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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평점 :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서 보는 작가가 몇 된다. 시인중엔 최영미가 그렇고 비평가 중에 신형철이 그렇다.
신형철 시화집 <인생의 역사>.
시화집이란 보통 시와 그림이 곁들여있는 책을 말하는데 이 책 에서 시화란 시 시, 말할 화 (그림 화가 아니라)이다.
그가 선별한 시에 그의 해석을 곁들인 책이다.
시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빈 바구니예요.
당신의 인생을 거기 집어넣고 그로부터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죠.
이건 신형철이 인용한 메리 올리버의 말이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시에서 확장하여, 삶의 방식으로서의 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마음으로 읽혀지는 시를 만나게 되면 특별한 감정으로 특별히 반갑다. 삶의 방식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듯, 나도 그 정체를 잘 모르던 내 삶의 방식을 누군가 써 놓은 시에서 찾아내는 기분이다. 늘 그런 기대를 가지고 시를 읽는다.
이 책을 배송 받고 겨우 프롤로그 읽었을 뿐인데 프롤로그에서부터 그런 시를 만났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며칠 전 페이퍼에 적어 놓기도 했다.
(--> https://blog.aladin.co.kr/hnine/14082384)
그가 시로 소개한 것 중에는 <욥기>도 들어가 있다. 구약성경의 그 욥기 말이다.
욥이 신을 향하여 고통에 차서 울부짖는다.
힘이 세신 주님께서, 힘이 없는 나를 핍박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망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이 몸을 치십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것 없는 이 몸을
어찌하여 그렇게 세게 치십니까?
<욥의 마지막 말> 중 일부
(유영교 작가의 조각 "욥" (대리석), 지난 주말 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 전시에서)
신형철 자신은 신학자가 아니라고 했고 나 역시 신학을 모르지만, 욥의 저 마지막 한탄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이기에 눈물로 공감한다.
"욥기는 시다." 라고 저자 신형철은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불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헤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숨막히는 허무를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살아 있는 자를 겨우 숨쉬게 할 수 있다면? (43쪽)
신은 그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앞에서 오히려 신이 발명되고야 마는 역설이라고 (44쪽).
그렇다. 신에 대한 나의 어리숙한 생각을 그가 이렇게 말로 표현해주니 나의 그 어리숙함이 더 이상 어리숙함이 아닌 것만 같아 안심하는 일이 겨우 나의 몫이다.
아무리 시에서 그런 공감을 기대하고 이해하고자 덤벼든다지만 그게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외국시이다. 외국시를 우리말로 번역해놓은 경우, 물론 내가 읽은 메리 올리버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 처럼 번역된 시라는 느낌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시들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그냥 활자로만 읽고 말 경우가 많다. 신형철은 <두이노의 비가>에 대해 말하면서 번역시들의 많은 경우 '성실한 실패작'이 될 때가 많다고 했다. 번역되자마자 시로서 작동하기를 멈춘다고. 그래도 포기하기보다는 평생을 두고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시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들었다.
이성복을 닮고 싶어한다는 고백을 하면서 시인 이성복이 카프카에게 품었었다는 물음,
카프카의 문학은 비관적인데 어째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가 (210쪽)
를 인용하면서 문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인생이라는 불에 대해 문학은 맞불임을, 인생이라는 화마를 잡기 위한 맞불이라고 이성복이 그의 시<극지의 시>에서 한 말로서 말이다.
그가 이성복 시인을 스승으로 우러르고 있다면 최승자 시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나타내며 책 속에 여러 번 시인의 시를 불러들여 말하고 또 말하고 있었다. 90년대 들어 최승자의 그 끔찍하도록 아슬아슬한 생을 저주한 시들에 믿기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간파했는데, 나는 그게 최승자 시인이 피흘리며 살아낸 최소한의 보상이고 최대한의 변화로 보여 반가왔는데 저자 신형철은 다소 아쉬워하는 듯 했다.
메리 올리버의 시에 붙여 그는 슬며시 그의 문학의 원칙 같은 것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의 다른 책에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112쪽)
이런 문장을 찾기 위해 때로 밤을 지새운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 책에 그런 문장이 하나라도 있다면 저는 얼마나 좋을까요 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런 이유로 그의 책을 찾아 읽는다는 것을 설마 모른단 말인가?
이 책에 실린 시인들의 시, 그에게 각별한 시들을 그는 평생 읽고 또 읽을 것이다.
그 시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런 시인들을 품고 있는 저자가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