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 - 미세먼지 걱정 없는 에코 플랜테리어 북
정재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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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계기가 있기 마련. 

저자가 온실처럼 집 안에 식물을 가득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호흡기가 유독 예민하던 아들때문이었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란 아들이 새빨간 코피를 흘리는 날은 뿌연 공기 속에서 운동했던 날이었어요. 그런 날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온 저 역시 초저녁부터 쓰러지듯 잠이 들었습니다.(6쪽)

미세먼지 문제는 단기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숨을 맘껏 쉬기 위한 산소 탱크를 갖고 싶다는 심정으로 식물이 가득한 숲 같은 집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크고 작은 식물 몇가지로 시작, 1년이 좀 지나고 나자 식물 화분이 200여개가 되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온실처럼 집안에 식물이 가득해지니, 외부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50 microgram/m3 일때도 실내공기는 5 microgram/m3 정도에 불과하여 신선한 공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수치로 증명해보인다. 안그래도 플랜트테라피니 뭐니 하면서 식물 키우기가 새로운 의미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요즘 고질적인 미세먼지 문제, 호흡기 교란 문제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저자가 몇개의 화분으로 시작해서 온 집을 숲 처럼 꾸미는 동안 경험한 것들,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움말 등을 담고 있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한 공간이 필요할테고 집도 커야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독자를 위해서 저자는 말한다.

식물을 키우고 싶은데 화분 놓을 데가 없어 키우지 못한다고요? 집이 작으면 작은 식물로 가득 채우면 됩니다. 오히려 사이즈가 작은 방일수록 식물의 긍정적 효과를 빨리 느낄 수 있어요. (9쪽)

어떤 식물로 시작하면 좋은지, 우리 집에 어울리는 식물은 어떤 것일지, 공간에 화분은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좋은지, 초보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들, 분갈이, 영양보충, 물주기 방법 같은 기본적인 사항과 함께 조목조목 얘기하듯이 어렵지 않게 써놓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의 식물들이 자주 언급되어있어, 어려운 이름의 식물들을 활자로 읽으며 생소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다. 사진도 풍부하다.

다만, 내용이 연계성있게 배열되기 보다는 토막토막 끊어진 느낌이 있고 그러다보니 중첩, 반복되는 부분들이 꽤 있어 좀더 세심한 편집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 3종 세트, 공기 정화, 마음 치유, 심미적 만족감을 널리 공유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본다. 아마 반려동물을 키우는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돌보는 일은 그들의 돌봄을 역으로 나 자신도 받게 된다는 것.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느끼는 점일 것이다.


"뭐라도 키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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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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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서 보는 작가가 몇 된다. 시인중엔 최영미가 그렇고 비평가 중에 신형철이 그렇다. 

신형철 시화집 <인생의 역사>. 

시화집이란 보통 시와 그림이 곁들여있는 책을 말하는데 이 책 에서 시화란 시 , 말할 (그림 화가 아니라)이다.

그가 선별한 시에 그의 해석을 곁들인 책이다.


시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빈 바구니예요.

당신의 인생을 거기 집어넣고 그로부터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죠.


이건 신형철이 인용한 메리 올리버의 말이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시에서 확장하여, 삶의 방식으로서의 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마음으로 읽혀지는 시를 만나게 되면 특별한 감정으로 특별히 반갑다. 삶의 방식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듯, 나도 그 정체를 잘 모르던 내 삶의 방식을 누군가 써 놓은 시에서 찾아내는 기분이다. 늘 그런 기대를 가지고 시를 읽는다.

이 책을 배송 받고 겨우 프롤로그 읽었을 뿐인데 프롤로그에서부터 그런 시를 만났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며칠 전 페이퍼에 적어 놓기도 했다. 

(--> https://blog.aladin.co.kr/hnine/14082384) 


그가 시로 소개한 것 중에는 <욥기>도 들어가 있다. 구약성경의 그 욥기 말이다. 

욥이 신을 향하여 고통에 차서 울부짖는다.


힘이 세신 주님께서, 힘이 없는 나를 핍박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망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이 몸을 치십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것 없는 이 몸을

어찌하여 그렇게 세게 치십니까?


<욥의 마지막 말> 중 일부






(유영교 작가의 조각 "욥" (대리석), 지난 주말 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 전시에서)



신형철 자신은 신학자가 아니라고 했고 나 역시 신학을 모르지만, 욥의 저 마지막 한탄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이기에 눈물로 공감한다. 

"욥기는 시다." 라고 저자 신형철은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불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헤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숨막히는 허무를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살아 있는 자를 겨우 숨쉬게 할 수 있다면? (43쪽)

신은 그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앞에서 오히려 신이 발명되고야 마는 역설이라고 (44쪽). 

그렇다. 신에 대한 나의 어리숙한 생각을 그가 이렇게 말로 표현해주니 나의 그 어리숙함이 더 이상 어리숙함이 아닌 것만 같아 안심하는 일이 겨우 나의 몫이다.

아무리 시에서 그런 공감을 기대하고 이해하고자 덤벼든다지만 그게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외국시이다. 외국시를 우리말로 번역해놓은 경우, 물론 내가 읽은 메리 올리버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 처럼 번역된 시라는 느낌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시들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그냥 활자로만 읽고 말 경우가 많다. 신형철은 <두이노의 비가>에 대해 말하면서 번역시들의 많은 경우 '성실한 실패작'이 될 때가 많다고 했다. 번역되자마자 시로서 작동하기를 멈춘다고. 그래도 포기하기보다는 평생을 두고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시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들었다. 

이성복을 닮고 싶어한다는 고백을 하면서 시인 이성복이 카프카에게 품었었다는 물음, 

카프카의 문학은 비관적인데 어째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가 (210쪽)

를 인용하면서 문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인생이라는 불에 대해 문학은 맞불임을, 인생이라는 화마를 잡기 위한 맞불이라고 이성복이 그의 시<극지의 시>에서 한 말로서 말이다.

그가 이성복 시인을 스승으로 우러르고 있다면 최승자 시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나타내며 책 속에 여러 번 시인의 시를 불러들여 말하고 또 말하고 있었다. 90년대 들어 최승자의 그 끔찍하도록 아슬아슬한 생을 저주한 시들에 믿기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간파했는데, 나는 그게 최승자 시인이 피흘리며 살아낸 최소한의 보상이고 최대한의 변화로 보여 반가왔는데 저자 신형철은 다소 아쉬워하는 듯 했다. 

메리 올리버의 시에 붙여 그는 슬며시 그의 문학의 원칙 같은 것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의 다른 책에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112쪽)

이런 문장을 찾기 위해 때로 밤을 지새운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 책에 그런 문장이 하나라도 있다면 저는 얼마나 좋을까요 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런 이유로 그의 책을 찾아 읽는다는 것을 설마 모른단 말인가?


이 책에 실린 시인들의 시, 그에게 각별한 시들을 그는 평생 읽고 또 읽을 것이다.

그 시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런 시인들을 품고 있는 저자가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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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22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론은 잘 안보게 되던데 hnine님은 최애작가 중 한분이군요.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대한 리뷰는 더 정성스럽게 쓰게 되서인지 이 책에 관심없던 저도 방금 보관함에 넣었어요. 읽어보고 싶어지는 리뷰입니다. ^^

hnine 2022-11-23 00:16   좋아요 0 | URL
평론 저도 어려워서 잘 안읽어요. 저는 평론을 읽는다기보다 신형철을 읽는다고 봐야겠죠 ^^ 저 같은 사람 꽤 있을거예요.
떄론 시인 이상으로 시적이고, 영화와 소설 감상글도 많이 발표했답니다.
바람돌이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Falstaff 2022-11-2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최영미의 책은 무조건 사서 보신다고요? 음. 그렇군요.
저도 최승자의 90년대 시는 신형절과 비슷한 생각이라서, 내 무덤 푸르고 이후에 그의 시는 읽지 않고 있습니다.

hnine 2022-11-23 00:53   좋아요 0 | URL
최영미의 시집뿐 아니라 에세이, 미술서등 저는 어느 권 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더라고요.
제가 읽은 최승자 시인의 시집은 90년대보다 이전에 발표한 것인데 이 책에 소개된 이후의 시들을 읽으니 다른 분위기가 확실히 느껴지더라고요.

서니데이 2022-12-0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hnine 2022-12-08 23:17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알라딘에 자주 글을 못 올리고 있는데도 이렇게 당선작으로 뽑아주셨네요,
서니데이님은 이렇게 축하까지 해주시고 ^^
감사합니다.
 
어른 공부 -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며 얻어낸 진한 삶의 가치들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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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른공부)에도 내용이 거의 드러나는 듯 하고 저자 이름 (양순자) 도 평범하여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저자 이름이 아무래도 익숙하여 소개글을 보니 오래전에 이분의 <인생 9단> 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찾아보니 무려 2007년. 15년 전이다.

사형수 교화의원으로 일하며 체험담을 입말체로 쓴 책인데, 독특한 직업을 가지면서 겪은 일들이라서 그런지 표현이 문학적이지 않고 자극적인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이 책 <어른공부>는 2012년에 나온 것을 올해 개정판으로 다시 낸 것이다.

그러는 사이 2014년, 7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음을 알게 되었다. 대장암 판정 4년 만이었는데 두번 항암 치료가 전부,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하고 죽음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사형수들의 교화위원으로 일한 30년 체험얘기가 대부분, 자신이 겪은 대장암 얘기가 조금 들어가있을 뿐이다. 책 마지막에는 딸들에게 남긴 유서 내용이 나와있다. 명단에 적힌 23명에게만 연락하라, 사망 바로 다음날 화장하고 조의금은 받지 마라, 수의를 따로 입히지 마라, 제사 지내지 마라 등의 내용이다. 그걸 보고 딸들은 얼마나 울었을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하루 하루 긴장하며 살아가는 사형수들의 삶을 수십년 봐왔기 때문일까. 

유서가 딸들에게 남긴 편지라면 그 뒤에는 자신을 치료해준 두 사람의 의사에게 각각 편지를 남겼다. 

이분의 말씀처럼 사람은 죽음 앞에서 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나보다. 그걸 자기 생에 적용시키기엔 이미 늦었으니 다음 사람들이라도 참고하라고 이렇게 글로 남기고가나보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공부하여 깨우치게 된것을 글로 남긴 것들도 읽으면서도 감동을 받지만 이렇게 직접 겪고 살아내어 알게 된 것들을 읽으면서는 나 역시 그 감동이 머리로만 들어오지 않고 마음 속으로도 들어오는 느낌이다.


어떤 아이는 비싼 장난감이 없어도 보채는 일 없이 혼자서 고물고물 잘 놀아. 어떤 아이는 산더미같이 쌓인 장난감 속에서도 보채고 칭얼거리며 저 혼자 노는 일이 없어서 엄마를 힘들게 해.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야. 어른이 돼도 혼자 못 놀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어.

(55쪽, '어른도 고물고물 혼자 잘 놀아야 예쁘다' 중에서)

맞다. 어른 중에 그런 사람 많다.


종교는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복 받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지. 세상 어디에도 기적은 없어.

(177쪽,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어' 중에서)

본인은 기독교인이었지만 구한다고 기도만 하면 다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절규하듯 매달리고, 전도하는 사람은 한술 더 떠 구하는 대로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무엇을 얻기 위한 믿음으로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으며, 구하는 것은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을 저자는 어른공부라고 부른 것이리라. 따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학교도 따로 없다. 이 공부는 정말 잘 하고 싶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2022년 개정판이 2012년 구판과 다른 점은 아마 화사한 그림이 들어가 있다는 것 같은데, 그림을 그린 박용인 님이 양순자 할머님의 사위되시는 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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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어른이 되고싶다고 늘 생각만 하면서 현실은 못따라가는거 같아 속상할때가 많네요. 이런 책의 어른들을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을거 같아요.

hnine 2022-11-16 20:00   좋아요 1 | URL
좋은 어른 보면 저절로 닮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따라하기란 어렵단말이죠 ^^
우선 다른 것보다도 나를 드러내는 것은 줄이고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사시는 분들 중에 좋은 어른 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분은 실제 옆에서 보면 매우 깐깐한 분이셨을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대쪽같은 그런 성격이 글에서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자기를 위함이 아니라는게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요.

호우 2022-11-27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제대로 살고 삶에서 배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바랍니다. 양순자님은 꼭 그런 분이셨네요

hnine 2022-11-29 17:14   좋아요 0 | URL
네, 그렇더라고요. 그냥 어른이 되는 것 아니고, 그냥 행복해지는 때가 오는 것도 아니고요.
양순자님, 살아생전에도 대단하시다 생각했는데 마지만 가시는 순간까지 그러셨더군요.
이제 이분의 책을 못볼 생각하니 아쉬워요. 교화위원 일은 누군가 대신 하시고 계시겠지요.
 





사랑

눈에 안보이는 사랑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생각할때면

나는 언제나

박형진 시인의 시 <사랑>

그 시 속에서 답을 찾아왔다.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길을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사랑에 대해 얘기할때

저 시 이상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

그에 버금하는 또 다른 시 한편을 만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정신 차리고 길을 걷게 하는 것

정신 차리고 계속 살아갈 힘을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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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22-11-10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떨어지는 낙엽에라도 다칠세라 몸조심해라.‘ 퇴직 앞둔 공무원들이 하는 말이에요. 순전히 졔몸사리는 이기적인 생각이지요. 근데 저 말이 굉장히 의미심장 하게 다가와요. 아차하면 한순간에 날아가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거든요.
그냥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hnine 2022-11-10 21:50   좋아요 0 | URL
아차하면 한순간에 날아갈수 있다... 글로 읽어도 바짝 긴장이 되는걸요. 직접 그 상황을 지나고 있는 당사자라면 더 그렇겠지요.
긴장 풀고 대충 살자 하고 있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그 한마디,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자각에 정신 차리고 살게 되는 그런 사랑. 이런 힘을 주는 사랑이라면 절대 놓치면 안될것 같아요.

호우 2022-11-10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 차리고 계속 걷는 것, 계속 살아가는 것. 이 마음이 사랑이로군요. 그저 버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었다니. 마음이 조금 따뜻해집니다. 박형진 시인의 시도 좋군요. 시인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거 같습니다.

hnine 2022-11-10 21:52   좋아요 1 | URL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경우 그렇지는 않겠지요. 때로 파괴적이고 무책임한 사랑도 있으니까요.
박형진 시인의 시, 좋지요? 사랑 그 이상의, 물아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 제가 참 좋아하는 시랍니다.
 
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
아오야마 미나미 지음, 양지연 옮김 / 사계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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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명이 늘어나 100세 수명 운운하는 때에 살면서, 60세에 무엇을 새로 시작하는 것을 유별나게 볼 일은 아니다. 나이를 핑계 삼아 새로 배우기에 너무 늦었다는 말도 섣불리 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보다는 의지력의 문제이고 용기가 부족한 것을 나이를 앞세워 핑계삼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나이 든 할머니가 60세에 외국어를 공부하는 분투기 쯤으로 보고, 노년을 저렇게 생기 발랄하게 보낼 수도 있구나 정도로 가볍게 보면 오산일수 있다. 이분은 와세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와세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한 여러 권의 번역서를 낸 바 있는 전문번역인이기도 하다. 미국 문학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영어 속에 침투해있는 스페인어의 흔적을 무시할 수 없었고 다양한 언어를 해 보고 싶다는 순수 동기도 작용하여 우선은 일본 자국내에서 NHK 라디오 어학강좌로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자꾸 미루게 되고 진척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 스페인어가 쓰이고 있는 현장을 답사해보고 싶은 마음에 멕시코, 쿠바 등을 여행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에는 드디어 멕시코에서 열 달 머무를 기회가 생겼는데, 어학 연수와 홈스테이를 함께 할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일년도 아니고 일주일 단위로 등록할 수 있는 편리성이 있다는 것에 이끌려 마침내 스페인어가 사용되고 있는 나라에서 스페인어 배우기를 시작하게 된다. 멕시코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과달라하라 (Guadalajara) 에서였다. 30대인 1980년대 중반에 스페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이후로 30년 후 나이 60세때 일이다. 

이 책은 어렵게 쓰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신변잡기나 여행기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답게 미국 영어에 스페인어가 많이 들어와 쓰이고 있게 된 배경, 그러자니 미국과 스페인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해놓았고 멕시코에서 사용하고 있는 스페인어와 스페인에서 사용하고 있는 스페인어가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르게 되었는지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놓았다. 역시 한 나라의 언어는 역사이고 문화이고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진지하게 스페인어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으나 관광차 왔다가 머무는 동안 스페인어도 한번 배워볼까 하여 등록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보고 나도 놀랐다. 그래서 수업 기간도 1주일 단위로 적용하는 학원이 많은 것이다. 형편에 맞는 기간 만큼 배우고 가면 되고, 원하면 나중에 또 와서 연계해서 더 배울 수도 있다. 이건 일종의 관광상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어라고 하니까 우리는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먼저 떠올리지만 전세계에서 스페인어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1위는 멕시코, 2위가 미국, 3위가 스페인이라고 한다. 스페인어는 스페인 이외의 국가에서, 즉 미국과 중남미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참고로 4위는 콜롬비아). 

멕시코의 국경일로 독립기념일이 있는데, 어디로부터의 독립일까? 바로 스페인이다. 2만년에 걸친 멕시코 역사의 대부분은 과거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 즉 인디오의 역사이고 이들은 마야, 아즈텍 이라는 고도의 문명까지 발전시켰던 민족이다. 1521년 스페인이 아즈텍제국을 정복하면서 토착민 세계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1821년에 스페인에서 독립하였지만 과거 인디오들이 다시 멕시코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다. 현재, 멕시코 국민의 80%가 인디오와 스페인인의 혼혈이라고 한다.

멕시코의 스페인어가 스페인의 스페인어보다 문법적으로 조금 더 단순화되어 있다는 것은 나도 스페인어 공부를 어줍잖게 나마 해오면서 알고 있던 것이다. 나야말로 아무 특별한 목적없이 어느 날 스마트폰에 앱 하나 다운 받고 혼자서 스페인어를 연습해온지 1년이 좀 넘었다. 아마 이 책도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는지 모른다.

저자가 멕시코에서 홈스테이하던 집 주인에게 나처럼 나이 많은 학생을 받은 건 처음 아니냐고 묻자, 이전에 80살 노부부가 온 적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직 50대인 나는 배우고 싶은 것만 있으면 된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고, 떠나지 못하게 발목 잡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사서 걱정을 하자면, 배우고 싶은 것이 없어질까봐, 그것이다. 그건 시간 없어서, 돈 없어서 못 배우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일테니까.










제목 Cielito Lindo. 예쁜 연인이라는 뜻.
스페인어를 몰라도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멕시코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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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22-11-0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테말라의 안티구아는 여행자들이 일정기간 머무르면서 스페인어를 배우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저도 찍어둔 곳인데 언제 갈런지요. 다리도 아파오는데...

hnine 2022-11-09 19:35   좋아요 0 | URL
어학연수가 마치 관광상품처럼 되어 있다는 인상이 드네요. 나쁘지 않죠.
nama님도 배우고 싶은게 많으실 것 같아요. 절반 정도 계획도 가지고 계시고요.
말씀하신대로 제일 문제가 될 것은 건강일텐데, 꾸준히 관리하고, 필요하면 치료받고, 그러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scott 2022-11-0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재밌을것 같네요
전 브라질 포루투갈어로 배웠는데 리스본에 가니 독일어처럼 들렸어요
스페인어는 정통으로 배워서 칠레 아르헨티나에서 쓰이는 어휘나 어법이 달라서 놀랬습니다
언어는 현지에서 부딪치면서 배우는게 가장좋지만 요즘은 팟캐스트 어학공부 틈틈이 해도
좋죠 ^^

hnine 2022-11-09 19:38   좋아요 0 | URL
제목이 좀 장난스럽다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는 학구열도 높고 연수 프로그램이 어떠하든 본인은 제대로 잘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분이었어요. 완벽주의 기질도 있어보이고요.
스페인의 스페인어보다 멕시코의 스페인어가 16% 더 저렴하다는 (더 쉽다는) 말이 본문 중에 나오더군요. 멕시코에서 배우길 잘 했다면서요.
요즘은 말씀하신 팟캐스트도 있고 앱이 좋은게 많아서 심지어 제가 제대로 발음을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체크해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