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 - 그녀의 미국 3대 트레일 종주 다이어리
크리스티네 튀르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미국에는 3대 트레일 코스가 있다. 


1.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acific Crest Trail, PCT, 4,277킬로미터)

 



2.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 (Continental Divide Trail, CDT, 4,900킬로미터)



3. 애팔래치아 트레일 (Appalachian Trail, AT, 3,508킬로미터)




이 책은 어렸을때 운동이라고는 질색하던 독일 여성 크리스티네가 걸어서 12,700킬로미터에 이르는 미국의 3대 트레일을 종주한 내용을 담고 있다. 

3대 트레일은 지도에서 보다시피 그 큰 대륙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코스들이다. 첫번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남쪽의 멕시코 국경부터 북쪽의 캐나다 국경까지, 두번째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은 대륙 가운데 로키 산맥을 따라 이어진 길이며, 세번째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이어진 코스이다. 다 합하면 12,700 킬로미터. 엄청난 거리이다.


바깥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잔뜩 긴장한 탓인지 속이 울렁거려 왔다. 나는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해 멕시코 국경으로 향하는 어느 픽업트럭 안에 앉아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멕시코와 캐나다 사이를 잇는 4,277킬로미터 길이의 퍼시픽 트레일, 그 중에서도 남쪽 끄트머리 지점이었다. 나는 다른 장거리 도보여행자 두 명과 함께 트럭 뒷좌석에 구겨지다시피 끼어 앉아 있었다.


이 책의 시작 페이지이다. 이렇게 긴장으로 시작한 트레일을 그녀는 2004년에 PCT를, 2007년에 CDT에 이어 AT까지 종주함으로써 미국의 3대 트레일을 완주하였다. 트레일을 시작할때 그녀의 나이 마흔 여섯이었고, 종주를 시작할 때는 유지하고 있던 직장과 집을 종주 하는 동안 다 포기하고 이루어낸 일이었다. 이로써 그녀는 세 트레일을 모두 완주한 사람에게 미국 장거리 하이킹 협회가 수여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멋진 책도 내지 않았는가.

이책의 원제를 보니 Laufen, Essen, Schlafen. Eine Frau, drei Trails und 12700 kilometer Wildnis이다. 영어로 옮겨보면 Run, Eat, Sleep. A Woman, 3 trails and 12700km wilderness


순탄하지 않은 여정의 시작에 필요한 것은 장비, 시간, 철저한 계획 등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용기'이다. 뭔가를 이루어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 둘을 구분짓게 하는 것은 그 일을 시작하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꿈 꾸는데서 그치고 말지만 어떤 사람은 실행을 한다. 

책 내용이 트레일 종주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라고 해서 자칫 내용이 딱딱하지 않을까, 지루하지 않을까 했는데 읽어보니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서 짧지 않은 기간동안 미국 땅을 밟으며 만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 얘기는 흥미로왔으며, 물을 만났을때 망설임없이 옷을 다 벗고 물로 뛰어드는 자기를 이상하게 보며 눈길을 피하는 미국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하는 독일인 저자. 유럽과 미국 사이에도 문화 차이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루 먹을 식량을 무게로 측정해서 제한해야 하는 것, 트레일 중에 만나는 곰이란 어떤 의미인가, 물이 부족할 때 어떤 긴급 조치를 취하는가 등등, 상상도 못해보던 내용이 많았다.

트레일의 일부 구간을 단기간 걷는 사람들과 구별하여 종주를 목적으로 하는 하이커들을 '스루하이커' 라고 한다든지, 이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자주 나왔다. 트레일 엔젤 (스루하이커들에게 무료 쉼터를 제공해주는 사람), 카우보이 캠핑 (텐트 없이 자는 일), 바운스 박스 (짐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짐 일부를 미리 목적지 우체국에 보내놓고 나중에 찾는 것), 하이커의 자정은 밤 12시가 아니라 밤 9시라는 것 등, 이런 용어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진짜 스루하이커인지 아닌지 알아볼수 있다고 한다. 

스루하이커들 중 대다수는 서른 살 이하의 남자들, 그 다음 많은 연령층이 50대 이상이라고 한다. 처음 트레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남자보다 여자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데, 이들은 첫 시작인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오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세가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트레일러들이 묵고 가기도 하는 시설로 산장이 있는데 젊은 층이 많이 사용하는 산장들은 술판을 벌이고 마약을 하는 장소인 경우가 많더라는 사실은 씁쓸했다. 젊은 도보여행자들의 여행 목적 자체가 사교적 측면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아서 만나도 감정적으로 공유할게 딱히 없더란다. 

저자는 미국 3대 트레일 종주 이후로도 아웃백이라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황무지, 서유럽, 남유럽 전체를 도보로 여행했고, 가끔 자전거 여행을 끼워넣기도 했는데 이 중에는 일본과 한국도 포함되었다. 

8년 동안 스물 다섯 켤레의 신발을 교체했고, 0.5톤의 초코릿을 먹었으며 2,000일 이상의 밤을 텐트에서 보냈다고 한다. 1년이 365일인데 2,000일을 텐트에서라니.

이런 사서 고생길을 걸으며 배우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초코바 하나의 의미가 달려졌다는 것뿐이니까.

하루에 먹는 초코바의 갯수까지 정해가지고 걷는 트레일이라, 예상치 못한 일로 일정이 계획보다 길어지면 당장 먹을게 떨어지게 된다. 굶주리며 겨우 겨우 목적지까지 걸어가고 있던 중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자기네에게 남은 거라며 먹겠냐고 내미는 초코바에 대한 저자의 반응이 나오는 대목이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초코바라고? 

이 뜻밖의 행운을 믿을 수 없어 나는 목까지 메었다. 

몇분 동안 멍하니 서서 손에 든 초코바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벅찬 행복감이 밀려왔다. (161)


초코바 하나가 이렇게 감격할 일인가. 아무때나 심심풀이로 먹던 밀키웨이 초코바가 말이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육체적 행복감을 느껴본 것이 언제였던가. 

나는 지난 수년간 경험했던 성공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일을 그만두기 전 마지막으로 급여가 인상되었을 때는 어땠었지? 그때도 만족감은 느꼈지만 이 단순한 초코바가 유발시킨 원시적이고 육체적인 행복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돈을 가치와 행복의 척도로 여겼다. 그리고 가진 돈이 많아질수록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보다 값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것을 찾게 되었다. 내 행복의 기준은 그렇게 점점 높아져만 갔다.

PCT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는 내게 그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트레일에서의 삶은 행복의 기준을 상향시키기는 커녕 어마어마하게 끌어내렸다. (162)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그 기준을 끌어내리는 것.

이 단순한 진리를 배우기 위해 12,700킬로미터를 걷는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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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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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허무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각오로 살아야 허무 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무를 딛고서 끝까지 갈수 있을 것인가.


인간에게는 희망이 넘친다고, 자신의 선의는 확고하다고, 인생이 허무하지 않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10)

'허무를 직면하다'라는 제목으로 쓴 프롤로그 중 일부이다. 그가 제목에서 뜻한 바가 무엇인지 이 구절만 읽어봐도 파악이 될 것 같아 옮겨 보았다.

왜 인생은 허무할까. 없던 생명이 이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결국 이 세상에서 그 물성이 사라지는 것으로 마치니까. 시작과 끝을 보면 그렇다. 살면서 남긴 자취와 흔적 (업적까지는 아니더라도)을 생각하면 허무하지만은 않다고 보는 의견도 부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까.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허무함을 인정하고 나니까 훨씬 생각이 가벼워짐을 느낀 후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매를 먼저 맞아놓은 기분이랄까,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어떤 것 먼저 들을래 할때 나쁜 소식 먼저 듣고 난 후의 후련함이랄까.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99)

이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삶을 소울 재즈에 비유하여, 이미 그려진 악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 하는 '연주'가 핵심이라고 했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가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라는 것. 목표를 이루었느냐 보다 더 핵심은 그 목표까지 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예측 못했던 그 무엇에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목표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목표가 있었으니 거기까지 가는 과정도 있는 것이니까.


정신승리란 무엇인가 (203)

현실을 포장하는 것이 정신승리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것은 일종의 가스라이팅일 수 있다. 정신승리가 현실승리는 아니며, 정신승리는 정신의 공갈 젖꼭지라고까지 했다. 

같은 종류의 위로를 계속하는 것은 물론 한계가 있다. 낙방은 낙방. 실연은 실연. 패배는 패배.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인지와 납득은 다르다. 낙방, 실연, 패배를 인지했다고 해서 마음이 곧바로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선뜻 납득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내 마음이 그 불편한 현실마저 수용해냈을 때 그것이 바로 정신승리다.

승리는 승리고, 패배는 패배다. 하나의 패배를 인정했다고 해서 모든 패배를 인정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패배도 모든 면에서 패배인 것은 아니다. 모든 관점에서 다 패배인 경우는 없다. 어떤 패배를 해도 인생 전체가 패배로 변하는 경우는 없다. 현실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의 탄력을 갖는 것이 진정한 정신승리다. (211)


마지막으로 요즘 내가 덮어두고 있던 문제를 다시 일깨워주는 구절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가 생텍쥐페리의 <전시조종사>의 한 구절을 인용한 부분이다.

완공된 성당의 관리자로, 혹은 성당 의자나 운반하는 사람으로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부터 패배자다. 지어 나갈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이는 이미 승리자다. 사랑이 승리를 낳는다. ...지능은 사랑을 위해 봉사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 생텍쥐페리, <전시조종사> -


생텍쥐페리는 저 글에서 먼저 누가 패배자인지를 정의한다. 남들이 성당을 완성하기 기다린 뒤, 관리나 하려드는 이야말로 패배자다. 의자를 들고 앉을 자리나 확보하려 드는 이야말로 패배자다. 인생에서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자가 패배자다. 무엇인가 걸었다가 실패한 사람은 패배자가 아니다. 아무것도 걸지 않은 자가 패배자다. 무임승차자가 패배자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많은 이익을 계산해 얻었어도 무임승차자는 패배자다. (242)

대성당은 어디에 있는가? 대성당은 어떻게 지을 수 있는가? 나는 가슴 속에 대성당을 품고 있는가?


자기를 찾아온 죽음의 사신을 잠깐 기다리게 하고 마지막 할 일을 마친 뒤 이제 가자고 사신에게 얘기한 할머니 이야기,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책 <할머니의 팡도르>에서는,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지만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는지, 살아 있는 동안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인생은 허무하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직면하고 더불어 산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하며 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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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17 0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도 패터슨처럼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들기 전 산책을 하고 샤워를 한 뒤, 페이스북에 그날 밤에 들을 음악을 올리고, 그날 갈무리한 책과 영상을 보다 잠든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달걀을 삶는다. 타원형의 껍질 안에 액체가 곱게 담겨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기에, 나는 내가 원하는 정도로 달걀을 잘 익힐 수 있다. 오래도록 이 일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표를 달성할수 없어 오는 초조함도, 목표를 달성했기에 오는 허탈감도 없이,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사라질 내 삶의 시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김영민 교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에서)





읽다가 만난 이 구절이 너무 좋아서, 책을 다 읽고 리뷰 쓰기 전에 이리 옮겨적어본다.





















위에 저자가 인용한 영화 <패터슨>은 2022년에 내가 본 영화 중 인상 깊었던 영화 중 한편이었다.


--> https://blog.aladin.co.kr/hnine/14233780








내가 읽은 저자의 다른 책:


























제목만 다를 뿐 세권의 책이 일맥상통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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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1-11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영민 저자의 책을 좋아하는데 리뷰를 쓰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도중에 너무 좋아서 뭔가 글을 쓰고 싶은 이 느낌을 잘 알 것 같아요.

hnine 2023-11-11 23:39   좋아요 2 | URL
오늘 다 읽었어요. 곧 다 읽을 것을, 못 기다리고 올린게 되었네요.
이젠 큰 변화를 바라며 사는 생활보다, 나만의 루틴이 있어 그것을 지키며 사는 삶을 더 바라게 되었어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부터인가봐요.
인용한 구절중 ‘내 삶의 시‘라는 말도 좋고요.
페넬로페님도 좋아하시는 저자라고 하시고 제 느낌을 알아주신다니, 반가워요.
 
세이노의 가르침 (화이트 에디션) -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
세이노(SayNo) 지음 / 데이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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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알라딘 서재 카테고리에 보면 내가 만든 생활백서라는 것이 있다. 살면서 몸으로 깨우친 나만의 팁이랄까, 그런 것을 짤막한 문장 몇개로 적어 모아둔 박스이다. 겨우 오십 개도 안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소중하게 얻어진 경험들에서 나온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경험하고 고생을 해봤다면 더 풍부한 내용일테지만 나는 그리 용기 있는 사람이 못되고, 적극적이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온 편이 아니다보니 이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 더 확장되려나? 

평소에 생각은 그랬다. 찐으로, 진정성있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생을 마감할 때 쯤이면 책 한권 쓸 만큼의 컨텐츠를 남길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읽고 듣고 보아서 채워진 컨텐츠가 아니라 몸으로 겪어서 얻은 인생팁 같은 것 말이다. 보통 사람인 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 처럼 나보다 살아온 세월도 길고 닥치는 상황마다 몸사리지 않은 경험이 많은 분이라면 남기고 싶고 해주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으랴.


책장을 들춰 첫페이지에 "세이노는 누구인가?"를 읽어보면 700쪽 넘어 두툼하기까지 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겠다 싶었다. 

필명 '세이노'는 영어 'Say No'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며, 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No 라고 말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이라면 편견과 선입견으로 내 머리 속에 자동적으로 들어와 있어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의 기준이 되고 목적이 되는 삶에 대한 경고라고 할까. 

1955년생인 저자는 45세되던 2000년 부터 본명을 밝히지 않는 대신 '세이노'라는 필명으로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2003년에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카페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기고한 글을 기본으로 하고 그밖에 월간지, 주간지에 발표했던 글 일부를 첨가하여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겨둔 채 그 문제로 인하여 생긴 스트레스만을 풀어 버리려고 한다면 원인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 아닌가. 

친구들과 상의하는 짓도 그만두어라. 당신이나 친구들이나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이며 그저 당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답답함에 대한 약간의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도토리 키 재기 아닌가. (40)


로버트 슐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떨어지고 있으므로 하늘을 향해 날아 볼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절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날갯짓을 할 줄 모른다. (56)


Integrity는, 머릿속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들과 행동이 엇갈림 없이 하나 된 상태 (189)

이 단어는 평소에 나도 어떤 한 단어의 우리말로 번역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던 단어이다. 세이노는 위와 같이 설명해놓았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섣불리 하지 마라. 

경제적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면 다음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첫째, 그 분야에서 정말 최고 일인자가 되는 길이다.

둘째, 최고가 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오타쿠처럼 자기만족을 위하여 빠져 사는 길이다.

세째, 다른 길의 일을 통해 경제적 여유를 마련한 뒤 그 돈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204) 

첫째 길을 택할 수 있다면 문제될게 없겠지만 극소수의 사람에 해당할 것이고,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라면 세째 길을 택해야 하겠지만, 바로 세째 길을 선택하기보다 아마도 첫째, 둘째 길을 거쳐서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3세대 부유층에 속한 MZ세대 사람들은 이른바 고생없이 등 따듯하게 자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고 사고방식이 게임 플레이어에 가깝게 세팅되어 있으며 그런 그들이 부유층이 아닌 다른 MZ세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저자는 열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그중 몇개만 옮겨본다.)

-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자기 기준으로 수행한다. 이를 몇몇 기사에서 '3요 세대'라고도 하는데, "이걸요? 제가요? 왜요?" 한다는 거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이 옳다고 생각한다.

- 일은 일일 뿐이다. 잡코리아가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며 MZ세대 10명 중 3명은 입사 1년도 안 돼 퇴사하였는데 퇴사 사유1위는 연봉 만이 아니라 '워라밸'불만족이었다. 

- 재미있는 게임을 하듯이 재미있는 직장을 찾는다.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자기 역량에 달린 것인데 재미있게 이미 만들어 놓은 게임 같은 직장을 찾는다. 

- 게임에서 점수가 바로바로 올라가듯이 금전적 보상이 즉시즉시 나오기를 바란다.

- 공정을 외치면서도 불공정을 옹호한다. 

- 온라인에서 몇 분이면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 한때는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삶을 즐기자더니 (YOLO) 이제는 빨리 돈 많이 벌어서 일찍 은퇴하겠단다 (FIRE족). 


MZ세대이지만 부유층 3세대가 아니고 딱히 물려받을 것도 없다면 저들을 절대 따라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살아라.  (316)


세이노도 강조했지만 대부분의 MZ세대들은 부유층도 아닐뿐더러 모두 저런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다. 개성이 강한 듯 보이지만, 무리 속에 자신을 일체시키고 싶어함으로써 오히려 획일화된 방향으로 쏠려 살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서 얻는 것이 일체감이 아니라 소외감일까봐 걱정도 되고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위에 예시한 것들이 MZ세대에만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그 윗세대들에게도 이미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것들이 아닌지.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 이론가 혹은 본격 하이테크 사회 이론가라 불리는 장 보드리야르는 이미 30여년 전에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광고, 매스 미디어, 에로티시즘, 레저, 가제트 (아이디어 상품) 등이 약속하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행복한 삶은 거짓 신화에 지나지 않으나 현대인은 그 신화를 믿고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리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소비자가 소비하는 것은 더 이상 물건의 사용 가치가 아니라 광고와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그 상품의 사회적 이미지이며 현대인은 그러한 이미지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때에도, 불행한 때에도 인간이 자신의 모습과 마주 대하던 장소였던 거울은 사라지고, 그 대신에 쇼윈도가 출현했다."라고 그는 지적하였다. (374)


고개 끄덕이며 읽은 부분이 많았지만 그보다 내가 이책에서 더 의미를 찾은 것은, 세이노가 말하는 가르침대로 살자는 것보다는 정작 다른데 있다. 이렇게 자신있게 자신의 인생사용설명서를 묶을 수 있도록 진하게, 자신이 믿는 삶을 꽉 채워 살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졌고 누구의 삶도 같은 삶은 없으며 소중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하는 삶은 정말 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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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1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완독하지 못한 책이에요. 경제와 부 관련의 책인데도 의외로 배울 점이 많아 완독할 계획입니다.
술술 읽히고 재밌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죠.
따라하는 삶을 살기엔 우리 인생이 아깝지요. 아마 점점 개성적으로 사는 이들이 많아질 것 같아요. 비혼들도 늘고 있고 말이죠.

hnine 2023-11-19 09:45   좋아요 1 | URL
읽어볼만해요. 글로 얻은 지혜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겪은 사람이 하는 말은 더 귀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이분 얼굴은 공개를 안해서 모르지만 이 책 읽고 검색해보다가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인터뷰하는 장면은 봤어요. 목소리도 듣고요.
 
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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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평화보다는 전쟁에 가깝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서운 전쟁.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고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마치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 아닌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 

모든 사랑이 죽음처럼 확실한 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스러진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끝만 끝이  아니라 기억속에서 점차 사라지는 끝도 있는 것이니까.

1940년 생인 아니 에르노가 1991년에 출간된 소설이니 그녀의 나이 51세였다. 데뷔 소설인 <빈 옷장>부터 자전적 소설로 시작해서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겠다는 노선을 분명히 한 작가이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1)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대로 느껴질 것이다. 세상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험. 

내가 놀란 것은 51세의 나이에도 사랑의 감정 노선은 여전히 이렇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2, 30대와 다를게 없다. 

파리에 살고 있는 중년의 여자 '나'는 러시아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나와 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나의 일상보다 더 중요해지고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의 전화 기다리기, 그와 만나기, 다시 그의 전화 기다리기의 순환 고리 속에 사는 날들. 그 고리가 끝나는 날 자기의 삶도 끝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을 안고 사는 날들. 이미 부인이 있는 남자이지만 나 말고 또다른 연인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이 한명의 여자가 아니라 여러명의 여자였으면 하고 바라는 심리.

이런 열정은 단순히 감정의 일시적 폭발이 아니라 한권의 책을 써내는 열정과 같다고 했다.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햐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19)


가끔씩 엄마를 방문하는 아들들에게도 그 사람에 대해 말해두고 아들은 집에 와도 되는지 오기 전에 알아서 미리 전화를 걸어주는 문화. 최소한의 것을 알려주지만 그렇다고 아들에게 모든 것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아이들에게 판단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22)


그를 만나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번도 듣지 않고 대중가요가 더 마음에 들어오고, 여성잡지를 펼치면 제일 먼저 운세란을 읽고, 그의 전화가 오기를 빌면서 지하철 역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고, 만약 몇월 몇일에 그에게 전화가 오면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어보기도 하고, 일상의 짜증스럽고 귀찮은 일들에도 무덤덤해진다. 

한 사람에 대한 집중된 열정이 온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삶이지만 작가는 그 열정의 대상에 대해 쓰기보다는 그런 자기의 심경에 대해, 자기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더 쓰고 있다는 점에서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더 특별하게 여기게 했다. 

책 마지막에 이와 관련된 문장이 나온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 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66)


이 짧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 만큼 마음에 큰 도장을 찍는 말이 있을까 싶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이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67)

이 세상 사람들을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의 책을 한권 읽고 거기서 그치지 못하게 하는 것, 그의 다른 책을 꼭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적어도 내겐 성공적인 읽기라고 본다. 

알려져있는 대로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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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0-3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는 제게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멀리했는데....
욘 포세를 읽고는 아니 에르노 작품이 양반이란 걸 알았습니다. ^^;;

hnine 2023-11-01 11:28   좋아요 0 | URL
그럴 것 같아서 저는 아직 욘 포세 책 읽을 생각을 안하고 있습니다 ^^
아니 에르노 책 여자들에게 더 와닿을 내용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