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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
양의숙 지음 / 까치 / 2023년 1월
평점 :
일요일 오전에 KBS에서 방영하는 'TV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1995년에 시작했다고 하니 거의 30년이 되어 가는 프로그램이다.
영국에는 이런 TV프로그램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나라에는 유일한 고미술품, 민속품 감정 프로그램 TV진품명품에 고미술품 감정의원으로 자주 출연하던 한 분이 책을 내셨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분야별로 전문 감정 위원이 다른데 이 책의 저자 양의숙 감정위원은 주로 고미술품 감정을 담당해왔다.
1946년생.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민예품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사범대학에 들어갔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술공예를 전공했다. 이후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강의해오다가 대학에서 자리를 잡을 비전은 없다고 생각, 직접 화랑을 열었다. 아현동에서 시작하여, 인사동을 거쳐 지금은 제주에서 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장을 지내고 있으며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나이와 무관하게 생기가 느껴지고, 좋아하는 그 일을 오래 해온 사람에게는 깊이와 함께, 그 사람만의 세계가 보인다.
새것이 쏟아져 나오고 유행이 자주 바뀌는 시대에, 굳이 옛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의 가치를 알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일을 사십년 해온 저자는 고미술 명품이라면 꼭 백자, 청자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녀가 처음 구입한 민속품이 쌀 뒤주였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민속품들은 아름답고 화려한것도 있지만 소박하고 서민적인 것들이 많다. 명품이란, 양반이나 궁궐에서 쓰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고 시간이 느껴지는 것들 아닐까. 화려한 단청을 새로 입힌 웅장한 사찰보다 낡고 오래된 나무 기둥, 칠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도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는 절집에서 한 걸음 더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이 말이다.
둥글고 푸근한 멋 달항아리, 풍요의 상징 뒤주, 어둠을 밝히는 별 목등잔, 담백하고 화려하게 조선철, 경이로운 이름표 경패, 격조 높은 미감 주칠삼층탁자장, 원광의 미학 염주함, 승려의 애달픈 염원 저승효행상, 선비의 기백 화약통과 화살통, 고급스러운 사치품 담배합, 꿈길마저 아름답게 목침, 한 폭의 진경산수화 흉배, 선비의 머리 정장 탕건과 망건, 불멸의 꽃 어사화, 안비낙도의 삶 서안, 일탈과 파격의 미 제주문자도, 오색영롱한 세계 화각, 가체를 단정하게 다래함, 집안의 상징과 전통 약과판, 당당한 위용 머리꽂이, 세계 유일의 혼수품 열쇠패, 여인들만의 격식 노리개, 축하와 축복의 옷 원삼과 활옷, 신기루 같은 빛의 덩어리 백자개함, 살림의 기본 반닫이, 당당하고 섬세한 품새 채화칠기 삼층장.
책 읽는 사람에겐 아마도 자그마한 앉은뱅이 책상 '서안'엥 눈길이 머무를 수 있을 것이고, 활옷을 보고는 내가 결혼식날 폐백 드릴때 입었던 옷이 활옷이었구나 빙그레 웃음질수도 있을 것이다. 큰 달항아리 살 여유는 없어서 몇년 전 사다놓은 내 미니어쳐 달항아리는 둥글고 푸근하기보다 귀엽기 그지 없다. 단색으로도 멋을 충분히 내는, 절대 크지 않은 반닫이는 지금도 있으면 쓸모가 많을 듯 하다.
문화는 전해준 곳에서는 쇠퇴해도 그 문화를 전달받은 곳에서는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의 당대를 지배하던 청빈사상과 온돌 문화가 조선철을 망각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조선철이 일본에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한 사례일 것이다.
(*조선철: 털실과 면실을 엮어서 짠 조선의 카펫)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조선철과 같이 귀하고 소중한 문화재 속에서 화려하고 당당했던 한국미의 진정한 유전자를 되찾는 일이다. 일본인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의 미를 일컬어 "애상적 소박미"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문화의 가치를 어찌 이 하나의 틀 안에 가둘 수 있겠는가. (47쪽)
전문적인 내용으로 채우기 보다 일반인들을 위해 쉽고 길지 않게 설명이 되어 있어 읽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내용 중에 건축을 전공한 남편 얘기가 종종 나와 알아보았더니 명지대학교 건축과 교수를 지낸 김홍식 교수. 한옥 건축의 권위자이며 민중건축론을 주창하신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