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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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비교적 서늘했었던 외국의 어느 도시는 섭씨 50도를 오르내리고 있고, 어느 나라는 폭우가 쏟아져 성경 속의 세상, 노아의 방주가 필요할 듯싶어 보인다. 이러한 징조들을 보며 지구가 점점 위태롭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 위기도 그렇고 소설 속 내용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는 게 많다. 조예은의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도 그렇다. 방부제처럼 생긴,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세상이다. 녹지 않는 눈은 그저 녹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의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과 유사하다. 수분을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어 실험용 쥐를 넣었을 때 부패가 되지 않고 바싹 마른 형태가 된다. 마치 미이라처럼.

 


 

 

스노볼 안의 가짜 눈이라고 보면 된다. 한여름에 가짜 눈이 내린 후 일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내린 녹지 않는 눈은 사람의 삶까지도 바꾼다. 녹지 않는 눈은 산업 폐기물에 가깝다. 사람들은 피부를 드러내지 않게 천으로 감추고 방독면을 쓰고 다닌다. 모루는 폐기물 센터에서 가짜 눈을 치우는 일을 한다. 기숙사를 이용하는 그들은 학교 때의 단체생활을 하는 것 같다.

 

모루의 이모가 사라졌다. 이모와는 상관없는 스노볼이 트럭 안에 떨어져 있었고, 트럭의 화물칸은 비어 있었다. 이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모를 찾는 모루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모의 의뢰인들을 찾아다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스노볼을 본 모루는 백영중학교에서 처음 녹지 않는 눈이 내리던 기억을 떠올렸다. 같은 날 눈이 마주쳤던 이월의 기억까지.

 

백영시에서 특수폐기물을 치우는 사람들은 스노볼 안의 세상에 갇힌 사람들 같다. 가짜 눈이 흩날리는 도시. 진짜 세상에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싶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

 


 

 

이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폭우가 내려 도시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고, 폭염 때문에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다만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십대 후반을 잃어버린 스물두 살의 백모루와 이이월은 이모를 찾아 센터를 뛰쳐 나온다. 그들은 젊다. 스노볼 밖의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보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스노볼 밖의 세상을 향하여 여행을 시작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는데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족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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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친환경이 뭔가요? - 오늘부터 시작하는 에코 라이프
조지나 윌슨 파월 지음, 서지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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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할 때 세제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거품을 헹구기 위해서 많은 물이 필요하다세제보다는 따뜻한 물을 사용해 설거지하는 방법과 세제를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 더 친환경적인 건 무엇일까나 혼자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그럴 때마다 하는 말은  ‘나부터 실천하자이다나부터 실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친환경적이지 않을까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집에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있다주변에서 인덕션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 바꿀까 고민 중이다텃밭의 농막에서 1구 인덕션을 사용하는데 열효율이 높을 뿐 아니라 가스레인지 보다 친환경적이다이유는 가스레인지나 전기레인지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요구르트를 마신 후 통을 세척해서 버리는가아니면 그냥 재활용품 통에 넣는가기본적으로 우유팩이든 음료수통이든 씻어 버린다통을 씻지 않아 오염되면 재활용이 되지 않고 소각하거나 매립지로 보내진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부유한 국가일수록 쓰레기를 많이 배출한다고 한다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1회용품이 증가했다마음대로 식당에 다니지 못하니 포장하거나 배달이 증가된 이유다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한때 주방세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털실로 짠 수세미를 많이 사용했다스펀지 수세미는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져 주방에 있는 기간에 비해 매립지에서는 수백 년 동안이나 머물러 있다저자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행주 묶음 대신 낡은 천 조각을 잘라서 사용하라고 했다.


 

주방용품 뿐 아니라 음식과 음료친환경 욕실친환경 옷장 및 쇼핑기술정원일과 놀이여행과 교통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서 필요한 친환경 사용법을 설명한다어떤 것이 물을 덜 사용하는지 비교해보고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최근 로컬푸드라고 하여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파는 매장이 많이 생겨 이용하고 있다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지만 신선한 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제철에 그 지역에서 나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친환경적이라고 말한다다른 나라 혹은 먼 거리에서 오는 상품은 비행기나 차량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연료 발생이 곧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거다텃밭을 일구면서 가능한 한 채소나 과일을 밭에서 가꾸어 먹고 있다참외나 오이가지고추상추 등을 심어 유기농으로 가꾸어 먹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비누와 샴푸는 바 형태와 리필 가능한 액상형 중 어느 쪽을 써야 할까?

샴푸 대용으로 비누를 써봤는데 제대로 감아지지 않아 샴푸는 포기하지 못했다대신 바디클렌저와 클렌징폼 대신 고체형 비누를 사용하고 있다우리가 사용하는 액상 비누스크럽헤어 제품들은 막대한 플라스틱을 매립지로 보내는 원인이 된다많은 물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므로 지구에 별로 좋지 않다.


 


 

 

화장을 지우거나 아이들을 키우며 물티슈를 많이 사용한다세계에서 하루 13억 장의 물티슈가 사용되는데 각 장이 생분해되는 데는 100년 이상이 걸린다물티슈는 환경적 재앙이다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데 1만 리터의 물이 든다합성 섬유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발생시키므로 되도록 천연 섬유로 된 옷을 구매하고인조 제품을 산다면 최소 30회 입기를 목표로 활용하라고 말하였다.

 


장마철이나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철 빨래가 마르지 않아 건조기를 구매할까 하고 여러 제품을 알아보고 있다이 책을 읽고 났더니 망설여진다건조기 사용은 의류 간에 마찰을 일으켜 합성 섬유로부터 미세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오게 한다바다의 미세 플라스틱 중 35%가 합성 의류들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세탁기와 건조기를 통해 배출된다빨래 건조대나 빨랫줄을 이용해 자연 건조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지구를 살릴 수 있다외국의 어떤 나라는 미관상 빨래를 밖에 너는 걸 금지한 곳도 있다고 하던데여러모로 생각해 볼 일이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처음엔 벤토나이트로 된 모래를 사용하다가 지구가 사막화된다고 하여 두부 모래를 사용했고 지금은 미송펠릿을 사용하고 있다개를 기르는 사람은 일반 비닐봉투보다는 생분해되는 배변봉투를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지구가 직면한 9가지 중대한 문제를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대기중의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산림 파괴물 안보오염쓰레기생물 다양성해양 산성화광범위한 살충제 사용의 토양 침식자원 감소다지구 위기를 위해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나부터 실천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좋겠다장바구니와 물병커피 텀블러 챙기기 등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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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이는 가로수가 무슨 나무야?

회화나무.

그럼 그 길로 그냥 쭉 걸어와. 그러면 회화나무 가로수가 끝나고 버드나무가 시작되는 곳이 있을 거야. 세 번째 버드나무 아래서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103페이지)


 

소설 속 연인이 나누는 대화 같다. 저자가 세 번째 버드나무 아래에서 기다린다고 한 줄 알았으나 나무를 잘 아는 저자에게 친구가 한 말이었다.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하고 찾아가는데 길치인 저자가 헤매고 있을 때 친구가 보이는 나무를 물어보고 가까운 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거다. 소설 속 문장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다. 인사동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대부분 간판을 보고 찾아가게 된다. 그렇지만 저자는 어떤 나무인가를 말해야 이정표 삼아 찾게 된다.


 

숲을 걷는 것을 좋아하고 풀과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저자의 책이다. 국립수목원에서 일하고 있어서 나무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나타내는 것보다는 독자들을 나무들과 풀꽃을 이용해 초록의 숲으로 이끈다.


 


 

 

산골에서 살았던 저자는 들과 숲이 놀이터였다. 엄마를 따라 일하다가, 숲속에 들어갔다가 풀과 나무들을 보고 이름을 기억했고, 그 이름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저자는 포도를 따고 나물을 캐다가 꽃비를 맞는가 하면, 부모님의 못자리를 돕다가 산에 올라 졸참나무며 상수리나무, 굴참나무의 꽃가루를 마주한다.


 

늦잠을 자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지 못하자, 뒷산에 올라 숲속의 식물들을 바라본다. 야생화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산 초입의 계곡 주변으로 현호색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갈퀴현호색의 향기보다 못하지만, 그 향기가 좋다는 현호색이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휴대폰을 옆에 두고 책에서 언급한 식물들을 검색하며 읽었는데, 현호색의 색감이 내가 좋아하는 색이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 볼 때마다 반갑다. 풀 속에서도 찾게 되고 발견하면 더할 수 없이 기쁘다. 오래전에는 알지 못하던 나무와 풀꽃들의 이름을 지금은 조금씩 기억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다. 가로수로 사용되는 나무, 꽃에 관심을 가지니 그런 것 같다.

 


숲과 나무에 관한 이야기만 한 게 아니다. 부모님을 도우며 느꼈던 것들과 어렸을 적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말했다. 잔잔한 글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 집 사용 설명서. 시골에 가야 해 집을 며칠 비워야 하는데, 친구가 주말에 집을 쓰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며 집 사용 설명서를 썼다.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현관 자물쇠의 잠금 방향과 가스레인지 한쪽이 고장 났다는 것, 집에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것, 보일러 사용법 등을 적었다.


 


 

 

그런 세심한 성격이 풀꽃을 보고 혼자서 관찰해오다가 쇠뿔현호색이라는 신종을 학계에 발표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관찰하고 즐겼던 결과다.


 


 

 

대구에서 강원도 횡성군 둔내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인상적이다. 시외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 십여 분을 쉬게 되는데 한 남자가 출발할 시각이 다되어 들어왔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다시 나갔다. 지갑을 찾을 수 없었던지 주머니를 계속 뒤지는 듯 동전 소리가 났다. 조용히 만원권 두 장을 빼 주머니에 넣고 그 사람의 옆자리로 갈 타이밍을 쟀다. 용기를 내 그 사람 옆자리로 가 돈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이 만원을 건넸다. 언젠가 만원권은 있는데 동전이 없어 바꿔 달라고 했다가 도움을 받고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에게 베푼 것이다. 그 빚을 갚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웠다.


 


 

 

늦겨울 학교 운동장을 돌다가 몽당연필을 발견하고 어릴 적 아버지가 깎아주시던 몽당연필을 떠올렸다. 산골이라 학용품이 여유롭지 못해 쓰던 공책의 나머지 부분을 새로 만들어 주시던 아빠. 연필을 직접 깎아주셨고, 몽당연필이 되면 볼펜에 끼워 쓰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걸 보며 나도 어릴 적 몽당연필을 쓰던 때를 떠올렸다. 연필을 잃어버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들. 지금은 사무실에서도 몽당연필은 그냥 버리게 되던데,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처럼 유리병에 모아두었던 몽당연필들도 어쩐지 아름다운 정경처럼 보였다.


 

책 속에서 식물 이름을 거론할 때 그 식물의 사진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에 책에 나왔던 식물 사진이 가나다순으로 수록되어 있어 무척 반가웠다. 내가 알고 있는 식물과 그렇지 못한 식물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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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11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무 이야기 몽당연필 이야기. 다 좋네요 ~ 역병이 좀 잠잠해지면 여유롭게 어디든 가고 싶어지게 만드네요 *^^*

Breeze 2021-08-18 09:06   좋아요 1 | URL
정말요. 어디든 나다니고 싶습니다. ^^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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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후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에 반했다단편도 좋지만장편이 더 좋은 나는 작가들의 장편을 기다린다그것도 자주목마른 사람처럼 자꾸자꾸 기다린다최은영의 소설이 그랬다첫 장편 소설이라는 점도 좋았다.


 

여성 서사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나부터 우리 엄마엄마의 엄마인 할머니할머니의 엄마까지대부분 엄마의 엄마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소설은 많은데 할머니의 엄마까지는 그 대상에 든 적이 드물다할머니가 우리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할머니도 한때는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였고 할머니에게도 엄마가 존재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지연은 이혼 후열 살 무렵 할머니의 집에 갔었던 기억을 가지고 희령으로 향한다마침 희령에 소재한 천문대 연구원을 구하고 있었다자기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잘못한 건 남편이었는데 이혼하는 걸 바라지 않고 남편을 두둔하는 아빠와 엄마를 피해 멀리 달아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경우였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14페이지)

 


퇴근 후 동네를 산책하다가 한 할머니를 만났다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미소 짓던 분이었다자신의 손녀딸과 닮았다며 딸의 딸 이름이 이지연이라는 것과 딸 이름은 길미선이라고 했다자신과 엄마의 이름이었다열 살 때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지연이 무슨 이유로  20년이 넘도록 왕래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던 장면이었다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면 딸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는 건데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의문이 들게 했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약속을 정하여 할머니 집에 갔다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미소 짓는 두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지연은 할머니의 엄마즉 증조모와 얼굴이 닮아 있었다그때부터 할머니에게서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를 듣는다증조모는 백정의 딸로 태어나 광복이 되기 전결혼하지 않는 처녀를 구하러 다니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 증조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증조부는 양인 신분으로 할머니의 당찬 모습이 좋아 보였고백정의 딸이라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옛날 여성들은 옳지 않아도 옳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였고자신이 참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성격이라는 건 은연중에 드러나기 마련이다도저히 참지 못하겠다고 여기는 순간 발현되는 것이다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토록 다정하게 대해주던 이웃 사람들도 증조모를 수군대며 없는 사람 취급했다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새비 아주머니 덕분이었다새비 아주머니는 증조모에게 삼천이라고 불렀고 서로 다정하게 대했다가족 때문에한국전쟁으로원하지 않는 이유로 이별을 하게 되며 서로 더 애틋해졌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함께해 온 여성들의 이야기다새비와 삼천이의 우정을 이어오며새비의 딸과 삼천이의 딸인 할머니그리고 그 딸들과딸들의 딸 이야기다. 4대의 여성을 통해 질곡의 역사를 건넌다.


 

상처를 치유하려고 향했던 희령에서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했고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대부분 타자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화자를 달리하여 말한다면 이 소설은 지연이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독자에게 들려주는 식이다그러니까 할머니가 할머니의 엄마를 부를 때는 우리 엄마고새비는 새비 아주머니삼천이는 증조모로 칭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신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을 때 자식에게 그것을 대물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견디기 힘들어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참고 인내한다옳지 않은데도 그것을 자식에게까지 바란다는 것이 문제다바람피운 지연의 남편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 지연을 질책하는 것처럼자신도 버거운 경험을 했음에도 딸에게도 같은 걸 바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나는 기억되고 싶을까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82페이지)

 


첫 문장부터 이 책에 빠질 거라는 걸 예감했다할머니에게로 이어진 여성들의 삶이 슬펐다이들의 삶이 안타까웠고 그들의 바람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무엇보다 그 시간을 함께 건너온 새비와 삼천이의 우정이 애틋했다안녕을 바라면서도 처지가 달라 연락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도 마음이 아팠다.


 

살아가면서 새비와 삼천이 같은 친구가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친구 지우에게는 할 수 있었듯 단 한 사람의 친구면 충분했다새비와 삼천이처럼그들 혹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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