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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지음,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평점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를 담은 『다시, 그림이다』와 호크니와 함께 쓴 『그림의 역사』 그리고 『현대미술의 이단자들』의 저작을 갖고 있는 작가, 비평가 혹은 미술 순례자인 마틴 게이퍼드의 『예술과 풍경』을 읽었다.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일거로 생각했지만 이 책은 저자가 예술 작품이 있는 도시를 다니며 직접 확인한 미술작품과 직접 만나서 인터뷰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책이었다.
저자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직접 경험할 것’ 이다. 우리는 사진으로도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실물을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회화가 가진 전체적인 힘을 느끼려면 실물을 봐야 한다. 질감이나 투명함의 정도, 붓 자국의 변화, 빛이 반짝이는 방식, 다른 요소의 불투명함 등을 놓치게 된다. (96페이지) 라고 말이다. 저자가 작품이 있는 곳으로 직접 달려가 예술 작품을 보았다.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을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라고 서문에서도 밝혔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떠나기를 주저하면서도 떠난 여행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듯, 직접 작품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작품을 제대로 느끼고 감동할 수 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게 되었을 때, 나이에 따라 혹은 감정에 따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듯 예술 작품 또한 어떠한 환경이나 감정에 따라 작품 감상법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미술을 찾아 멈추지 않는 여행을 떠났다.
미술 에세이로도 읽히는데, 작품 도록을 보고 그림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미술가를 만나고 작품을 보고 인터뷰한 결과에서 예술 작품에 대한 그의 깊이와 통찰을 느낄 수 있다. 아내 조지핀과 주로 여행을 다닌 그는 이 책의 시작을 루마니아에 있는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부터 시작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전사한 수십만 명의 루마니아인을 기리려는 의도로 제작된 이 작품은 그 끝이 하늘 끝에 닿아있는 듯하다. 높이 30미터에 가까운 이 기둥을 브랑쿠시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설명했다.
퍼포먼스 미술의 대모라고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아주 어렵게 만났다. 그녀의 작품들 대부분은 신체를 사용하고 노출과 몹시 고통스러운 상황을 동반한다. 책 속의 사진 한 장은 몹시 독특하다.
1977년 아브라모비치는 다시 연인이었던 울라이와 함께 볼로냐의 갤러리에서 머리카락을 연결하고 서로 반대방향을 바라본 채 17시간 동안 말없이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이는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은유이자 비범한 인내를 보여주는 수행이라고 했다. 사진이나 그림보다 훨씬 느낌이 강렬하고 독창적이다. 비록 그 상태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 퍼포먼스를 직접 감상했다면 영원히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저자가 아브라모비치를 만나고 난 후, 이전에는 수수께끼 같던 형태의 미술 작품의 의미를 갑자기 깨달았다고 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흰족제비를 안은 여인>은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는 책이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얼추 설명이 비슷해 보인다. 많은 화가들이 그림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회화나 데생이 아닌 언어를 재료로 하는 작품으로 유명해진 제니 홀저는 아주 어린 시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흰족제비를 안은 여인>을 보고 작품 속 여자가 작품을 그린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중성적이면서도 지적인 얼굴과 우아하고 섬세한 손을 보고 어쩌면 자신도 미술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제니 홀저와 저자는 그때까지 직접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몇 년 후 아내 조지핀과 직접 그 작품 앞에 섰을 때의 감회가 남달랐음은 분명하다.
나는 모든 예술이 어떻게 보면 연금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술은, 이를 테면 물감과 캔버스 같은 하나의 물질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179페이지)
아마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감동하였을 예술가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아닐까 한다. 인터뷰가 아닌 대화를 원했던 사진가. 당시 93세이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 와인을 마시며 나누었던 대화가 끝난 후 그는 저자에게 사인한 드로잉 도록을 선물하였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그로부터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점심시간이 되어 저자를 초대했지만 함께 점심을 먹지 않았던 게 미안했고 스스로 바보 같다고 여겼다. 그가 했던 말 중 마음속에 남았던 건 강렬함이었다. 그가 강조했던 것은 ‘단지 보는 것’이었다. 저자가 직접 작품을 보러 다녔던 것, 예술가를 만났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사진에서 결정적 순간은 사진가가 변화무쌍한 삶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표현적인 형태를 촬영하게 되는 찰나의 순간이다. 그 순간을 만나면 반드시 셔터를 눌러야 한다.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사라진다. (245페이지)
때로 인생은 즉흥적으로 흐른다. 누군가와 만났을 때,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을 때 계획대로 되지 않고 즉흥적으로 흘러갔을 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말처럼 모든 결정적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비평가의 예술 서적은 어떤 느낌일까. 미술 서적치고 생각보다 작은 판형과 촘촘한 글씨 때문에 예술 서적의 고유한 느낌이 없으면 어떡하나 조금은 우려를 했었다. 하지만 내용을 읽어갈수록 마틴 게이퍼드 만의 예술 철학을 접할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 지금부터, 직접 경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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