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브, 막이 오른다> - 낯선듯 낯설지 않은 슬라브의 이야기들





오늘 아침 바람돌이님의 <슬라브 막이 오른다> 페이퍼를 보다가 책에 실렸다는 사진이 익숙하여 기억을 더듬더듬. 몇년 전 프라하 여행하면서 책에 실린 것과 똑같은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 생각나서 지난 사진 앨범을 뒤적거리게 되었다.


























프라하 국립극장 아래층 입구에 있던 하트.

바츨라프 하벨을 기리는 마음을 나타낸 기념비 같은 것이다. 

시내에는 바츨라프 광장이라는 곳도 있다. 관광객들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곳. 여기 바츨라프는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이 아니라 19세기 체코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성 바츨라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바츨라프 기마상에서 유래하여 이름 붙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










저 책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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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05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각도가 다르니 책보다 hnine님 사진이 더 좋네요. ^^ 체코 저도 가고 싶은데 코로나 전에 다음 여행지는 동유럽이다 하면서 여행계획 짜기 시작하다가 딱 막혔다는... 내년쯤에는 갈 수 있을까요? 저도 저 하트 사진 찍어오고 싶은데 말이죠. ^^

hnine 2022-05-06 08:11   좋아요 0 | URL
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딱 찍어놓고 있던 즈음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내년 쯤엔 갈수 있겠죠? 바람돌이님은 프라하, 저는 오스트리아 빈~ ^^
저곳은 프라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따로 일정을 세워놓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프라하 시내를 걸어다니며 시간을 보내던 날 들른 곳이었어요. 같이 갔던 남편에게 사진 보여주니 이런 곳에도 갔었나? 그러네요 ^^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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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꺼진 볼, 화장기 없는 얼굴,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는 단지 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어떤 내용일지 미리 짐작하고는 오히려 읽기를 주저하게 되는 책이 있다. 너무 푹 공감하게 될 것 같아 두려운 것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결국 읽게 된다.

최승자 시인은 1952년 충청남도 연기에서 태어나 열살까지 살았고 이후 서울로 전학. 고려대학교 독문학과를 나오고 이십대 중간쯤의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여러권의 시집과 산문, 번역책을 내었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1989년에 산문집을 이미 낸바 있고, 여기에 내용을 추가하여 2021년에 같은 제목으로 새 판본을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20대 중간쯤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라고 책의 첫문장부터 운을 떼었지만 오히려 그 이전부터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시인은 그런 감수성과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듯 보인다. 시인이 어릴때 고등학생이던 막내삼촌 덕분에 글을 빨리 깨우칠 수 있었고 책 읽는 재미를 붙이게 되었는데 그때 고독과의 의식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 같다고 저자 자신도 뒤에 나오는 글에 썼으니 말이다.


남녀 간의 정신적인 순수한 사랑에 눈떴다는 게 내가 이 책을 읽고 얻은 소득의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 더 큰 게 있었다. 그것은 고독과의 의식적인 첫 만남이었다. 그 이전에도 고독이라는 단어를 읽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책 속에서 나는 고독이라는 이상한 단어와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뜻을 제대로 알 리가 없었겠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내 나름의 느낌으로 그것이 쓸쓸하다, 외롭다 등의 느낌과 어떤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5)

 

책이 항상 유익한것은 아니다. 이 뭔가. 초등학교 때 벌써 고독의 감을 잡게 했다니.


하지만 유년기의 이 의식적인 고독 연습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그 조금 후에 나는 서울 국민학교로 전학하여 낯선 학교, 낯선 아이들 속에서 실제로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고, 이 세계 속에서 독립된 개체로 성장해가면서 한 인간이 그의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고독을 '실제로' 겪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08)


이렇게 직접 체험까지 하게 되니, 시인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다. 물론 이런 성장 과정을 거친 사람이 최승자 시인 한 사람은 아닐테지만. 그 모두가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런 개인적인 글뿐 아니라 당시 사회 분위기와 시류에 대해 청탁받아 쓰여진 글도 들어있다. 다음은 1980년대 시단의 특징을 양적 팽창과 표현의 폭력화 현상으로 보고, 이런 현상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1980년대 들어서 시는 요란한 양적 팽창을 보이면서 동시에 과격한 질적 변화를 드러내보였다. 과격한 질적 변화 중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시적 표현의 폭력화 현상이다. (122)


물리적으로 가해지는 힘만 폭력이 아니라 글도, 시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어떤 때 글이 폭력이 되고 마는지를 언급하는데, '비판의 근거를, 논리적 정당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는 노력과 수고 없이, 명분만을 등에 업고 일방적으로 두드려 부숨으로써 오히려 흑백논리까지 넘어선 무비판적 정신'이라고 했다. 즉, 근거와 논리가 비판의 필요 충분 요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정당성과 근거를 제시하는 수고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외치는 무반성적인 폭력적 비판 정신이란 근본적으로는, 그렇게 하도록까지 만든 외부적 압력 구조로부터 가해지는 폭력과 똑같이 강압적이고 일방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막말로 하자면 노상강도의 폭력과 다를 게 없다. (123)


그것이 정당한가 먼저 생각해보는 수고를 우리들은 하고 싶지 않아한다. 말만 하는 것 보다 더 어렵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니까. 


다작도 못되고, 다만 시가 좋고 시를 씀으로써 스스로 위안이 되니까, 시 아니면 다른 수단을 딱히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 뿐이지 시를 씀으로써 우리가 사는 사회에 영향력을 미친다거나 어떤 힘을 발휘하려는 노력을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게으른 시인이라고 했다.

시인님, 한번 인정을 받으면 계속 그만한 인정을 받아야하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열차게 달려야 하는, 그런 무비판적 기준을 시인님 자신에게도 적용시키지 않기로 해요 시인님. 당신을 스스로 게으른 시인이라고 부르신다면 그것은 반칙입니다. 


시인의 시가 너무 고독하고 우울하듯이 산문 역시 그러하리라, 읽는 나로 하여금 더 바닥으로 끌어내리리라 짐작하고 건너뛸뻔 했다. 하지만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책을 꺼내오는 손이 1초 더 빨랐다. 

자신의 병에 대해 털어놓는 부분은 읽으며 안타까웠다. 자신이 현재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당당하고 담백한 삶이라는 것 아닐까. 하지만 지금도 입원중이라면, 그렇다면 도대체 몇년 째 입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시인. 부디 그런 마음으로 회복해나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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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행복해지기
고대영 지음 / 길벗어린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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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시집의 공통점은?

상상력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영상매체가 제공하는 상상력의 범위가 가장 제한되어 있다고 본다면 그에 비해 시집과 그림책을 읽을때 읽는 사람 머리 속에서 작동하는 상상력의 세계는 매우 넓고 깊다. 내용이 설명적이라기 보다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식대로 해석하고 내 식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을 준다. 그래서 개별적이고 개인적이기도 하다. 

일생에 그림책을 읽는 시기가 세번 올 수 있는데 첫 시기는 내가 어릴때, 주로 부모님이 골라주는 그림책을 더듬더듬 읽는 시기이고, 두번째 그림책을 접하게 되는 시기는 자기 아이가 어릴때 아이에게 읽어주느라 보게 되는 때라면, 세번째 시기는 나도 이미 어른이고 읽어줄 아이도 없지만 내가 나를 위해 다시 보게 되는 때이다. 그만큼 인생의 연륜도 쌓여 모르는 사실을 새로 깨우치기 보다 알고 있는 사실을 일깨워주거나 잊고 살던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해주는 역할을 그림책을 통해 얻을 수 있고 그로써 새삼 치우와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고대영은 '글 고대영 그림 김영진' 이라고 함께 떠오를 만큼 지원이와 병관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 시리즈를 아홉 권이나 낸 작가이다. 그림책의 글 작가이면서 베스트셀러 그림책인 <강아지똥>을 출판한 그림책 편집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편집자로 십오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그림책 작가이자 강연자로서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다. 

백여권의 그림책을 예시로 들며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림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들, 그림책의 역할, 유명한 그림책이 왜 유명해졌는가, 그림책 편집자로서 살아온 얘기 등에 대해 쓰고 있다. 그림책 편집자로 오래동안 일해온 경력을 반영하듯이, 딱딱하지 않게 마치 친한 아저씨가 자기 얘기를 들려주는 양 쉽게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책 작가라고 하면 언뜻 그림을 잘 그리겠구나 하고 연상하기 쉬운데,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림책 작가라고 모두 그림을 잘 그려야 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글과 그림을 한 사람 손으로 다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는 하다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지만 그림에 자신이 없어 시도를 못해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대개 그림책의 글 작가가 내용을 글로 완성하고 나면 출판사의 편집자를 통해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줄 그림책 작가를 구하게 되고, 내용과 잘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줄 그림 작가가 그림을 완성하여 그림책 한권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러번의 수정과정을 거쳐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어떤 그림책은 십년도 넘게 걸려 완성이 된 것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림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부담없이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수록된 백여권의 그림책 대부분 눈에 익은 것들이기 때문에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작가에 대한 숨은 얘기 등을 적절히 삽입하여 지루한 줄 모르고 한권 뚝딱 읽게 된다. 그리고 그림책에 대한 애정은 좀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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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22-04-2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새롭게 그림책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에요. 저도 세번째 경우겠지요? ^^

hnine 2022-04-28 00:40   좋아요 0 | URL
아이가 크고 나서는 한동안 그림책 볼 기회도 없다가 어느 시기가 되니까 그 누구를 위해서보다 바로 저를 위해서, 제가 필요해서 다시 찾게 되고 선물도 하고 그렇게 되더군요.
그림책 속에 담긴 무언의 메시지를 찾고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림책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매력이자 행복인 것 같지요.

프레이야 2022-04-2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 사랑합니다. 시집의 공통점 맞네요
그리고 시는 이미지이니 그림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점도 비슷한 거 같아요. 아이들과 그림책 같이 보며 이야기 만들어 이어가고 그랬던 기억이 오래전이 되어버렸네요. 그림을 못 그려도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군요. ^^
얼마전 백희나 작가가 티비에 나오던데 상당한 노력과 수고로운 과정이 보이더군요. 새삼 다시 보였답니다.

hnine 2022-04-28 00:43   좋아요 1 | URL
나이가 좀 들어가니,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이렇게 넌지시 던지는 메시지, 이미지, 그림, 축약된 언어, 이런 것으로 느낌을 전달받고 이해하고 배우고 깨우치는 과정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저도 그림책을 만들려면 당연히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림책 만드는 모임에도 나가보고 배워보고 하다가 결국 꿈을 접었었답니다 ㅠㅠ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훌륭한 그림책들이 정말 많고 그것을 한권이라도 더 보고 내것처럼 소화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

페크pek0501 2022-04-3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동화책을 읽어야겠다, 하고 사 놓은 책이 있어요. 글자가 커서 금방 읽을 텐데 아직 손을 대지 못했어요.
동화 작가, 가 멋있어 보여요. 저도 수필을 쓰다가 잘 안 되니깐 갑자기 동화를 쓰고 싶은 맘이 들어서
동화 작법 이론서와 문학상 수상작들을 한꺼번에 구매한 적이 있네요. 그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면
웃음이 나와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했던 시간들이 생각나서요. 다시 방향을 틀어 칼럼을 쓰게 됐죠.
어느 장르든지 다 매력적이라고 봐요.

hnine 2022-05-01 07:07   좋아요 1 | URL
이리 갈까, 저리 갈까... ^^ 다시 언제 동화화의 인연이 맺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요.
동화와 그림책은 모두 어린이책으로 묶어서 보았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동화책과 그림책은 완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네요. 글이 눈에 안들어올때에도 그림은 눈에 들어올 수 있더라고요.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내 생각을 담는데 훨씬 더 여지를 많이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말씀대로 어느 장르든지 나름의 매력은 다 가지고 있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벚꽃 에디션) -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기록
심혜경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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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세. 요즘엔 할머니라고 하기엔 좀 이른 나이. 대학 졸업후 27년 동안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였고 이후엔 지금까지 12년째 번역가의 직함을 달고 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따로 사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여 사서가 된 것도 도서관에서 일하면 책 읽는 시간이 많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번역가가 된 것도 읽고 싶은 책이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였다고 하니 저자의 행로는 모두 책읽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을때 우리는 시작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기 보다는 일단 못한다는 전제하에 아쉬워하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 하면 참 좋겠다, ~에 가면 참 좋겠다, ~할 줄 알면 참 좋겠다" 등등. 하라고 등떠미는 사람도 없지만 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정말 형편과 상황이 안되어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도하는 용기와 결단보다 입으로 한탄하며 흘려보내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부터 말이다.

저자는 필요하다 싶으면 그 기회가 떨어지길 기다리기 보다 '시작하는' 사람이었고, 시간 없다는 구실을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방송대학 졸업장을 몇개째 손에 쥐게 되었고, 생각에도 없던 번역가의 직함을 달게 되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친 경우도 있지만 중도에 그만둔 종목이 더 많을거라고 고백한다.

노년은 정해놓은 나이부터 갑자기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나도 모르게 슬며시 노인의 대열로 점차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 사실이 즐거울리 있겠는가. 하지만 팩트는 팩트. 이 때 필요한 것은 '받아들임'과 '융통성'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융통성 있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계획하고 추진해 가는 것.

이제 공부는 어떤 자격증이나 직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배워보는 것이다. 이것을 공부라고 부른다면 공부라고 해도 좋다.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직업으로서의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뭔가 할일이 필요하다. 나는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따르는 모든 행위를 '공부'로 치환하기로 했다. 현재의 삶에 갇혀 더는 생각이 자라지 않을 때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그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내겐 뭔가를 배우는 일이다. (10)

집에서만 있기 답답할때 저자는 주저 없이 가방을 챙겨 카페로 향했고 그렇게 '카공 (카페에서 공부하는)족' 이 되었다.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방송대학에 등록을 했던 것이고, 뜨개질을 하기 위해 성북동 공방에 다닌다.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 윤독 (돌아가며 읽기) 모임을 만들어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자잘함 배움, 별로 중요한 것 없어 보이는 공부도 계속 쌓이다 보면 신기하게 한 줄로 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 줄에 안 꿰이면 '삽질'의 전리품으로 남겨두자. '공부'라는 요소가 인생에 추가되면 즐길 수 있는 일들의 선택지가 늘어난다. (13)

나의 경우 스페인어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거 뭐하러 하냐고 묻는 대신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 나의 전공이나 과거 직업과 전혀 무관한 것들을 배우러 장거리를 마다하며 신나서 다니는 것을 보고 유난 떤다거나 특이한 사람 보듯이 하기 보다는 격려해주고 긍정적으로 말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소심한 나는 그것에도 용기 백배이다. 혹시 이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정말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도전해나가는 중에 있거나 직업의 책임감, 성취해야 하는 도전을 앞두고 있는 사람보다는, 나처럼 이제 그런 의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알아서 하루 24시간 자기 시간을 채워나가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어떤 공부도, 어떤 시험도, 누구도 말리지 않지만 누구도 시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좋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내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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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1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았어요.
소음이 있어도 괜찮더라구요.
hnine님 스페인어 공부하시나요.
전공과 상관없이 외국어 공부는 좋은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좋다고 해요.
시험이나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면 이전보다 마음이 급하지 않고 좋은 점이 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hnine님,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22-04-19 21:43   좋아요 1 | URL
백색소음이라고 하지요. 적당한 정도의 소음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환경이 공부를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저도 카페 종종 이용한답니다.
스페인어는 얼떨결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영어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어서 의외로 아직 때려치지 않고 (^^) 계속 하고 있네요.

페크pek0501 2022-04-3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도 카공족이군요. 딸이랑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카공족들이 보이더군요.
딸에게, 저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부럽네. 좋아 보여, 라고 말했어요. 며칠 전에요.
저도 코로나가 계속 안정세를 보이면 카페에 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특히 여름엔 에어컨이 빵빵한 곳이 좋죠.
코로나 이전에 책 들고, 또는 노트북 들고 몇 번 가 봤어요.

이건 들은 얘기 - 김중혁 작가가 카페에 글 쓰기 위해 갔는데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알고 보니 은희경 작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카페로 옮겼대요. 한 카페에는 한 작가만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티브이 나와 한 얘기를 친구가 들려 줘서 웃었어요.ㅋ
 
[eBook]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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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꿈을 가지지 않을까.

큰 서점 말고 동네 작은 서점을 하나 내고 나도 책을 읽고 팔기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꿈.

저자 역시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여 에세이스트로 데뷔하였고 이후 소설까지 써서 내게 되었는게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에세이 쓰는 것보다 소설 쓰기가 훨씬 쉬웠다고).

소설이라고 했지만 대단한 스토리를 가지고 전개되는 것은 아니고 작가 또래의 30대 여자가 혼자 동네에 서점겸 카페를 차렸고, 바리스타 점원인 민준, 그리고 서점에 들르는 손님들 얘기, 가끔 서점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에 초대되어 오는 연사 등의 얘기가 복잡하지 않는 기법의 수가 놓아진 면보처럼 담백하고 가볍게 펼쳐나간다.



(39) 좋은 책의 기준은? 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 삶을 이해한 작가가 엄마와 딸에 관해 쓴 책. 엄마와 아들에 관해 쓴 책. 자기 자신에 관해 쓴 책. 세상에 관해 쓴 책. 인간에 관해 쓴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


좋은 책이란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데 동의한다.


(53)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좁은 경험으론 결코 보지 못하던 세상의 고통이 가득해요. 예전엔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무엇이 성공인가. 그 기준에 따라 책과 성공은 연결될 수도, 연결되지 않은 수도 있지 않을까. 물질적 성공을 말하자면 굳이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96) 누가 저 아이를 새장에 집어넣었을까. 아이는 알까. 새장 문을 안에서도 열 수 있다는 걸. 영주는 지금 영주가 하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아이가 직접 새장 문을 열도록 도와주는 것.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것.


아무것에도 의욕과 흥미를 보이지 않는 고등학생에 대해 서점 주인인 영주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꼭 사춘기 방황하는 소년의 얘기로만 볼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어른이 되어서도 새장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고 (이게 제일 행복할지도), 그 새장 자체가 우리가 만든 것일 수도 있다.


(133) 꿈이 다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꿈을 이뤘다고 마냥 행복해지기엔 삶이 좀 복잡하다는 느낌? 뭐 그런 느낌이에요.


단순한데 진리가 있고 정답이 있다고들 하지만 삶은, 생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만 안다. 


(282)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 그럴 수는 있겠지. 그런 사람도 분명 있을거야.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텐데.


(283)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


(284) 대충 아무일이나 해봤는데 의외로 그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어. 우연히 해본 일인데 문득 그 일이 평생 하고 싶어질지 누가 알아.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그러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미리부터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먼저 생각해봐. 그게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우선 정성을 다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경험들을 계속 정성스럽게 쌓아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288) 민준은 커피를 내리면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실력이 늘었다. 커피 맛이 좋아졌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런 속도로, 이런 마음으로 성장해도 충분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 바리스타가 돼서 뭘 하겠는가. 삶을 갈아 넣은 후에 최고라는 찬사를 받아서 뭘 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민준은 지금 자기가 신 포도의 여우가 된 건가 싶었지만, 아니라고 결론을 냈다. 목표점을 낮추면 도니다. 아니, 아예 목표점을 없애면된다. 그 대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최선의 커피 맛. 민준은 최선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민준은 더 이상 먼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민준에게 현재에서 미래까지의 거리란 드리퍼에 몇 번 물을 붓는 정도의 시간일 뿐이다. 민준이 통제할 수 있는 미래는 이 정도 뿐이다. 물을 붓고 커피를 내리면서 이 커피가 어떤 맛이 될지 헤아리는 정도. 이어서 또 비슷한 길이의 미래가 펼쳐지길 반복한다.


미래에 대해 어떤 미사여구나 어떤 철학적 정의보다 때로는 이렇게 구체적인 비유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이해하기 쉬워서일수도 있고,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지 않아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얘기하는 걸 듣는 것 같아서이다.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의 결과를 얘기하는 것 같아서이다.



소설로서의 재미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밍밍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곳에 밑줄을 치며 읽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친구가 이 책을 소개해주면서 읽으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는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내게는 과분하지만.


(참고로, 저자는 이 책을 낸 후 계속 작가의 길을 가는 대신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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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4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2-04-15 05:3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정작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 자신은 책 읽는 시간이 생각만큼 충분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애저녁에 그 꿈은 접었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여자는 계속 서점을 알차게 꾸려나가요. 그런데 글을 쓴 작가 자신은 서점도, 글쓰는 일도 아닌, 자기 전공 찾아 복귀하더라고요. 인터뷰한 사회자는 그런 배신이 어딨냐고 농담처럼 던지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