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지음,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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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loved.'

'너는 사랑받고 있다'라는 말로 해석하지만 어쩐지 우리 말로서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아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 한참 생각했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책의 메인캐릭터는 넷.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다.

소년이 케이크를 사랑하는 두더지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년은 두더지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걷는다.

걷던 길에 덫에 걸려 곤궁에 처한 여우를 발견하고, 두더지는 덫을 갉아 여우를 덫에서 풀어준다.

이제 소년은 두더지, 여우와 함께 걷는다. 그리고 말을 만난다.  

넷은 서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주기도 하며 걷고 또 걷는다.




찰리 맥커시. 1962년 영국 출생,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개인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려놓는 일을 하고 있던 중 올려놓은 그림 아래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댓글에 찰리는 친절하게 다시 댓글을 달면서 '대화 (conversation)'로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출판사로부터 책으로 만ㅁ들어보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렇게 그는 그림 그리는 화가에서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그림은 '용기'에 대한 것.





"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소년이 묻자 말이 대답한다.

" '도와줘'라는 말."






















Life is difficult.

But you are loved.


삶은 힘겹지만 넌 사랑받고 있어.




삶이 힘겨울때 우리를 일으켜세우는 것은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 속에 생겨났고 사랑으로 키워졌고 사랑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랑으로 계속 갈 수 있다는 것.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하고 그런 상대가 되어주는 것, 나는 그것을 덧붙이고 싶다.

찰리가 자기의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답장을 달아주었듯이, 책에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 그러했듯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가능할 것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을 선 채로 그 자리에서 다 봐버렸다. 멈출 수가 없어서 빨려 들어가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마지막 장.

그런데 놓고 나오고 싶지가 않았다. 대출해서 다시 읽고, 사진도 찍고,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한참을 끼고 있었다.

찰리 맥커시는 "The Spectator"의 만화가로 시작하여 Oxford University Press의 북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였다. 모노톤의 단순화된 선으로 사랑과 우정, 친절, 연약함 같은 섬세한 감정을 그려내는 그의 그림은, 전통적 일러스트레이션과 현대적 스케치를 융합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간단하지만 지혜로운 충고 (simple but saged advice).

아래 동영상에서 인터뷰어가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그렸냐고 묻자, 누구든지 (anyone)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답한다.

이 책은 12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BBC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찰리의 목소리로 오디오북으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따뜻한 목소리로 정신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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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24-10-08 0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좋아하는 책이예요. 두번째, 일곱번째 그림은 다시 봐도 울컥합니다.

hnine 2024-10-08 03:25   좋아요 1 | URL
예, 잘잘라님 서재에서 봤어요 ^^
이런 책 한권 남길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는 동안 이런 것 직접 깨우치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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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 한번 다녀온 후로 포르투갈이 제목에 들어간 책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여행 서적이 아니어도 그렇다. 얀 마르텔의 책으로는 우리 나라에 더 많이 알려졌을 것 같은 그 유명한 <파이이야기>도 이직 읽기 전이지만 서가에서 이 제목을 보는 순간 바로 골라 들었다. 고르고 나서 보니 얀 마르텔의 책이었다.

얀 마르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그가 <파이 이야기> 이후 15년 만에 완성한 책이다.

1963년 스페인 출생.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멕시코, 프랑스 등 여러 나라를 옮겨 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른이 된 이후로도 못 가본 나라들을 순례했다고 한다. 그의 특이한 상상력과 작가로서의 바탕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나 보다.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결국 연관된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공통점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아들을, 혹은 배우자를, 부모를 잃은 후 상실과 허무의 감정을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 덩그러니 놓여진 주인공이 나온다.


1, 집을 잃다.


1904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이 배경이다. 고미술박물관 학예보조사 토마스는 아들에 이어 아내와 아버지까지 연달아 잃는다. 신에 대한 반항으로 그는 뒤돌아 거꾸로 걷는 방법을 택한다. 어느 날 우연히 율리시즈라는 신부가 아프리카에 지내면서 그곳의 노예들에게 세례를 주는 생활을 하면서 남긴 일기장을 발견한다. 일기장을 다 읽은 토마스는 일기장에 나온 십자고상을 찾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해 떠난다.


2, 집으로


1938년 포르투갈의 브라간사의 상 프란시스쿠 병원이 배경. 이 병원의 의사이자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 로조라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어느 날 죽은 아내의 방문을 받아 한참동안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눈다. 에우제비우가 좋아하던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과 기독교 복음서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 등 한참을 이야기하고 홀연 듯 아내는 사라진다. 그러고서 얼마 안 있다가 모르는 노부인의 방문은 받고, 죽은 남편의 시신을 들고 와 부검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3,


1980년대 캐나다가 배경. 캐나다 상원의원 피터 토비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아들도 먼 곳에 살며 누이동생과는 가끔 전화 통화만 하며 지낸다. 상실감과 공허함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던 중 미국의 영장류 연구소를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서 자기를 유심히 쳐다보는 침팬지 한 마리를 눈여겨보게 된다. 자기를 향한 침팬지의 눈길에 마음이 쏠린 피터는 침팬지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내기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막대한 돈을 주고 절차를 거쳐 침팬지를 사들인 그는 침팬지와 함께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캐나다의 자기 집을 모두 정리하고 부모의 고향이자 그가 태어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난다.

세편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시간 대에 일어난 일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이 세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1부에서 아들과 아내, 아버지를 잃은 토마스는 박물관에서의 일에서도 아무 의미를 못 찾고, 아프리카에 떨어져 외롭게 지내던 율리시스 신부의 생활과 다름이 없다고, 자신의 처지를 오래 전 살다 간 율리시스 신부의 처지에 동일시한다.

거기서 그는 하찮고 대체 가능한 부속품에 불과하다. 토마스와 수석 학예사, 수집 관리자, 박물관의 다른 학예사들의 관계는 율리시스 신부와 주교, 섬의 성직자들의 관계보다 나을 게 없다. 동료들과 식사도 함께 하지 않고 외로운 섬처럼 앉아 있는 일터가 행복하겠는가? 토마스는 이따금 율리시스 신부가 상투메에서 겪은 모든 불행과 그가 박물관에서 겪는 불행이 똑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똑같은 권태로움, 똑같이 고독한 일의 본질, 그리고 그 고독이 타인과의 긴장된 만남으로 깨지곤 하는 것. 똑 같은 육체의 불편함. 토마스의 경우 퀴퀴한 지하 창고나 덥고 먼지 날리는 다락방에서 끝 모를 시간을 보낸다. 똑같이 숨이 막히는 괴로움. 똑같이 이해하려는 몸부림 (99)

아버지 대신 자기를 보살펴 주고 있는 숙부를 찾아가, 십자고상을 찾아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난다고 하자 숙부는 토마스에게 자동차를 가지고 가라고 내준다. 아직 마차와 수레가 주요 이동 수단이던 시대에 구경조차 처음 하는 첨단 기계인 자동차를 끌고 길을 떠나게 된 토마스. 숙부의 말을 거역하지 못해 전혀 내키지 않는 자동차를 처음 운전하며 가는 긴 여정동안 그에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숙부가 안겨준 자동차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끌고 목적지까지 간다. 그 중엔 그의 인생에 또 한번 돌이키지 못할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누구도 모른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까지 이르러 그가 찾던 십자고상을 발견하고서 토마스는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흐느껴 우는 이유가 계속 나열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우리는 진화된 유인원일뿐 타락한 천사가 아니다. 토마스는 외로움에 짓눌린다. (159)

그가 발견한 십자고상의 정체가 과연 무엇이었기에.


2부에서 병리학자 에우제비우가 모르는 노부인으로 부탁을 받고 부검을 하는 과정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얀 마르텔은 언제 이런 경험을 살제로 해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것은 3부에서 침팬지의 행동을 묘사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부인이 죽은 남편의 시신을 부검해달라는 이유는, 생전에 남편이 살아온 생에 대해 부검을 통해 더 알고 싶다는 것이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구석 구석 다 해부하여 시신 속에서 발견해내는 것들은 기상천외한 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부인은 에우제비우에게 자기를 그 안에 넣고 봉합해달라고 청한다. 남편의 시신이 곧 자기의 마지막 집이라는 의미이다.


3부의 침팬지와 사람의 교감은 앞의 1, 2부 못지 않게 경이로웠다. 오도 (침팬지의 이름)의 시선은 그가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문턱과도 같다고 피터는 침팬지의 시선을 묘사한다. 그리고 행동을 관찰하면서 침팬지의 동작이나 행동이 자기와 어디가 다른지 발견한다.

오도의 동작은 유연하고 정확하며 의도에 꼭 맞는 크기와 강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런 동작들은 전혀 이목을 꺼리지 않고 실행된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오도는 아무 생각 없이 순수하게 그 행동을 할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치에 맞는 걸까? 왜 생각-인간의 특징-은 우리를 어설프게 만드는 것일까? (351)

인간에게도 동작이 있고 행위가 있지만 그것은 침팬지만큼 자연스럽고 이치에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인간이 습득했다는 동작은 최소한의 수단으로 큰 효과를 발휘하게 하지만 그것은 '연기'이고 혹독한 '훈련의 결과'이며 인간이 고군분투하여 습득한 '기술'이다. 반면 침팬지는 쉽고 자연스럽게 한다. 침팬지는 그런 존재이다.

함께 지내면서 침팬지는 피터가 가르치면 인간의 많은 동작들을 배워 가기도 하지만, 침팬지가 사람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가 침팬지처럼 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고 놀라워한다.


1, 2, 3부의 세 남자는 모두 상실과 고독, 애도의 어려운 시기를 경험하고, 그 경험 속에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해 떠난다. 상실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상실과 외로움을 그대로 껴안은 채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근원지를 향해 떠난다. 자동차라는 희귀한 기계를 편리함보다는 짐처럼 끌고 가기도 했고, 인간이 아닌 침팬지를 데리고 자기가 원하던 곳 보다 침팬지와 함께 지내기 좋은 곳으로서 선택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서사 속에 끌어들여 상징적으로 이용한 마술적 리얼리즘<백년동안의 고독>에서와 같이 이 소설의 큰 특징이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아마도 오래 동안 기억에 남아 여러 번 되새길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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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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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자라는 말이 언제 생겼을까. 이것도 사실 정확한 용어는 아닌 것이, 현재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가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차를 이용하여 노동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직업이다.

제목 헬프 미 시스터는 중의적이다. 출퇴근 하는 직장 대신 집에서 수익 없는 투자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편을 둔 수경은 사기를 당해 거리에 나앉게 생긴 친정 부모님, 집 나간 오빠의 아들 둘 까지 한 집에서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약을 탄 음료수를 받아 마시고 성범죄를 당할 뻔 했던 충격으로 수경은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직장을 찾지만 쉽지 않자 생계를 위해 택배 일을 시작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 다른 사람과 연관될 일 없어 좋긴 하지만 트럭이 아닌 일반승용차를 가지고 하루에 배송할 수 있는 물량엔 한계가 있어 시간이 곧 돈인 택배 일은 진이 빠지게 한다. 혼자 고생하는 것을 보다못해 나중엔 어머니까지 합세하여 택배 일을 돕고 아버지는 음식 배달일을 나선다. 

혼자 일을 할 때보다 한결 힘이 되는데, 아직도 전 직장에서 당한 트라우마때문에 낯선 사람의 호의나 대화에도 불안감을 느끼는 수경은 택배 일도 안전하지 않음을 느끼던 중 여성을 상대로 하는 구인구직 서비스인 헬프 미 시스터라는 시스템을 알게 된다. 

이 위태위태한 집안에서 서로 짐이 될 수 있는 가족들은 짐이기 보다 서로 도움이 되어 헤쳐나가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쓰러지지 않게 서로 버팀목이 되어 가까스로나마 버텨나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문단에 데뷔하고도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생계를 위해 택배일을 했었다는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다. 

갈수록 늘어가는 플랫폼 노동자의 실상 그리고 여성의 노동 현실과 문제점들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한가닥 희망으로 마무리해준 작가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메시지가 느껴진다.

오래 전 박완서의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여성 문제, 노동과 빈곤의 문제, 그리고 가족 간의 갈등 속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얽혀들어가는지, 박완서 작가처럼 신랄하고 날카롭게 소설로 구현한 작가를 다시 만난 느낌이랄까.

이렇게 견뎌가는 것이 삶인가보다. 기어이 희망을 찾아가면서, 포기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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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9-27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핏 표지 봐선 미국 작품인 줄 알았더니 이서수 작가의 작품이네요. 언젠가 단편 읽은 적이 있는데 글 잘 쓰네했어요. 나중에 함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24-09-27 16:49   좋아요 2 | URL
이서수 작가의 책 저는 이것이 세권째인데 일단 재미있구요, 문장이 자연스럽고 이야기의 흐름이 산만하지 않아서 술술 읽혀요. 젊은 작가이지만 오래 써온 필력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저는 좋습니다.
 
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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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펄프헤드라는 제목부터 설명을 해야겠다.

'펄프픽션 (Pulp fiction)' 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미국 영화인데 영화제목 펄프픽션이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저렴한 종이 (펄프지)에 인쇄된 소설이라는 뜻이다. 주로 값싼 대중소설 잡지에 실리는 범죄, 공포, 탐정 이야기 등, 자극적이고 저속한 내용을 다뤘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문학적 가치는 낮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펄프헤드 (Pulp head)'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펄프픽션에서 유래된 단어로 해석될 수 있다. , 저급하고 자극적인 대중문화나 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head”는 특정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펄프헤드는 이러한 장르에 대한 애호가를 뜻할 수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제레미아 설리번이 2011년에 출간한 이 책 <펄프헤드>는 일종의 에세이 모음집으로서 미국의 대중문화와 사회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며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로 독특한 서술 방식을 보여주는 책이다. 각각 독립적인 열 네 편의 이야기f를 통해 미국사회의 특이성과 모순을 한데 모아 보여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의 구석에서 끌어올린 소재를 직접 체험하거나 답사하여 내용을 모으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정리하여 써내려 간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다. 어떠한 주제라도 유머 감각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진지함과 깊이를 함께 겸비한 이 책은 뉴욕 타임즈와 타임 매거진에서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모두 미국 사회 + 대중문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반석 위에서는 설리번이 크리스천 록 (rock) 페스티벌에 참석한 경험을 다룬다. 제목의 반석 rock을 우리말로 이렇게 번역한 듯. 독특한 음악 장르와 신앙이 관계를 분석하며 미국의 종교적 풍경과 음악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미스터 라이틀: 에세이는 설리번이 남부의 문학가 Andrew Nelson Lytle (1902-1995)과 함께 살았던 경험을 회상하며 쓴 글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라일리는 노년에 접어든 작가로 설리번은 그와의 시간을 통해 남부 문화와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된다.

마지막 웨일러는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 버니 웨일러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과 그 문화적 뿌리를 조명한다.

액슬 로즈의 마지막 컴백은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에 대한 글로 그의 복잡한 인격과 록 음악계에서의 부침을 기록했다.

마이클 잭슨의 삶과 음악, 그리고 그의 문화적 유산을 분석하여 그가 어떻게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는지에 대해 쓴 마이클’, 미국 남동부 원주민들의 알려지지 않은 동굴 유적과 그것을 발굴하는 사람들을 따라 가서 취재한 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굴들’, 자기 집을 페이튼스 플레이스라는 제목의 TV 시리즈 촬영지로 빌려준 이야기 페이튼스 플레이스등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직접 경험하거나 참여하여 쓴 기록이다.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글은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마구 훼손, 손상시키고 있는 인간에 대한 동물의 반격을 취재한 양들의 폭력이라는 글이었다. 지구가 마치 인간의 소유물인양, 인간은 다른 어떤 생물이라도 마구 이용하고 함부로 다뤄도 되는 권리가 있는 양 행세해온 오랜 시간들은 생각하지 않고 동물들의 반격을 의외라고 여기는 이기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인간에 대한 방어 차원의 공격 수준에서 나아가 언젠가는 동물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가정이 과연 가정일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게 하였고 지금의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온이 그에 대한 경고장임을 상기시켰다.

논픽션이라는 기본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이 자유롭게 가미되어 생동감 있는 글이 될 뿐 아니라 직접 본인이 보고 겪은 일을 썼다는 점에서 더 신뢰가 가기도 하는 점은 이런 형식의 글의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성은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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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4분 33초 -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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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보다 작가를 먼저 알게 되었다. 문학라디오에 초대 작가로 나온 이서수는 하고 싶은 말 많고 쓰고 싶은 것 많은 듯 질문자의 질문마다 솔직하게 얘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2014년 신춘문예에 당당히 당선되고도 아무데서도 책을 내자는 청탁이 들어오지 않는 동안 생계를 위해 택배, 북카페 까지 하면서 버틴 6년의 시간이 있었다. 작가는 그 시기를 '암흑기'라고 표현했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었을 인물 '이기동'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어려서부터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엄마의 기대와 다르게 외모도, 성적도, 능력도 어느 것 하나 뛰어난 것 없이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학생으로 학교를 졸업한 이기동은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공모전마다 떨어져 소설가로서의 능력도 의심스럽던 차에 아버지 유품 속에서 아버지가 써놓았던 소설 초고를 발견하고 그것을 응모하여 드디어 등단의 꿈을 이룬다. 하지만 이서수가 그랬듯이 이기동도 얼결에 등단은 했으나 아무데서도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백수로 시간을 보내면서 대필 작가에 지원하기도 하고 엄마가 하는 김밥집 일을 도와드리는 등 글 쓰는 작가와 무관한 일을 하며 절망도 낙담도 하지 않은 채 세월을 보낸다. 

학생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던 이기동은 알바 틈틈이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뽑아서 읽는게 낙이다. 그러다가 비록 청탁 들어오는데는 없어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 맘대로 쓰는 일은 언제나 할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 무렵 도서관에서 우연히 알게 된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와 그의 음악은 이기동에게 일종의 아이오프너였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소리들도 존 케이지에게는 음악이 될 수 있었고, 악기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 침묵 조차 음악이었다. (이서수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책이 1961년 출판된 John Cage의 <Silence>이다.)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라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은 것도 음악이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존 케이지가 있듯이 이기동에게도 남들이 아닌 나의 글을 써나간다는 소신을 가지게 하였다. 이 소설은 이렇게 존 케이지의 일대기와 이기동의 이야기가 병렬로 이어져 나간다. 존 케이지라는 레전드 격의 인물은 이기동과는 전혀 극과 극의 인물인 듯 하지만 이 둘을 작가는 독특하게 묶어놓는데 성공하였다. 

이기동은 자기의 원고를 포함하여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소설들, 낙선자들의 책을 전시해놓는서점의 주인이 된다. 이기동은 그렇게 자기만의 4분 33초를 연주하는 셈이다. 


이서수 자신이 말한 인생의 '암흑기'가 있었기에 존 케이지라는 인물과 그의 전위적 작품 '4분 33초'가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자기의 소설의 세계로 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더라도 계속되는 삶의 연주라는 메시지로, 작가 자신과 독자들에게 위로를 준다. 그런 위로를 발견하고 거기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냐고.


외모나 능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아주 모자란 극적인 인물 대신, 아무것도 특이사항이 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살려간 것도 작가의 개성일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므로.

특별히 행운도 비극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희망도 절망도 과장되게 그리지 않으며 자기의 살 길을 나름대로 찾아나가고 있는 이기동이란 인물을 만들어낸 작가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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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09-27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서수 라는 작가, 저도 관심을 두고 찾아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hnine 2024-09-27 16:53   좋아요 1 | URL
추천합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한국 작가들 책을 자주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작가의 책은 다 찾아 읽고 싶어요.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만의 색깔이 느껴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