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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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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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문득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네본다. 내가 원해서, 내 선택으로 지금에까지 왔다. 만약 누군가의 강력하고도 계획적인 상황하에 갇혀 선택이라는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산다면 어떨까. 이 세상에는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를 납치하여 감금상태로 자기의 아이를 낳게 한다거나 몇십 년 동안 감금 상태로 지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본 소설 『룸』에서도 그러한 내용을 다루지 않았나. 나는 모드 쥘리엥의 에세이도 그것처럼 그럴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아버지는 친아버지다. 자기가 원하는 딸을 만들겠다는 비뚤어진 생각으로 전기가 흐르는 철책이 있는 집에서 감금하다시피 딸을 키웠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그 소녀의 이야기다. 서른네 살의 루이 디디에가 아마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섯 살 자닌을 아버지인 광부의 허락을 받고 데려왔다. 자닌을 학교에 보내고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그 이유는 완벽한 아이를 위한 교사로서의 역할을 위해서였다. 자닌이 대학을 졸업후 준비가 되었다고 여겼을때 자신의 아이를 낳게 했다. 그 아이가 바로 모드 쥘리엥이다. 



세 살때부터 육중한 철책 문이 있는 집에서 갇혀 살게 되었다. 교육은 엄마로부터 받았으며 문학과 글쓰기, 철학 등을 배웠다. 아버지에게서는 독일어를 배웠고 모든 악기를 연주하길 바랐기에 피아노, 아코디언 등을 음악 선생을 통해 배웠다.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게 각종 훈련을 받았다. 정원 일과 지하실, 혹은 청소 등을 스스로 해야 했으며 인부를 불렀을 때도 그들을 도와야했다. 모드의 아버지는 프리메이슨의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으며 모드를 '선택받은 인간'  혹은 '우월한 존재' 즉 초인으로 만들고자 했다.   



인격적, 육체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보통은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법이지만 모드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어머니 또한 하나의 피해자였으니 모드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을때 아버지의 질책을 두려워했다. 오히려 감시자에 가까웠다. 이 부분에서 놀란 점이 모드의 어머니 또한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에게 교육되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동물을 키우게 했다는 점일 것이다. 셰퍼드 린다를 키우게 해주었으며 말과 오리 등을 키우게 해주었다. 부모님에게 받지 못하는 애정을 동물로부터 채웠다. 모드에게 사랑하는 동물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견디지 못했으리라.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한번 놀랐다. 왜곡된 사고로 인하여 모든 것에 준비된 아이를 만들어가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충분히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음에도 나가지 못했던 모드의 어머니 또한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모드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었음에도 누구하나 도우려하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웠다. 모드에게 몰랭 선생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 집에서 갇혀 지내야 했을까. 




모드 쥘리엥의 에세이 내용이 너무 터무니없어 나는 자꾸 소설을 읽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위해 모드 쥘리엥이 했던 모든 행동들이 감탄스러웠다. 누구도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할 것이다. 미리 지쳐 모든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모드를 지탱해 준 것이 문학과 음악이었다. 부모님 몰래 침대 밑에 숨겨두고 읽었던 책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은 대체로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조그만 방 하나가 세상의 전부였던 『룸』의 주인공도 걷는 연습부터 했던 것처럼. 태어나서부터 세상의 중심이었던 가족과 집으로부터 탈출했음에도 적응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비로소 자유로워졌음에도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심리치료의 도움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처럼 이제 모드는 심리치료사의 길을 걷는다. 그럼에도 이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시간만큼 고통스러운 기억때문에 힘들었을 거라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몸이 갇혀있는 것과 마음이 갇혀있는 건 다르다. 마음의 감옥때문에 힘든가. 그럼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모드 쥘리엥의 이야기를 읽고나면 우리 안에 갇혀있는 마음으로부터도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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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2-10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Breeze 2020-12-16 10:54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서니데이님도 서재의달인 축하드리고 연말 즐겁게 보내세요. ^^

scott 2021-01-09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선뜻 책장을 펼치기 힘겨울만큼
한아이에 인생을 어떻게 뒤흔들고 망쳐놨는지,,,,,

브리즈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reeze 2021-01-11 11: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중얼거리고 읽었습니다. ^^

얄라알라 2023-01-29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부터 알라딘 서재에서 이 에세이 리뷰를 볼 때마다 꼭 봐야지 했다가 드디어 2023년 읽고, breeze님의 리뷰를 다시 읽으니 더 와닿습니다! ^^
 
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미우라 시온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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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카모메 식당>을 보았다. 일본 영화나 일본 소설을 가끔씩 찾는 이유가 서정적인 면이 좋아서이다. 별다른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듯 한데 그것에서 느끼는 감정은 따스함이다. 모르겠다. 그들의 무심함을 따뜻함으로 느끼는지도. 타인에 대하여 무관심한듯 보이는데도 또 어떻게 보면 굉장히 따스하게 대하는 것 같다. 다만 표현하지 않을 뿐인가. 일본인들 특성상 타인에게 폐가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던데 그런 의미에서 과도한 감정 표현을 삼가는지도 모르겠다. 


미우라 시온의 소설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그의 소설 또한 잔잔함과 은근한 따스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간 읽은 미우라 시온의 작품이 다 좋았다. 이번에 살림출판사에서 나온 『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또한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좋았다. 이성 보다는 오히려 동성의 관계에서 서로 의지하고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같다. 




미우라 시온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야기한다. 네 명의 여자가 한 집에 산다. 일흔을 앞두고 있는 쓰루요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걱정고민이 없는 소녀처럼 산다. 37세의 자수 작가인 사치는 그 직업을 취미 생활로 여기는 쓰루요의 외동딸이다. 사치와 동갑내기 친구인 유키노는 기억나는 순간부터 거의 혼자 생활해 왔다. 유키노와 함께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다에미는 스물일곱 살로 이 집안의 평균 나이를 내려놓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네 명의 여자가 한 집안에 모여 산다. 다만 마키타가의 수위실에 야마다 씨가 사는데 그가 유일한 남자다. 


쓰루요와 사치에게 아가씨라 부르는 야마다 씨에게는 아직 유키노와 다에미랑 함께 산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에미의 전 남친이 스토커처럼 찾아오자 그때서야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약간은 무심한 사람들이다. 야마다 씨는 쓰루요와 사치는 자기가 지키겠다고 곧잘 말하곤 했다. 쓰루요의 딸인 사치는 자수 작가다. 하루종일 바늘로 자수를 놓으니 밤낮이 바뀌기도 한다. 사치가 유키노를 알게 된 경위도 자수 작품을 가지고 손님을 만나러 갔다가 잘못 알아봐 연락처를 주고 받다가 친해졌다. 유키노가 머물던 작은 집에 누수가 생겨 사치네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마키타가에는 잠겨진 방이 하나 있었다. 쓰루요는 열쇠를 잃어버렸다며 잠긴 방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아무도 없는 날 유키노가 열리지 않는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박스 안에 앉아 있던 갓타 미라를 발견했다. 쓰루요가 사치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 사실을 숨겼나 의심했다. 나중에야 갓타의 비밀의 밝혀지는데 그 와중에 까마귀 젠푸쿠마루들이 나와 그들만의 언어로 그간의 사정을 말한다. 


다녀왔다고 말하면 어서 오라고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 잔소리가 심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이런 공간을 '우리 집'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중략) 다에미는 자신을 포함한 네 사람을 미개척지에서 특별한 관습을 유지하며 사는 부족같다고 여겼다. (221페이지)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유키노와 다에미가 마키타가에서 머물며 이곳을 '우리 집'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식사 준비나 화장실 청소 등은 당번을 정해놓고 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모두들 한 마음이 되어 보호하려 든다. 혈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런 게 가족이 아니겠는가. 유키노가 머물던 2층 방에서 누수가 되어 물이 쏟아지자 그녀에게 사치는 자신의 방 한켠을 내주어 유년시절 단짝처럼 한 방에서 지내게 한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걸듯 오래오래 함께 살자고  말한다. 언젠가는 마키타가에서 나갈지도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긴다. 




끝내 나오지 못했던 말과 표현되지 못한 마음은 어디로 갈까. 너희 인간을 관찰하다보면 우리는 이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허공으로 사라져 두 번 다시 소생하지 못하는 마음과 말들. (159페이지)


소설에서는 까마귀들이 쓰루요와 간다 사치오 부부에게 얽힌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판타지에 가까운 전개다. 또한 여자들만 사는 집에 도둑이 드는데 그때 하필이면 아가씨를 지켜주겠다고 했던 야마다 씨는 감기로 앓아 누워있었다. 도둑이 사치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을 때 도와주는 신비한 존재가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갑자기 나타나 사치를 구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 일을 기회로 사치는 아버지가 자기를 지켜주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부재하였던 아버지가 나타난 것 같은 느낌,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준 느낌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관계임에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모두 하나가 되어 끈끈한 정을 느끼게 했던 소설이었다. 나이 든 배우들이 나와 같이 사는 프로그램이 있다. 친구들이 가끔씩 이야기하는데 늙어서 한 달이나 혹은 두 달 정도 함께 모여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혈연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가 나타난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서로 마음을 맞춰가며 조금씩 양보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일이 괜찮아 보였다. 이런 형태의 가족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나오지 않을까. 



#그집에사는네여자  #미우라시온  #살림출판사  #책  #책추천  #책리뷰  #소설  #소설추천  #일본소설  #일본문학  #가족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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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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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를 읊조렸다. 이해되지 않은 시 말고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시. 시를 읊조리다가 이내 시를 노래로 만든 곡을 들었다. 가사가 된 시는 어쩐지 슬퍼졌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는 이제 스러지고 노래만 남았다. 노랫말이 살아 움직인다.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시. 이 계절에 어울리는 시였다. 외롭고 슬픈 세상에 단비처럼 내려와 마음을 적셨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45페이지, 「부치지 않은 편지」 전문)



가수 김광석이 부른 동명의 노래를 몇 번이고 들었다. 예전에는 생각없이 김광석의 목소리로만 들었다면 이제는 영화 <1987> 속의 상황들이 떠올라 눈물이 차오른다. 정호승 시인이 1987년 1월 14일에 일어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죽음을 생각하며 쓴 시다. 영화를 보며 얼마나 아파했던가. 시대가 가진 고통에 스러진 인물, 그 인물의 죽음을 생각하며 쓴 시가 노래가 되어 사람들에게 불려졌다. 사연을 알고 나니 이 시가 가진 고통의 근원이 생각난다. 



노래하는 가수들이 종종 시를 빌려다 썼다. 정지용의  「향수」 뿐만 아니라 정호승 시인의  「이별노래」도 가수 이동원이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때는 그저 가수 이동원이라는 이름만 기억했을 뿐 가사를 쓴 시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부치지 않은 편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여 꽤 많이 불렀음에도 정호승 시인의 시라는 사실은 오늘에야 알았다. 

 


시인은 60편의 시와 산문을 엮어 시가 있는 산문집 형태의 책을 펴냈다. 오늘의 시인을 있게 한 시 한 편과 시를 쓰게 된 동기나 주변 이야기를 쓴 산문이 짝을 이루었다. 시와 산문이 마음속으로 들어와 어루만져 주었다. 시를 읽고 이어 산문을 읽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15페이지,  「산산조각」 전문)


 

불가에서는 '내일은 없다, 미래는 없다'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라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시인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단 한 편의 시로  「산산조각」을 꼽는다. 아끼던 물건이 산산조각이 난 상황을 그려본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마음이 아파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말한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삶이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될 일'이다. 이처럼 내가 생각하기에 삶도 달라진다는 말일 것이다. 내일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사는 것. 그것처럼 중요한 게 있을까.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닌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한 일이라고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닌 일밖에 없다

그분의 신발에 묻은 먼지로 밥을 해 먹고

그분의 신발에 담긴 물로 목을 축이며

잠들기 전에 개미처럼 고요히 무릎을 꿇고

그분의 신발에 입 맞춘 일밖에 없다

언제나 내 핏속을 걸어다니시는 그분

내 심장 속을 산책하다가

심장 속에 나무를 심으시는 그분

그 나무가 자라 꽃을 피우지 못해도

그 나무의 열매가 되어주시는 그분

그분은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신은 신발 그대로 따라오라 하셨지만

나는 언제나 새 신발을 사러 가느라

결국 그분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늘도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닌다

그분의 발에 밟혀도 죽지 않는 개미처럼

그분의 발자국을 들고 다닌다

발자국의 그림자를 들고 다닌다  (551~552페이지,  「신발」 전문) 



유년 시절의 검정 고무신과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다.  「신발」이란 시를 읽는데 울컥해졌다. 아마 엄마가 기억나서일 거다. 누구에게나 가장 애틋하고도 아름다운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시였다. 한 편의 시가 이처럼 다가오는 일은 내가 그 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에야 가능한가 보다. 전에 읽었던 시인의 시와 글은 어쩐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 읽은 시가 있는 산문집이 마치 처음 시인을 접한 것처럼 감동적이고도 따스하다. 



시인은 시가 있는 산문집에서 60 편의 시를 추렸다.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보내는 강렬한 마음을 담아 쓴 시가 많았다. 시를 읽고 보니 그 감정이 그대로 보여지는 듯했다. 법정 스님과 정채봉 작가에 대한 인연과 애정 뿐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이 한 편의 시와 함께 실려 있었다. 시인은 가톨릭 신자인데도 종교적으로 구분짓지 않았다. 영주 부석사에서 부처님께 엎드려 삼배를 올리고, 화순 운주사의 와불 님을 뵈러가기도 하고 저 멀리 북인도 쪽의 불교 성지 순례도 다녔다. 그곳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깨져 안타까움을 표현한 시가  「산산조각」 이다. 이처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었기에 그가 쓴 시도 따스하고 다정다감하였다.  



운주사의 와불 님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보았던 게 벌써 몇 해 전이다. 그곳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졌다. '사람이 절을 찾아간다는 것은 복을 지으러 가는 일이다. 복을 짓는다는 것은 자신과 이웃과 세상 만물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는 일이다. 따라서 복을 짓는 일과 남을 사랑하는 일은 같은 일이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만 다를 뿐 진리는 늘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386~387페이지) 라고 시인은 말했다. 몇 달 전 제천의 배론성지에서 촛불을 밝혀 소원을 빌고 마음의 평안을 느꼈던 것처럼. 몇 주 전 서울의 조계사에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처님께 금박을 입혔던 것처럼. 나도 복을 짓기 위해 다시 절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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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30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재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팝이다. 팝을 방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알람을 맞춰놓고 들을 정도로 열혈 애청자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에 두 개의 프로그램을 듣는데 그게 '배캠'과 '골디'다. 모든 음악 장르를 좋아하긴 하지만 최근엔 팝에 빠져있는데 다양한 나라의 음악을 듣는 시간이 좋다. 그래서 래퍼인 스윙스의 에세이가 나왔다하여 궁금했다. 랩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것을 부르는 뮤지션의 이름만 조금 알 뿐이어서 어떤 인물인지, 어떤 음악을 하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이번 기회에 스윙스의 세계를 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주황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HEAT'라는 글자가 있는 깔끔한 표지다. 별다른 디자인이 없기 때문에 심플하면서도 'HEAT'의 글자가 더 눈에 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웹사이트에서 스윙스의 음악을 찾아 들어보기 시작했다. 호소력 있고 전달력이 좋은 래퍼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쇼미더머니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최근엔 직접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도전 정신이 좋다. 사람은 어느 접점에 다다르면 안주하기 마련인데 그는 심사위원의 자리에서 다시 할 수 있다는 도전을 하였다. 


나는 이 책을 래퍼 스윙스보다는 글쓰는 문지훈으로서 보았다. 처음엔 그의 글에 적응하기가 조금 어려웠으나 읽어가면서 차차 적응되어 그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음악인으로서 스윙스보다는 인간 문지훈이 건네는 삶의 다양한 생각들이었다. 


나는 살면서 성공에 대한 마음이 크지 못했다. 열망이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스윙스의 글에서 느껴지는 건 성공에 대한 마음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음악을 하거나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생각이 강할 것 같다. 시작을 했으므로 끝까지 가봐야한다는, 그래서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큰건 어쩌면 당연하리라. 성공을 향한 노력이 성장의 동력이 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프다, 두렵다, 피하고 싶다.

하지만 더 큰 것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성공한다.  (88페이지)




내 삶은 나만 살 수 있는 것.

너무 독특해서 누구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것.

그리고 어차피 누구랑 비교하려고 해도

결국 우린 우리를 가장 많이

좋아하고 신경 쓰는 존재. (157페이지)


옛날 사진을 보고 쓴 글이다. 내 삶은 나의 선택에 달렸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 나타난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그 다음에 다시 도전했을 때는 가능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많은 이들과 비교 당하기도 하고 비교 하기도 하는데 그러지 말자고 해놓고도 무심코 그렇게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 상관없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후회 같은 건 덜할 것이다. 


글을 보면 마치 랩을 하는 듯 하다. 그걸 라임이라고 하던가. 아마 랩을 해서인 듯 한데 문장은 경쾌하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스윙스의 얼굴과 음악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그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성장하며 살아가리라는 건 분명하다. 쇼미더머니 시즌9에서의 그의 도전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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