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랑

 

풀여치 한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때

그도 온전한 한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서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 박 형진 -

 

농촌 시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박 형진 시인이 1992년 봄 창비 75호에 발표한 시이다.

20대 후반 어느 날, 우연히 이 시를 대하고 얼마나 맘에 들던지.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어떤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정확한 언어로 빚어질 수 있다니

여기 저기 적어 놓고

적으면서 또 음미하는 기쁨을 누려왔었던 시절이 있었다

좋아하는 시 카테고리를 만들면서 갑자기 이 시를 떠올렸는데

원문을 찾을수가 없는것이다.

본문은 부분 부분 기억이 나는데

제목이 사랑이었는지 풀잎이었는지

시인이 박형진이었는지, 박형준이었는지...

드디어 검색해서 찾아내었다.

내가 생각하던 사랑의 느낌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예전에도 열정적인 사랑에 감동하지는 않았었나보다 후후..

나를 잊고 몰입시키는 불붙는 감정의 불꽃...이 아닌

조용조용히

있는지도 모르게

비로소 이 세상에서의 나를 알게 하는

그런 사랑을 꿈꾸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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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밥을 안먹고 딴짓 거리만 하는 아들 녀석때문에 이렇게 야단 쳐보고, 저렇게 야단 쳐봐도 매일 되풀이되는 실랑이.

어제 저녁에는 맘을 단단히 먹고, 약 10분간 두손 들고 있는 벌을 세웠다.

그리고서 풀어주고 달래고 다짐받는 시간.

나: 다린아, 다린이 왜 자꾸 엄마를 속상하게 하지? 안한다고 그러고서 왜 자꾸 그래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는거지?

다린: 왜냐면요...(훌쩍 훌쩍) 내 마음속에 나쁜 도깨비가 하나 살고 있거든요.  (훌쩍 훌쩍) 나는 엄마 말 잘듣고 싶은데요,....그 도깨비가 자꾸 그렇게 못하게 해요. 그냥 엄마 말 듣지 말고 장난치고 놀으라고 그래요...(훌쩍 훌쩍)...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말할 생각을...참 어이가 없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어디 책에서 이런 내용을 들은 적이 있어서 재현하는건가?

다린: ...나쁜 도깨비를 어떻게 내쫓아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 차를 타고 오면서, 나쁜 도깨비가 시키는 말을 자꾸 들으면 그 도깨비가 신이 나서 다린이 마음 속에 계속 있게 된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까지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도깨비가 하자는대로 따라하지 말아야 도깨비가 여긴 재미없다고 다린이 마음속에서 빠져 나가게 되는거다...라고 대충 나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말해주었더니, 알았다고 하며 듣던 다린이,

"그런데요, 내 생각에는요, 엄마 맘속에도 나쁜 도깨비가 하나 사는것 같아요. 엄마가 나한테 자꾸 나한테 화를내는거보면요"

꽈당~

참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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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1-0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맞는 말 같으네요. 제 속에도 나쁜 도깨비가 살고 있는 거였어요~! ^^

hnine 2005-11-0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녁때 가서 그렇게 시인을 해야겠지요?

세실 2005-11-0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린이도 엄마를 닮아서인지 상상력이 풍부하군요~~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요? 대단합니다..
다린이의 생각이 참 예쁩니다. 흐...

세실 2005-11-05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마흔 살이시군요....흐.....

hnine 2005-11-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그렇습니다!

조선인 2005-11-06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살 아이의 말 재주라니, 경이로와요.! 추천!!!

hnine 2005-11-06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추천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조선인 님...(얼떨결...^ ^)

LovePhoto 2005-11-07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무지 충격적인(?) 대화입니다.
"마음 속의 도깨비"라.....

서연사랑 2005-11-10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마로 이야기랑 hnine님 다린이 이야기랑 모아서 책 내야 할 것 같은데요^^
다섯살이면 서연이보다 1살 아래군요. 연상연하?ㅋㅋ

비로그인 2005-11-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속의 도깨비라...훗훗 아이들의 상상력은 정말 위대합니다.

로드무비 2005-12-0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다린이 깜찍하네요.^^
 

직장에서는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보다는

일 잘하는 사람 소리 듣도록 할 것

 

: 참고로  나는 지금까지,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는 것 같고, 누구랑도 잘 어울리는 무난한 성격, 누구와도 트러블을 일으킬 사람은 아니다..라는 소리를  들어오고 있다 (혓바닥 낼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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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5-11-0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 듣고 싶어요.
그렇다고 일 잘한다는 소리 들은 적도 옛날얘기...ㅠㅠ
알라딘이 문제야 문제...

비로그인 2005-11-0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맘내킬땐 잘하는데 뺀질거린다 였습니다 네...

LovePhoto 2005-11-27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가, 그저 뭐 쉽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와전되어 나타날 때가 종종 있는 게 아주 속상하지요.

하늘바람 2005-12-1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격 좋은 사람이란 이야기 아무나 들을 수 없어요. 괜히 일한답시고 나서다 보면 소문만 흉흉하고 조용히 근근히 일하는게 성격좋고 나중에는 일도 잘했던 소리 듣더이다 사실 전 그렇지 못했어요

LovePhoto 2005-12-2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참 중요한 얘기 같습니다.....
 

기침만 한번 콜록 해도

감기 걸린것 아니냐고,

약을 먹어라, 옷을 더 입어라

걱정 걱정 하던

그 마음이 진심이었나

그 마음 따뜻함 믿고 아내되기로,

그 마음 하나 보고 아내되기로 결심했건만

결혼 6년차,

힘들다 아프다 소리,

대꾸 한번 안하네

못들은것으로 하고 싶어하네

결혼해도 외롭다는 것은

이래서 나온 말 

사시 사철 추울수 밖에 없는

내 이름,

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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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5-11-0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 맘이 변해가는 듯 합니다.....
신랑이 피곤하다고 누워있으면 왜 이리 짜증나는지....
결혼하면 밥 하는거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더니 매일 늦게 들어오니 밥 구경 못해요.ㅠㅠ

hnine 2005-11-0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마음의 넓이가 저보다 훨씬 넓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 저도 변했을 여지는 생각도 안해봤거든요...
 

 가장 쓸쓸한 일

 

아아, 쉬임 없이 흐름으로써 우리를 고문하는

잔인한 시간이여

너를 죽여 모든 생활을 얻은들

모든 생활을 죽여 너를 얻은들

또 무얼 하리

 

 

오늘 아침 바쁘게 나갈 채비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었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볼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일터로 향하는 버스에서

어제 배달된 양정자 님의 시집을 처음 펼쳤는데

첫 페이지에 수록된 시가 바로 이 시이다.

이 시 제목을 따서  시집의 제목도

<가장 쓸쓸한 일>

이 시인의 시집을 처음 대한 것이 7-8년 쯤 전, <아이들의 풀잎 노래 (1993)>라는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었는데

중학교 교사로서 학생들과의 일상을

미화시킴이나 과장 없이 그려 놓아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시였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7년 뒤에 나온 이 세번째 시집의 시들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50대를 지나면서 보는 인생은

이다지 달라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인생의 본질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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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5-10-2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를 죽여 모든 생활을 얻은들
모든 생활을 죽여 너를 얻은들
또 무얼 하리"
와 닿습니다... 동동거리며 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이리도 바쁘게 사는지...

hnine 2005-10-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중에 결국 이런 시를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미리걱정주의가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