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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평점 :
"고상한 척 좀 하지마."
두살 터울이어서, 여러 가지를 공유하며 지내야했던 나와 여동생은 자라면서 티격태격 부딪힐 일이 잦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동생으로부터 자주 듣던 말이었다. 저렇게 말할 때도 있었고, 좀 더 심하면, "혼자 고상한 척 하고 있네." 이렇게 비아냥의 어조를 분명히 할 때도 있었다. 한번도 내 자신이 고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나는 동생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나의 어떤 면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인 것인지, 혹시 그렇다할지라도, 고상한 성격이라는 것이 그렇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아냥받을 이유가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는 했었다.
이제는 동생과 한 집에 살고 있지도 않으며, 더 이상 그런 말 하면서 다툴 나이도 지난 지 오래지만,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의 느낌은 바로 그 '고상한' 류의 책이겠지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새로울 것이 없는, 늘 듣던 얘기, 고리타분한 내용일 것이라는 지레 짐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책이니 시간 있을 때 영어 공부 삼아 원서나 사서 한번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동생이, 내 생일도 아니고 다른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니었는데 나에게 책을 몇 권 사서 보냈다고 전화로 알려왔다.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받아보면 안다고 했다. 다음 날 내게 도착한 책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 <행복의 정복>이었다. 그러니까 '고상해 보여' 내가 읽기를 미루고 있던 이 책이, 언니가 좋아할 것 같은 책으로 동생에게 뽑혀 내게 보내진 것이었다.
'너랑 나랑 인연이 있나보구나.' 생각하며 책의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버트란트 럿셀(1872~1970)은 철학자, 그리고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문필가로서, 당대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어려운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기 보다는,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쓰여진 듯, 어렵지 않게 읽혀지는 책이다. 행복은 그냥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행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부수고 나올 때 획득할 수 있다고, 그래서 그런 의미로서 책의 제목도 '행복의 정복'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는 행복이 우리 곁을 떠난 이유, 2부는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미려한 수사여구로써가 아니라 근거와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학자다운 진지함과 상세함, 때로는 단호한 목소리로 설파하는 그의 행복론 속으로 읽기 시작한지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점차 몰입되어 가고 있었다.
행복을 가로막는 이유 중의 하나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 수 있는 '권태'에 대해서 그는,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권태의 반대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극'이라면서, 자극은 더 강한 자극을 불러오게 되고, 이러한 자극을 갈구하는 태도는 결국 심신을 황폐하게 하므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권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 시대보다 요즘에 더 절실하게 와 닿는 말이 아닐까. 이런 훈련은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 하는데 갈수록 부모들은 아이가 행여 심심해 할까봐 이거 저것 오락 거리를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가로막는 또 한 요인으로서 들고 있는 걱정과 불안에 대해서는, 정작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걱정과 불안이라는 것, 질투에 관한 부분에서는 질투가 얼마나 사람의 행복을 망치는 요인이 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기쁘면 기쁜대로, 사물을 그대로 보지 않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려고 하기때문에 질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모두가 나만 미워한다는 피해의식, 불합리한 죄의식 등을 인간을 불행 속에 살게 하는 요인으로 들고 있다. 이 중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피해 망상을 적절히 예방하기 위해 그가 해주는 조언은, 첫째,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는 동기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반드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 둘째, 자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것, 셋째,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말라는 것, 넷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를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그렇게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말라는 것이다. 1부의 마지막에서 그는, 옛날에 비해 이웃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줄어든 반면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언론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라면서 언론의 피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써놓았는데,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에 의해 휘둘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의 만족을 위해 타인의 행복이 고려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이 책이 쓰여진 70년 전에도 이런 지침이 필요했을까 생각될 정도로 지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쓰여진 것 같아 절실하게 와닿는 내용이었다. 내가 말하거나 쓴 것들이 일단 나의 수중을 떠나 공개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어떤 대상을 악의적으로 보도하여 무고한 개인의 일상생활을 위협해서는 안된다는 것,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여론화해갈 때 그 결과는 상당히 심각하고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2부의 행복으로 가는 길 부분에서, 의욕과 열정은 행복한 사람들이 지닌 일반적인 특징 중의 한가지라면서 이런 사람들은 지진을 만나도 이 새로운 경험 덕분에 세계에 대한 지식이 늘어났다며 즐거워한다는 예를 들었다. 득도를 한듯이 행세하는 태도야말로 큰 병이며, 예전에 특히 여성들에게 강조되어 왔듯이 인생에 대해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가르치는 것은 열정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역시 진정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 중의 하나임은 물론인데, 서로를 단순히 자신의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랑,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결합체로 보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녀들과의 행복한 생활에 대해 쓴 부분은 읽는 동안 거의 충격이었다. 적어도 이 부분에 한해서는 남성보다, 결혼하여 육아 문제에 부딪혀 자신의 일과 목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본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경우 나처럼 일종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한다.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치이며 사는 동안 자신의 모든 매력을 잃고 지성의 4분의 3은 잃게 되지 않는 여자가 있다면 퍽이나 운이 좋은 여자라면서, 가정에서 누군가 꼭 해야하는 일들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족들 옆에서 충실하게 의무를 수행한 댓가로 가족의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은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부당한 대접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라고 했다. 만일 이 여성이 가족을 소홀히 여기고 쾌활하고 매력적인 생활을 유지햇다면 아마 가족을은 이 여성을 귀찮아하지 않고 사랑했을 것이라는 것, 저자 자신은 부모의 사랑을 매우 높게 평가하지만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서 손수 하는 일이 되도록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과 더불어, 자녀를 대단히 사랑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미적분을 직접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듯이, 갈수록 어머니 자신보다 다른 누군가 훨씬 더 전문적으로 아이를 담당할 수 있다면 굳이 어머니들이 다 맡아서 해야한다는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 여성은 어머니가 된 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 전문적인 활동을 발휘해나가도록 힘쓰는 것이 여성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유익하다는 것이다. 헌신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어머니일 수록 자녀에게서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상을 받고 싶어한다는 말은 또 얼마나 끔찍하게 들리던지. 지나치게 자식을 염려하는 것은 소유욕의 위장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에 자신있게 부인할 부모들은 몇이나 될까. 아이를 둔 여성의 행복은 가사, 육아의 문제와 늘 맞물려 있기에 더 가슴을 콕콕 찌르듯이 와닿았다. 이 문제는 뒷부분에 가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본질적 요소 중의 하나가 자신의 야망을 지속시키는 일이라는 대목에서 또 언급된다. 가사에 전념하는 여성들이 남성들이나 가정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비해 얼마나 불리한 입장에 있는지를 말하고 있었는데, 읽는 나에게는 마치 무슨 경고문처럼 받아들여졌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밖에서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에 도달하기 유리한 조건상에 있는가? 아무리 위대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은,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일과 통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히려 현대 지식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중의 하나가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고, 그것을 통해 결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심하면 자기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달래가며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 하는 동안 그것이 무슨 일이든간에 행복에 이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후반부에 노력과 체념이 행복에 똑같이 중요하다는 말도 나와 있다. 절망에 근원을 둔 체념이 아니라, 정복할 수 없는 희망에 근원을 둔 체념은 행복을 쟁취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노력이 담당하는 역할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체념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직시하는 용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일관되게 전달되어져 온 핵심이라면 역시 행복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컨트롤 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불행의 원인이 있다면 그것에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 행복은 그렇게 획득되어지는 것이라는 것, 행복으로 가기 위한 길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밑줄로, 메모로, 여기 저기 흔적을 남기며 마지막까지 읽은 후의 느낌이란, 지금 이 나이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다시 생각해보고, 더 확실히 정리해야할 것들이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 책을 내게 선물해준, 개인적으로 지금 힘든 시기를 겪어 내고 있는 동생에게, 내가 읽은 것들을 바탕으로 어떤 힘이 될만한 말을 해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네 말대로 정말 내가 좋아할 책인 것, 맞았다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저자 서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