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라는 존재


언니는 동생보다 먼저 태어난다 언니는 동생보다 먼저 자란다 동생은 늘 언니의 뒤를 따라 자란다 언니의 옷을 물려 입고 언니의 신을 받아 신고 언니의 그늘에서 키가 큰다 언제부터인지 언니는 더이상 자라지 않는다 성장을 멈출 만큼 언니에겐 삶이 무거웠던 것이다 언니는 자기만의 방에서 색색의 구슬 같은 알약을 가지고 논다 무수한 진단서 속엔 언니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자라지 않는 언니 몫까지 동생은 열심히 자란다 성큼 자라서 언니가 된다 어느날 언니는 동생을 보고 언니라 부른다 업어달라고 조른다 언니가 된 동생은 언니였던 동생을 업고 끝없는 슬픔 속을 걷는다 결코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언니였던 동생이 죽어 살이 문드러지고 흰뼈만 남을 때까지 동생이였던 언니는 업고 걸을 것이다 그 무게 때문에 점점 허리가 굽을 것이다 빨리 늙을 것이다 

- 성 미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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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형식이 '이 상'의 시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훨씬 공감이 쉽게 된다. 

좋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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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0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자매들 이야기일까요?
짠한데요~

hnine 2009-11-05 05:15   좋아요 0 | URL
그런데 위의 시가 실려 있는 시집은 시인의 첫시집인데 절판이라네요.

하늘바람 2009-11-05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아해야지 라는 말이 귀엽고 예쁘세요.

hnine 2009-11-05 13:16   좋아요 0 | URL
ㅋㅋ..

2009-11-05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5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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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에 두 군데 미끼를 던졌더랬다. 내 나이에, 해당되는 곳이 한 군데 라도 될까 말까 인데 두 군데 공고를 우연히 한꺼번에 발견하고서는 마치 된 것 마냥 흥분이 되면서도 이런 짓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던 지난 번 일이 생각나서 망설이기도 했었다.  

그리고서 기다리는 며칠 동안 좋았고, 그리고 그 뿐이었다. 헛낚시질 하기를 벌써 몇번 째인지. 뭐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니고, 꼭 가고 싶었던 곳도 아니니까 뭐, 뭐, 뭐...하면서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한 군데서는 전화가 오기를 이미 이력서에 다 적힌 것들을 다시 물어보면서, 결국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대었다. 그렇지요, 알아요, 안다니까요. 

그리고는 매일 매일 울적한 기분 속에서 지냈다. 가을이 오는지, 낙엽이 지는지, 단풍이 드는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사는거겠구나, 앞으로 무슨 변화도 기대할 일이 없겠구나, 그냥 이대로, 그냥 이대로 쭈욱. 이런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기분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는데, 그건 내가 그렇게 마음 먹어서도 아니고 그냥 시간이 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는 내게 부족한 그 2%가 무엇일까, 매번 내가 빈 낚싯대 들고 되돌아오게 만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객관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았다. 곰곰히.
자기 자신에게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객관적인 분석이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나중에 세월이 더 지나고나면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길은 하나가 아닐테니까, 가려고 했던 길이 막혔다고, 혹은 가리워져 안 보인다고 해서 걸음을 멈출 수는 없는 것, 사는 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래, 괜찮다, 다 괜찮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과 돈과...아깝지만 다 괜찮기로 하자. 또 다른 길을 찾아봐야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마음이 탁 걸리고 마는 순간은, 지금도 새벽마다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엄마가 떠오를 때이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과 돈이라는 것은 순전히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순간, 가까스로  일으켜 세워지던 내 마음은 다시 무너지고 만다. 

 

11월이구나. 10월과는 느낌부터 다르다. 어디서는 벌써 눈이 내렸다는데, 보통 첫눈은 11월 중순 경에 온다.

겨울과 어울리는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 

 

 

 

          

 

 (이런 기분인 가운데 알라딘에서 이번 주 마이리뷰에 뽑혀서 적립금이 지급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나 워낙 비경쟁적인 인간이라서 이런 것에 연연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정말 눈물 날 정도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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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1-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스스로 잘 추스리고 토닥이고 잘 일어서는 hnine님. 그래도 가끔은 위로가 절실할 때가 있지요. 알라딘의 이주의 마이 리뷰는 적절한 때에 고마운 신호가 되어주었어요. 축하합니다. 날은 추워졌지만, 따뜻한 위로는 곳곳에서 마음을 어루만져줄 거예요...

hnine 2009-11-02 16:2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마노아님...

무스탕 2009-11-02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닥터 지바고 못봤어요.. 보고싶은 맘은 언제나 있는데 왜 못본건지 모르겠어요.

두 군데 모두 hnine님이랑 인연이 아닌거에요. 좀 더 확실한 인연을 만나기 위한 진행 단계라고 봐요, 전.
오늘 많이 추운데 김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빵 만드셔서 다린이랑 맛있게 드세요. 배 부르면 다 좋잖아요 ^^
리뷰 당첨도 축하드리고요~

hnine 2009-11-02 19:41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다른 길을 찾아야지요. 저를 위한 길은 다른 곳에 있나봐요.

닥터 지바고는 남편이 좋아하는 영화라서 아예 구입해서 가지고 있더군요. 눈 내린 풍경이 자주 등장해서 겨울과 함께 연상이 되는 것 같아요. 좀 길지만 감동도 길어요. 영화 좋아하시는 무스탕님도 좋아하실거라 생각되네요 ^^

2009-11-02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11-02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이를 먹어도 길은 어딨는지를 모르겠는걸까요? 인생은 그걸 찾아 헤메는 과정일 뿐인건지.. 그래도 우리 힘내서 열심히 찾자구요, hnine님. 화이팅이어요!!

hnine 2009-11-03 12:40   좋아요 0 | URL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고요.
어제 잠 잘때 엄마가 생각할게 있어서 좀 더 있다가 자야하기 때문에 같이 옆에서 못 재워준다니까 아이가 "엄마, 무슨 문제인데 그러세요? 마음이 어서 풀리길 바래요" 이러던데요? ㅋㅋ
알라딘의 여러 친구분들의 말씀이 힘이 참 많이 되네요.
고마와요 manci님.
곧 서울에는 눈이 온다는데, 출근하실 때 가방에 카메라 당분간 넣어다니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

상미 2009-11-0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냥 이대로 사는거겠구나, 앞으로 무슨 변화도 기대할 일이 없겠구나,
그냥 이대로, 그냥 이대로 쭈욱

나도 요즘 그런 생각하는데... 슬프게도.

축 쳐진 날엔 어떤 형식으로든 cheer up 될만한 일이 생기면, 정말 눈물겹게 고맙지...

hnine 2009-11-03 12:42   좋아요 0 | URL
너도 그래? 앞으로 변화가 많을 시기엔 불안했고, 변화를 기대할 일이 없는 나이가 되니 허무하고, 그렇네...

순오기 2009-11-0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도 요즘 심란한 일이 있어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님의 스마일을 보면서 웃었어요.
처진 어깨를 곧추세우는 것도 웃음일거라 생각돼요. 우리 같이 웃어요~~ ^0^

hnine 2009-11-04 12:4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감히 어떤 심란한 일이 있으신지 여쭙지는 못하겠고, 저 혼자 유난떤 것 같아 쑥스러워지네요. 비슷한 상황에도 꿋꿋하게 혼자서 잘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지요.
네, 힘을 내서, 웃으면서, 남은 하루 잘 만들어갈께요. 감사합니다.

같은하늘 2009-11-0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어갈수록 후지게 사는것 같은 생각에 슬퍼져요.
계절 탓인지... 우리 함께 기분 업시켜 보아요~~~ 아자~~

hnine 2009-11-04 12:43   좋아요 0 | URL
같은 하늘님, 계절 탓일까요?
지금은 엄마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아이들이지만 언젠가는 엄마 품을 떠날 것이고, 또 그래야 하고요, 그때 맞닥뜨릴 허무함을 지금 미리 연습하고 준비하려던 심리였나봐요. 그런데 금방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시간을 두고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어요. 오늘은 또 순오기님과 같은 하늘님 덕분에 기분 내어 나가보렵니다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감사드려요.

2009-11-04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4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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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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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척 좀 하지마."
두살 터울이어서, 여러 가지를 공유하며 지내야했던 나와 여동생은 자라면서 티격태격 부딪힐 일이 잦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동생으로부터 자주 듣던 말이었다. 저렇게 말할 때도 있었고, 좀 더 심하면, "혼자 고상한 척 하고 있네." 이렇게 비아냥의 어조를 분명히 할 때도 있었다. 한번도 내 자신이 고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나는 동생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나의 어떤 면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인 것인지, 혹시 그렇다할지라도, 고상한 성격이라는 것이 그렇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아냥받을 이유가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는 했었다.
이제는 동생과 한 집에 살고 있지도 않으며, 더 이상 그런 말 하면서 다툴 나이도 지난 지 오래지만,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의 느낌은 바로 그 '고상한' 류의 책이겠지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새로울 것이 없는, 늘 듣던 얘기, 고리타분한 내용일 것이라는 지레 짐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책이니 시간 있을 때 영어 공부 삼아 원서나 사서 한번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동생이, 내 생일도 아니고 다른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니었는데 나에게 책을 몇 권 사서 보냈다고 전화로 알려왔다.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받아보면 안다고 했다. 다음 날 내게 도착한 책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 <행복의 정복>이었다. 그러니까 '고상해 보여' 내가 읽기를 미루고 있던 이 책이, 언니가 좋아할 것 같은 책으로 동생에게 뽑혀 내게 보내진 것이었다.
'너랑 나랑 인연이 있나보구나.' 생각하며 책의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버트란트 럿셀(1872~1970)은 철학자, 그리고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문필가로서, 당대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어려운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기 보다는,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쓰여진 듯, 어렵지 않게 읽혀지는 책이다. 행복은 그냥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행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부수고 나올 때 획득할 수 있다고, 그래서 그런 의미로서 책의 제목도 '행복의 정복'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는 행복이 우리 곁을 떠난 이유, 2부는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미려한 수사여구로써가 아니라 근거와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학자다운 진지함과 상세함, 때로는 단호한 목소리로  설파하는 그의 행복론 속으로 읽기 시작한지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점차 몰입되어 가고 있었다.
행복을 가로막는 이유 중의 하나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 수 있는 '권태'에 대해서 그는,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권태의 반대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극'이라면서, 자극은 더 강한 자극을 불러오게 되고, 이러한 자극을 갈구하는 태도는 결국 심신을 황폐하게 하므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권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 시대보다 요즘에 더 절실하게 와 닿는 말이 아닐까. 이런 훈련은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 하는데 갈수록 부모들은 아이가 행여 심심해 할까봐 이거 저것 오락 거리를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가로막는 또 한 요인으로서 들고 있는 걱정과 불안에 대해서는, 정작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걱정과 불안이라는 것, 질투에 관한 부분에서는 질투가 얼마나 사람의 행복을 망치는 요인이 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기쁘면 기쁜대로, 사물을 그대로 보지 않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려고 하기때문에 질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모두가 나만 미워한다는 피해의식, 불합리한 죄의식 등을 인간을 불행 속에 살게 하는 요인으로 들고 있다. 이 중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피해 망상을 적절히 예방하기 위해 그가 해주는 조언은, 첫째,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는 동기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반드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 둘째, 자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것, 셋째,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말라는 것, 넷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를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그렇게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말라는 것이다. 1부의 마지막에서 그는, 옛날에 비해 이웃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줄어든 반면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언론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라면서 언론의 피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써놓았는데,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에 의해 휘둘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의 만족을 위해 타인의 행복이 고려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이 책이 쓰여진 70년 전에도 이런 지침이 필요했을까 생각될 정도로 지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쓰여진 것 같아 절실하게 와닿는 내용이었다. 내가 말하거나 쓴 것들이 일단 나의 수중을 떠나 공개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어떤 대상을 악의적으로 보도하여 무고한 개인의 일상생활을 위협해서는 안된다는 것,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여론화해갈 때 그 결과는 상당히 심각하고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2부의 행복으로 가는 길 부분에서, 의욕과 열정은 행복한 사람들이 지닌 일반적인 특징 중의 한가지라면서 이런 사람들은 지진을 만나도 이 새로운 경험 덕분에 세계에 대한 지식이 늘어났다며 즐거워한다는 예를 들었다. 득도를 한듯이 행세하는 태도야말로 큰 병이며, 예전에 특히 여성들에게 강조되어 왔듯이 인생에 대해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가르치는 것은 열정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역시 진정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임은 물론인데, 서로를 단순히 자신의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랑,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결합체로 보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녀들과의 행복한 생활에 대해 쓴 부분은 읽는 동안 거의 충격이었다. 적어도 이 부분에 한해서는 남성보다, 결혼하여 육아 문제에 부딪혀 자신의 일과 목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본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경우 나처럼 일종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한다.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치이며 사는 동안 자신의 모든 매력을 잃고 지성의 4분의 3은 잃게 되지 않는 여자가 있다면 퍽이나 운이 좋은 여자라면서, 가정에서 누군가 꼭 해야하는 일들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족들 옆에서 충실하게 의무를 수행한 댓가로 가족의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은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부당한 대접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라고 했다. 만일 이 여성이 가족을 소홀히 여기고 쾌활하고 매력적인 생활을 유지햇다면 아마 가족을은 이 여성을 귀찮아하지 않고 사랑했을 것이라는 것, 저자 자신은 부모의 사랑을 매우 높게 평가하지만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서 손수 하는 일이 되도록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과 더불어, 자녀를 대단히 사랑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미적분을 직접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듯이, 갈수록 어머니 자신보다 다른 누군가 훨씬 더 전문적으로 아이를 담당할 수 있다면 굳이 어머니들이 다 맡아서 해야한다는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 여성은 어머니가 된 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 전문적인 활동을 발휘해나가도록 힘쓰는 것이 여성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유익하다는 것이다. 헌신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어머니일 수록 자녀에게서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상을 받고 싶어한다는 말은 또 얼마나 끔찍하게 들리던지. 지나치게 자식을 염려하는 것은 소유욕의 위장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에 자신있게 부인할 부모들은 몇이나 될까. 아이를 둔 여성의 행복은 가사, 육아의 문제와 늘 맞물려 있기에 더 가슴을 콕콕 찌르듯이 와닿았다. 이 문제는 뒷부분에 가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본질적 요소 중의 하나가 자신의 야망을 지속시키는 일이라는 대목에서 또 언급된다. 가사에 전념하는 여성들이 남성들이나 가정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비해 얼마나 불리한 입장에 있는지를 말하고 있었는데, 읽는 나에게는 마치 무슨 경고문처럼 받아들여졌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밖에서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에 도달하기 유리한 조건상에 있는가? 아무리 위대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은,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일과 통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히려 현대 지식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중의 하나가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고, 그것을 통해 결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심하면 자기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달래가며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 하는 동안 그것이 무슨 일이든간에 행복에 이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후반부에 노력과 체념이 행복에 똑같이 중요하다는 말도 나와 있다. 절망에 근원을 둔 체념이 아니라, 정복할 수 없는 희망에 근원을 둔 체념은 행복을 쟁취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노력이 담당하는 역할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체념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직시하는 용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일관되게 전달되어져 온 핵심이라면 역시 행복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컨트롤 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불행의 원인이 있다면 그것에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 행복은 그렇게 획득되어지는 것이라는 것, 행복으로 가기 위한 길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밑줄로, 메모로, 여기 저기 흔적을 남기며 마지막까지 읽은 후의 느낌이란, 지금 이 나이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다시 생각해보고, 더 확실히 정리해야할 것들이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 책을 내게 선물해준, 개인적으로 지금 힘든 시기를 겪어 내고 있는 동생에게, 내가 읽은 것들을 바탕으로 어떤 힘이 될만한 말을 해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네 말대로 정말 내가 좋아할 책인 것, 맞았다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저자 서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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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돌이 2009-11-0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읽었어요.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고 싶어지네요.

hnine 2009-11-02 00:35   좋아요 0 | URL
쓰다보니 쓸데 없이 리뷰가 길어졌는데,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웬만한 도서관에는 구비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꿈꾸는섬 2009-11-0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종류 책은 좀 저랑 안 어울릴 것 같아 피하는 편인데 리뷰보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hnine 2009-11-02 01:26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읽는 동안 잠시 위안을 주는, 그런 책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고요.

하늘바람 2009-11-02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셀 그러면 웬지 어렵게만 생각했었답니다. 편견이었나보네요^^ 님 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만나요

hnine 2009-11-02 09:43   좋아요 0 | URL
실제로 러셀의 다른 철학서들은 일반일들이 읽기에 좀 어렵다고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일반인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나 줄을 쳐대면서 읽었는지~ ^^

순오기 2009-11-0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비야가 추천한 책이기도 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있어요.
못 읽은 책이 많아 지름신을 잡아두는데 그렇다고 사놓은 걸 읽는 것도 아니더군요.ㅜㅜ
12월이나 새해 1월의 독서회 토론도서로 할까 생각중인데 괜찮겠죠?
동생이 언니의 마음을 잘 아는가 봅니다.^^난 바로 위 언니한테 그런 공격을 받았는데 지금은 제일 잘 통하는 자매가 됐지요.ㅋㅋ

hnine 2009-11-04 12: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한비야 책에서도 소개가 되었었지요. 이 책 나온지가 꽤 되어서 아마 도서관에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동생에게 선물 받아 읽었지만요.
자매 사이는 나이 들어 백배는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저도 자랄 때 어찌나 싸우면서 컸는지, 생각하면 유치하고 부끄럽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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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보고 싶었다 이 영화. 

 



 

 

 

 

 

 

 

 

 

 

 

 

 

 

우리 말 제목은 <여행자>.
한국계 프랑스인인 우니 르꽁뜨 (Ounie Lecomte)가 각본 쓰고 감독했다.
 

주인공 진희역의 김 새론을 비롯해서, 보육원생으로 등장하는 여자 아이들도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는지. 오히려 성인역의 배우들은 영화 배우 티가 나는데 아이들의 말, 웃음, 울음은 배우로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 그대로의 말이고 웃음이고 울음이었다. 

보육원에서의 첫날, 고집피우고 안 먹고 버티다가, 빈 케잌 접시를 발견하고 울고,  



 

 

 

 

 

 

 

 

 

 

 

또 식사를 거른 날 밤, 몰래 부엌에 숨어들어가 남은 누룽지를 긁어 먹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건강검진을 나온 의사가 하라는대로 종이에 색칠을 하면서 왜 여기 왔는지 아느냐는 의사의 물음에 대답하는 도중 우는 진희.   

 



 

 

 

 

 

 

 

 

 

  

네이버에 올라와 있는 이 영화읜 스틸 컷중 바로 위의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의 압권은 역시 제일 마지막 장면.
제작자로 참여한 이 창동 감독의 분위기가 느껴졌달까. 영화 <밀양>에서의 마지막 장면에 영화 전체의 주제가 압축되어 있었듯이 말이다. 

대사를 통해서보다는, 배경, 장면, 배우의 표정, 행위로 표현하는 기법에서 정적이고 동양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던,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을 영화였다. 

 



 

 

 

 

 

 

  

 

 

 

  

 

 -영화 중에 진희가 아빠에게 불러주었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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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0-3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보고프네요^^

hnine 2009-10-30 17:5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강추 영화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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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이라고 쓰면서 '나무'를 떠올리긴 처음인것 같다.
오늘, 버스에서 내려 버석거리는 나뭇잎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온 때문인가.
소리가 듣기 좋아 일부러 낙엽이 쌓인 곳들만 골라서 걸었다. 

어제 저녁, 갑자기 만두를 먹어야겠다는 아이의 만두 타령때문에 만두를 사러 가는 길에 낙엽 밟는 소리가 재미있다고 아이가 그랬었다. 바사삭바사삭 거린다나. 분명 과자 생각 했을거다, 녀석. 

스스로 새벽형 인간이라고 자처하던 것이 무색하게, 알람 소리를 듣고서야 가까스로 일어나길 몇 주째. 오늘 오랜 만에 원래 일어나던 그 시간에 눈을 떠서 날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알았다. 아침 6시까지 아직 컴컴하다는 걸.
'아, 겨울이 오고 있구나.' 
가을은 안중에도 없이, 관심 한번 주지 않은 채, 스스로 파놓은 동굴 속에 틀여 박혀 있는 동안, 바로 겨울이 와버리려나 보다, 2009년엔 내게 가을은 없었다, 혼자서 속으로 또 막 너스레를 떨었었는데. 

오늘 오후, 버석버석 거리는 낙엽을 밟으면서도, 집 앞 거리의 나무들이 노랗고 빨갛게 물든 것을 한동안 바라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가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겨울이 멀지 않았구나.' 를 중얼거리고 있다. 

가을을 느끼며 잠깐 뭉클할 여유도 없이, 그렇게 2009년의 가을을 흘려보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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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10-2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젤이 눈에 들어오는구나.

여의도도 점점 노랗게 물들고 있어.
몇 주동안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hnine 2009-10-29 22:56   좋아요 0 | URL
여의도 벚꽃도 장관이지만, 가로수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모습도 참 좋았지. 시범이랑 대교, 삼익 부근...그립다.

무스탕 2009-10-2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정성이가 '오늘 무슨 요일이야?' 묻길래 '물 날이야' 대답해 줬었는데.. ^^
지난 일요일엔 일찍 일을 나가야 해서 집에서 6시 30분쯤 나섰더니 어둑한 기운이 막 가시려 하더라구요.
겨울이 다가오구 있구나.. 싶었지요.

hnine 2009-10-29 23:30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몸도 안좋으신데 그 시간, 아직 환해지기 전에 집을 나서실 때 발걸음이 무겁진 않으셨는지요.
안그래도 조금 아까 신문에서 날씨를 보았더니 다음 주 부터 기온이 많이 내려갈 모양이어요.
내일은 쇠의날? ^^ 몸조리 잘 하시어요.

Kitty 2009-10-2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나 hnine님 안녕하세요!!!!!!!!!!! 반가와요!!!!!!!!!!!!!!!!!!!! (새삼 ^^;;)

hnine 2009-10-29 23:32   좋아요 0 | URL
에이, Kitty님, 정말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쑥쓰럽잖아요 ^^

같은하늘 2009-11-0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2004년도에 올리셨던 사진과 변함이 없으시네요. ㅎㅎㅎ

hnine 2009-11-04 12:45   좋아요 0 | URL
2004년도 사진...ㅋㅋ 예, 머리 숱이나 헤어스타일은 별로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피부와 얼굴은 많~이 변하던걸요. 아이가 옆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길래 얼굴 안 나오게 저리 가서 찍으라고 막 그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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