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라디오에서 Schumann의 가곡 '호두나무'가 나오는걸 듣고 있노라니 생각나서 쓰기 시작한다. --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아침 6시에 테너 엄정행님이 진행하는 '안녕하십니까 엄정행입니다'라는 1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가벼운 클래식음악과 가곡, 엄정행님의 특유한 음성과 억양으로 간단한 곡 해설이 곁들여진, 아직 하루의 일과로 뛰어들기 전 부드럽게 잠을 깨워주는 듯한 기분으로 들울수 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 바로 이 Schumann의 '호두나무'였다. 프로그램 못지 않게 이 시그널 음악을 좋아했다. 원래 가곡을 피아노로 연주한 곡이 시그널로 쓰였는데, 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흘러넘어가는 선율이 참으로 곱고 평화로왔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Desert Island' 라는 BBC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다. TV도, 컴퓨터도 없이, CD player 겸용 radio 한 대 애지중지 가지고 있던 기숙사 방에서 하루가 100시간쯤으로 여겨지던 주말을 보내노라면, 특별히 두툼한 주말판 신문 뭉텅이와 radio 듣기가 낙이었다. Desert Island...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오전 11시쯤 방송되었는데, 사회에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명사가 한 명씩 출연하여, 자신이 선곡한 10여 곡을 가지고 그 음악에 얽힌 자신의 얘기를 사회자와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음악과 함께 주고 받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선곡된 음악이 클래식, 재즈, 영화 음악, 쟝르의 제한이 없었다. 영국사람들 특유의, 그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때로는 수줍어 하며 자신의 지난 날을 회고하며 들려주는 이 프로그램을 좋아했었다. 일주일치 먹을 것을 장만하러 시내에 나갈때에는, 이 프로그램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나가거나, 부득이 할때에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들으면서 갔었는데...
요즘 내가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나있는데, 사회교육 방송의 '나의 삶 나의 보람' 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원래 새벽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인가본데, 나는 시간이 허락할때 인터넷 다시듣기를 통해 듣고 있기때문에 정확히 몇시에 방송되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각양 각층의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가 겪었던 일, 자기가 현재 살아가는 얘기들을 풀어 놓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어떤 꾸밈이나 거짓이 있을것 같지 않아 좋다. 특별히 튀어나지 않으면서 그 어느 출연자와도 무리 없이 어울리는 진행자의 솜씨도 맘에 들고. 순탄지만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가시밭길이던, 또는 눈물 뚝뚝 흘리며 걸어야 했던, 그러나 지금은 조용히 웃으며 들려주는 그들의 '인생'을, 나 자신 뉘우침과 새로운 각성으로 듣게 된다. '인생'이 어떤 것이라는 힌트를 듣는다.
앞으로 난 또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 마음을 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