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없고 , 화가 난다.






















듣고 있던 라디오 진행자는 안녕, 헤어짐을 주제로 한 노래를 몇 곡 연달아 내보내고 있었다.



(사진은 D museum 의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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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보려고 시작한 Duolingo.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로는 한동안 손을 놓았다가 심심해져서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를 시작했다
독일어는 수십년 전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배운 기억이 나서 그래도 진도가 잘 나갔는데, 피아노 악보의 악상 용어 몇가지 외에 구경한 적도 없는 이탈리아어는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있다 ㅠㅠ

그래도 시험이 아니라 취미로 하는 외국어 공부는 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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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12-0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_@;;; 심심해져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시는군요@_@;; 존경합니당♡

hnine 2024-12-09 11:48   좋아요 1 | URL
아이가 다 커서 집을 떠나고, 다닐 직장도 더이상 없게 되면 시간부자가 된답니다. 휴대폰으로 아무때나 어디서나 할수 있는게 게임만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정말로 재미로 합니다. (외국어가 쉽다는 말은 절대 아니고요.)

수이 2024-12-10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3개국어를!!! 능력자!!! 😳

hnine 2024-12-10 22:06   좋아요 0 | URL
3개 국어를 시도는 했지만 잘 하는 건 없어요. 그래도 여행가서 꽤 도움이 되더라고요.





페크pek0501 2024-12-2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겁게 응원합니다!!!

hnine 2024-12-21 13:22   좋아요 1 | URL
아이쿠, 감사합니다 ^^
두개의 언어를 동시에 공부하는 것은 제게는 효율이 별로 없어보여요. 한 언어에 집중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잘은 못해도 외국어에 관심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지, 다른 걸 (운동, 스포츠, 등등) 이렇게 하라면 벌써 포기했을 것 같아요.
 
더 클래식 - 눈과 귀로 느끼는 음악가들의 이야기
김호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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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김호정 기자를 한 연주회에서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첼리스트 한재민 연주회의 진행자로서 김호정 기자는 이 날 연주 곡목에 대한 자세한 소개, 그리고 연주자와 인터뷰를 매끈하게 잘 진행하고 있었다. 

중앙일보 음악 전문 기자인 그녀가 그동안 많은 음악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해오면서 인터뷰만으로 담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 최근에 책을 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책.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첫번째 파트는 "더 피아니스트", 두번째 파트는 피아니스트 외 다른 음악가를 다룬 "더 뮤지션", 세번 째 파트는 세계적으로 전설적인 음악가 네 사람을 다룬 "더 레전드". 더 레전드 파트의 네 명의 음악가와 두번째 파트의 지휘자 메켈레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음악가들인데 그중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임윤찬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TV를 통해 김호정 기자가 임윤찬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지만 이 책에는 인터뷰 내용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점은 이 책의 처음 백건우 피아니스트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바로 알 수 있던 것인데, 그 음악가의 음악 스타일, 인터뷰 내용, 몇몇 에피소드 등으로 채워졌겠지 하고 예상했던 것을 바로 뛰어 넘게 하고 있었다. 그 음악가의 스타일을 설명하기 위해서 직접 QR code를 삽입하여 지금 책에서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바로 듣고 확인할 수 있게 해놓았고, 같은 부분을 다른 유수의 음악가가 어떻게 연주하는지 비교할 수 있게 나란히 수록해놓았다. 예를 들어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구도적이고 바위같은 연주 스타일을 얘기하면서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12번의 한 부분을 백건우와 조성진이 어떻게 다르게 치는지 바로 들어볼 수 있게 하였다. 같은 작곡가의 같은 곡을 연주하는데 기술적 완성도 차이라면 모를까 특별히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이점은 임윤찬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출현과 함께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악보의 어느 부분이라는 것까지 보여주며 차이점을 집어 내어 보여준다는 것은 웬만한 전문성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김호정 기자 본인이 5살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하여, 예원, 예고, 서울음대를 거쳐 피아니스트의 길을 오래 걸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들이 모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느낌을 적절한 언어로 끄집어 내어 표현할 수 있고 글로 쓸 수 있는 것은 또다른 능력이다. 과연 전문 기자 답구나 싶었다.

피아니스트들을 만나고 또 그의 연주를 들으면 그들의 말과 음악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놀라울 정도 입니다.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사람은 음악도 똑 떨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알아채는 피아니스트는 연주에서도 그런 따뜻함이 뚝뚝 떨어집니다. 

백건우는 필요한 말만 하며 통찰을 담는 사람입니다. 음악도 그렇습니다. 뚜벅뚜벅 굵은 선으로 할 말만 합니다. 간결하지만 진심이 있고 세련된 스타일을 위해 타협하지 않습니다. (19)

손열음 피아니스트를 '피아노 위의 딕션 장인'이라는 표현도 그녀의 피아노 스타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번에 이해를 할 것이다. 음악기법 중 루바토를 독창적으로 이용하는 임윤찬의 기법을 '임윤찬 타이밍'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음 사이의 간격을 야생적 감각으로 조절하는 피아니스트, 안 들리던 음들이 튀어나온다, 멜로디 아닌 화음의 피아니스트.

아무리 주목받는 음악가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칭찬의 말만 열거하지는 않았다. 임윤찬의 경우, "약간 덜 화려하고 더 시적이었어도 좋았겠다" "재능이 빛나지만 깊어지고 성숙해질 여지가 있다"고 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앤드루 클레멘츠의 평도 함께 실었다. 

음악이 워낙 어릴 때부터 재능이 드러나는 분야이긴 하지만 요즘은 작곡 분야에까지 십대 영재들이 심심찮게 보도 되고 있다. 이들을 취재하면서 저자는 진짜 음악 재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통 음악 재능은 '음 높이에 대한 정확한 감각' 같은 것과 연관되곤 하지만 진짜 재능은 애정, 또 몰입하는 힘일 것입니다. (178)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내가 발견한 최고의 표현은 임윤찬의 연주를 '피카소'에 비유한 것이 아닐까한다. 정해진 형식에서 자유로운 시도를 하지만 그것이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구축하며 임윤찬만의 멋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단순히 클래식 음악에 대한 소개와 감상을 넘어 음악가들의 스타일을 분석한 책이다. 

전문기자의 역량이 그대로 드러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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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 - 카렐 차페크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국 여행기 흄세 에세이 5
카렐 차페크 지음, 박아람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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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을 읽고서 이 작가의 다른 책도 꼭 읽어보리라 생각했었다. 카프카, 밀란 쿤델라와 함께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3대 작가로 꼽히는 차페크의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이다. 원제 Letters from England 보다 국내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 영국 사람의 한 단면을 잘 꼬집어 표현한 제목 같아서 더 맘에 든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4년, 카렐 차페크가 영국을 방문한 데에는 단순한 관광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 런던에서 창립된 국제 펜클럽의 초대가 있었고, 원래 친분이 있던 체코의 교육자 겸 언어학자 보차들로가 영국에 유학중이었는데 차페크가 한번 영국에 방문해주기를 오래 동안 권했었다고 한다. 이 당시 체코는 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자유민주주의로의 불안한 첫 걸음을 막 띄기 시작한 때였는데, 후에 나치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면서 이 책은 금서가 되었다가 다시 출간, 다시 금서로, 복잡한 스토리를 가지게 되었다. 단순한 기행문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차페크의 정치 성향 때문이었을까? 영국을 방문한 동안 차페크의 구체적 여정과 활동에 대해서까지 알아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 책은 여행기로서의 매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본다. 

우선, 런던 거리에 대한 부분 부터 공감이 되면서 흥미가 돋는다.

노부인들이 길모퉁이에 서서 떠드는 광경을 볼 수 없고,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정처없이 돌아다니거나 점잖은 시민들이 집 앞에서 무릎에 손을 올리고 앉아 있는 광경도 볼 수 없다. 길거리나 장터의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도, 게으름뱅이나 하인이나 나이 많은 교구민도 보이지 않는, 런던의 거리는 그저 지나가는 곳이지 모이거나 즐기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거리가 훌륭한 선술집이요, 공원이며, 마을 공유지이고 집회장이자 놀이터요, 극장이고 집의 연장이며 문턱입니다. 이곳 (런던)의 거리에서는 사람이나 사물을 만날 수 없습니다. 거리는 그저 지나가는 곳입니다. (23)

내가 영국에 처음 가본 것이 1996년인데, 위의 차페크가 말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런던 하면 또 유명한 것이 박물관과 미술관인데, 차페크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뭐라고 했는가 하면,

런던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원한다면 상아 조각품이나 수놓은 담배 쌈지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뭐든지 다 모아놓았다는 말. 별별 박물관, 미술관이 다 있다) 하지만 이 세계 보물의 보고를 나서면 2층 버스를 타고 몇 시간 동안 수십 킬로미터를 달린다고 해도 아름다움과 화려함으로 기쁨을 주는 인간의 성취는 딱히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이곳의 예술은 전시관과 미술관, 부자들의 방에 있는 유리 진열장 안에 보관되어 있을 뿐 거리를 돌아다니지 않거든요. (48)


대영제국 박람회는 규모가 엄청나고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박제한 사자에서부터 멸종한 에뮤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죠. 4억 명에 달하는 유색인종의 영혼만 빠져 있습니다. 이것이 영국의 무역 박람회입니다.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유럽인들의 관심사, 그 얄팍한 표층만을 보여줄 뿐 그 아래 존재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68)

칭찬부터 하고 꼬집기다.


마담 투소 박물관에 가서 있었던 일을 읽으면서는 폭소를 터뜨렸다.

저는 실크해트를 쓴 유난히 인상적인 인형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누구인지 보려고 책자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실크해트 신사가 갑자기 움직이더니 가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오싹한 순간이었죠. 얼마 후 젊은 두 여성이 저를 한참 보더니 책자를 뒤지며 제가 누구인지 찾아보더군요. (52)

그러니까 마담 투소 박물관에서 관람할때는 신체 어느 한 부분이라도 움직이면서 관람해야할 것 같다. 


정식 인사가 오고가기 전엔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는 영국인이다.

대륙 사람들은 말을 통해 위엄을 과시하려 듭니다. 영국인은 침묵으로 위엄을 과시하죠. (58)


그가 영국의 런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쪽의 스코틀랜드와 북웨일즈까지, 도시 뿐 아니라 시골도 방문한다.

영국의 시골은 도시와 또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높은 산은 없는 대신 잘 자란 풀로 뒤덮인 언덕, 그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그것은 차페크도 인정. 하지만 이번엔 체코의 시골에서 농사 짓고 있는 차페크의 삼촌을 떠올리면서 영국의 경제 구조까지 연관시켜 생각한다. 삼촌이 영국 시골의 초원을 본다면 경작지로 써도 충분한 땅을 그냥 놀리는 것이 이해가 안될거라면서, 밀, 설탕, 감자 등의 식재료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쓰는 영국의 경제구조를 생각한다. 

잉글랜드의 시골은 일하는 곳이 아니라 감상하는 곳입니다. 공원처럼 푸르고 낙원처럼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곳이죠. (79)


캠브리지와 옥스퍼드를 방문해서는, 장식과 전통을 중요시한다는 명분아래 겉치레로 보일 수 있는 두 학교의 분위기를 이렇게 평가한다. 

이 모든 장식과 전통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곳의 목적은 학식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신사나 귀족을 양성하는 것인 듯 합니다. (86)


영국 사람들이 영국을 벗어나서도 영국 땅을 짊어다니고 있는 듯한 이유로서 섬나라라는 특성을 들어, 개방을 꺼리는 확고한 관습과 소심함때문이라고 했다. 친절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결코 이웃이 되려하지 않고 아름다운 우정을 가치있게 여기지만 오직 영국인들끼리만 친구가 되는 듯하다고. 

도와주려고 할 지언정 이웃이 되려고는 하지 않음을 알게 되기까지 그가 겪었을 싸늘함이 예상된다. 그야말로 역설의 나라라고 부를만 하다.


내가 영국땅을 처음 밟은 때는 차페크가 영국을 방문하고 72년 후였지만 여전히 그가 영국에 대해 쓴 대부분에 적극 공감하는 것을 보면 영국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말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차페크 자신이 직접 그려넣은 그림이 잔뜩 들어있다. 그림이 소박하지만 그의 글처럼 위트있다. 이와 비슷한 스페인 여행기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그가 살았던 체코, 여행기를 남긴 영국과 스페인, 세 나라가 다행히 내가 살았거나 가본 곳이라서 다행이다. 스페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썼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차페크가 Lake districts에 대해 쓴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스코틀랜드 항목에 포함시킨 것은 실수가 아닌가 생각된다. Lake districts는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잉글랜드에 속하는 지역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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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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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폐지 압축 공장에서 35년 째 일해온 한탸가 자신의 삶과 고독을 회고하며 진행된다. 

한탸는 폐지로 압축될 책들 속에서 철학, 문학, 예술을 발견하고 몰래 읽으며 뜻밖의 지적 세계를 쌓아가는 기회로 만든다. 하지만 그의 내면적 풍요로움은 외부 세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점점 더 고립감을 느낀다.

자동화 공장이 도입되어 한탸의 작업 방식과 존재가 위협받는 시간이 왔고 자신의 삶이 더 이상 그 의미를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그는 결국 자신과 책이 함께 압축되어 하나가 되는 결말을 택한다.


첫문장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 소설 내내 자주 등장한다. 그는 폐지 압축하는 일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이어나간다.

엄마가 죽었을때 내 안의 모든 것이 울었지만 막상 내게는 흘릴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화장터를 나서자 한줄기 가느다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어여쁜 모습으로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십 년째 지하실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해온 터라 나는 습관처럼 화장터의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 보았다. 책들을 두고 하는 일을 거기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신 네 구를 태운 참이었고 그 가운데 엄마는 세번째였다. 나는 꼼짝도 않고서 인간의 궁극적인 실체를 목격하고 있었다. (24)


나(한탸)는 은퇴후 자신과 압축기가 머무를 장소를 찾다가 외삼촌을 찾아간다. 기관사 일을 하다 은퇴한 외삼촌은 자기 정원에 오래된 작은 기관차를 갖다 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기관차 놀이를 하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그리로 다가가지만 아무도 한탸를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와서 합류하라고 부르는 사람도, 한잔하고 싶은지 내게 묻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놀이에 빠져 얼이 나가 있었다. 놀이라고 해봐야 그들이 평생토록 애정을 쏟았던 일의 반복에 불과했지만. 나는 카인처럼 이마에 표적을 지닌 채 걸어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어슬렁거리다가 그곳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나를 불러줄 수도 있었으련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문을 나서면서 나는 또 한번 뒤돌아보았다.

문가에 서있으려니 외삼촌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외삼촌은 줄곧 나를 보고 있었고, 내가 나무들 사이에서 갈 곳 몰라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조종 장치에서 손을 들어 묘한 몸짓으로 그저 대기를 진동시키려는 듯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나도 어둠 속에서 그의 인사에 답했다. 서로 엇갈리는 방향으로 떠나는 두 열차에 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는 모습이랄까. (32)

왜 그는 자기 이마에 카인처럼 표적을 지녔다고 생각했을까. 오랫 동안 고립되어 살아온 사람은 아마 자기 몸 어딘가에 카인의 표적 같은 것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되고, 그래서 사람들과 자기가 잘 섞이지 못하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나 보다. 카인의 표적이라면 원죄 같은 것, 자기 힘으로 없앨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일테니까.


그의 철학과 종교에 대한 지식은 예수와 노자를 비교하여 비유한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 ('미래로의 전진'이라는 뜻)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근원으로의 후퇴'라는 뜻)이라고. 비유는 그것이 다가 아니다. 


예수에게서는 상징과 암호로 이루어진 피 흘리는 현실이 읽혔지만 수의에 싸인 노자는 엉성하게 다듬은 들보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만 있었다. 예수는 플레이보이 같았고 노자는 내분비선이 고장난 노총각처럼 보였다. 예수는 오만한 손과 힘찬 몸짓으로 적들에게 저주를 내렸지만 노자는 체념한 사람처럼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이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이었다 (59)

노자를 '내분비선 고장난 노총각'으로 비유한 것을 보고 나는 이 사람이 고립되어 고독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분명히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몇년 전에 방문한 프라하는 묘한 느낌의 도시였다. 착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가 팽배해있지만 음침하진 않았고, 부유해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궁색해보이지도 않았다. 신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애잔한 멋이 있었다. 문학은 이런 데서 싹트는 것인가? 보후밀 흐라발은 프라하에서 공부했고 태어나기는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마침 브르노도 이때 방문했던 곳이라 반갑다.


보후밀 흐라발 자신의 생애가 이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프라하의 카렐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나치에 의해 대학이 폐쇄된 뒤에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이 여러 직업 속에는 폐지 꾸리는 인부라는 직업도 포함된다. 후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면서도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법조인으로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시를 즐겨 쓰던 그는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첫 소설부터 금서로 출판 금지 되었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도 끝까지 체코를 떠나지 않았고 체코어로 글을 썼다. 


소설 속 한탸가 일하고 먹고 자는 환경은 쥐과 파리떼로 둘러싸인 더러운 환경이었고 소장으로부터 일을 열심히 하라는 욕설을 인사처럼 들으며 지내지만 그에게는 폐지 속에 섞여 들어온 책을 발견하고 간직하여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었다. 책은 고독의 피신처가 되어 주었고 외부의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사는 대신 책 속의 수많은 인물들과 교류하는 시간은 그를 고독과 소외로부터 구해주었다. 이런 와중에 대형 압축기의 등장은 그를 갈 곳 없게 만든다. 그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갸야할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런 그가 선택한 마지막 길이 가슴 아프다.

자신의 삶이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에 있다고 느끼며 개인적인 고통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와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려 했던 한탸는 현대 사회의 소외와 인간 본성이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현대 기술과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 압도당하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한탸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을 꽉 채운 연민의 감정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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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12-0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반어적인 표현이지만 마음에 와닿는 것 같거든요.

hnine 2024-12-05 19:03   좋아요 0 | URL
페크님, 이 소설 참 좋아요. 혹시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읽으셨는지요? 그 책과 비슷하면서 또 달라요.
이 책의 주인공이 그렇듯이 책은 고독으로부터의 가장 근사한 도피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리뷰 제목을 그렇게 달았다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 같아 바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