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악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1
레이몽 라디게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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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라디게. 처음 듣는 이름이다.

1903년 프랑스 출생. 

아버지는 화가였고 7남매중 장남. 어려서부터 영특했는지 장학생으로 학교에 입학하지만 학교가 별로 재미없었는지 겨우 열두살 되었을때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서 책읽기에 집중했다. 

많이 읽으면 쓰고 싶어지는 법. 1918년 열다섯살에 짧은 글을 써서 잡지나 신문에 게재하기 시작한다. 이때 각별한 친분을 쌓게 되는 사람으로 장 콕도가 있는데 이 둘은 '르 코크'라는 작은 잡지를 창간하기도 하면서 점차 우정와 애정 사이의 각별한 관계가 된다. 

열일곱살때 <육체의 악마> 를 집필 완료하고 스무살때 책으로 출간한다. 워낙 어린 나이 작가의 출판이고 보니 출간 후 출판사의 대대적인 홍보가 있기도 했고 다른 작가들의 찬사와 비평계의 비웃음을 함께 받기도 했다. 소설도 일찍 내었지만 그의 생애도 일찍 마감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장티푸스로 겨우 스무살의 나이에 사망하였으니까. 

열 몇살때 벌써 동시대 작가, 시인, 화가들과 어울리며 모임을 가졌으니 범재의 수준은 아닌 것이 확실하지만 그 나이에 다섯 명의 정부를 두고 연애 행각을 벌인 이력도 가지고 있다.



민음사에서 나온 책 표지는 헝가리 화가 벤추르 줄러의 <나르키소스> 일부.






원화 전체는 아래와 같다.





작가의 생애가 짧았던 만큼 남긴 작품이 많을리도 없고 (한 두 작품 정도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겨우 열일곱에 쓴 소설이 이렇게 나중에 세계문학전집으로 발간되어 읽힐 만큼 대단한 무엇이 과연 있는 것일까?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제목이 주는 느낌과 작가의 이력을 보건대 소설 내용 역시 작가 자신의 일찍 시작한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애 소설, 사랑 소설이 아닐까? 그 짐작의 수준을 과연 넘어설까.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호기심.

 

작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주인공 '나'는 학교에 별로 흥미를 못 붙이고 일탈 행위를 일삼으며 다른 곳에서 재미를 찾으려 한다. 


열두살이 될 때까지 나는 카르멘이라는 소녀에게 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풋사랑도 해 보지 못했다. (8쪽)


열두살에 이미 맘에 드는 여자 아이를 점찍고 동생을 시켜 카르멘이라는 이 여자아이에게 사랑 고백 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주인공. 하지만 이 편지는 카르멘 대신 학교 교장 손에 들어가는 일이 벌어져 학교에 소문이 나고 보통의 또래들과 어울리기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주인공 역시 또래들은 시시하게 여겨 이들과 골고루 어울리기 보다는 맘에 맞는 한 친구하고만 친하게 지내는 쪽을 택한다.


우리 또래들에 대해 그와 내가 품는 '공통의 경멸'은 우리를 한층 가깝게 해 주었다. 우리는 우리들만이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우리들에게만이 여자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25쪽)


이 시기에 터진 전쟁은 '나'로 하여금 더욱 더 방종과 무위의 생활에 빠지게 하는데 이웃집에 남편이 전쟁에 참여한 젊은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 이 소설에서 본격적인 사건의 시작이다. 

유부녀 마르트와 당장의 행복을 쫓는 생활을 즐기면서도 도덕과 이기심, 행복의 정당성을 떠올리기도 하는 '나'는 논리를 따질 줄 아는 천재이면서 육체의 악마이기도 하다.


이성적인 결혼이라니! 말도 안된다. 각자 연애 결혼이 제공하는 이점들만을 상대방에게서 보고 있어 이성(理性)이 차지할 자리가 거기엔 없으니까. (44쪽)


기존의 결혼 제도의 헛점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으며,


무슨 상관이랴! 행복이란 이기적인 것이다. (35쪽)


행복을 인생에 추구해야할 지고의 가치로서가 아니라 행복도 사랑도 결국 이기적인 것일뿐이라는 생각을 드러내고며 비웃기도 한다.


과연 주인공 '나'는 육체적인 사랑에만 탐닉하였을까? 아니었다.


나는 자신의 비판과 가식을 스스로 꾸짖으며 마르트를 내가 전보다 더 사랑하는지 또는 덜 사랑하는지 자문해보면서 며칠을 보냈다. 내 사랑은 모든 것을 버무려서 억지를 쓰고 궤변을 부렸다.

그녀 옆에 누워 있으면 집에 가서 혼자 눕고 싶은 욕망이 항상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니, 그녀와 함께 산다는 것을 견딜수 없어지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한편 나는 마르트 없이 산다는 것 또한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간통의 형벌을 비로소 알기 시작했던 것이다. (111쪽)


끊임없이 이렇게 스스로 반문하며 탐색하고 성찰하기도 한다. 차라리 열 몇 살 불 같은 열정에 몰두한 애정 행각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불륜의 관계를 유지해나가면서도 객관화하여 분석하고 탐색하고 미래를 예측해보는 피끓는 청춘이라니. 이 소설 캐릭터의 특징이자 이 작품의 차별점이 여기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관계가 지속되어 감에 따라 여자는 점차 훨씬 연하인 주인공 '나'에게 복종적이 되어가고 그런 여자를 보며 만족스럽기 보다는 현타가 옴을 느끼는 주인공은 자책하며 이 관계가 파괴로 가고 말 것을 예감까지 한다. 


내 기분에 맞춰 마르트를 이끌어 왔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차츰차츰 나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바로 그 점에 대해 나는 자책을 했고 또한 그것이 우리들의 행복을 의식적으로 파괴했다. 그녀가 나와 닮았다는 것, 게다가 그것은 내 작품이라는 사실들이 나를 즐겁게도 해 주고 또한 화나게도 했다. (118쪽)


읽으면서 밑줄 쳐 놓았던 이 대목을 지금 리뷰 쓰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대단한 심리 묘사이며 명쾌하고 논리적 사고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는 결국 마르타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내가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든 간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고 결코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의 것을 책임지게 되었던 것이다. (122쪽)


연인의 임신 소식을 듣고 난 '나'의 반응이다.


죽을 뻔 했던 사람은 죽음을 안다고 믿는다. 어느 날 마침내 그 죽음이 나타나면 그는 그 죽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이 죽음은 아닌데 ......." 하고 죽어 가면서 말하는 것이다. (181쪽)

마지막 반전까지.

내용과 소재는 풋내기 십대와 유부녀 사이의 불륜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17세의 작품이라고 보기에 놀랄만큼 심리 묘사, 내면 묘사가 엿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되며 사랑과 행복에 대한 통찰, 비판적 시각, 주인공이 사랑과 방탄을 구별해가는 과정들을 예리하게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을 발표하고 나서 쏟아진 문단의 관심에 대해 작가 라디게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써놓은 글 일부를 옮겨본다.

신동 취급을받는 것은 작가로선 좀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잘못은 '열일곱살에 쓴 소설'이라는 실없는 말 속에, 기괴한 것이라고 까지는 하지 않으나 하나의 기적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지. 

아름다운 날의 저녁나절에 그날의 새벽에 대해 이야기하는 힘찬 매력을 비난하진 않지만 밤이 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새벽을 이야기 하는 흥미도, 전혀 다른 것이긴 해도 결코 적은 일은 아니다. <누벨 리테레르, 1923년 3월 10일 호>

밤이 오기까지 아직도 멀었는데 새벽에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

이제 새벽에 대해서 밖에 얘기할 수 없게 된 작가.

이 작가 레몽 라디게에게 신동이란 호칭을 붙여준 사람은 장 콕토였고, 라디게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비탄에 빠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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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주는 빵집, 오렌지 베이커리 - 아빠와 딸,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꾼 베이킹 이야기
키티 테이트.앨 테이트 지음, 이리나 옮김 / 윌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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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대신 빵이 할 일 다 했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탄수화물 제한식이, 저탄고지식 등이 유행하는 마당에 약 대신 빵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밥 아니면 빵을 주식으로 매일 매끼 먹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데 저탄고지니 하면서 빵을 비롯한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을수록 건강에 좋다고 하는건지. 이것에 대해 설파하는 것은 지금 할 일은 아니고 아무튼 이 책에서는 그와 반대로 열 다섯살 키티와 그의 가족이 빵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고질적인 건강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이 책의 공동저자이며 오렌지베이커리를 공동 운영하고 있는 키티는 겨우 열다섯살 소녀이다. 영국의 옥스포드 지방 와틀링턴이라는 작은 마을, 평범한 가정의 막내딸 키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열두살 무렵부터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우울증을 앓게 되면서 일상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아무것에도 단 몇 분도 집중을 못하고 바깥 출입도 못했다. 부모가 번갈아가며 옆에 있어주어야 하니 당사자인 키티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무너지는 느낌 속에 절망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원인을 찾아보고 회복하려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아동 청소년 정신건강센터에도 가보지만 진전이 없던 와중에 어느 날 키티가 의외의 것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어느 날 아빠가 빵을 만들었다. 아빠가 반죽을 만들려고 밀가루와 물과 소금을 볼에 넣고 섞는 동안 나는 멍청하게 주방 의자에 앉아 있었다. 끈적끈적하고 활기 없고 질벅질벅한 반죽이 꼭 내 머릿속 같았다.

다음 날 내가 겨우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는 볼이 식탁에 놓여 있었다. 전날 밤처럼 흐느적거리는지 보려고 티타월을 들어 올리자, 반죽은 이제 달표면 같았다. 반죽에는 부드럽게 기포가 일었고 기포 하나가 터지면 다른 기포가 일었다. 반죽은 살아있었다. (21쪽)


빵 반죽 속에 작은 희망의 씨앗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이제 키티는 아빠와 함께 빵을 굽기 시작했고 베이킹을 하며 서서히 삶을 되찾아간다. 빵에 대해 배우기 위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배워오기도 자기가 만든 빵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한다. '기쁨의 베개', '핀란드식 엉덩이', '헤이즐넛과 다크초콜릿 베어 클로' 등. 그뿐 아니라 키티가 베이킹을 하는데 사용하는 오븐, 냉장고, 스타터 등도 모두 이름을 갖고 있다. 키티는 점점 더 베이킹에 빠져들었고 키티를 도와주느라 아빠는 그의 직장 보다 우선순위를 두어야했다. 

점점 더 많은 빵을 구워 팝업매장을 열고 사람들은 이들의 빵을 좋아해주었다. 가족들이 모두 나서 도와주어 본격적인 가게를 내게 되었고 열정을 쏟아붓는다. 

가게 벽에 오렌지 나무를 그리고 오렌지 열매마다 후원해준 사람들의 이름을 써서 붙이는가 하면 빵의 재료를 그 지역에서 생산한 재료를 사용하였다. SNS를 통해 알게된 베이커의 초대를 받아 코펜하겐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던 키티에게 일어난 일이다. 


이 책의 원제는 Breadsong. 빵이 내는 소리를 뜻한다. 오븐에서 빵을 꺼내면 뜨거운 오븐 속의 온도에서 막 나온 빵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탁탁 갈라지는 소리를 내는데 이것이 마치 노랫소리 같다고 브레드송이라고 부른 것이다.








하드 커버에 책이 아주 얇지는 않다. 뒷부분 반은 빵 레시피가 실려있기 때문이다.











제일 처음 나온 빵은 '미라클 오버나이트 빵'. 물론 베이커인 키티가 붙인 이름이다. 우리가 흔히 무반죽빵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재료를 보면 정말 간단하다.









"우리는 세가지 재료로 빵을 만듭니다.

밀가루, 물, 소금.

아, 그리고 하나 더. 시간."


열다섯 살 키티의 심리 치료에 빵은 약 대신 할 일을 다 했다. 키티의 부모는 키티의 마음이 치유된 것에 만족하여 억지로 다시 딸을 학교 교육 제도에 돌려보내기를 그만 두고,  대신 필요한 교육 내용을 개인적으로 집에서 배울 기회를 주기로 한다.


딸과 아빠가 어떻게 오렌지 베이커리를 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키티의 심리 치유 과정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 다양한 빵의 레시피 북이기도 하다. 책 속의 그림은 아빠가 그렸고 레시피는 키티가 작성했으며 글은 부녀가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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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8-03 1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막 뭔지 모르게 위로가 되네요~~^^

hnine 2023-08-03 12:18   좋아요 2 | URL
저는 ‘빵‘이라는 글자 보고 골랐는지 제목에 있는 ‘위로‘라는 단어는 나중에야 봤어요.
빵 냄새, 밥 냄새. 먹기도 전에 마음이 푸근해지고 행복해지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왜그럴까요.
이 책에선 빵을 만드는 과정도 나오지만 빵집을 오픈하기까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과정도 함께 나오는데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만큼 고비를 많이 넘더군요.
훈훈한 책이랍니다.

잘잘라 2023-08-0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adsong, 미라클오버나이트빵, 오~ 앤 원 모얼, TIME!
hnine님 사진 리뷰 감사합니다.

hnine 2023-08-03 12:23   좋아요 1 | URL
빵 굽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빵을 굽는데 아무리 단축해도 한계가 있는 단계가 발효 단계이지요. 1차 발효, 중간 발효, 2차 발효 등등. 빵을 만들어볼까 하다가 결국 귀차니즘에 지고 마는 이유가 바로 시간때문인것 같아요.
매끈하고 아름다운 빵보다 투박해보이는 그러나 정성이 들어간 빵들 레시피가 많이 들어있어요. 사진 올린 저 돌덩이 같이 생긱 빵을 키티도 처음 만든 빵이라고 하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빵이기도 합니다.

stella.K 2023-08-03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그렇게 간단한가요? 말에 의하면 통밀이 좋다고 하던데 그것도 아닌가봐요. 빵이 하기는 무척 힘들다고 하던데 책은 궁금하긴하네요.^^

hnine 2023-08-03 12:25   좋아요 3 | URL
발효 빵 만들때 발효 시키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원래 필요한 재료는 많지 않아요.
통밀을 사용하면 일반 밀가루 쓸때보타 발효가 좀 안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락방 2023-08-03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럴 수 있다고 저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저도 반죽하면서 기분이 나아진 경험이 있어요. 반죽 치대면서 어느 순간 빈죽 향이 달라질 때, 아 이걸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저도 읽어볼래요!

hnine 2023-08-03 23:27   좋아요 1 | URL
빵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다 이해할거예요. 반죽하면서의 느낌, 발효 과정에서의 변화, 구워지는 동안의 변화, 미각 이전에 촉감과 후각으로 전해지는 만족감.
다락방님 이 책 읽으시면 분명히 여기 나와 있는 레시피중 최소한 몇개는 만들어보실 것 같은데요.
‘다락방 베이커리‘, 이름 괜찮지 않나요?

책읽는나무 2023-08-0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기억 님 페이퍼에서 보았을 때도 눈에 띄던데 예쁜 책이로군요.^^
브레드쏭.....음식할 때 나는 어떤 소리들은 정말 음악소리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던데 브레드쏭도 있었군요.
듣고 싶다. 브레드쏭^^
오븐 숫자판이 고장 나서 빵은 잘 안 만들다 보니 들을 수가 없군요.ㅜㅜ

hnine 2023-08-03 23:33   좋아요 1 | URL
오븐이 고장났으면 전기 밥통을 이용한 레시피라도....^^
저는 빵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먹는 건 더 좋아하고 그런데, 만들어서 함께 먹어줄 사람이 없어서 안만들어요. 저희 집에선 저 밖에 빵 소비할 사람이 없어서요.
빵이 금방 만들어지는 음식이었다면 저 책의 저자가 심리 치유되는데 도움이 안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시겠지만 빵을 만들다보면 빵이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게 숨도 쉬고 형태도 바뀌고 색깔도 달라지고 심지어 소리도 내니까요.
예쁜 책 맞습니다~ ^^
 
누구도 울지 않는 밤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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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사놓고는, 적과 흑 1,2, 파르마의 수도원 1,2를 다 읽느라 몇번을 뒤적거리며 책꽂이에 꽂아둔채 있어야했던 책을 단 며칠 만에 다 읽었다.

몇년 전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과 <잃어버린 이름에게>를 연달아 읽은 후 기다려온 김이설의 소설집이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각 문예지에 따로 발표되었던 10편의 단편이 올망졸망 한권으로 묶여 나왔다. 이렇게 한권으로 묶여 나오긴 했지만 작가는 그 6년이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고 말한다. 각별할 수 밖에 없겠다. '올망졸망'이라는 말이 안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한편 한편 기대를 안고 읽어간 애정의 표현이 그렇게 나왔다.


<모면> 2017 문학사상 

형부가 소장으로 있는 모델하우스 단지의 분양 대행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자.

엄마보다 더 엄마 같았던 이모와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뜻밖의 관계, 밖에서 보는 형부의 행태와 그런 형부의 행태를 눈치채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언니, 사무실에 드나드는 남자의 은근한 호의에 대해 불신감을 떨칠 수 없으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 마땅히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은 채 과거의 경험들로 현재를 모면 또는 회피하고 있는 여자의 심리가 담담하고 심심하게, 읊조리듯 그려져 있다 (이런 읊조림이 더 무섭다. 한이 내재하고 있으니까).


<내일의 징후> 2017 쓺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인데 '징후'라는 말을 붙였다. 내일을 예측하게 하는 것들, 즉 예후라는 뜻일 것이다. 동해횟집이라는 공통의 장소를 중심으로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짧은 가운데서도 긴박감 있고 재미있다. 그들의 사정이 따로, 그리고 겹치며 펼쳐져 혼돈스러울 것 같은데 단편 속에 또 작은 제목을 붙여가며 여러 인물들의 속사정과 상황이 전달되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축문> 2017 문학과 사회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 그분을 기리기 위해 작성하는 글을 축문이라고 하는데, 이 단편 작품 전체가 하나의 축문 역할을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첫 기일에 맏딸이 음식을 장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마 남자 아닌 여성 작가의 소설에 단골로 포함되는 것 중 하나가 음식을 만드는 구체적인 과정 묘사가 아닐까. 직접 해보지 않으면 어려울 디테일들이 살아있다. 

제사를 지내는 방식, 돌아가신 분을 추도하는 이 가족만의 방식은 매우 독특해서 거짓 울음이 없고 형식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는다. 이 책 제목이 된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아마도 이 단편의 마지막 문장 다행히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이었다에서 인용된 것이리라.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새로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환기의 계절> 2020 문학과 사회

결혼한 여자에게 딸의 존재는 잠재된 지원군 같은 것이다. 때로는 엄마 본인보다 딸이 더 엄마의 앞날과 행복을 걱정한다. 반평생을 함께 산 남편에게서도 얻을 수 없는 염려와 관심이다. 하지만 엄마가 자식과 남편을 보는 마음은 또 다르다. 누가 더 밉고 곱고의 문제를 떠나서, 오래 살아오다 보면 남편에게서 어쩔 수 없이 나의 일부분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로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쉽게 내칠 수 없는 것처럼 남편을 내칠 수 없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딸이 이해 못하는 지점이다.

엄마의 답답한 상황이 딸에게서 패러렐로 진행되는게 포인트. 갈등이 두배가 되는 상황인데, 과연 딸은 엄마에게 바라는 결정을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치유정원에서> 2021 황해문화

작가의 예전 소설의 흔적을 보는 듯한 작품이었다. 완전한 절망, 상실, 끝, 허무. 다시 일어날 에너지라든가 의지라든가 그런것 없어보임. 초기에 그녀의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면서 주저하는 이유이기도 했었다. 우리가 회피하고 싶은 현실의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절망이나 상실 역시 완전한 것이 있을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가족을 잃고 사랑을 잃고 일터를 잃는다. 그녀를 일으켜세우는 것은 독자의 몫.


<계절이 바뀌는 곳> 2021 리디북스 전자책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생활능력 없고 무능한 엄마, 어릴 때부터 병을 앓고 있어 어린애처럼 돌봄이 필요한 여동생을 가족으로 둔 세연. 엄마는 이런 집안 형편을 이해해주고 남자 없는 세연 집일에 직접 도움이 되어 주고 있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민수와 세연이 결혼하기를 권한다. 그러다 세연은 우연히 민수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고 절망한다.

'계절이 바뀌는 곳'이란 제목은 중의적이다. 주인공 세연의 현재가 곧 다른 모양으로 바뀌게 될 상황에 직면하여 세연은 다짐한다.

여기는 끝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아직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290쪽)


<반 뗀 라지?> 2021 리디북스 전자책

베트남어로 "당신의 이름은 뭐예요?" 라는 뜻이다. 딸을 두고 집을 나간 베트남 엄마를 만나기 위해 두연은 간단한 베트남어를 외우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사위가 환해졌다. 두연은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갈 수 있는 한 제일 멀리가고 싶었다. 이제 정말 서둘러야 했다. (258쪽)

이 단편의 마지막이다.

진즉 떠났어야지 두연아. 어서 떠나.


<가족의 일생> 2011 학산문학

집나간 엄마, 편모 혹은 편부, 부모자식 사이 같은 역할을 하며 자라온 자매 등은 단골 설정이다. 특히 이번 소설집엔 배경과 직업군이 다양한데 이 단편에서 남자의 직업은 배달 라이더이다. 모처럼 착한 남자가 등장했는데 끝은 또한번의 시작의 되풀이를 알릴 뿐이다.


<긴하루> 2021 엄마에 대하여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자기 딸은 자기 처럼 안 살았으면 하는 엄마와, 내가 엄마처럼 될 것 같냐고 자신하는 딸. 

인생이란 시련의 파도를 넘어가는 과정이었지만 누군가는 그 파도에 물거품이 돼버리기도 한다. (312쪽)

 

<그래도 되는 사이> 2022 리디북스 전자책

그래도 되는 사이라는 말 속에 여러 가지를 유추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그래도 되는 사이가 되어주는 관계를 가진 사람은 다른 어떤 것을 가진 것보다 든든하리라.

생이 이제 많이 남지 않은 엄마, 그런 엄마를 끝까지 옆에서 지켜주고 싶어하는 아저씨, 뒤늦게 엄마를 알아가는 딸, 한동안 동거를 해오다 결혼을 허락받으러 갔던 날 동거를 끝내고 짐을 빼 떠나기로 하는 남자 친구. 

그제서야 성운과 내가 그래도 되는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69쪽)


아파트 건설 현장 분양 사무소, 횟집, 수목원, 버섯 농장, 플라스틱 사출 공장, 배달 업무 노동자, 이삿짐 용역, 이자카야, 부동산 사무실. 열편의 단편이다보니 배경과 주인공들 직업들이 다양한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재미를 더한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마치 그 현장을 들여다보는 듯, 이야기에 생기가 더 해져 더 실존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한 가족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다 똑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지 않은 가족 구성원, 그 관계, 상처. 인간이 사는 모습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작가의 고정 관념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어느 곳을 배경으로 하든, 가족으로 비롯되고 가족으로 다시 회귀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이란 없다. 내가 울고 있는 동안 그 누군가도 울고 있을 것이며, 내가 웃고 있는 동안에 그 누군가는 울고 있을 것이다. 내가 웃고 우는 동안 그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또 기다린다. 작가의 다음 소설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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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3-07-3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이설 좋아해요. 저는 첫 한 편 읽었네요.

hnine 2023-08-02 10:13   좋아요 1 | URL
첫 단편 제목이 추상적이지요 ‘모면‘.
세계문학전집 조금씩 들여놓기 시작한 이후로 한국 소설들 읽는 시간이 예전 만큼 안되는데도 출간 소식 들으면 바로 구입하게 되는 작가들이 몇 있지요. 김이설님도 그중 한분.
보물선님도 김이설 작가 좋아하시고, 피아노도 좋아하시고, 그림도 좋아하시고... ^^

자목련 2023-08-02 09:01   좋아요 1 | URL
저도요^^

2023-08-01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르마의 수도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
스탕달 지음, 원윤수.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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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이탈리아라고 하는 나라가 지금처럼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것은 200년이 채 못된다. 이전까지는 여러개의 도시 국가가 복작복작 이탈리아 반도 땅을 나눠갖고 있는 형태였다. 파르마 공국도 그 중 하나로서 이탈리아 반도의 북부에 위치한 나라였고 파르마가 수도였다. 스탕달은 프랑스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군인이 되어 이탈리아로 떠났던 것을 계기로 이후로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많이 하였다. 파르마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 <파르마의 수도원>은 <적과 흑>보다 9년 늦게 발표한 작품으로서 스탕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스탕달이 이탈리아에서 영사로 있던 때인 1833년에서 1834년 사이 로마를 방문했다가 16세기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문서를 몇 편 접하게 된다. 그 중에서 <파르네제 가문의 위대함의 기원>이라는 글에 특히 흥미를 느낀 스탕달은 이 얘기를 16세기 배경에서 19세기 배경으로 바꾸고 일부 내용을 첨삭하여 하나의 소설을 탄생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파르마의 수도원>이다.

19세기 초 이탈리아 밀라노 공국 (파르마 공국은 이야기의 나중에 등장). 델 동고 후작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그 중 둘째 아들 파브리스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폴레옹을 숭배하는 젊은이이다. 적과 흑에서도 그러더니 나폴레옹 얘기가 빠지질 않는다 (스탕달 자신이 나폴레옹 군대에 지원하여 참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어느 날 나폴레옹 꿈을 꾸고 나더니 나폴레옹 황제의 군대에 들어가겠다고, 이건 운명이라는 듯이 고모인 백작 부인에게 설파하는 내용이 소설의 초입에 펼쳐진다. 결국 전쟁터에 투입되어 전쟁에 임하는 모습이 허세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전쟁에 대한 환타지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아, 드디어 난 전쟁터에 왔구나!" 그는 생각했다. "난 포화를 본 거야." 그는 만족스러운 심정이 되어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이제 진짜 군인이야." 그 순간에도 호위대는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우리 주인공은 사방에서 흙덩어리가 날아오르는 이유가 바로 포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72쪽)

어수룩하게 전쟁 구경만 하다시피하고 돌아온 파브리스를 기다리는 건 그가 자유주의자라는 혐의를 씌운 친형의 음모였다. 다행이 파브리스를 너무나 사랑하는 공작부인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 공작부인은 파브리스의 친고모이다. 그런데 조카 파브리스에 대한 감정이 고모와 조카 사이의 친밀도 그 이상이다. 우리 정서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고모의 나이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었고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편도 아닌데다가 조카 파브리스 말고도 여러 남자들의 추앙을 받는 미모를 지닌 것으로 나온다. 단, 파브리스 역시 고모와 같은 감정을 지녔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사랑의 감정보다는 숭배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대목때문이다. 

그는 공작부인에게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녀를 향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한 것이다.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부인에 대한 감정은 숭배에 가까운 것이었으므로 사랑이란 말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는 부인에 대항 사랑이란 단어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햐면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이 정열은 그에게는 낯선 것이니까. 지금 그는 고귀하고 너그러운 감정이 솟아오르는 가운데 더 없는 행복을 느꼈다. (230쪽)

이런 파브리스의 성격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된 부분이 더 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그 주위를 수없이 맴돌기만 할 뿐, 그 문제를 뛰어넘을 줄은 몰랐다. 그는 아직도 너무 젊었던 것이다. 한가할 때면 그의 마음은 상상력이 언제라도 꾸며내 주는 소설적인 상황에 빠져들어 그 감각을 맛보는 데 정신 없이 몰두하곤 했다. 사물의 실제적인 특성을,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성찰하는 일에 시간을 쓰는 적은 없었다. (232쪽)

이후로 소설의 주 갈등 요소를 제공하는 사건으로, 파브리스와 떠돌이 극단의 여배우 마리에타의 연애 사건이 등장한다. 마리에타에게는 이미 정부 (情夫)가 있었고 파브리스에게 시비를 거는 정부와 싸움이 붙은 끝에 그만 그를 죽이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감옥게 갇히게 된 파브리스는 와중에 감옥이 있는 성채 사령관의 딸인 클렐리아와 사랑에 빠지고, 파브리스를 감옥에서 빼내기위한 고모인 공작부인의 온갖 노력으로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파브리스의 마음은 클렐리아에게서 떠나질 않는다. 

이후 클렐리아는 결국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절망한 파브리스는 파르마의 란드리아니 대주교의 수석 보좌주교를 거쳐 부주교의 지위에까지 오르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고 오로지 클렐리아 생각 뿐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동안 철없는 젊은이가 중심이 되어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랑 타령 이야기라 생각하며 가볍게 읽어오던 것을 홱 돌려놓을 만큼 급격하고 불행하게 맺는다. 제목이 파르마의 수도원인 것은 파브리스가 마지막으로 은둔에 가까운 생활로 정착하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1, 2권에 걸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

To the happy few


행복은 소수에게만 있다는 이 말이 오늘 따라 더 쓸쓸하게 마음에 닿는다. 

파르마의 수도원이 출판된 후 발자크는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내는 평문을 쓰기도 했다. 이 작품을 출간하고 3년 후 스탕달은 뇌졸중 발작으로 쓰러져 다음 날 새벽에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59세. 

소설 구성이 다소 산만하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더라는 의견들에 충분히 공감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말이 이렇게 될 것이라면 살아있는 동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그저 꿈 같기도 하고 행복을 쫒는 놀이에 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나 저나 행복이란 현실보다 꿈에 가까운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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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 고독한 방구석 피아니스트들을 위하여
임승수 지음 / 낮은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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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나 전공으로 하지 않으면서 취미로 즐겨 하는 사람을 아마추어라고 한다. 그게 예술 분야일때는 딜레당뜨 (dilettante) 라는 말도 있다. 아마추어나 딜레당뜨라고 하면 기술적인 숙련도나 깊이는 프로에 못미친다는 의미가 우선 떠오르지만, 그래서 더 부담없이 맘껏 즐길 수 있는게 아마추어의 특권이지 않을까.

자기 전공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도 가치 있고 존경스러운 일이지만, 자기 전공 아닌 분야에서, 즉 돈 되는 일도 아니면서 오랜 세월 진심인 사람은 멋진 사람이다. 이 책 저자 처럼 말이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좋아해서 레슨을 받고 있었지만 분야의 특성상 일찍 진로를 결정하고 진학을 해야하는 기로에서 뒤로 물러서고만다. 끓는 점인 100도 까지 오르지 못하고 99도에서 훅 꺾였다고 저자가 썼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피아노에 대한 열정은 계속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레슨을 받고 좋은 피아노를 찾아 다니며 쳐보고 사이버대학교 피아노과를 알아보고, 30평대 아파트에 중고 그랜드 피아노를 들여놓고, 시간이 날때마다 피아노를 친다. 





그가 연습하는 곡 중에는 악마에게 혼이라도 팔아서 잘 치고 싶다는 곡도 있고 (바흐의 부조니 샤콘느), 연습이 제대로 안풀려 답답할때 치면 위로가 되어주는 진정제 같은 곡도 있으며 (브람스의 인터메조),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는 곡도 있다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저자의 부인 ('기울어진 미술관'을 쓴 이유리 작가)이 책을 내고서 출판 기념회를 겸하여 저자의 미니 연주회를 마련, 그 유명한 스타인웨이 앤 존 피아노로 연주하는 모습은 그가 책에서 넌지시 알려준 그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서 보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즉흥환상곡을 정확한 터치로 흐트러짐없이 (정신 안차리고 치면 흐트러지기 쉬운 곡인 것을 아는 입장에서) 쳐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참 좋은 세상인 것이, 그가 책 속에서 소개하고 언급했던 곡들이 내가 따로 찾아볼 필요도 없이 책 뒤에 바로 QR코드로 실려 있다. 






스마트폰의 QR코드 리더를 갖다 대면 바로 이 곡의 동영상 연주 페이지로 연결되어 들을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나오기도 전, 훨씬 오래 전부터 역시 피아노에 몹시도 진심인 한 방송국 PD가 팝 캐스트를 통해 자신의 피아노 사랑을 얘기하고 자신의 연주도 올리더니 (나도 구독자였다) 다음과 같은 책도 냈었다. 




--> [알라딘서재]모든 아마추어들이여, 부러워하라 (aladin.co.kr)  (그때 올린 리뷰)


프로만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프로가 되는 순간, 그 일의 완성도에 신경을 써야 하고 실수가 생기지 않기 위해 집중해야 하며, 온전한 마음으로 즐기는 순간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하리라. 

아마추어로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주워섬기고 있는 나도 역시 피아노에 관해서 아마추어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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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23-07-2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평대 집에 중고 그랜드피아노라니...대단하네요.
악마에게 혼이라도 판다.
그 열정도 부러워요. 음..
요즘은 뭔가 하고 싶은게 없어요.

hnine 2023-07-22 21:06   좋아요 0 | URL
세실님, 우리 나이쯤 되면 일부러 찾아보거나 만들지 않는 한, 뭔가 하고 싶은게 많은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리고 예전에 써놓은 글이나 일기장을 들춰보면 분명히 생각나는게 있으실걸요.
일에 너무 치여서 몸과 마음의 여력이 없으셔서 그러실지도 모르고요.

icaru 2023-07-27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님 피아노 아마추어와 전문가 사이 어드메쯤인 거 저 잘 알잖아요!
쇼팽의 야상곡 중에서 한 곡을 연주하여 올리신 유튜브 영상 보고 놀라서 넘어갔잖아요!
ㅎㅎㅎㅎ 여전하시죠?

저 또한 요즘엔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읽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인데, 히사이시 조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에세이를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을 보면, 마음이 음악 언저리에 가 있기는 한 것도 같고 그래용 ㅎㅎ

icaru 2023-07-2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작년엔가 백건우가 연주하는 슈만을 주제로 한 피아노 독주회에 갔다가 엄청난 감화를 받고 왔던 기억이 있어요,
노익장의 무르익은 연주란 이런 것이다. 했어요. 듣고 있는데, 순식간에 내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시간 맞춰서 간 공연이라 미처 프로그램북을 챙기지 못했다가 인터미션에 나와서 줄서서 구매하고, 원래 그런 사람 아닌데,,,프로그램북도 얼마나 만듦새가 좋다며 감탄감탄하고요 ㅎㅎㅎ 그 이후로 저는 슈만의 환타지 c장조 작품번호 17에 3악장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되었어요! ㅎㅎ;; 나인 님 서재에서 사연을 풀어내는 저는 또 왜 이러는 것인지 ㅎㅎ

hnine 2023-07-28 18:56   좋아요 0 | URL
아이쿠, 창피해라. 지금 다시 유튜브 들어가보니 제가 듣기에도 아니다 싶었는지 그 곡은 내리고 없네요 ㅋㅋ. 남아있는 몇 곡들도 별 차이 없지만요.
피아노는 저에겐 대나무숲 같은 것이라서 위로나 위안이 필요할때 마다 피아노를 뚱땅거렸더니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왔어요 ㅠㅠ 그런데 지금은 민원을 넣었다는 그 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사일런트 피아노를 지르고 말았으니까요. 지금은 아무때나 마음 놓고 피아노를 칠 수 있어요.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지금처럼 조성진 임윤찬 선우예권 없던 시절에 피아니스트의 대명사 같은 분이었지요. 그 온화한 얼굴 하며 격정을 다 소화시켜 풀어내는 명상같은 음악.
얼마전엔 손민수 피아니스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연주 보러 통영까지다녀왔답니다. 제가 사는 대전에서도 통영은 먼 거리인데 무리를 했지요. 저도 눈물 콧물 범벅 하면서 숨 죽여가며 보았답니다.
icaru님 ,저 좀 말려주세요. 댓글에 답글 다는 핑계로 저야말로 수다가 길어지고 있네요.
위에 피아노홀릭 쓴 김영욱 pd야 말로 피아노 실력이 전문가 수준이어요. 말은 또 얼마나 재미있게 잘 하는지. 시간 되실때 한번 들어가보세요.https://youtu.be/CBWRLTpCjJI


icaru 2023-07-2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민수라면 윤찬 군의 스승님 역시 그 제자의 그 스승님이시네요!! 김영욱 피디 링크해 주신 것 꾹!!! 눌러 들어가보겠습니다~

보물선 2023-07-3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취향 공동체시군요! 반가워요~~~

hnine 2023-08-01 00:0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