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이라고 쓰면서 '나무'를 떠올리긴 처음인것 같다.
오늘, 버스에서 내려 버석거리는 나뭇잎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온 때문인가.
소리가 듣기 좋아 일부러 낙엽이 쌓인 곳들만 골라서 걸었다. 

어제 저녁, 갑자기 만두를 먹어야겠다는 아이의 만두 타령때문에 만두를 사러 가는 길에 낙엽 밟는 소리가 재미있다고 아이가 그랬었다. 바사삭바사삭 거린다나. 분명 과자 생각 했을거다, 녀석. 

스스로 새벽형 인간이라고 자처하던 것이 무색하게, 알람 소리를 듣고서야 가까스로 일어나길 몇 주째. 오늘 오랜 만에 원래 일어나던 그 시간에 눈을 떠서 날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알았다. 아침 6시까지 아직 컴컴하다는 걸.
'아, 겨울이 오고 있구나.' 
가을은 안중에도 없이, 관심 한번 주지 않은 채, 스스로 파놓은 동굴 속에 틀여 박혀 있는 동안, 바로 겨울이 와버리려나 보다, 2009년엔 내게 가을은 없었다, 혼자서 속으로 또 막 너스레를 떨었었는데. 

오늘 오후, 버석버석 거리는 낙엽을 밟으면서도, 집 앞 거리의 나무들이 노랗고 빨갛게 물든 것을 한동안 바라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가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겨울이 멀지 않았구나.' 를 중얼거리고 있다. 

가을을 느끼며 잠깐 뭉클할 여유도 없이, 그렇게 2009년의 가을을 흘려보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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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10-2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젤이 눈에 들어오는구나.

여의도도 점점 노랗게 물들고 있어.
몇 주동안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hnine 2009-10-29 22:56   좋아요 0 | URL
여의도 벚꽃도 장관이지만, 가로수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모습도 참 좋았지. 시범이랑 대교, 삼익 부근...그립다.

무스탕 2009-10-2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정성이가 '오늘 무슨 요일이야?' 묻길래 '물 날이야' 대답해 줬었는데.. ^^
지난 일요일엔 일찍 일을 나가야 해서 집에서 6시 30분쯤 나섰더니 어둑한 기운이 막 가시려 하더라구요.
겨울이 다가오구 있구나.. 싶었지요.

hnine 2009-10-29 23:30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몸도 안좋으신데 그 시간, 아직 환해지기 전에 집을 나서실 때 발걸음이 무겁진 않으셨는지요.
안그래도 조금 아까 신문에서 날씨를 보았더니 다음 주 부터 기온이 많이 내려갈 모양이어요.
내일은 쇠의날? ^^ 몸조리 잘 하시어요.

Kitty 2009-10-2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나 hnine님 안녕하세요!!!!!!!!!!! 반가와요!!!!!!!!!!!!!!!!!!!! (새삼 ^^;;)

hnine 2009-10-29 23:32   좋아요 0 | URL
에이, Kitty님, 정말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쑥쓰럽잖아요 ^^

같은하늘 2009-11-0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2004년도에 올리셨던 사진과 변함이 없으시네요. ㅎㅎㅎ

hnine 2009-11-04 12:45   좋아요 0 | URL
2004년도 사진...ㅋㅋ 예, 머리 숱이나 헤어스타일은 별로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피부와 얼굴은 많~이 변하던걸요. 아이가 옆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길래 얼굴 안 나오게 저리 가서 찍으라고 막 그랬어요 ^^
댓글저장
 
Writing Magic: Creating Stories That Fly (Paperback) - Creating Stories That Fly
Levine, Gail Carson / Collins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안타깝게도 저자의 다른 책은 아직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주로 어린이들 책을 써왔고 그 중 'Ella enchanted (마술에 걸린 엘라?)'라는 책으로는 뉴베리 상까지 받았다는데.
하지만 소설이 아닌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쓸 정도라면 그가 쓴 이야기들은 재미없을 리가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글이든, 글쓰기에 대한 태도, 방법, 과정등을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글쓰기의 어려운 점을 얘기하는 동안에도 겁을 주기보다는 누구나 그렇다, 나도 그랬다 는 식의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책 내용중 밑줄 그을만한 부분을 몇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번호는 내가 임의로 붙였음.)

1. 글을 일단 쓰기 시작하면 최소한 20분은 쓰도록 하세요.
2. 5분의 시간, 의자, 연필 또는 컴퓨터만 있다면 쓰기 시작하세요.
3. 모든 글은 저장하세요. 최소한 15년 동안.
4. 오감을 이용해 묘사해보세요. 당신 눈으로 보는 것, 듣는 것, 맛보는 것, 냄새로 느껴지는 것, 촉각 등.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당신의 묘사를 통해 당신 글 속의 인물들을 이해하고 경험하게 되고 당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5. 자세히 묘사하는 과정중에 단정적이고 일반화시키는 표현은 피하세요. 예를 들어 '그는 비열하고 엄격했다.'라고 쓰는 대신, 그런 단정적인 말 없이도 독자가 이야기 속 인물의 비열하고 엄격한 특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묘사하는 편이 좋습니다.
6. 처음부터 훌륭한 글이 술술 잘 써지리라 생각하지 마세요. 트럼펫을 처음 집어들면서 그것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다음 날 당장 올림픽 게임에 출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요?
글쓰기도 기술입니다. 더 많이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게 되어요. 나 역시 죽을때까지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7. 쓴 것을 고치는 과정 (revising)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계랍니다. 초고를 쓸 때는 마치 내가 감옥수가 된 기분이어요. 창문도 출구도 없고 쇠로 만들어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감옥에 그냥 갇혀있을 뿐이지요. 그러다가 문득 벽에 습기가 맺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네 다섯 개의 물방울이지요. 그 물방울이 바로 '아이디어'에 해당한답니다. 나는 그 아이디어들을 긁어모아서는 그 아이디어가 바닥날때까지 열심히 써내려가요. 그리고는 물방울이 더 생겨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또 씁니다. 그렇게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이제 더 이상 물방울이 맺히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더 좋은 책이 되도록 하는 일만이 남아있지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랍니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세요.
8.
(비평에 대하여) 누군가 당신 글을 보고 단지 형편없다, 당신은 글쓰기로 성공하기는 힘들겠다 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다시는 당신 글을 보여주지 마세요. 그 사람한테는 그래도 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당신의 기억 창고에서 지워버리세요. 비평은 건설적(constructive)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비평을 받을 때는 어떻해야할까요? 좋은 방법은 그저 '듣는 것'입니다. 뭐라고 토를 달기 보다는 그저 그 사람의 비평을 잘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잘 기억하고 메모해놓았다가 다시 글을 쓸 때 참고하세요. 반면 다른 사람의 비평에 대해 좋지 않은 방법은, 당장 그 자리에서 논쟁을 벌이거나 해명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 비평이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은 잘 들으세요. 그런 후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서 그 비평을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래도 여전히 그가 한 말이 이해가 안 되거나 동의할 수 없을 때, 그 때 그에게 전화를 하거나, 다음에 그를 다시 볼 기회를 기다렸다가 질문을 하세요. 이제 당신은 그와 그가 당신 작품에 대해 내린 비평에 대해 토론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는 기꺼이 그가 그렇게 비평을 한 본 뜻을 설명해줄 것입니다.
9. 오래 된 동화는 글쓰기의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에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저작권의 문제도 걸려있지 않잖아요? 그 주제를 가지고 당신 마음대로 얼마든지 변형시켜 나갈 수 있답니다.
10. 나에게 어떤 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그 일에 대해 어디에든지 써둡니다. 그것을 내 소설에 바로 적용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때의 내 기분, 감정, 생각들을 여과시키고, 바꾸고, 위장시켜서 내 소설속에 표현합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내용중에는 새겨두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다. 위에 8번이라고 번호 매겨 놓은 사항은 글쓰기와 관련없이도 살아가면서 기억해두면 좋을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나의 의지에서 나오는 작업이다. 그것이 긴 글이던 짧은 글이던 간에, 직업적인 작가이던 아니건 간에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글쓰기도 기술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지만, 너무나 형식에 매인다거나 어떻게 써야 잘 쓴 글이라는 선입견이 이미 자리 잡고 있게 되면 글쓰는 의욕도, 좋은 글 쓰기에 가장 필요한 창의력도 잃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 나라에서 펴낸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어보면서 했던 생각이다. 
이 책의 끝 부분에서 저자는 말한다. 부디 글쓰기가 당신에게 위안(solace)이 되고, 동무(companion)가 되고, 비밀스런 기쁨 (secret joy)이 되게 하라고.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아마 관심없던 사람도 읽다 보면 관심이 생길 것 같은 책이다. 아주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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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0-2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위한 서평같은데요.^^ 특히 요약은 저를 위한
제가 이 외국책을 보기는 어려울 것같고 말이에요.
감사해요 님

hnine 2009-10-25 17:57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보시면 정말 도움이 될 내용들이라 감히 생각이 드는데요.
영어라해도 이 책은 쉽게 쓰여져서 그냥 술술 읽히는 정도였어요. 그리고 얼마나 솔직하고도 유머러스하게 썼던지. 자기가 지금까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서 거절편지 받은 것을 다 모아놓았다면 아마 자기 집 벽을 다 바르고도 남았을거래요. 이런 식으로요 ㅋㅋ

아영엄마 2009-10-2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어보니 확~ 당깁니다만 영어책이라니 부담이...(^^)>
글쓰기 할 때 님 리뷰에 담아주신 내용을 참고하면 되겠어요~

hnine 2009-10-25 22:35   좋아요 0 | URL
제 리뷰는 많이 부족하지만 이 책은 정말 좋았어요.

2009-10-26 0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6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09-10-2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저 책을 읽을 일은 없을것 같고...^^
저 분홍색 안에 들어 있는 말들을 잘 기억해 두어야겠네요.

hnine 2009-10-27 12:54   좋아요 0 | URL
예~ 제가 이 책에서 제일 기억해두고 싶었던 부분을 골라서 적어놓았어요.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꿈꾸는섬 2009-11-0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에요. 저도 잘 기억해둬야겠어요.

hnine 2009-11-02 01:24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읽어도, 또 어른이 읽어도 좋을 내용들이었어요.
비평에 관한 내용은 꼭 글쓰기와 상관없이도 배울 점이 있었고요.

치유 2009-11-0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글쓰기책이라는데서 혹 해 보았더니 아..울 딸램이 옆에서 열심히 번역을 해줘야 읽어볼수 있겠는걸요;;6번이 젤 맘에 들어요..희망이 생기니까요..

hnine 2009-11-02 22:40   좋아요 0 | URL
배꽃님, 따님이 혹시 몇학년인지요. 따님이 읽어도 좋을 내용이니 함께 읽자고 해보시면 어떨까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stella.K 2009-11-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hnine 2009-11-03 12:43   좋아요 0 | URL
stella님, 감사합니다.
우리 책 리뷰는 한번도 된 적이 없는데, 가뭄에 콩 나듯이 읽는 외서 리뷰에서는, 별로 잘 쓴 것 같지도 않은데 뽑히는 이유가 뭘까요 ㅋㅋ
댓글저장
 

 

 

 

캐롤송이라고 알려진 노래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다.
솔로로 부른 것도 좋고, 합창곡으로 된 것도 좋으며,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 된 것도 좋다.
누가 어떻게 부르든 좋다.
심지어 내가 불러도 좋다 ^^
사실 가사가 짧고 간단해서 따라 부르기에 좋은 노래가 되었다.
길 가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부르고
아이가 더 어릴 때에는 자장가로도 참 많이 불렀었다. 
동요되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가만 가만 가라앉는 듯한 노래,
진정제 같은 노래라고나 할까.
고요한 , 거룩한 이 되어가는 듯한. 

또 어떤 때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르다보면
슬퍼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슬픔'은 곧 마음의 정화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Enya의 노래를 한때 참 많이 좋아했는데 마침 이 노래를 그녀가 부른 것이 있어서 담아 왔다.
가지고 있는  Enya의 CD만 해도 대여섯개 되었었는데, 지금은 다 어디가 있는 것인지.
다음에 친정에 가면 찾아봐야겠다.
버리시진 않았겠지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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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10-2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울 신랑이 처음 사준 CD 가 Enya 였는데....

hnine 2009-10-25 12:28   좋아요 0 | URL
정말?? 와, 경은 아빠가 새삼 다시 보이네 ^^

같은하늘 2009-10-27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Enya CD가 몇장 있는데 이 곡이 있나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너무 고와요~~~

hnine 2009-10-27 12:55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던 CD에는 이 노래가 없었어요.
이 노래 아니어도 Enya 노래중 좋은 곡 많~지요.
댓글저장
 

 

 

The night has a thousand eyes,

The day but one;

Yet the light of the bright world dies

With the dying sun.

 

The mind has a thousand eyes,

And the heart but one;

Yet the light of a whole life dies

When its love is done. 

 

 

중학교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영어 교과서에 나왔던 시. 

mind와 heart를 똑같이 '마음'이라고 해석하면 안된다고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눈을 
말똥말똥 쳐다보던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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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10-2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분명 같은 학교를 나왔는데,
난 왜 저 시가 기억이 안난다니.ㅋㅋ

hnine 2009-10-25 12:29   좋아요 0 | URL
내가 기억 못하고 네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많을테니까 ^^

프레이야 2009-10-26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네요.
mind와 heart가 저렇게 구분되군요.
동의되는걸요.^^
정말 20년 전의 친구를 만나, 내가 기억 못하는 걸 어찌나 다 기억하고
있던지 놀라고 재미있었어요.

hnine 2009-10-26 18:47   좋아요 0 | URL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떤 장면이나 상황이 그대로 머리에 각인되어서는 잘 안 잊혀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night과 day, mind와 heart가 댓구를 이룬다고, 시험 문제에도 몇번 나왔던 것 같아요.
예전 일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과거에 아쉬움이 많은 사람이라던데...^^
댓글저장
 

자기 손에 들어온 책을 다루는 방법은 사람마다 참 다른 것 같다.
나로 말하자면, 구김 하나 없이, 연필로 밑줄 같은 것은 물론 안되고, 되도록이면 손때나 흔적 안 남게 깨끗하게 읽고 보관하는 타입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일부러 랄 것은 없지만 나와 그 책과의 '교류'의 흔적을 남기는데 망설임이 없다. 밑줄은 물론, 접어 놓기, 큰 것, 작은 것 포스트 잇 붙여 놓기 등등. 심지어 들고 다니기 무거운 전공 책 같은 경우는 가차 없이 챕터 별로 부욱~ 찢어서는 스테이플러로 세번 박아서 필요한 부분만 들고 다닌다. 전공 책이니 대부분 수입원서이고 값도 만만치 않은데 이렇게 가지고 다니는 사람 사실 나도 별로 보질 못했다. 이런 나를 보고 놀라는 사람은 봤어도. 이렇게 해서 내가 더 들고 다니기 쉽고, 들고 다니기 쉬우니 어디서든지 시간날 때마다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 완전 내 소유의 책들에 한해서이다.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린 책, 또 누구하고든지 공유하는 책들에는 절대 이런 짓 (?) 안하고 읽는다. 다른 사람에게 빌린 책은 겉표지까지 따로 싸서 읽거나, 띠지는 따로 꺼내 다른 곳에 잘 두었다가 돌려줄때 다시 둘러서 준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나와 같은 학교에, 전공도 비슷했던 내 동생, 내가 1년 전에 들은 유기 화학 수업을 같은 교수님으로부터 듣게 되어 내가 쓰던 책을 주었다. 그 책도 책값이 꽤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그 책에서 잠깐 찾아 볼것이 있어서 동생 책꽂이에서 그 책을 꺼내보았더니, 세상에, 내 이름이 써있는 부분, 내가 줄 친 부분, 모조리 화이트를 가지고 박박 다 지워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내 동생은 누가 쓰던 책을 쓴다는 것이 그게 언니였던 누구였던간에 너무나 싫었던 것이다. 책값 아껴보겠다고 어쩔 수 없이 물려 쓰고는 있지만 말이다. 나는 어떤가. 누군가의 연필 자국이 있는 책, 좋아한다. 그것이 보는 사람의 불쾌함을 유발할 정도로 지저분하거나 낙서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면, 한동안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책이라는 느낌, 이 사람은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나보다, 짐작하며 읽어가는 기분이 그리 싫지 않던데 말이다.

가끔 본인이 읽었는데 아주 내용이 좋으니 가져가서 한번 보라고 꺼내주는 책이 빳빳한 종이 그대로, 방금 산 것 처럼 파닥파닥한 느낌이 드는 책일때엔 나도 모르게 '이 책을 과연 저 사람이 읽기는 한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좋아하는 책일수록 더 깨끗하게 간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말이다.

어제 심심한지 책꽂이에서 책을 이것 저것 꺼내보던 아이가 예전에 사두었던 '내셔날 지오그라픽' 과월호를 꺼내서 몇 장 들춰보더니 그 중 한 페이지에 역시 내가 붙여 놓은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보았더니 'DS에게 scan 부탁' 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 페이지의 그림을 어디에 쓸 일이 있어 남편 사무실의 스캐너로 스캔 해달라고 부탁하자고 메모해놓은 것이었다. 그러고는 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이 그림을 왜, 어디에 쓰려던 것일까? 로 시작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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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0-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접는것만 빼면 나머지는 다 괜찮아요. 특히 책갈피 대신 책날개 쓰는걸 아주 아주 좋아해요. 밑줄 긋는 것도 연필이든 형광펜이든 빨간볼펜이든 그냥 손에 쥐어지는대로 긋는 편이구요 포스트잇도 덕지덕지 붙이곤 하죠.

일전에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는데요, 그게 동생이 먼저 읽던 책이었거든요. 1권 책장 한구석에 연필로 유비와 관우와 장비의 나이를 계산한 흔적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어요. 사실 그 삼국지에 누구는 몇살이다, 라고 나와있는게 아니라 누구는 누구보다 몇해 어리고, 이런 식이어서 저 역시 대체 몇살이라는거야 하고 헷갈려 했었거든요. 동생도 그랬는지 연필로 덧셈과 뺄셈 해놓고 계산했더라구요. 다른사람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저는 기분 나빠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헌 책을 샀을 때 책 중간에 음식물 찌꺼기가 눌러 붙어있거나 했을 때는 아, 정말 싫었어요.

hnine 2009-10-23 18:24   좋아요 0 | URL
ㅋㅋ 동생분 재미있으세요.
음식물 찌꺼기는 저도 정말 싫을 것 같아요. 책 읽은 흔적이 아닌 다른 흔적은 남기지 않는 편이 더 낫겠네요.

하늘바람 2009-10-2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찌꺼기는 당연히 싫지요.^^
저도 엄청 낙서하고 제 생각느낌까지 적는 편이었어요.
그런 책을 선물 주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제 생각을 적은 책을 주는 건 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란 마음이 들어서 이젠 그런거 않하기료~
그러다 보니 정작 제 마음과 느낌을 잊어버리긴 하지만
정말 이책은 누구에게 줄일은 없겠다 싶은 것만 밑줄긋고 낙서하게 되더라고요

hnine 2009-10-23 18:26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부터 워낙 줄 긋고, 접고, 이러면서 읽다보니 나중에 누구에게 주고 싶어도 줄 책이 없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책일수록 더 그래서 누구에게 줄 때에는 아예 새로 사서 주게되지요.

무해한모리군 2009-10-2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막 사용합니다. 어짜피 다시 읽는 책은 극소수 필요하면 다시 사자는 주의로 줄도 긋고 접고 여백에 쓰고 싶은 말 막 메모하면서 엉덩이 시리면 깔고 앉고 졸리면 베고 잡니다.. 가끔 야만인이라며 깜짝 놀라는 사람 많습니다 ㅎㅎㅎ

hnine 2009-10-23 18:28   좋아요 0 | URL
'막 사용' ㅋㅋ
휘모리님이 보신 책 보면 책 내용과는 별개로 또다른 재미가 있겠어요 ^^
야만인이라니요, 책 읽는 야만인도 있나요?

조선인 2009-10-2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접고, 줄 긋고, 낙서하고, 죄다 다 합니다. ㅎㅎ

hnine 2009-10-23 18:28   좋아요 0 | URL
죄~다 하시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

비로그인 2009-10-2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필로 살짝살짝 표시는 하는데 아이가 엄마는 책에 낙서한다고 너무 싫어하는지라 몰래몰래 하고있어요. ^^;

hnine 2009-10-23 18:3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manci님 책이 아니라 따님 책에다가 표시 하신다는 말씀? 따님이 싫어하는데도 몰래몰래, 여전히 하고계시다는 말씀?? ㅋㅋ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 제 아이도 자기 책에다 표시하거나 접어놓거나 하면 무척 싫어하던걸요.

비로그인 2009-10-23 20:3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웃겨요.. 제 책에다만 하는데도 몰래몰래 하고있어요.

hnine 2009-10-24 00:38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런거였군요.
저는 가끔 남편 미울 때 남편 책에 몰래 연필로 막 낙서해놓고 그래요. 의외로 통쾌해요 ^^

상미 2009-10-23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중에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예전 메모했던 글 보면 재밌지.
대부분 편지는 한꺼번에 모아뒀는데,
가끔 책들 사이에서 네가 기초** 있을 무렵, 서레이 있을 무렵 편지들도 나오면 그것도 무슨 보물 찾는 기분이라고 할까....

hnine 2009-10-23 18:31   좋아요 0 | URL
'보물' 찾는 기분이라고 얘기해주니 고맙다.
정말 까마득한 시절 얘기구나. 까마득...

Kitty 2009-10-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야 손씻고 책커버까지 끼우면서 상전 모시듯 책보는 사람은 저밖에 없나봐요;;;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 참고서 그냥 책에 이르기까지 낙서는 커녕 접어본 적도 없답니다 ㅠㅠ 읽을 때도 절대 쫙 펴지 않고 두 손으로 얌전히 살살 벌려서 봐요;;
그래서 알라딘에서 가끔 끈으로 묶은 자국 (새책이라도 약간씩 자국있는 책 있잖아요) 있는 책 오면 너무 속상해서 다리미로 다리고 싶다는 생각조차 -_-;; 읽으면서도 집중이 안돼요. 위 댓글들 읽다보니 저는 병인가봐요 ㅠㅠ


hnine 2009-10-24 00:41   좋아요 0 | URL
와, 드디어 만났다. Kitty님 이상한거 아니어요. 저에게 동의해주신 분들이 댓글 달아주셔서 그렇지 저같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을걸요? 손씻고 두손으로 얌전히 살살 벌려서...그러니 저같이 책을 북북 찢어서 덜렁덜렁 들고 다니는 사람 보면 얼마나 야만스럽게 보이실까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그러지 않으시나요? ^^

순오기 2009-10-29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마실을 못 다녔어요. 독서마라톤 하느라 자제했지요. ^^
나는 책에 밑줄긋고 싶어서 사서 읽어요. 접지는 않고 메모는 간혹 합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날을 앞에다 꼭 써 놓아요.
두번 세번 읽는 책도 날짜를 보면 알지요.^^
광주에 오시면 가볼 곳~~ 작년에 알라디너들과 같던 곳 먼댓글로 연결했어요.

hnine 2009-10-25 11:3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정말 마실 다니실 틈 없으셨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요. 독서마라톤에, 저자초청강연에, 또 완도기행까지. 보약이라도 드셔야하는 것 아닌지요?
광주를 아직 한번도 못가봤어요. 언제 가게 될지 몰라도 가면 순오기님 생각이 날 것 같아요.

같은하늘 2009-10-27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을 아주 소중하게 다루는 편이었지요. 밑줄치고 낙서하는거 이해 못했었어요. 다른사람에게 책을 주면 읽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런데 지금은 안그래요. 밑줄치고 표시 안하면 기억을 못해요.ㅎㅎ 책을 읽다가 옆에 뭐 없으면 꾹꾹 접어 놓기도 하고... 그래서 빌린 책을 보면 부담스럽더라구요.

hnine 2009-10-27 12: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책 다루시는 방법이 바뀐거네요?
저는 한번도 책을 소중하게 다루면서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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