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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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애쓴다. 그렇지만 아무리 숨기려해도 드러내는 사람이 꽤 많다.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있는 포커페이스는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직장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자기 감정 표현하는데 혹은 숨기는데 자신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진짜 화나는 일이 생겼을 때는 드러나고 말더라. 말소리도 떨리고, 손도 달달 떨리더라. 심지어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더라. 평소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여지없이 드러나는 걸 보고 마음을 숨기는 것보다는 제대로 표현해야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포현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자신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삐진 줄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만약 뇌에 문제가 생겨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만약 내가 그렇다면, 내 자식이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 뇌의 변연계에 속하는 편도체(amygdala)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편도체가 아몬드 모양을 닮아 이름도 이처럼 부른다. 그렇다. 선윤재는 머리속의 아몬드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기쁨, 슬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윤재는 감정 표현을 엄마에게 주입식으로 배웠다. 다른 아이가 웃으면 같이 웃고, 최대한 짧게 대응하는 방법들을 배웠다. 엄마는 윤재가 아이들 틈에서 보통의 아이처럼 평범하게 자라길 바랐다. 윤재는 할머니로부터 예쁜 괴물이라 불렸는데, 괴물이 또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윤재가 또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를 하려면 그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은 사건의 현장에 그가 있었다. 엄마와 할멈,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구세군 행진의 선두에 있었던 50대 아저씨 둘, 그리고 경찰 한 명, 마지막으로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였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소년 선윤재였다. 윤재의 시선으로 그 날의 사건을, 윤재의 감정을 들여다 본다.

 

가장 행복했던 때 비극이 일어나곤 한다. 윤재네에게 일어났던 일들도 그런 것의 일환이었을까. 마치 불행이 행복을 시기하는 것처럼, 가장 행복하게 웃고 떠들었던 때, 마주 잡은 손, 햇살같은 미소를 지었던 그들에게 다가온 불행은 한 가족을 나락으로 빠뜨렸고, 감정이 없는 소년은 자신을 지켜주던 할멈과 엄마를 잃었다. 물론 엄마는 죽지 않았다. 그날의 사건에서 한 명의 부상자가 엄마였다.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고, 엄마가 하던 헌책방을 윤재가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엄마를 찾아가 엄마를 보고 조금 있다가 집으로 왔다. 그리고 학교에 갔더니, 아이들은 자기의 눈앞에서 엄마와 할멈이 죽었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윤재를 다그쳤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고 윤재는 진짜 괴물을 만나게 된다. 윤 교수가 잊어버렸던 아이를 되찾았지만 사정이 있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대신 곤이라는 아이의 역할을 했던, 그 아이. 머릿속의 아몬드의 크기가 작아 무표정했던 윤재와는 달리 곤은 온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다. 누군가를 때렸던 것도, 자꾸 엇나가게 행동했던 것도 자신을 보아달라는 몸짓이었다는 걸 윤재는 알았다. 그래서 책방으로 곤이 찾아오는 걸 반겼는지도 몰랐다. 곤에게 유일하게 질문을 했던 아이가 윤재였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는 사람. 어떻게 살아왔는지 곤의 입장에서 물어봐줄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따스한 시선이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관심을 받고싶었던 것인데, 어른들은 종종 알아채지 못한다. 아이가 무엇을 바라느냐 보다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것만 원하는 것이다.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아이가 한 괴물을 만나면서 조금씩 감정을 갖게 된 이야기이다. 곤과 윤재의 관계를 볼 때 순간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지만 한 사람 때문에 관계는 아주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관계에서 단 하나의 친구로 변하는 순간이다. 단 하나의 친구와 만나면서 진짜 감정을 갖게 되는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곤과 윤재에게서 사람과의 관계를 배웠다. 누구에게 서운하다거나 말하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서고 내가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 감정의 표현도 습득하는 것이리라. 아니다. 마음이 먼저 다가서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그를 구해야겠다는 감정이 한 사람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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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정원
서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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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글만 보고 시대물인가 해서 아주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서야 작가의 책이기에 읽고 싶어 구매한 책이다. 읽어보니 현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만 무술의 경지에 오른 한 가문의 수장인 주인공 답게 고전과 현대가 교묘하게 섞인 책이랄까.

 

중국의  사천, 첸 가문의 수장이 스물이 되면, 방계의 열 살된 여자아이들은 선을 보여야 했다. 후명 또한 열 살이 되었을 때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붉은 정원이 있는 곳에 발을 들였다. 다만 그 방 안에는 부모와 함께 들어갈 수가 없고, 오직 여자 아이만 들어가야 한다. 또로롱 또로롱 우는 새 소리가 먼저 들렸던 후명은 새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고, 정원이 붉은 꽃이 가득 피어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수장에게 선택된 여자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그와 결혼을 해야 했다. 가문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현재의 한국, 프랑스 자수를 전공한 후명은 무척 조용한 성격이다.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선을 보러 가게 되는데, 그곳에 지윤찬이 있었다. 원래는 아버지의 사업체에서 일하는 동생이 보기로 했지만, 바쁜 일정 탓에 작가인 윤찬이 가게 되었던 것. 말없이 앉아 있는 후명이지만, 윤찬은 그녀의 침묵이 싫지 않았다. 그가 시간이 날 때마다 후명의 공방으로 찾아오게 된다. 후명의 공방 바로 옆에서 가게를 하는 인이 그녀의 머리를 흩트리는 장면이 눈에 거슬린다. 인은 전보다 더 자주 후명에게 찾아오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다정스럽게 대한다. 후명과 함께 일하는 서정은 윤찬과 잘해보라고 하고, 그 무엇에도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내세우지 않는 후명이 궁금해졌다.

 

첸 가문의 방계들은 모두 가문의 도움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가문의 도움을 받았던 후명은 어머니에게 그것을 거절하게 한다. 후명에게 첸 가문의 수장이 찾아오며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스무 살에 단정원을 찾았던 후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첸운과의 기억을 봉인했던 것일까. 후명에게 다가오는 첸 공과 그에게서 멀어지려는 그녀였다. 그럼에도 그를 향하는 마음은 접어지지 않는다. 슬프고 아릿한 눈빛을 띄게 된다.

 

나는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밤은 여전히 길고, 나의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126페이지)

 

 

 

 

문장들이 깔끔했다. 마치 후명의 성격처럼.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글의 묘미 때문에 작가의 문장들을 읽는 것이 좋았다. 소설에서는 유달리 중국 고전 시가 자주 등장한다. 첸운과 담후명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 시들처럼 적절한 게 없었다.

 

첸운의 신물인 쯔요에게 선택된 후명. 운의 선택이 아닌 순전히 쯔요의 선택으로 단정원의 여주가 결정되었다. 가문의 방계에서는 아직 여주가 선택되지 않은 걸로 보고 가문의 딸들은 첸에게 선택받고 싶어한다. 후명의 창가에 놓아졌던 자기 새가 하나씩 금이 가 깨지고, 그 속에 들어있던 깃털은 쯔요에 의해 첸에게 전해진다. 봉인했던 그녀의 기억이 하나씩 돌아오는 시점이 된 것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잔잔하다. 그들의 말투, 상황,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아마 문장들 때문에 고전 소설을 보는 듯, 마음을 가다듬게 했다. 키스씬이나 애정씬은 좀더 들어있어도 되었을 것을. 이것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바람빠지는 한숨 소리가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은 고전적인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은행나무에 걸린 장자』의 재미와 로맨스를 기대했으나 그보다는 살짝 밋밋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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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술 - 작가들의 이유 있는 음주
올리비아 랭 지음, 정미나 옮김 / 현암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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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술을 마실까.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작가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술은 작가들의 문학작품에 어떤 의미였을까?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 아주 간단한 이유는 사람과의 만남을 더 즐겁게 하기 위해 마신다고 봐야 한다. 건배하고, 기분이 좋아지니 저절로 많이 웃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색했던 사람과 닫혔던 마음도 어느 정도 열린다고 봐야하지 않겠나.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 이처럼 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만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의존증으로 본인을 포함해 가족들까지 힘든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내 가족중의 한 사람도 알코올 의존증으로 입원했을 정도였다. 술이라면 질색을 할 만도 한데, 나도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다. 과음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어떨 때는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술을 왜 마시는 걸까.

 

이러한 질문을 건넨 작가가 있다. 영국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올리비아 랭은 술을 사랑한 미국 현대문학 거장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했다. 작가에게 술이 미치는 영향, 알코올 의존증에 있으면서도 훌륭한 작품을 써냈던 작가들을 이야기한다. 작가들의 어린시절, 어떠한 계기로 술을 마시며 알코올에 의지해 제대로 된 일상을 살 수 없었지만, 그러한 마음들을 작품속에 녹여낸 그들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아마 레이먼드 카버의 『풋내기들』 이었던가, 『대성당』이었던가. 그 책을 읽을 때 작품속에서 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꼭 작가의 이야기인것만 같아 검색해 본적이 있었는데, 그가 알코올 의존증이었으며 그로 인해 고통받았다는 글을 읽었다. 알코올 의존증에 대한 치료를 받던 중 쓴 글이었다는 것. 출판사 편집자가 대부분의 글을 과감하게 삭제해 출간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이야기는 『작가와 술』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내가 읽었던 책은 편집자가 과감하게 편집한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이 아닌 편집을 거치지 않은 책이었다.

 

레이먼드 카버 뿐만 아니라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또한 술을 사랑한 작가였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의 작가 테네시 윌리암스, 『팔코너』의 존 치버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았다.

 

 

 

저자는 이들 작가들이 머물렀던 곳을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작가들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말하는 형식이다. 예를 들면 뉴올리언스에서 머물렀던 테네시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왜 술을 마시게 되었을까. 어떤 작가는 어린 시절을 망가뜨렸던 것으로 부모의 폭음과 자살이 이유가 되기도 했다. 매일 폭음을 하는 부모, 술을 마시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혹은 다른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술을 마신 부모를 피해 숨을 장소가 필요하다. 또한 술로 인해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으로 자식을 버리다시피 방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를 우리는 뉴스에서 혹은 영화나 책 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끊임없이 부모와 다르게 살겠다고 알코올에서 도망을 쳐보지만 결국엔 알코올에 의지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훌륭한 문학 작품을 쓴 문학계의 거장들이지만 그들도 부모 또는 배우자와의 불화, 자살 혹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 상황을 피해보고자 술을 마셨고, 알코올 의존증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존 치버의 경우에는 어머니에 대한 부재와 애착이 알코올 중독을 부르지 않았나 싶다. 알코올을 끊기 위해 시설에도 들어가 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알코올 의존증을 이겨내고 훌륭한 작품을 써냈던 것. 더이상의 불행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바랐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 속에는 작가의 생각들이 투영된다. 그가 글을 쓰는 시기에 술을 마셨다면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을 것이고, 자살을 생각했다면 끊임없이 자살을 하려는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식이다. 그럼에도 그런 글을 썼던 건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가족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문학계의 거장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익한 작품을 읽었다.

 

알코올에 얽힌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문학계의 거장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시한번 알코올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술을 사랑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아야겠다. 레이먼드 카버의 『풋내기들』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혹은 영화로 보았던 『무기여 잘있거라』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그들이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감정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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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9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9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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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를 처음 읽었던게 『스노우맨』이었다. 눈사람이라는 어린시절의 동화를 강렬하게 비틀어 심장을 쫄깃하게 했던 소설이었다. 이 작품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요 네스뵈 작가의 이름이 부상했고, 이어 그의 작품들이 쏟아졌다. 요 네스뵈라는 작가의 북유럽 감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한없는 사랑을 주는 해리 홀레라는 인물에 빠졌다고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보면 해리 홀레라는 인물이 썩 매력적이지는 않는다. 일단 알코올 중독자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력반 경찰로서의 역할과 능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나지만 알코올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찰로서의 긍지와 사건 해결의 능력때문에 그의 매력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아마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모아보니 아래 사진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작품 순서는 조금 다르지만, 『데빌스 스타』와 『스노우맨』의 사이에 낀 『리디머』가 곧 출간된 예정이다. 그래서 기다리는 자의 가슴은 벌써부터 심장이 쿵쿵 댄다. 『레오파드』의 다음 작품인 『팬텀』은 『스노우맨』에서 살인범때문에 죽을 위험에 처했던 라켈이 무사히 살아 남자 그녀는 아들 올레그를 데리고 멀리 떠나버렸었다. 이에 상심한 해리 홀레 또한 홍콩에서 그와 어울리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가 다시 올레그 때문에 그의 본거지 오슬로로 돌아오게 되었다.

 

모든 시리즈가 그렇듯, 여태 강력반 형사 생활을 해오던 해리 홀레도 『스노우맨』에서 손가락을 하나 잃고, 『레오파드』에서는 얼굴의 절반을 가르는 흉터를 지니게 되었다. 또한 『스노우맨』에서 아직 어린 아이였던 올레그가 어느새 열여덟 살이 되었다는 것. 올레그가 마약 중독자가 되어 살인범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구스토를 죽였다는 살인범으로 말이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올레그가 마약중독자가 되었다니 해리의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에게는 자신의 모든 마음을 털어놓았던, 해리에게는 아들과 다름 없었던 올레그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마약 중독자를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외국의 소설에서는 종종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강력하게 단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약물이나 술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마음이 여리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약물이나 술에 의지해 결국엔 자신의 삶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올레그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죽을 위험에 처했다가 무사히 살아남고 친아빠처럼 여겼던 해리 홀레와 헤어진 마음을 마약으로 견디고자 했을 가능성이 많다. 외로웠던 그에게 다가온 친구, 외로움을 이기고자 마약에 빠지게 되었던 경우다.  

 

해리가 감옥에 있는 올레그를 찾아갔을때 올레그가 했던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해리를 지키고자 입을 다물었던 올레그. 그런 올레그를 지키고자 머나먼 홍콩에서 찾아온 해리 홀레. 그렇지만 해리는 사건이 해결되면 언제든지 바로 떠날수 있게 호텔에 짐을 풀지 않았다.

 

 

해리 홀레 특유의 수사를 시작했다. 사건의 현장을 방문한 해리.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건 장소를 둘러 보았다. 과학수사과 요원들이 하는 시체가 누워있던 장소부터 시작해 주변으로 확대해가는 방식보다는 그는 먼저 전체를 둘러보는 방식을 좋아했다. 거기에서 그는 형사나 과학수사 요원이 놓칠만한 것을 건져내곤 했다. 그는 뇌를 최대한 가동시켜 사건 장소를 눈에 담는다. 사건 장소는 그의 뇌를 자극시켜 머릿속이 깊이 각인되어 시간이 지난 후에 언제든 불러올 수 있다.

 

해리는 올레그가 구스토를 죽였다면 그를 왜 죽였는지, 동기가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 올레그의 무죄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죽였는지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즉 '의심'으로 시작된 사건 수사였다. 해리의 마음 저변에는 올레그가 죽이지 않았을 거라는 가정하에 수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 스스로 느꼈던 바 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 수사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명철한 두뇌를 가동시키는 그이기에 사건을 재조사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요 네스뵈의 소설 답게 결말 부분의 반전이 놀랍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하지만 한가닥 의심을 품었던 게 사실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노르웨이는 작은 동화의 나라' 라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스노우맨』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노르웨이는 북유럽 동화의 나라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신종 마약을 새롭게 만들어 판매해 돈을 취하고, 마약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지옥으로 빠지는 결과를 낳는다. 동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이처럼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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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1-1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사야겠네요 ㅠㅠㅠㅠ

Breeze 2018-01-10 12:03   좋아요 1 | URL
책 재미있습니다. ^^

물감 2018-01-1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 모으셨네요. 두께의 압박으로 한번도 못읽었는데 대단하십니다😅

Breeze 2018-01-10 14:02   좋아요 1 | URL
해리 홀레 시리즈를 워낙 좋아합니다. 그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거든요. ^^

2018-01-1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1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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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좋다. 그 무엇보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타인의 삶을 보고, 소설 속에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경험한다. 내가 꿈꾸었지만 실행해보지 못했던 마음속의 꿈.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것들의 대리 경험이랄까. 나는 소설 속에서 유럽을 여행하고, 새로운 남자와 사랑을 하고, 전혀 내가 생각지 못했던 삶을 산다. 마치 아름다운 꿈을 꾼 것처럼 빠져 있는게 좋다고 표현해야 할까. 내가 소설을 읽는 일이 그렇다.

 

소설을 읽는 일 외에 한동안 심리학에 빠져 있었다. 심리학 관련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고, 프로이트 심리학에 더 심취해 있었다. 작가들이 쓴 문학과 심리학에 대한 책도 자주 읽었고, 어릴적 트라우마를 심리학으로 이겨냈다는 작가의 글도 찾아 읽었다. 수많은 문학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종종 심리학을 경험한다.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를 겪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작품들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는 것. 문학과 심리학이 이처럼 끈끈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정여울의 신작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는 마음을 다독이는 글이다. 내 안의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었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들과 대입해 볼 수 있다. 트라우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컫는 말이다. 어릴 적 상처때문에 마음 속에 자리잡은 트라우마는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힘들게 한다. 저자는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내면 아이를 다독이라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야 제대로 치유할 수 있다.

 

내 안의 괴물과 싸워 이기기 위해, 우리는 '그 무엇과도 용감히 대적할 수 있는 내안의 힘'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이 아직 느끼지 못할 때조차도, 우리 무의식 안에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기 안의 현자'가 있다.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고, 모든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자기 안의 가장 용감하고 지혜로운 멘토가 있다. 바로 그런 자기 안의 멘토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내적 성장의 황금열쇠다. (14페이지)

 

 

 

 

 

 

작가 정여울은 서른 편의 작품을 소개하며 심리학에 연관된 문학 작품을 말한다. 읽었던 작품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을 느끼며 우리는 우리 안의 내면 아이를 들여다 본다. 제목에서처럼 늘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엔 내 안의 내면 아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는다.

 

나에게 콤플렉스가 있다고 고백하는 순간 상처가 반은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추려고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는 줄곧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썼다. 타인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의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겠는가.

 

 

 

나와 닮은 상처를 지닌 타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상처는 흠칫 놀란다. 타인의 상처라는 거울에 비친 내 상처의 투명한 민낯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나와 닮은 상처를 지닌 사람에게 이끌린다. 그것은 매혹와 증오의 양가감정이기도 하다. 내 상처의 데칼코마니 같은 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고 싶은 충동과 결코 그 상처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충동이 격렬하게 사투를 벌인다. (92페이지)

 

우리 문학 작품 속의 인물에 깊이 이입되는 것도 내 안의 상처를 들여다 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안의 상처와 마주하며 눈물을 흘리고 기쁨을 느끼는 것. 우리 안의 내면의 아이와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면면들을 작품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함께 말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싫으면 싫다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배워가야 할 일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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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9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1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