다. 일흔의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쓴 소설에서는 왜 조 씨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먼저 쓴 소설이 더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여덟의 쉬잔과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같으면서도 다른 진실과 진실 너머의 것을 추구했는지도 모르겠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절망 상태의 가족은 권태 그 자체다.

 


어머니와 조제프, 쉬잔이 조 씨와 함께 대화할 때 그들이 하는 말은 종잡을 수 없다. 자기들의 빈곤을 말하는데 스스로 깎아내리는 듯한 모습에서 절망을 엿볼 수 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으며 말하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조 씨는 그들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의미도 모르면서 말이다. 사람이 절망에 빠지면 그렇게 변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비하를 하고 삶에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나락에 빠지는 것만 같다.

 


쉬잔이 조 씨에게서 다이아몬드를 받고 그것을 팔기 위해 도시로 나가면서 가족은 하나의 전환점을 맞는다. 어리석은 희망으로 가득했던 지난날에서 현실을 직접 마주했다고 해야겠다. 토지국을 설득하던 어머니의 수많은 편지는 메아리가 되어 사라졌다. 불하지를 받은 사람들은 지쳐 포기했고 토지국 직원들의 배만 불렸다. 단 한 가지 어머니의 소원이 있다면 토지국의 답장을 받는 것이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처음 이 소설을 썼을 때 어머니가 무척 불편해했다고 한다. 소설은 소설로 끝나야 하지만 과거 속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왔다면 가족들은 편하지만은 않을 거 같다. 자전적 소설은 결국 가족들과 그 경험을 말할 수밖에 없으니 상처가 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겠다.


 

절망에 빠진 가난과 그 뻔뻔함에 관한 내용이었다. 무릇 가난은 그처럼 뻔뻔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조제프 오빠에게 축음기를 주고 싶은 쉬잔의 행동은 뻔뻔스러우면서도 강한 슬픔을 보여준다.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 자체가 곧 슬픔이고 혐오다. 그럼에도 쉬잔과 가족은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현실의 앞에 서 있다.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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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7 16: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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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8 16: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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