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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남자들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몇년 전에 저자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라는 책을 읽으며 공감이 무척 컸기에 이 책도 출간 소식을 접하자 마자 구입하였다.


저자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했고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다가 현재 일본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연구 활동을 계속 하고 있는 생물학자이다. 실험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연구소, 대학이라는 제한된 작은 사회에서,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비슷한 실험을 반복, 반복하며 세월 보내기를 업으로 삼는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독특한 통찰력이 담긴 글을 써낸 것을 읽고 있노라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특별히 더 감탄하며 읽게 된다. 자신의 일을 어떤 눈에 보이는 성과나 업적으로만 연결 짓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거기서 '다른' 주제를 끌어낼 수 있는 남다른 시각, 여유, 관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모자란 남자들'이라는 책의 제목을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식의 제목과 비슷한 맥락에서 붙여진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감정이나 느낌에서 나온 것이 아닌 지극히 생물학적인 이야기일 뿐이니까. 나도 가끔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성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생물학적으로 성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라고.
태어날 생명체가 남자가 되느냐 여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물론 수정이 일어나는 순간 어떤 성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난자와 만났느냐에 따라, 그 순간에 결정이 되는 것이지만 수정난이 형성되고서 6~7주가 될 때까지는 이에따른 아무 차이 없이 똑같은 형태로 발생이 진행된다. 그러다가 6~7주가 되었을 때 세포는 지금 내 안에 Y 염색체 상의 sry유전자가 존재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 때, sry 유전자의 존재가 확인되면 이후부터 발생은 남자의 특징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sry유전자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으면 여자의 특징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발생이 계속되는 것이다. 즉 수정난이 계속 가던 길로 계속 가면 여자로 발생이 되고 이것을 기본 사양이라고 본다면, 중간에 sry유전자에 의해 급하게 경로 변경이 일어나 주문 생산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바로 남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인 것이다. 여자로 완성되어 가기 위해서 세포가 특별히 할 일은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 외에 없지만, sry 유전자에 의해 갑자기 경로를 바꾼 경우에는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부정합 현상이나 과부하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이것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의 생리적 특성이나 행동 방식 여기 저기에서 나타나게 된다고.
시몬느 드 보봐르는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는데 사실 알고 보면 생물은 처음에 모두 여자로 태어났고, 오히려 남자가 남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도중에) 남자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말이 되는 이야기.
남자로 만들어지게 하는 제일 최초의 유발자가 sry 유전자라는 것이 밝혀지기 까지의 얘기가 몇 장에 걸쳐 자세히 소개되는데, 이 부분을 통해서 어떤 한 연구자가 과학적인 실험으로부터 결과를 얻고 거기서 어떤 결론을 내리기 까지 범하기 쉬운 오류의 가능성,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보이지 않는 함정들에 대해 어떤 경고보다도 실감나는 효과가 있었다. 교과서가 재미없는 이유는 바로 왜 그때 그런 지식이 필요했는가 하는 절실함에 대한 기술은 생략한 채 확실한 사실만을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데 100% 공감이다. 그래서 실제로 수업 시간에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 '딴소리'를 즐겨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성의 결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얘기할 때 지금까지는 위의 sry 유전자에 의해 남성화가 시작된다는 그 사실, 그 이후의 경로에 대해서만 치중하여 전달했을 뿐 이 책에서 소개했듯이 어떤 두 과학자의 기막힌 연구 대결이 얽혀 있었음을, 결국 승자는 한 사람이지만 그 승자는 패자의 헛점이 없었으면 실험의 계기를 만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배경에 대해서는 소개한 적이 없었다. 꼭 알아두어야할 사항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배경 설명 없는, 확실한 사실만의 전달은 듣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흥도 흥미도 불러일으키질 않는 것이다.
책의 뒷부분의 '하버드의 별'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부분의내용은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 사회가 어떻게 부를 축적해갈 수 있는지 그 한 방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알 사람은 알고 있는 이야기 이지만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는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교수들 밑에서, 교수가 따낸 연구비로 월급을 받으면서, 월급의 액수가 아닌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기한 연수도 없이 버텨내고 있는,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고용하고 혹사시키며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재계약을 안해주면 그만) 많은 '비정규직' 인력들에 대한 내용도.
에필로그를 읽어 보면 자신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도입하고 전개해 나가고 마무리로 연결짓는 저자의 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어간 책이다. 저자가 한참 실험 과정에 대해 열띤 설명을 하고 있다 싶으면 이렇게 메모도 해가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