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구름 - 제22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하명희 지음 / 강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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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고요는 어디 있나요>를 읽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 코너에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띄기에 신간이 나왔나보다 하고 주저없이 골랐는데 알고 보니 작가의 첫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의 개정판이었다. 아직 못 읽고 있던 차에 잘되었다. 2014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던 <나무에게서 온 편지>가 10년 뒤인 2023년에 <슬픈 구름>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

1989년. 일용직으로 어렵게 겨우 살림을 꾸려가는 할머니와 사는 고등학교1학년 도은이가 주인공이다. 바람막이 하나 없던 집은 태풍때문에 그나마 있던 쪽문마저 날라가고, 집을 나간 엄마는 감감무소식이다. 의지하고 살던 할머니마저 일하러 나갔다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고약을 포장하는 아르바이트와 이웃의 도움으로 버텨가는데 학교에선 담임선생님이 전교조 문제로 해직되는 일을 겪는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급조차 따질 수 없는 영세 아르바이트, 담임선생님의 해직 등의 일을 겪으면서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되는 도은이는 고등학생운동에 발을 들이고, 대학생들과 함께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1991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1990년대의 정치 사회 이슈들이 줄줄이 나온다. 전교조,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등등. 이런 일들을 주인공과 비슷한 시기에 겪어낸 사람으로서 그 이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세상에 네 편이 하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기다린 시간만큼 그 시간의 아픔만큼 살아내라고. 그 기다림의 힘으로 살아보라고. (105쪽)

기다림의 힘으로 사는 동안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어쩌라고. 버틸만큼의 힘이 되어 줄까? 

힘을 빼고,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기가 앉을 곳을 향해 가장 편한 자세로 착지하려는 새는 호수의 저녁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얼마나 날아야 저렇게 날 수 있을까. 용기도 습관일거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용기는 용기를 내지 않아도 생길 거야. 날갯짓처럼, 밥 먹는 것처럼. 고약을 쌀 때 처럼.

"자, 지금이야!"

도은은 가로등 불이 켜지는 것을 포기하고, 새가 나무 위에 내려앉는 순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10쪽)

가로등이 켜지면 걱정을 자르고 벌떡 일어설 거라고 다짐하며 망설이던 도은이가 새를 보며 용기를 내는 대목이다.


바뀐 제목 '슬픈 구름'은 도은이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무에게 보내는 편지' 사연을 보낸 것이 소개되면서 함께 나온 노래 제목에서 왔다. 안데스의 인디오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뼈를 깎아 만든 피리로 연주하는 음악이라고 한다. 

함께 운동을 하던 친구들중 누구는 자퇴를 하고, 누구는 대학에 진학을 하고, 누구는 징계를 받았다. 도은이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를 도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재수 학원에 등록을 한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내가 싸운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도은이는 생각한다. 다시 어떻게 사회로 섞여들어가나, 어떻게 내 자리를 지키며 계속 살아가나.


지금도 세상의 뭔가를 바꿔보기 위해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건 사람들이 있겠지. 

30년 전의 일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기억으로부터 고스란히 재현되는 통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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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 단단한 생각의 말들이 이루는 공감과 울림
정은령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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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2017년부터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 팩트체크센터장을 맡아 일했다.

이런 저자 소개 이전에,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같은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때는 문과, 이과로 나뉘어 자주 볼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졸업하고 같은 해 대학생이 되었다.학력고사 세대. 키도 훤칠하고 리더쉽도 있어 중학교때부터 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던 학생이었다. 나는 공부는 그럭저럭 했지만 키도 작고 조용하니 눈에 띄지 않아, 동급생이지만 요즘 말하는 넘사벽이라고 할 그 친구와는 그냥 알고 지내는 이상의 친구가 되기에는 공통점이 많지 않아보였다.

서로 다른 대학으로 진학했고 대학에 간 후에도 동창들로부터 소식은 종종 들어 알고 있었다. 졸업후에는 신문 지상에서 가끔 그 이름을 봐오며 역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기자로 일했으니 그동안 많은 글을 써왔을텐데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2021년에 처음 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기사와는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책을 내기로 할때에는 개인사가 어느 정도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주저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주저하는 동안 여러 차례 권유를 받았을 것이다. 

일하는 여성이면 일의 종류를 막론하고 거쳐왔을 치열한 시간대를 그녀도 어김없이 거쳐왔다는 것을 글을 읽으며 알수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을 먼저 보냈고, 미국에서 가족과 의절하며 사시던 외삼촌의 마지막을 지킨 이야기, 감기가 낫지 않아 대학병원에 갔다가 혈액암 판정을 받고 무균실에서 고립된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엔 나도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은 단단해진다.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을 겪어내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속에 단단해져간다. 

50대 후반에 이르러 생각해보니 가장 치열하게 지내온 시기는 40대가 아니었나 싶다. 1인 1역도 버거운데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야했던 시기이고, 직장에서도 가장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대되는 시기이며,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기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남이 보기에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 두고 혼자 몸도 아니고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도전을 시도한다. 4년 여를 그렇게 보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산을 넘어야 했을까. 

얼마전에 펴든 백석의 시집도 이 책 때문이었다. 

사랑과 슬픔은 언제나 함께 부어져 삶의 잔을 가득 채운다. 그 모든 것이 앙금이 되어 가라앉은 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외로움의 시간으로 향할 때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나도 생각하게 될까. (171쪽)

'백석을 읽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 중 일부이다. 그렇다 사랑과 슬픔은 언제나 함께 부어져 삶의 잔을 채운다. 앙금이 되어 가라앉은 뒤, 아마 나이가 훌쩍 든 후겠지, 그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외로움의 시간. 그것마자도 우린 극복하며 살것이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때로 생명의 힘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설명할 수도 없을 때, 삶을 생명 쪽으로 끌어간다. (185쪽)


치열하게 살며 남은 것이 나와 내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이기심만은 아니고, 물욕과 명예욕만은 아니며, 여전히 사회의 소외되고 눈길 못받는 사람들을 향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서 좋다. 

중고등학교때 그 씩씩하고 당당하던 모습의 그녀가 쓴 글에 이렇게 공감하고 빠져들수 있던 것은 나이가 주는 선물이라 여긴다. 앞으로도 신문지상에서 아니면 이렇게 책으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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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8-29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참 좋네요.^^

hnine 2024-08-29 17:12   좋아요 2 | URL
책 제목은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의 책 <라틴어 수업>에 나온 문장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때 첫 인사로 사용하던 말이라네요.

세실 2024-09-0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 듭니다.
삶에 정답은 없지만 누구에게나 행복이든 불행이든 총량의 법칙은 있다는걸 요즘 느끼고 있어요....
그동안 참 편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hnine 2024-09-05 07:24   좋아요 0 | URL
상처는 드러내야 치유가 되니까 그런가봅니다. 비록 흉터는 남을지라도 그 흉터를 두려워하면 치유는 없겠지요. 학창시절을 알고 있던 이름을 이렇게 수십년만에 책으로 만나니 읽으면서 감회가 새로왔어요.

2024-12-27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는 목수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 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낮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내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 석,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외로운 감정을 이렇게 잘 표현했을 수가 있나.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시.



가끔 가다 꺼내서 펼쳐 읽는 백석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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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우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8
샤를 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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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 읽을 책을 네가 한번 골라줘볼래?"

부탁했더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아들이 골라준 책이 <파리의 우울>이다.

왜 이책이냐고 물었다.

아들이 대답하길, "파리는 우울한 도시가 아니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파리는 우울한 도시가 아닌 것에 반해 이 책에선 우울하다고 했으니 무슨 내용인지 읽어볼만하지 않겠는냐는 뜻이다.

사실 아주 오래 전 최영미 시인이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렘브란트와 보들레르에 대해 발표한 글 ('창비문화' 1995년 1-2월호)을 읽어 알게 된 이후로 이 책은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보질 않았을 뿐 내게 생소한 책은 아니다. 

그 때 밑줄을 그어놓았던 부분이 보들레르의 시 '새벽 한시' 중 일부분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자들의 영혼이여, 내가 찬양했던 자들의 영혼이여, 나를 강하게 해주소서. 그리고 세상의 허위와 썩은 공기로부터 멀게 해주소서. 그리고 당신이여. 나의 신이여.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도 못하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줄 아름다운 시 몇편을 쓰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내가 여기 밑줄 그으며 읽은 때가 1997년, 20대 후반이었을 때딘데 지금도 어렴풋이 알것 같다 무슨 맘으로 밑줄을 그었는지. 


보들레르. 18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 경제적으로 부족한 환경은 아니었으나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젊은 시절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20대 중반에는 자살 기도를 하기도 했으며 잡지에 미술 비평 글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여기 저기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1857년 그의 나이36세에 그 유명한 시집 <악의 꽃>을 출간하였다. <파리의 우울>은 처음에 <소산문시집>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가 제목을 바꾸어 발표한 산문시집이고 그의 나이 43세때였다. 마비 증세와 실어증 증세를 보이다가 46세에 세상을 떠났다.

소산문시 (Petits poems en Prose).  책을 펼쳐보면 시처럼 보이는 글은 없고 거의 대부분 산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새로운 장르의 산문 혹은 새로운 장르의 시라고 봐야할지. 보들레르 자신이 직접 소산문시라고 붙였으니 그렇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한편의 소설, 두편의 에세이가 남겨져 있지만 보들레르의 대표작이라면 <악의 꽃> 과 더불어 이 책 <파리의 우울>이라고 할 수 있는데 10년 간격으로 발표된 두 책은 매우 닮아있어서 실제로 이 책 <파리의 우울>에는 50편의 소산문시가 실려 있는데 각각에 역자의 주석이 달려있고 상응하는 <악의 꽃>에 실린 시 구절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



-수수께끼 같은 친구여 말해보아라,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 아버지? 어머니? 누이나 형제?

     나에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소

-친구들은?

     당신은 오늘날까지 내가 그 의미조차 모르는 말을 하고 있구려.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위치하는지도 모르오.

-미인은?

    불멸의 여신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겠소만

-돈은 어떤가?

    당신이 신을 싫어하듯, 나는 그것을 싫어하오

-그렇군. 그렇다면 너는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느냐, 불가사의의 이방인이여?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기 저 찬란한 구름을.



('이방인' 전문)

아버지, 어머니, 형제, 조국, 여인, 신, 모두를 거부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흘러가는 구름'이다. 이 이방인의 정체는 시인 자신일 것이다. 피를 나눈 가족은 물론 속인의 무리에서 스스로를 따로 떨어뜨려놓고 생각하는 '고독'은 보들레르 시의 키워드를 이루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불멸의 여신이나 흘러가는 구름처럼 불멸이어야 한다. 초자연적이어야 한다. 실제로 보들레르는 자연을 본능, 욕구와 같은 차원으로 보았고 자연은 인간에게 욕구 충족을 위한 범죄를 부추길 뿐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근본적인 본능이며 이런 본능이나 자연스런 충동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 결여된 동물과 다를바 없다고 하였다. 잘 알려진대로 보들레르의 여자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이런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과 같은 차원으로서 여성은 정신적 욕구 없이 자연스런 욕구만 충동하는, 천박하고 혐오감의 대상이라고 본 것이다. 

위에서 최영미 시인도 인용한 바 있는 <새벽 1시에>라는 시는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마침내! 혼자가 되었군! 

이렇게 시작하는 시는 

가증스러운 삶이여! 공포의 도시여!

라면서 대중으로부터 분리를 해방으로 보았다. (*댄디즘 dandyism: 대중의 천박함을 경멸하고 고고한 고독을 찾는 주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유행)

그에게 시란, 예술이란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무리, 자연의 욕구를 경멸하는 대신 보들레르는 예술과 시가 악에 물든 인간에게 인간 본래의 존엄성을 회복해준다예술의 속죄적 역할을 지향하였다.

하지만 '군중'이라는 글에서 보이는 그의 경향은 과연 보들레르의 마음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다시 한번 의문이 들게 하기도 한다.

다수의 군중과 고독, 이 두 어휘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적극적인 시인에게는 서로 교환할 수 있는 동등한 어휘다. 자신의 고독을 채울 줄 모르는 자는 역시 분주한 군중 속에서도 홀로 존재할 줄 모른다. 

시인은 제멋대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동시에 타인이 될 수도 있는 비길 데 없이 훌륭한 특권을 누린다. 육체를 찾아 방황하는 넋처럼 그는 자신이 원할 때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간다. ('군중' 일부)

그에게 군중이란 두가지 상태로 인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우리가 아는 사람들의 무리로서의 군중과 (그가 경멸해마지않는) 자유롭고 편파성 없는 지성으로서 다른 사람들 무리 속에 스며들어가 느껴보는 군중이다. 후자는 시인 혹은 시나 예술에 의해 다듬어진 사람들에게 가능하다.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이라고 얘기하며 파리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모습의 파리를 따로 가지고 있었듯이, 그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군중은 자기가 그 일원으로 있을 때의 군중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들어가 암행을 즐길 때의 군중이었다.

모순. 이중적. 이율배반적이며 상호보완적.

파리의 화려한 중심 이변에는 파리의 중심에서 밀려난 소외 계층이 있다. 시인의 관심을 끈 것은 화려한 중심이 아니라 밀려난 계층의 파리였다. 늙은 독신자, 낙오자, 잊혀진 자, 병든자, 창녀, 광대. 이들의 파리는 우울하다. 이들에 대한 시인의 연민이 파리의 우울의 정체였을까. 그렇다고 해도 보들레르의 이런 연민의 감정은 그의 시 속에서 연민으로 공감할 수 있게 쓰여졌다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의 어휘로 표현된다. '가난뱅이를 때려눕히자'라는 그의 소산문시는 그래서 잘 해석되어야 한다.

이 글의 주석에서 역자는 '폭력에 의한 시인의 치료책이 늙은 거지에게 자존심과 생기를 되찾아준다' (276쪽)고 했다. 그 시대의 순진한 휴머니스트의 주장에 대한 보들레르의 항의이며 동시에 시인 자신의 이상을 담고 있다면서.

파리에서 외로웠던 사람, 겉으로 보이는 경박함과 그 속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고독을 가난뱅이들, 늙은이, 병든자의 모습에서 발견하고 동일시하며, 자신을 패대기치듯이 그들을 짓밟으며 시로써 포효한 사람.


그의 우울은 보통의 우울과 다르다. 그의 고독은 우리가 마주한 고독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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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기행 2 펭귄클래식 18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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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이미 이탈리아의 로마, 베네치아, 볼로냐, 나폴리, 시칠리아를 여행하였고 이 여행기록이 <이탈리아 기행 1>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괴테는 로마를 다시 방문하기로 한다. 두번째 방문에서 10달을 머물렀으니 사실 방문이라기 보다 로마'체류'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1권이 비교적 여행기의 성격을 띠는 반면에 2권은 한층 성숙된 생각과 감상이 담겨 있고 작품 구상, 새로운 배움의 과정을 기록한, 한권의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었다.

두번째 로마에 머무는 동안 괴테는 <타소>, <타우리우스의 이피게니아>, <파우스트>, <에그몬트> 등 작품의 완결을 위한 구상에 많은 시간 할애하였고, 스케치와 그림 그리기에 매진하기도 한다. 

괴테에게 로마는 커다란 배움의 장이었다.

나는 금방 졸업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예술에 대한 내 지식, 보잘것없는 재능을 철저히 다듬어 완전히 무르익게 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반쯤 되다 만 사람으로 여러분 곁에 되돌아갈 것이고, 그리움, 노력, 버둥거림과 잠행이 또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15쪽)


괴테는 문학에만 관심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로마에 와서 제일 열심히 한 것 중 하나는 화가의 지도를 받으며 그림과 조형예술에 매진한 것인데 그동안 성당, 박물관 등의 유명한 그림과 조각을 보러 다니며 예술의 한 분야인 미술에 대한 재능도 발굴하고 싶었나보다. 여행하는 동안 괴테와 동행해준 사람들은 시중드는 하인이 아니라 음악, 미술, 철학, 문학, 고고학등 각 분야에서 괴테의 조력자가 되어줄 사람들이었다. 이 책의 표지에서 볼 수 있는 괴테으 초상화를 그려준 티슈바인이 그렇고, 앙겔리카, 라이펜슈타인, 하케르트, 모리츠, 하인리히 마이어등, 늘 괴테의 주위에 머물며 괴테의 친구이자 교사 역할을 해주었다.


너무나 흥겨운 내 생활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쓰지 않겠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풍경 그리기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곳의 하늘과 땅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목가적인 풍경도 몇 군데 발견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주위에 늘 새로운 대상이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103쪽)


하지만 책의 끝부분에 가서는, 그림에 대한 훈련을 단념하기로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성실하게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살며 앞날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문학을 하도록 태어났으며 앞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껏해야 십 년 동안 재능을 십분 발휘해서 무언가 명작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가 다르게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로마에 비교적 오래 머물면서 얻은 수확이 있다면 조형 예술 훈련을 단념했다는 겁니다. (242쪽)


순간이 전부이며 이성을 가진 인간의 유일한 특권은 스스로의 삶을 주도할 수 있는 한 분별 있고 행복한 순간을 최대한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처신하는 데에 그 본령이 있다고... (111쪽)


한때 계몽주의자로서 이성을 중요시했던 괴테도 그의 친구이자 조력자인 헤르더의 글을 읽고난 결론을 말하면서, 행복한 순간을 최대한 가질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의 특권이라고 했다.


이렇게 <이탈리아 기행 2>에는 로마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고국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친분있는 사람들의 발표글, 그들로부터 받은 편지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 모리츠의 논문 '미의 조형적 모방에 관하여' (264-273쪽)란 글은 나는 여기서 처음 보는 이름이지만 지금 읽어도 내용이 진지하고 공감을 불러일으켜, 앞에 종교적 성인의 글을 옮겨 놓은 부분은 설렁설렁 읽은데 반해 모리츠의 이 짧은 논문은 눈에 힘을 주어 밑줄 치며 읽었다. 괴테도 훌륭한 문학가이지만 그의 주위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의 사육제에 대한 부분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 여행객의 신분으로 사육제를 단순히 구경하는 차원이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어떻게 진행이 되고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참여하는 사람들의 복장, 춤, 노래, 그것들의 의미 분석까지, 글로 썼음에도 눈에 그려지도록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써놓았다. 괴테는 사육제라는 큰 행사 속에 담겨진 인간 군상의 습성과 의미를 보고자 했던 것 같다. 로마의 많은 종교적인 축제와 사육제가 어떻게 다른가도 언급했다.

우리가 로마의 사육제를 기록할 때 과연 그런 축제를 제대로 묘사할 있겠냐는 반론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각적인 대상이며 생동감 넘치는 저 커다란 집단은 직접 눈앞에서 보아야 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구경하고 파악해야 합니다.

로마의 사육제는 사실 민중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주최가 되는 축제입니다. (196쪽)

사육제를 구성하는 여러 행사중 '가장'을 서술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 나라에도 탈춤, 가면극이 있듯이 로마 사육제에도 각양각색으로 가장을 하고 신분을 감춘 상태에서 현실에서 공개적으로 쉽게 오고가지 않을 말을 서슴없이 던지는 것이다. 이중에는 고대 신을 흉내내는 어릿광대도 있고 변호사 분장을 한 어릿광대, 정치인인 양 행세하는 사람도 있다. 

변호사 한명이 법정에서처럼 열변을 토하며 잰걸음으로 군중 속을 헤집고 들어옵니다. 행인들을 붙잡고 모조리 법정에 세우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유부녀에게는 정부와 바람을 피운다고 야단치고, 아가씨에게는 연애를 한다고 질책합니다. 누구에게나 창피를 주고 난처하게 만들 궁리를 합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게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람을 붙잡아 세웁니다. (205쪽)

가장 행렬중 퀘이커 교도들이 등장하는 것은 의외였다. 카톨릭교가 주 종교인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에 거의 있지도 않은 영국의 퀘이커 교도가 사육제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이때 로마를 방문한 외국인들, 특히 화가들은 곳곳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괴테는 사육제에 참가한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을 관찰하고 그리는 화가들도 눈에 담는다. 사육제 행사가 끝나고 끝 마무리는 어떻게 정리되는가를 보면서 질서 없이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한탄을 하기도 한다.

독일 출신의 이성적인 괴테의 눈에 사육제는 처음엔 소동과 흥분의 '짓거리'로 보였고, 아무리 예술적인 시선으로 보려고 해도 그때마다 탐탁잖고 섬뜩한 인상을 풍겼다고 했으나, 곧 그런 생각과 화해를 하기로 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일 년 내내 로마에 머물며 품위 있는 대상에 몰두하다 보니 그런 것에 익숙해진 정신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라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인파와 흥분의 행렬만 보는 괴테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파로 가득 찬 그 좁고 기다란 길은 우리에게 인생 행로를 떠올리게 해줍니다. 그곳에선 맨 얼굴이든 가장을 했든, 발코니에서든 관람석에서든 모든 구경꾼은 자신의 앞과 옆의 오직 한 곳만을 바라다봅니다. 나아간다기보다는 오히려 떠밀리면서, 자기 뜻으로 멈춘다기보다는 오히려 막히면서 더 볼만하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곳으로 나아가려고 부단히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도 다시 길이 막히게 되고 급기야는 밀려나고 맙니다. (236쪽)

사육제의 한가운데서 괴테는 사람들이 한 평생 살아가는 과정을 본다.


로마를 떠날 때가 다가왔지만 그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로마에 와서 점점 더 행복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즐거움도 커지고 있음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가장 머무를 만한 가치가 있을 때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실로 가슴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어떤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적이 안심이 됩니다. (260쪽)

만족한다면서도 그는 떠나면서 서운한 마음을 시로 남기며 글을 마친다.


1년 10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괴테는 그동안 완결하지 못하고 있던 원고들을 마칠 수 있었다.

딱딱한 공직 생활을 하면서 부와 명예는 갖췄으나 타고난 탐구욕과 다방면의 관심사를 맘껏 펼칠 기회를 충분히 펼치지 못하는 생활에 이력이 날 즈음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창작욕을 되찾아 온 괴테에게 이탈리아는 새로운 세계로 발돋움 할 수 있게 해준 커다란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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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8-20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고전에 빠지고 싶더군요.^^

hnine 2024-08-21 11:56   좋아요 2 | URL
재미없거나 지루해도 손해보는 느낌이 없지요. 재미있으면 더욱 좋고요.
고전은 오래된 책이라기 보다 오랫동안 읽혀온 책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탈리아는 언젠가 꼭 가봐야지 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뭔가 공부를 많이 해서 가야할 것 같아서 부담도 미리 되는 나라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