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여지껏 정리 되지 못하고,
정리는 커녕 이것 저것 끌어다 붙이기까지 하여
자꾸만 더 기분을 가라앉히는 어리석음만 범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요.
하지만 잊지는 않고 싶습니다.
부질없는 흔적이나마 여기 저기 남겨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기억에 남겨 두렵니다.
먹고 사는데 필요한 이런 저런 일들,
크게 집중이 필요하지 않은 일들은 다 하며 지냅니다.
오랫 동안 찜만 해놓고 있던 심 보선의 시집도 사서 읽었고요.
'이런 사람과는 가능하면 연애만 해야지, 결혼까지는 별로 안 권하겠어' 라는 엉뚱한 생각도 했답니다. 결혼은 '현실' 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봐주세요.
<나를 환멸로 이끄는 것들> 이라는 시를 읽으면서는 감탄을 했습니다. 그걸 모두 공감하는 제 자신에게 감탄했다는 말씀입니다. 한 반 정도만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박 목월 시인과 아들 박 동규 님의 글로 엮인 책도 읽었어요.

이렇게 따뜻한 아버지도 있구나, 감동받으며 읽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바로 이렇게 그리워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추억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아토피가 심해서, 아토피에 좋다는 것은 안해본 것이 거의 없습니다. 로션 하나, 비누 하나, 먹거리 하나, 아무거나 쓰질 못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았는데도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매우 신경쓰며 고르게 됩니다. 우연히 수제비누를 사용해보았는데 마음에 들더군요. 마침 집에 비누가 다 떨어졌길래 제일 순한 비누로 주문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귀엽던지.

마음이 불안하면 저는 손도 불안합니다.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합니다. 그래서 만들었어요. 먹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요. 제빵기 두고, 일부러 손 반죽 해서 만들었습니다. 반죽이 질어야 나중에 부드러운 빵이 되기때문에 반죽, 힘들여 실컷 했습니다.

해답 없는 문제로 머리와 가슴을 무겁게 하는 일,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지만
누가 소용있어서 하나요.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람,
어떤 일 뒤에 뒤끝이 없다는 사람이
저는 부럽습니다.
저는 그게 참 잘 안되던걸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이 위로가 되어 줄 때가 있고
참으로 허무하게 들릴 때도 있군요.
저녁 때가 되었으니
저는 이제 다 뒤로 미루고 오늘 무슨 국과 반찬을 만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도 불안한 나의 손은
어제 사다 놓은 마늘쫑을 다듬고 삶아
일부는 볶아 놓고,
일부는 여태 한번도 안해본 장아찌를 다 담궈놓았습니다.
저녁 먹기 전, 오늘 농구하다가 부러뜨렸다는 아이의 안경부터 새로 하러 다녀와야 합니다.
이렇게 시간들이 가고 있고,
저는 그 시간 속에 둥둥 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