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이 그랬어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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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30대라고 가정했을 때, 30대인 우리가 20대에 썼던 소설이나 일기를 다시 들여다본다고 치자. 현재의 우리는 20대 시절에 썼던 글을 읽고 왜 이런 글을 썼을까. 그때는 이런 감정이었겠구나 하고 짐작한다. 지난 20대는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그 길이 아파도 조금씩 단단해져 지금에 이르렀다.

 


박서련은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을 쓴 소설가다. 20212월에 펴낸 이 소설집은 2008, 2009, 2010년에 썼다. 아직 작가로 등단하기 전 온 마음을 다해 썼을 소설을 30대의 작가가 20대를 바라보는 느낌으로 수정을 거쳐 출간한 작품이다. 작가 스스로 이 작품들을 가르켜 ‘20대 박서련의 걸작선이라고 했다. 3편의 단편과 작가의 에세이가 실린 짧은 분량의 소설집으로 자음과모음에서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된 첫 번째 책이다.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호르몬이 그랬어, 에서는 질풍노도의 20대의 삶을 볼 수 있었다. 특별하게 부잣집 자녀인 경우를 제외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안한 시기다. 그 시절을 돌아본다는 건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이니셜로 표현되는 연인들과 한 시절을 사랑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기 전의 느낌들이 심상했다.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의 첫 문장을 보자. ‘나 지금 서울이야. 첫 문장은 남겨두자. 바뀌지 않는 것도 있어야지. 이건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니까.’ (9페이지)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30대인 작가가 20대에 쓴 소설을 다시 고쳐 쓰는 상황이다. 작품의 대부분을 살려 좋은 문장을 가려 쓰는 작가의 글에 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 지금 서울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서울은 나한테 도시가 아니고 상태인 것 같아. 겨울이 와도 나는 서울. 겨울이 가도 나는 서울. 여름도 가을도 봄도 없이 나는 서울이야. 그러다 예는 문득 나를 보며 물었다. 너도 서울이야? (중략) 내내 서울일 거야. (34페이지)


 

젊음은 어쩌면 특권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겨울처럼 시린 시절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인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궁극적인 목적은 있으나 이루지 못한 상태.


 

호르몬이 그랬어의 주인공은 모친의 애인이 사준 고가의 패딩 점퍼를 입고 문자로 이별 통보를 받은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호텔로 들어가기에 예의 그것을 상상했지만 레스토랑으로 향하여 비싼 식사를 사준다. 헤어진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건만 결혼한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모친의 애인에게 전화해 순댓국을 사달라고 조른다. 십여 년을 서로를 끌어당기는 달의 영향처럼 엄마와는 생리를 이어 했다. 모친이 먼저하고 주인공이 뒤따라 하는 식이었다. 아마 호르몬의 고리가 있는 것처럼. 이십 대 시절만이 가지는 불안 심리를 볼 수 있었다. 취직 문제와 연애사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런 시기. 우리 모두 그 시절을 지나오지 않았는가. 모친 애인의 집, 그러니까 고등학생 남자아이 방 침대에 남겨두고 온 쪽지는 정말이지, 파안대소를 할 만큼 대책 없는 매력을 가진 주인공이었다. 뒤처리를 어쩌란 말이냐. 더군다나 남자아이인데!

 


 

마지막 작품은 이다. 은 주인이 없는 빈 무덤을 나타낸다. 슬펐다. 그들이 가진 현실이. 마치 겨울처럼 시렸다. 죽은 연인이 잠들어 있는 공원, 돈이 없어 보증금을 겨우 채우고 5년치 관리비를 입금하지 못했다. 죽은 연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궁리 끝에 공원에 다다른 주인공은 무언가 비밀스러운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산행 기차표를 예매해 발권했다. 버스를 타고 공원을 향할 때도 살짝 불안하더니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기차가 출발했을 때에야 옆에 두었던 가방이 없다는 걸 알았다. 택시에 두고 내렸나. 발권할 때 누가 가져갔나. 이럴 경우 주인 없는 이 물건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다시 찾으러 갈 것인가. 그저 어딘가로 떠 돌도록 놓아둘 것인가.

 


어쩌면 20대는 미완성의 시대다. 아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등단을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작품쓰기를 멈추지 않아 지금의 이 작품이 탄생되었다. 30대의 작가가 20대의 작가를 지극히 다른 시선으로 보며 다시 쓴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같으면서도 다른 시점으로 쓰인 작품. 20대 시절을 각자의 시절에서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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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평온을 아껴주세요 - 마인드풀tv 정민 마음챙김 안내서
정민 지음 / 비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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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운다는 게 참 어렵다. 눈을 감고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느라 좀처럼 마음을 비울 수 없다. 명상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비우라는 목소리를 들었는데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차 숨이 가빠질 정도였다. 요즘의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은 거 같다. 비어있는 시간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며 머리를 혹사시킨다.


 

유튜브 채널 마인드풀 TV’를 운영하고 있는 정민의 내안의 평온을 아껴주세요는 명상에 대한 안내서다. 명상을 하는 방법, 명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말한다. 명상은 내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 마음의 평온을 얻는 일이다. 특별한 종교나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지 않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편한 장소에서 편안한 복장으로 앉아 있으면 된다. 결가부좌가 좋지만 반가부좌여도 상관없다. 결가부좌는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인데 골반 구조상 나에게는 무척 어려운 자세다. 외국의 경우 가부좌가 힘들어 의자에 앉아 명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자기에게 편한 자세면 되겠다.

 


 

 

저자는 유년 시절, 일에 바쁜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에게서 보살핌을 받았다. 워커홀릭이셨던 부모님 때문에 애정 결핍을 느꼈었고 우울증이셨던 할머니와 함께 지내다 보니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사춘기와 대학시절 정신적 폭력도 다수 느꼈다. 저자는 자기가 안고 있던 문제와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명상을 하게 되었다.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명상 방법들을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거창한 방법은 필요하지 않다.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면 된다. 눈을 지그시 감고 매일 조금씩 시간을 늘리면 된다. 일정한 시간에 하면 좋고 10분에서 점점 시간을 늘려 하루에 30분 정도씩 하면 된다. 아침 명상으로 하루를 맑게 여는 삶을 시작했다면 저녁 명상은 하루를 돌아보고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작업이기도 하다.

 


명상은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야 명상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명상은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을 하는 과정입니다. 감정이나 생각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가, 그것을 그저 바라보고 영향받지 않는 법을 배운달까요.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끌려 다니게 됩니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감정과 생각은 언제나 우리 안을 맴돌 것입니다. 나의 일부라면 내가 통제할 수 있지만, 생각과 감정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어요. 그것을 알아차리고 나의 존재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면 외부 자극과 무관하게 맑은 마음과 머리로 매일 행복하고 상쾌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7~38페이지)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들숨과 에너지 배출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날숨의 호흡법은 통증을 완화하는 명상법이다. 임신으로 불안한 예비 엄마들을 위한 명상법도 있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떠올리고 과거의 시간으로 가 같은 상황을 경험해보는 일이다. 나를 다독이는 명상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는 명상법도 소개한다. 저자는 의 아픔을, ‘라는 존재를 모두 잊으려 노력하면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를 위해서다. 이외에도 다양한 상황에서 명상을 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명상을 시작한 후 두통이 있거나 머리에 열감이 있을 경우에는 영단어 ‘earth’에서 비롯된 얼싱earthing’ 맨땅 요법을 해보라고 권한다. 땅의 기운을 흡수하고 밸런스를 잡아주기 때문인데 이왕이면 맨발로 땅을 밟아주면 더 좋다. 바다 가까이에 살지 않는다면 동네 뒷산을 권한다고 했다.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나는 몸을 혹사시키라고 말한다. 이왕이면 자연 속에서 걷거나 달리면 더 좋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더 이상은 욕심의 노예로 살지 말아요, 우리. 내게 행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봐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요. 머리와 마음을 비워내고, 비워내고, 또 비워내는 삶을 살다 보면 참된 나, 진아眞我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땐 열등감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거예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모자람을 가진 그대로 완벽합니다. (222페이지)

 


명상은 저녁에 하는 것보다 아침에 더 좋다. 저녁에 명상했을 때 예민한 사람들은 악몽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섭취 후 하는 것보다 비어 있을 때 하는 게 더 좋다. 마음을 비우고 온전한 나를 만나기 위하여 명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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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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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본적도 없다아이를 잃어버린다는 상상은아니유괴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했지만 더 이상 생각을 확장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게 정답이다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살 수 없다경제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서로의 탓을 하느라 배우자나 다른 자녀의 생각은 하지 못한다대부분의 경우 가정이 깨지는 것을 보아왔다.


 

강에서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경찰은 시신 주변에 있었던 나무로 된 십자가 목걸이를 보고 선준에게 연락을 취했다아내가 나무 공예를 배우러 다니며 만들어 온 목걸이 두 개 중 하나였다십자가 아랫면에 클로버 문양이 있는아들 선우의 목에 걸려 있었던 목걸이였다시신의 정확한 신원이 나오려면 일주일의 기간이 걸린다고 했다선준은 선우로 추정되는 시신이 나왔다는 말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선우를 잃어 버린지 3아내 예원의 분노조절장애 증상이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준은 일 때문에 알게 된 정신 요양원에 아내를 입원시켰다예원은 요양원에서 아들 선우가 불렀던 노래를 듣는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꼬물꼬물 헤엄치다~’로 시작되는 올챙이와 개구리라는 동요였다선우는 그 동요 가사를 바꿔 부르기를 좋아했다같은 부분에서 선우처럼 가사를 바꿔 부르는 아이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다가갔다여섯 살에 사라진 선우가 자랐으면 딱 그 나이처럼 보였다자기 아들이 아닌 걸 알고 있음에도 예원은 로운을 데리고 요양원을 나왔다자기가 선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로운은 예원을 따라나섰다.


 

예원이 왜 자기를 따라나섰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로운은 잡아주었던 손이 따뜻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보고 싶어도 찾아오지 않는 엄마보다 따뜻하게 내민 손을 잡은 거였다부모라고 해도 완벽하지 않다내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면 아이인데도 자기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부모의 사랑만 기다리고 있을 아이한테 기대려는 부모도 있다는 것을우리는 조금쯤은 이해를 할 수 있다.

 


예원이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는 요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선준은 아내를 찾아 나선다아이를 데려다주지 않으면 예원은 유괴범이 된다자기 아이를 찾겠다고 다른 아이를 부모 허락도 없이 데리고 나온 거였다선준은 로운을 요양원으로 데려다주자고 말하고로운은 이선우를 금평의 울림기도원에서 보았다고 말한다선준과 예원은 선우를 찾을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금평의 울림기도원을 찾아 길을 나섰다돈을 노리고 아이를 유괴했을 경우 며칠 안에 연락이 온다선우의 경우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그저 어느 공중전화에서 걸려왔다가 말 없이 끊은 전화가 다였다금평으로 향하며 선준은 공중전화를 떠올리고 걸려온 지역을 당시 담당 경찰에게 묻는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요정들이 아이를 바꿔치는 유럽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스톨른 차일드가 떠올랐다숲에 사는 유령인 파에리들이 아이를 데려가고 똑같은 모습의 파에리를 두고 가파에리는 바꿔친 아이로 살고바꿔친 아이는 파에리의 삶을 사는 이야기였다혹시 바꿔친 아이처럼 되지 않을까혹은 예상과 달리 선우가 죽었을까대부분의 유괴된 아이의 경우 살아 있었던 경우는 드물어 우리의 염려대로 되는 것인 아닌지 마음을 졸였다.

 


 

 

내 아이를 되살리려 다른 아이를 유괴한 부모아이를 방치한 부모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이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내 아이를 살리겠다고 다른 아이를 이용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다하지만 만약 같은 상황이 된다면 그렇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소설은 그래도 실종된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나타냈다실종된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찾는 전단지를 차에 가지고 다닌다아이를 찾을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보이면 찾아다닌다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들은 어딘가에서 그처럼 헤매고 있다지금도 실종아동 찾기에 여념이 없을 부모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려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썼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따뜻했던 손을 잡은 이유잡은 손을 놓지 않는 이유그로 인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이유사랑이라는 이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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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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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이를 먹는다. 소설 속 인물들도 나이를 먹게 되는데 그것은 시리즈를 마주했을 때다. 젊은이였다가 중년이었다가 노년이 되기도 하는데 독자들도 자기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주인공을 마치 친구처럼 바라보게 된다. 그동안 하라 료의 소설을 읽어오면서 느끼는 감정들이다. 지난 작품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를 읽을 때 사십 대였던 사와자키가 시간이 흘러 이제 오십 대의 나이가 되었다. 오십 대의 사와자키는 조금쯤은 변했을까. 여전히 친구하나 없이 쇠락한 니시신주쿠의 탐정사무소를 지키고 앉아 있을까.

 



 

 

여전히 담배를 물고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지키고 있는 사와자키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그야말로 신사라고 칭할 수 있는 남자였다. 사와자키의 예상과는 다르게, 신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유명한 저축은행의 신주쿠 지점장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모치즈키 고이치라고 밝힌 그는 한 가지 의뢰를 한다. 회사에서 대출이 예정된 아카사카의 요정 여주인의 사생활을 조사해달라는 거였다.


 

히토쓰바시 흥신소의 하청을 받아 잠복근무를 하는 사와자키는 며칠이 지난 뒤에야 모치즈키 지점장의 의뢰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 조사가 의외로 빨리 끝나 연락을 취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가 근무하는 저축은행으로 향했다가 은행 강도 때문에 그 안에 인질이 되어 갇힌다. 외출했다던 지점장 모치즈키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치즈키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와자키에게 의뢰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미수에 그쳤던 은행 강도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가이즈 가즈키가 그의 탐정사무소에 찾아와 모치즈키와의 인연과 그가 어디로 갔는지 함께 방법을 모색한다. 사와자키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던 니시고리 경부와 여전한 신경전을 벌이는데 우리가 보기엔 탐정인 사와자키가 만들지 않았던, 친구라고 할만 했다.

 


 

 

누구나 휴대폰을 갖고 있는 시대다. 오죽하면 은행 강도가 휴대폰을 내놓으라고 했을 때 사와자키가 없다고 하자 이해하지 못했던 일화도 있다. 오래전 사람처럼 전화응답 서비스를 받고 있는 사와자키다. 탐정 일을 하는데 불편할 텐데도 휴대폰의 필요성을 굳이 느끼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나마 자동차는 블루버드에서 다른 차로 바꾸었다. 그리고 의뢰인에게는 정중하게 대하는데 다른 사람들 니시고리 경부나 다지마 경부보, 폭력단 사기라 등에게는 여전히 반말이다. 습관이란 고치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탐정 제도가 일본에는 합법적이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는 것 같다. 탐정 사무소로 생계가 가능할까 궁금하지만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지도 않는 것도 같다. 나중에서야 그에게 의뢰를 했던 모치즈키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형식의 소설이었다. 일본 특유의 느낌인 뭔가 정적인 느낌이랄까. 의뢰인의 정체가 궁금하긴 하지만 특별한 인연을 만들지 않았다는 거. 굳이 이름을 물어 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부터의 내일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로부터 14년이 지난 뒤에야 출간되었다. 시리즈치고는 상당히 긴 공백 기간이 있는 셈이다. 니시신주쿠의 탐정사무소도 변화를 꽤할 때가 된 것 같다.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해야 할 이유도 있고, 사와자키에게 파트너가 생겼으면 싶었다. 새로운 탐정을 구하는 건 어떨까. 예를 들면 그를 도왔던 히토쓰바시의 하기와라나 가이즈가 좋을 것 같다. 홀로 창밖을 내다보며 쓸쓸히 담배를 피우는 그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다른 작품의 구상을 확실히 세워두었다고 하는데 제발 빠른 시일 안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사와자키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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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8 1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라료 팬인데 신간 소식 넘 반갑네요 하라료가 워낙 글쓰는 속도도 느리지만 다작을 하지 않아서, 다음 시리즈 나오기 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넘 길어요 ㅜ.ㅜ

Breeze 2021-02-19 11:2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그래서 더 애타게 기다리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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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날 한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혹은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로 들었던 기억들같은 이야기에 곁가지를 붙여 수없이 다른 결말을 나타냈던 이야기들을우리는 이번 책에서 살만 루슈디가 들려주는 천일야화에 빠져들게 된다문학과 철학구전과 역사가 뒤엉켜 인간과 마족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의 목소리로 듣게 된다모든 일들이 시작되어 끝나는 시점은 2년 8개월 28일 밤이었다천 일하고도 하루가 지난 밤모든 역사는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고 끝을 맺었다.

 


 

 

위대한 마족의 여마신벼락을 마음대로 부렸던 번개 공주같은 마족보다는 인간 남자를 사랑하였던 여인여인의 수많은 후손들의 이야기다시 돌아와 전쟁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이다위기와 혼란의 시대그 모든 위기의 시대를 다룬 이야기이기도 하다그녀의 이름은 두니아그리스어로 세계를 뜻하는 이름이다. 12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이븐루시드의 곁에서 가정부 겸 연인으로 함께 살게 되었다. 2년 8개월 28일 사이에 세 번이나 수태했고 여러 아이를 한꺼번에 낳았으며 수많은 아이들이 그녀의 자손이었다그 아이들에게서는 뚜렷한 특징이 있었으니 한결같이 귓불이 없었다.

 

이븐루시드는 12세기에 실존했던 인물로작가의 아버지는 그의 이름을 따서 살만 루슈디라 지었다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루슈디의 선조 혹은 그가 태어났던 도시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를 아우른다는 사실이다작가 또한 이븐루시드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겠다.

 

21세기의 뉴욕에 강한 폭풍우가 몰아쳤다이후 몇몇 사람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정원사 제로니모에게는 땅에서 몸이 솟아오르게 되었고그래픽노블 작가를 꿈꾸는 지미에게는 자신의 그림이 실제 형상이 되어 나타났다마법의 아기 스톰이 가는 곳에는 괴사로 죽은 사람이 생겼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는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람이었다여성 테리사는 연인의 이별 통보에 번개를 쏘아 올린다그들 모두에게는 귓불이 없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 모든 건 폭풍우로 인하여 인간 세계와 마족 세계 사이에 통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즉 웜홀 형태의 틈새가 열려 마족 세계의 흑마신들이 인류를 노예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그 자의 이름은 거마 주무르드주무르드 샤는 이븐루시드의 오랜 숙적 가잘리에 의해 호리병에서 천년 만에 깨어났다마치 알라딘의 램프에서 지니처럼틈새가 생겨 다시 인간 세계로 온 두니아는 죽은 이븐루시드를 만나 그의 소원즉 자신들의 후손들인 인간들을 멸망에서 구해달라고 한다마족의 진니아 혹은 지니리번개 공주 두니아는 기이한 능력을 가지게 된 인물들을 만나 이 전쟁에서 인간들을 구하고자 한다.

 


 

 

소설의 시작 부분과 마족과 인간 세계 사이에 틈새가 생겼을 때부터 다시 나타난 이븐루시드와 그를 무너뜨린 적수 가잘리는 철학자다이븐루시드가 이성논리과학에 중점을 둔 철학자라면 가잘리는 그 모든 철학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표현했다즉 종교에 기반을 두고 철학의 세계를 탐닉한 철학자였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곳이다여기서 우리는 일찍이 가잘리가 거마 주무르드에게 단언했던 말이 틀렸음을 입증했다두려움은 결국 사람들을 신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못했다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고두려움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비로소 신을 폐기처분할 수 있었다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장난감을 내려놓듯이혹은 젊은 남녀가 부모의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당당히 새 가정을 꾸리듯이벌써 수백 년째 우리는 그런 행운을 누리며 산다. (410페이지)

 

이로써 살만 루슈디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종교가 가진 힘그로인한 전쟁의 역사그가 몸소 체험했던 부분이기도 하였다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종교가 없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우리는 그렇게 살고 늙고 죽는다라는 문장이 와닿는다대체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모국을 향한 그의 애정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악몽이라도 좋으니 꾸게 되기를 소망하는 문장에서 버리고 싶되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떠올려 본다그러한 간절함 들이 이처럼 소설이 되어 나타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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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2-15 1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놓았습니다. 4월 말에 읽을 거 같네요.
별점이 좋아 기대되는 걸요!!!

Breeze 2021-02-19 11:25   좋아요 1 | URL
저는 워낙 이야기를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Falstaff 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하네요. ^^

레삭매냐 2021-02-15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다만 책을 다시 집어 들어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한 30% 정도 읽었네요.

기존 루슈디의 스타일과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계전쟁! 쫄깃하네요.

Breeze 2021-02-19 11:26   좋아요 0 | URL
판타지 같아서 더 재미있게도 읽었습니다.
내면에 숨겨진 것들은 충분히 짐작되고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