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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마음 - 매일의 실패를 넘어 경이와 호기심의 세계로
전주홍 지음 / 바다출판사 / 2021년 10월
평점 :
사회과학, 인문과학 할때 쓰는 넓은 의미의 과학 말고, 실험 과학이라고 하는 과학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작 '과학이 무엇인가', '과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과 정체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 안하는 줄 알았다. 그런 생각 할 시간 있으면 실험을 한번이라도 더 해서 데이터를 쌓아라 이렇게 농담처럼 주고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엔 제목조차 평범해보이는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분의 책 소개글을 봤던가보다.
결론은, 읽기를 얼마나 잘 했던가. 실험실이라는 곳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공감하며 책장이 술술 넘어갈 것이고, 앞으로 과학이라는 분야에 몸담고 싶은 사람이라면 결정하기 전에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 되었다.
우리 나라 처럼 고등학교 까지의 과학교육이 실험보다는 알려진 지식의 습득에 치중되어 있는 나라, 대학에 들어와서 조차 학부에서는 실험보다 강의 위주의 과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인 나라, 비로소 과학 현장에 뛰어 들어 과학 연구 활동이 시작되는 것은 대학원에 들어가서 어느 연구실에 소속이 되고나서부터인 나라에서 과학자로 평생 정진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강의실이 아닌 과학 현장에 투입되는 그때부터는 지금까지와 아주 다른 공부 방식과 연구 방식의 세계가 시작된다. 그래서 뒤늦게 아, 이건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도 하고, 그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과학은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구나, 머리보다 몸이 먼저 지치는구나 하는 것을 깨우쳐 가기도 한다. 갈수록 기계화 되어 가는 실험실 장비 익히기에 좌절하기도 한다.
실험실 (Laboratory) 이라는 말 속에 저 labor란 단어가 보여주듯이 실험실이라는 말의 어원에는 '신성한 노동의 장소', "기도하고 일하라'는 모토가 관련되어 있다. 노동, 그리고 일. 기도하듯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 곳이 실험실이다. 이 말이 16세기에 오면서 단순한 작업장이 아닌 스키엔티아 (scientia), 즉 자연에 관한 보편적 지식 또는 현상 이면의 질서를 획득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오늘날 실험실에는 연구원들의 책상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험실의 주요 무대는 그들의 책상이 아닌 중앙의 실험대이다. 대학원이나 연구원 실험실에서 책상에 앉아 논문을 열심히 읽거나 교재를 읽고 있는 학생이나 연구원들을 교수나 연구책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책상에서 나오는 결과 곧 업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험실 중앙의 실험대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실험을 통해 늘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기만 할까? 실험의 목적이 새로운 것의 발견에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험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클로드 베르나르는 1865년 <실험 의학 연구 입문> 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저자는 인용하고 있다 (67쪽)
실험은 우리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의 오류를 통제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과학의 출발점은 관찰이고, 종착점은 실험이며, 그 결과로 발견되는 현상들은 합리적 추론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흔히 과학의 방법으로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설 세우기는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경험적 인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입증하는 식으로 이루어짐을 지적하였고 기존 지식의 학장, 응용을 위해 실험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가설이 도출되는 근원에는 과학자의 직관도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출발일 뿐 실험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 비과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요건이 된다.
과학 지식은 종교적 교리와 달리 얼마든지 수정되고 반박될 수 있다. (104쪽)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 오류 가능에 대한 열린 자세는 과학을 비과학이나 종교와 구분하는 중요한 조건임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과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도전적이고 혁신적일까 라는 내용을 위해 2011년 <네이처>에 실린 짧은 기사 중 한편을 예시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인해 기능을 모르는 유전자가 많이 발굴되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과학자는 그동안 연구해 오던 유전자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119쪽)
분명히 과학자들은 일반인들이 기대하는 만큼 진취적이거나 모험적이지 않고 늘 하던 것을 더 잘하려는 성향도 강하다면서 그렇게 된 배경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고 상당히 설득력있었다.
이 책의 3장 제목이 '우왕좌왕 실험실 안에서'. 이 책 전체에 필요없는 내용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굳이 꼭 한 부분만 읽겠다고 한다면 바로 이 3장을 읽어보라고 하겠다. 실제로 어떤 과정에 의해 과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책이 아니라 문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난 연구 방식의 급격한 변화로 ① 실험 키트의 상용화, ② 실험 및 데이터 분석의 외주화, ③ 공동 연구의 활성화와 연구의 분업화 현상 을 들고 이것의 장단점을 지적하였다 (157쪽).
오늘날 과학은 직업적 성격이 강해졌지만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의 말을 들어 과학자의 소양과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나는 스웨덴 아카데미의 누군가가 이 일이 상을 받을 만큼 고귀하다고 결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나는 이미 상을 받았습니다. 그 상은 그것을 발견한 기쁨입니다." (175쪽)
이 책의 제목이 과학하는 마음인 배경이기도 하고 저자가 책 속에서 수차례 강조한 말 과학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라는 것의 다른 버전의 말이기도 하다.
과학에 들어있는 비과학적 요소, 예술적, 문학적, 사회적 속성에 대한 내용으로 책은 마무리가 된다. 이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이런 요소때문에 과학은 생각보다 훨씬 극적이고 우아하며 매력적인 활동이라고 했고 묘한 아름다움과 감동을 품고 있다고 했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 관한 지식은 대부분의 과학자가 겪고 있는 당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철학적 통찰력에 의해 창출되는 이러한 독립성은 단순한 장인이나 전문가와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연구자 사이의 구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12쪽)
저자는 분자생리학자로서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 교실 교수로 재직하면서 분자생리학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연구실이라면 조용하고 심각한 장소를 떠올렸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이 책 3장의 제목처럼 우왕좌왕, 떠들썩, 역동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질서가 있고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라는 것을 저자는 일반인들에게도 충분히 알려주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몸 속 세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교재 속의 세포는 2차원 평면 그림 속에 조용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 단위로, 어떤 때는 백분의 1초 단위로 돌아가는 역동적인 장소인 것처럼.
지금도 현장에서 무수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을 많은 연구자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