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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1 -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 미술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ㅣ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6년 5월
평점 :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7권이 곧 나올 예정이라고 하지만 현재 나와있는 것은 6권까지 이다. 이중 내가 가장 먼저 읽은 것은 5권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이었다.
그래도 제일 친숙하다 싶은 것이 르네상스 미술 아닐까 해서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읽은 것은, 2권 그리스 로마 문명과 미술이었다. 이것 역시 낯설지 않다 싶은 느낌에서 고른 것이다.
이 두 권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는데 읽고 나니 이런 책은 대출이 아니라 소장용이겠다 확신이 들어 이미 읽은 두 권 포함해서 여섯 권 모두 구입을 했다. 옆에 끼고 있다는 느긋함 때문일까. 가까이에 여섯권 주루룩 꽂아두고서 눈으로만 행복할뿐 실제로 읽는 것은 한동안 못하고 있다가 이제서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근래이다.
1권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편
영국 박물관에 두어 차례 가서 느낀 것은, 정확하진 않지만 이 박물관 소장품의 반은 그리스 로마 미술품과 더불어 원시, 이집트 미술품, 아시리아를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미술품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게 그것 같은,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들어가서 바로 처음 눈에 들어오는 로제타스톤 부터 시작해서 방문객들이 모여있는 미라, 이집트에서 끌어다모셔놓은 신전, 무덤벽화, 람세스 2세 석조상, 파피루스,
이 그림은 2018년 영국박물관에서 구입한 아래 책 (↙ ) 첫 페이지에 수록된 삽화이다.
지난 달부터 박물관에서 고대 이집트 문명에 관한 강좌를 신청하여 듣고 있는데 이 강의를 원활하게 듣기 위한 목적도 있고, 언젠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해야겠다는 수년 전 생각을 이참에 개시하는데 양정무 교수의 미술이야기 1권만한 책이 없었다.
이 책은
-1. 원시미술
-2. 이집트 미술
-3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렇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원시시대 미술품이라고 하는 것들은 사실 미술품이라기 보다 생활용품, 그들의 생활을 짐작하게 해주는 유물들인데, 이런 구분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언급이 나온다. 미술품과 생활용품을 굳이 구분하기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빗살무늬토기의 그 무늬를 꼭 어떤 기능을 위해 새겨넣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만든 원시인들은 쓸모보다는 장식에 더 시간을 들였을지 모르며, 미술이란 먹고사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행위로 보고, 미술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사치스런 무엇으로 여기는 것은 현대인들의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동굴벽화로 라스코 동굴벽화 (프랑스), 알타미라 동굴벽화 (스페인), 쇼베 동굴벽화 (프랑스)를 들었고, 동굴은 생활 공간이 아니라 신성한 공간이었으며 최초의 화가는 아마도 주술사였을 거라고 한다. 이 원시미술 파트에서는 그 시대에 상응하는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물도 함께 설명이 되어 있어 좋았다.
2부 이집트 미술편으로 넘어가면서 저자는 우선 이집트 미술은 그저 놀라움 자체라고 한다. 한 나라가 3,000년동안 지속되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움이라는 것이다. 이집트 문명과 나일강의 관계에 대해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나일강은 이집트의 유일한 수자원이자 주요 교통로이며 이집트의 모든 생명이 나고 죽는 곳이라는 상징적인 역할을 갖고 있다. 혹시 이집트에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은 카이로와 룩소르인데 카이로에는 이집트 박물관이 있고 근처에 기자의 대 피라미드가 있자만 그 외 나머지 유적은 전부 이집트 신왕국의 중심지였던 룩소르에 있기 때문이다. 두 곳 사이의 거리는 나일강이 시작되는 곳과 끝나는 곳의 거리라고 할 만한 것이라서 시간 여유가 없는 방문객들의 경우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고.
3,000년 동안 문화적 내구성을 가지고 지속되어 오던 이집트 문화가 왜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을까 라는 물음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집트 종교의 쇠락과 관련지었다. 이집트 특유의 내세관을 담고 있던 이집트의 종교가 점차 약화되다가 결정적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가 이집트 땅을 다스리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고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사라지는 등, 이집트 문명에 대한 이해 역시 완전히 소멸되는 시기가 왔다. 근대에 들어 서양의 여러 나라가 이집트의 고대미술품을 발굴하면서부터는 이집트를 괴기스럽고 이상한 미신의 나라로 폄하하는 시각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최근들어 이집트 문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되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집트 문명하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설명 또는 설명하려 시도되는 분야가 상징에 대한 것이다. 그림, 기호, 문자 등 거의 변함없는 상징 체계라 3,000년의 역사 동안 변함없이 통용되었기 때문에 그 의미를 해석할 줄 아는 것은 이집트 문명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런 상징 체계에 대해 익숙해져 있다면 직접 유적지를 돌아보거나 박물관을 방문하였을때 이해의 폭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이집트 미술을 다룬 2부 부제가 <그들은 영생을 꿈꿨다>라면 메소포타미아 미술을 다룬 3부에는 <삶은 처절한 투쟁이다>라는 한 문장이 뒤따르고 있다. 사후 세계를 믿고 삶과 죽음을 생각했던 이집트가 있었다면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전쟁, 사냥, 권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많다. 메소포타미아란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의 땅' 이라는 뜻인데 두 강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말한다. 오늘날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에 걸친 지역이다.
이 곳에서 수메르 문명으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를 거치면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기원전 500년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정복을 당하고 페르시아는 알렉산대 대왕에 의해 정복당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데,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은 단순히 여가 활동, 미의 탐구의 결과물이 아니다. 원시 미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미술에서 보듯이 미술활동은 생존이고 영생에 대한 기원이며 권력의 이야기이다. 자연을 극복하고 문명을 이루어낸 역사이다. 미술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술에 대한 이런 이해가 어쩌면 단순히 문명에 대한 지식 습득보다 더 중요한 깨우침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