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특이해서 이 책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 그러다가 직접 읽어보기로 한데는 얼마전 본 뉴스때문이었다.
이 책이 우리 나라도 아니고 영국에서, 출판 여섯달 만에 10만부가 팔렸다는 것이다. 유명 작가의 소설도 아니고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그것도 에세이가 해외에서 올린 성공 소식은 놀랄만했다.
저자 백세희는 1990년 생 젊은 작가. 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일했다. 출판사 들어가기 훨씬 전 대학 시절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여 내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오래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일 잘하고 섬세한 직장인이었지만 속은 곪아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분부전장애'라고 하는데 심각한 정도의 우울장애와 달리, 가벼운 우울증상이 오래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저자의 경우 이 기분부전장애를 10년 이상 겪어오며 정신과를 전전하다가 2017년에서야 자신에게 잘 맞는 병원을 찾게 되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게 되었고 그 상담기록을 모아서 만든 것이 이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다 (현재 2권도 나와 있다.).
우울함의 극단의 감정은 살기 싫다는 것, 죽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알게 된다. 그런 기분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도 문득 친구들이 던져주는 농담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금방 다시 되돌아올지언정), 배가 고파지면 반사적으로 좋아하는 떡볶이가 머리 속에 떠오르기도 한다는 것을. 그걸 알게 된 순간 사람에게는 이렇게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번에 일어날 수 있고, 그러니까 우울하다, 행복하다라고 나의 상태를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떡볶이 하나로도 뒤집어질 수 있는 이 기분이라는 것에 너무 휘둘리며 인생의 일부분을 소모하는 것 아닐까.
정신과에 다니며 상담 치료와 약물 치료를 받아온지 오래이지만 자기에게 맞는 의사를 만나는 것은 한번에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 있다. 마침내 본인에게 맞는 의사를 만났다고 생각이 들자 저자는 집에 와서도 상담 내용을 되돌아보고 되새겨보기 위해 담당 의사의 양해를 구하고 상담 내용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늘 자기 책을 내고 싶다는 평소의 소망때문이었을까. 점점 나아져 가는 듯한 자신의 치료 과정의 기록이 된 녹음 자료를 가지고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인 '나'와 '선생님'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우울증은 나와 전혀 무관한 분야라고 자신할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울증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우울감은 이제 어느 특정한 사람들의, 특정 시기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의사에게 털어놓는 말이 마치 내가 하는 말인양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저자는 일에서 더 인정받고 싶고 더 잘 하고 싶지만 실상은 늘 그렇지 못한 것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더 잘하고 싶은 생각에 압박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의사는 일종의 의존성향이라고 말한다. 일에 의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성과를 낼 때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안도하는 의존성향이다. 그래서 그런 성과를 내지 못할땐 실패감을 느끼고 그런 실패감을 느끼는 기간이 오래가면 정서 자체가 우울함이 되는 것이라고.
목표가 있는 것은 좋지만 너무나 높은 목표를 정해놓고 단기간에 이루고자 하며 이루지 못하고 있는 그 모든 시간들은 우울한 감정으로 채워버리는, 그런 짓을 나도, 우리도 하고 있지 않는가?
일탈이 필요해요. 우울과 좌절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도전해보는 게 좋아요.
허전하고 허탈하여 어쩔 줄 모르는 시간엔 폭식으로 자신을 괴롭힌다는 고백도 있다.
일상의 만족도가 떨어지면 가장 원시적인 퇴행으로 돌아가요. 먹고 자는 본능적인 거로요. 만족감의 중추를 가장 편한 곳에서 찾는 거죠. 하지만 먹는건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아요. 운동이나 프로젝트 같은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장기적인 목표를 통해 극복하는게 좋지요.
내 말에 상대방 반응이 나만큼 되지 않으면 저는 반만 즐거워요, 상대방도 재미있어해야 저는 완전히 즐거워요, 이런 제가 찐따 같아요라고 저자가 털어놓자 상담의사는 대답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게 부정적인 건 아니죠. 그게 지나쳐서 눈치를 살피면 문제가 되는데, 지금은 눈치를 살피는 행동이에요.
저자를 비롯해 우리 중에는 억지로라도 자기의 문제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내 탓이오' 운동이 유행한 적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지나치게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으려고 해서 문제를 더하는 경우이다.
편안함을 누리세요. 편안한데도 '이 약이 내 몸에 안좋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더 부담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 나한테 선물을 주면 '나도 언젠가는 갚아야 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뻐하고 현재를 즐기세요.
이유없는 허전함에 시달리며 살지 말자.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고민도 공감이 갔지만, 그에 대해 상담의사가 해주는 답변과 조언도 동시에 공감이 되었고 무척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을 읽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상담을 받는 사람의 입장도 되었다가 상담을 해주는 사람의 입장도 되어 볼 수 있다는 것. 일단 내가 그 둘 중 어느 한편에 완전히 속해 있기 전에 말이다. 그렇다면 양쪽 말을 객관적으로 듣기 어려워질테니까.
언젠가 이 책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형식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 김동영과 정신과 의사 김병수의 7년 동안의 치료와 상담 내용을 서로 번갈아가며 기록한 책 <당신이라는 안정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