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과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아침 식사로 밥은 아니지만 빵이나 오믈렛 등을 먹었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니까, 아마 그 이후에 생긴 습관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5분 이내에, 아니 3분 이내에 사과를 입에 물어야 한다. 그래야 잠이 깬다. 그래야 하루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사과를 한 개 (아주 큰 사과의 경우엔 반 개) 물에 씻어 껍질 째 아삭아삭 먹기 시작해서 거의 다 먹어갈 무렵이 되어야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사과만 먹어도 정신은 깨어나지만, 그것으로 끝내긴 심심하니까 이어서 마실 것을 한잔 만들어 먹게 되는데 이건 변천사가 있다. 코코아였을 때도 있고, 녹차에 우유타서 먹었을 때도 있고, 지금은 커피를 마신다 (물론 설탕, 우유 다 넣어서).
이것으로 나의 아침 식사는 끝.
어디 여행가서 숙박을 하고 와야할 경우에 나는 사과를 챙겨서 간다. 사과를 못먹고 시작하는 하루란, 아침 굶고 시작하는 하루처럼 생각만해도 히스테릭 해지므로. 지금도 친정에 가서 자고 온다고 하면 부모님은 다른 것은 몰라도 사과가 냉장고에 있는지 보시고, 없으면 일부러 사다놓으신다. 이 정도면 중독이라 부를 수 있겠지.
내가 사과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어느 종류의 사과를 좋아하느냐고 가끔 묻는데, 그런게 어디있나? 사과라고 이름 붙은 것은 뭐든 상관없다. 아오리, 홍옥, 부사, 가정용 사과, 제수용 사과, 꼬마 사과, 기스난 사과...안가린다.  

 



 

 

 

 

 

 

 

 

 

2. 편지 

이건 예전에 중독되었던 것이고 지금은 아니다. 중학교 때였는데, 편지 쓰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학교에서 매일 보는 친구,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재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선생님, 사촌 언니, 심지어 군인아저씨께 의무적으로 써야했던 위문편지마저도 즐거워라 썼으니까. 저녁 먹고 책상에 앉으면 우선 오늘은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 부터 생각했다. 편지를 한장 쓰고 나야 공부가 되었다. 편지를 쓰다쓰다 더 이상 쓸 상대가 없으면? ㅋㅋ 방송국에 엽서라도 썼다. 노래 신청하고, 사연 쓰고. 

이 버릇은 고등학교에 가서 비관적, 자학적 일기를 써대는 것으로 대치되었다. 

 

3. 커피 

나는 중학교 입학전,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방학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를 즐기시던 아버지께서 당신 커피를 타시면서 내 것도 한 잔 타주시기 시작한 그 날부터 시작해서 곧 나는 하루도 커피를 안마시고 못배길 정도로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루에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한 잔으로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면서 하루에 두잔 마시는 날도 가끔 있었다. 실험실에서 오래 지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하루에 석 잔. 지금까지도 하루에 그 이상을 마시는 날은 없다. 그 이하를 마시는 날도 거의 없다. 하루 석 잔.
아이를 가지면 커피가 마시고 싶어 어떻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너무나 신기한 일은 아이를 가지고부터 커피를 마시기는 커녕 냄새도 못맡겠는거다. 수퍼마켓의 상품 진열대 사이를 지나다가도 커피 진열대 옆을 지나가면 속이 울렁울렁해졌을 정도이니까.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수유를 마치고 나니 다시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정말 인체의 신비, 특히 여자 몸의 신비란 설명 안되는 부분이 참 많다. 

 



 

 

 

 4.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요즘 생긴 새로운 습관으로 뻥튀기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과자류를 잘 먹는 편은 아닌데, 어쩌다 뻥튀기를 먹게 된 이후로 그날 이후 거의 매일 뻥튀기를 한봉지씩 (하나가 아니라 한 봉지) 먹고 있다. 파편을 온 방안에 다 날려가면서.
또 하나 내게 생기고 있는 습관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 DJ가 처음 듣는 목소리, 처음 듣는 이름인데 알아보니 가수라네. 약간 건조한 목소리에, 어딘가 배철수 스타일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선곡되어 나오는 음악도 뭐, 괜찮고. 거의 매일 듣고 있다. 시계 보고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라디오를 켜게 되는. 되도록이면 그 시간에 라디오 앞에 앉아 있고 싶어지는.
그런데 이게 새벽 4시에 하는 프로그램이라는거지 ㅋㅋ

 

뭔가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은,
재미있다. 취향이 살아있다는 것이니까.
크게 내 몸을 축내거나 민폐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파피필름 2009-02-20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중독은 특이한데요? ^^ 아침에 사과 먹으면 몸에도 좋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커피는 저도 중독이에요.. 저도 한때 뻥튀기 열심히 먹던 때 있었는데 요즘에도 없으니까 안먹지 아마 집에 있으면 바닥 보일때까지 계속 먹고 있을 것 같아요. 흐흐.

hnine 2009-02-21 04:36   좋아요 0 | URL
특이한가요? 다른 과일도 아니고 사과여야 하니까 특이한것 같기도 해요 ^^
뻥튀기가 특별한 맛이 없으니 질리지가 않아요. 매일 같은 가게가서 한봉지씩 사니까 아마도 주인아주머니께서 제 얼굴 다 기억하실거예요. 뻥튀기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특산품 아닌가 싶어요. (여전히 예찬론~ ^^)

마노아 2009-02-2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스 난 사과! 훌륭해요! 저도 한 동안 사과 계속 먹었는데 사과 뚝 떨어지니까 습관도 뚝 끊어졌어요...;;;;
새벽 4시에 어떤 방송 들어요? 방금 엠비싸 fm만 검색해봤는데 하동균이 나오네요.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거예요, 아직 잠들기 전이에요?

hnine 2009-02-21 04:40   좋아요 0 | URL
기스난 사과도 맛은 좋거든요. 기스가 좀 나있기로서니 천대받을 이유가 전혀 없지요 ^^ 전 냉장고에 사과가 10개 이하로 남기 전에 다시 박스로 들여다 놓아야 안심을 합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좀 엽기적인 것 같기도 하네요 ㅋㅋ)
예, 그 방송사 프로 맞아요 ^^

무스탕 2009-02-2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정말 홍옥 껍질째 아삭아삭 씹어먹는거 너무 맛있어요. 사과중에 최고에요, 최고!
2. 편지는.. 제가 좀 스토커 기질이 있는건 사실인가봐요 -_- 고딩때 좋아하던 선생님께 1.2학년땐 수업을 받았는데 3학년엔 수업이 없었어요. 3학년 내내 일요일마다 편지를 썼지요. 졸업후 일이 있어 학교엘 갔더니 이 선생님께서 제 편지를 모두 읽어보고 계셨더라구요. 제가 어디 취직했는지까지 다 꿰고 계셨으니.. 그럴거면 진즉에 아는척해서 영계를 챙길것이지 ^^;
3. 커피는 들쭉날쭉이에요. 요즘은 집에 있을때는 하루에 한두 잔, 알바하러 사무실에 나가면 기본이 네 잔.. 이 편차란..;;
4. 전 과자보다 한동안 콜라에 중독된적이 있었어요. 콜라를 쟁겨놓고 살았었죠. 정말 하루라도 콜라를 안 마시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요즘엔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정도 ^^

hnine 2009-02-21 04:44   좋아요 0 | URL
아, 무스탕님도 사과 좋아하시는구나~ 반가와요.
고등학교때 그 선생님도 무스탕님에게 어떻게 아는 척을 해야할까 망설이고 계셨던게 아닐까요? 그런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매주 일요일마다 편지를...
콜라도 중독되는 것 맞아요. 탄산중독이라고 ㅋㅋ

프레이야 2009-02-2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중독은 몸에 좋을 것 같아요.
커피와 글쓰기는 저도 중독이에요.
새벽 4시의 그 라디오 프로그램은 어딘가요? ^^

hnine 2009-02-21 04:46   좋아요 0 | URL
예, 아침 사과가 몸에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미 다른 것을 먹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먹는 사과보다 이렇게 눈 뜨고 빈 속에 먹는 사과는 정말 좋아요.
지금도 듣고 있는 그 프로그램은 위의 마노아님께서 말씀해주셨네요 ^^

Kitty 2009-02-21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진짜 일찍 일어나시는 것 같아요. 정말 부지런하신가봐요.
이곳 오후쯤이 한국 새벽인데 2-4시쯤에는 서재 글이 뜸하다가
5-6시쯤에 제일 먼저 올라오는 페이퍼가 hnine님 글일 때가 많아요 ^^ 왠지 반갑다는 ㅎ
9시 넘어서야 일어나는 저는 구제불능인 듯 ㅠㅠ

hnine 2009-02-21 04:47   좋아요 0 | URL
Kitty님, 제가 원래 아침형이기도 했지만, 아이 낳고 나서 이 시간 아니면 온전한 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새벽 3시에도 일어나고 4시에도 일어나고 그래요. 대신 일찍 자는 날이 많아요. 남들 한참 활동할 시간에요 ^^ 그러니 제가 부지런해서가 아니지요.

웽스북스 2009-02-2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와 글쓰기는 저도 중독이에요 222
저희 팀장님 어머니께서는 팀장님 가지셨을 때 줄창 커피를 그렇게 드셨대요.
그래서 우리 팀장님은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신다는 ㅋ

hnine 2009-02-21 16:49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지기님들 중 많은 분들이 비슷한 중독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 해요.
저도 아이 가진 동안 커피가 여전히 고팠다면 그냥 마셨을 것 같아요.

세실 2009-02-22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중독 좋은데요. 이 글 읽으면서 님도 열정적이시구나 생각했습니다.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것 참 멋진 일이죠. 커피, 편지, 사과라니~~~
한동안 임태경의 세상의 모든 음악 열심히 들었는데 직장 청주로 오면서 잊고 있었습니다. 님이랑도 맞을듯 하여 검색해보니 지금은 이루마가 진행합니다. 아쉬워라..

hnine 2009-02-22 08:20   좋아요 0 | URL
임태경님 늘 건강에 남다른 신경을 써야하는 분이시더군요. 그래서 방송 맡을 때 얼마나 갈까 좀 염려스럽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진행하셨다고 생각했어요. 이루마로 바뀐 다음에는 한번도 못 들었어요.
 

이런 영화가 보고 싶었었는지 모르겠다.
심각하지 않은 듯한 주제에서 출발하지만, 개성있고, 모호하지 않게 주제를 전달해주는 영화. 거기다가 감동까지 있는 영화.
밥 말리라는 가수 이름에서 따온 '말리'라는 개를 하나의 매개로 해서 이 영화는 '가정' 혹은 '가족'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될때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경우엔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되어 그들의 아이를 가졌을 때 비로소 가정을 이룬다 (start a family)라고 한다. 실제로 결혼만 한 상태에서 이전의 생활과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을 때에 비하면. 아이가 태어난 후의 생활은  이전의 생활과 많이, 정말 많이 달라지고, 적응하는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런 과정들이 이 영화에 너무나 잘 드러나 있었고, 초반엔 남편보다 기자로서의 능력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아 보였던 제니가 아이를 낳고서 결국 자기 일을 접는 과정, 그 심경을 남편 존에게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99% 감정이입, 아니 110% 감정이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기꺼이 자기 의지로 택한 일 임에도 집에서 아이 키우는 일에 지쳐버린 제니는 신경이 날카로와져 가고, 그런 제니를 사람들은 단순히 '산후우울증'이라는 한마디 말로 진단해버리며 누구나 겪는 일 쯤으로 넘어가려하자 급기야 부부사이의 위기의 순간까지 치닫는다. "네가 선택한 일 아니냐?" 는 말은 즉, "누가 너보고 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 보라고 했느냐? 아이 볼 사람 불러서 쓰자고 하지 않았느냐?" 는 뜻이다. 아내가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자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꿈과 야망을 한수 물릴때 최소한 남편은 그 뜻을 존중해주고 그 일의 존귀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내가 얼마나 큰 각오를 하였고, 그 각오를 지키기 위해, 아무도 대단하게 알아주지 않는 일을 오늘도, 내일도, 1년 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해나가느라 피폐해지고 있는지, 최소한 남편은 알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가족이기 때문에.
집에 들어 앉아 아이 키우는 일,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해본 일 중 가장 힘든 일이라는 제니의 대사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해왔던 말인가.
그래도 영화속의 존과 제니는 참으로 현명하고 따뜻한 부부였다. 인생은 계획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경직된 사고와 집착이 가정을 부서뜨릴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은 제니와, 늘 한발 물러나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는 존의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부부가 저 정도만 된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존 그로건 원작을 영화화, 실제 영화중의 주인공의 얘기가 작가의 경험담이어서 더욱 현실감 있고,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는지 모르겠다.
가족이 무엇인지, 가정이 무엇인지. 가족이나 가정은 생겨나면 그냥 유지되어 가는 자동사적 의미가 아니라, 계속 변하는 상황 속에 노력으로 유지, 보존시켜야 하는 타동사적 의미의 개념임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 노력의 이름은 아마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9-02-20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하고 착한 영화군요. 레볼루셔너리 로드 보고 비극적이었는데
이거 보면 좀 달라지려나요. 추천^^

hnine 2009-02-20 04:29   좋아요 0 | URL
예, 따뜻하고 착한 영화 맞아요. 이거, 책으로도 읽어보고 싶어 지금 막 찾고 있어요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지만요 ^^
레볼루셔너리 로드, 어떤 영화인지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이 영화도 강추입니다.

무스탕 2009-02-2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애키우고 살림만 하는 여자들은 일하는게 없는 여자다' 라고 생각하며 사는 남정네들이 꼭 봐야하는 영화군요!
나인님 리뷰 읽으니 눈물 나려고해요.. ㅠ.ㅠ

hnine 2009-02-20 15:48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솔직히 저 이 영화보면서 살짝 울었어요 ^^
 

오늘 하루 

남의 흉 보는 일에 동참하지 않을 것을, 

내 뜻과 상반되는 말을 하는 이가 있더라도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을, 

나를 흉보는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언질을 받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기도합니다.  

 

- 2009년 2월 17일 어머니께서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09-02-1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소중한 말씀이라 제 마음에도 담아두고 갑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끄럽게 떠드는 자신이 너무 싫어지곤 합니다.

하늘바람 2009-02-1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말씀이네요 어머님 말씀을 이렇게 담아두는 님도 멋집니다. 사실 살면서 안그렇게 되는거같아요.

마노아 2009-02-1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강렬한 울림을 전합니다. 저 기도대로 오늘 하루를 살 수 있다면 나의 삶은 평온 그 자체일 거예요. 노력하겠습니다.

hnine 2009-02-18 19:19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하늘바람님, 마노아님,
함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시면 꼭 한시간 씩 기도를 하신다는데 이 날은 모임 약속이 있어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시는 날이라 기도 마지막에 윗 부분을 덧붙여서 하셨다고 해요. 가끔 이렇게 저에게 기도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십니다.
 

 

   
 

워크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세살된 아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고 있었다. 남편은 그저 옆에서 학을 뗀 표정을 하고 서있을 뿐이었다. "자, 아동 전문가께서 오셨으니 이 아이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한번 볼까?" 이 사태에 내가 나서야만 하겠구나 라는 느낌이 왔다. 여전히 발길질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조슈아를 내려다보던 나는 전화기 옆에 있던 연필과 메모패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조슈아에게 연필과 메모패드를 건네주며 말했다. "자, 네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나타내봐. 네 기분을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는거야" 

조슈아는 즉시 일어나더니 화가 난 듯한 원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게 그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하는거여요." 

나는 "너 진짜 화가 났구나!" 라고 말하며 메모패드에서 종이를 한장 더 뜯어 주었다. "더 보여줘봐." 

조슈아는 마구 휘둘러 그려댔고 나는 또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화가 난걸..." 우리는 이 과정을 한번 더 거쳤다. 내가 네번째 종이장을 내밀었을때 조슈아는 확실이 훨씬 진정이 되어보였다. 그 아이는 종잇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젠 좋은 내 기분을 나타내볼께요." 그러더니 원 하나를 그리고 눈과 웃는 모양의 입을 그려넣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2분 만에 그 아이는 신경질이 있는대로 난 상태에서 웃을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아이로 하여금 내게 자신의 기분을 보여주게 한 것 뿐인데.  

 
   

 

 

   

 

 

  

- 이 책중  31쪽 내용을 옮김 - 

 -----------------------------------------------------------------------------------

아이가 어떤 말을 하거나 기분을 표현할 때, 그것을 듣고 (혹은 다 듣기도 전에) 어떤 단정을 짓거나 결론을 내리고 다음 단계 지시까지 내리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부모가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이는 그런 목적으로 말을 시작한 것이 아닌데...
단순한 호응의 표현만 하면서 끝까지 아이가 자기 기분을 맘껏 표현하도록 들어주고 (listen),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acknowledge), 함께 느껴주는 것 (empathy), 부모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육아, 교육 관련 서적을 읽는 동안, 또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을 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empathy (감정이입)라는 단어 아닐까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인 2009-02-17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아주 흥미가는 책입니다. 영서로 읽고 계시나봐요?

hnine 2009-02-18 06:04   좋아요 0 | URL
이 책으로 몇몇 분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세미나 비슷한 모임을 갖고 있어요. 영어이지만 쉽게 쓰여있고, 대화체 예문이 많고 혼자 읽는 것이 아니다보니 부담없이 흥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춤추는인생. 2009-02-17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어주고 인정해주고 함께 느껴주고. 비단 부모자식뿐만 아니라, 사람사이에서 이게 얼마나 크게 중요한지 알것같아요. 전 그런 사이가 젤 좋아요 나인님.^^

hnine 2009-02-17 16: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비단 부모자식 사이에서만 요구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른인 우리도 내 말을 잘(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을 찾게 되잖아요.
이렇게 이론만 알면 뭐하나, 행동은 따로인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의식하고 실천해보고자 하니까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같아요 ^^
 
엑스를 찾아서
데보라 엘리스 지음, 권혁정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데보라 엘리스라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책이다. 캐나다 태생으로 평화 단체, 여성 단체, 반전, 인권 운동가 로서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책의 인세 수입도 아프가니스탄의 난민 어린이를 위한 기금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그녀의 첫 작품이 바로 이 책 '엑스를 찾아서' 이다.
자폐 증상을 갖고 있는 쌍둥이 동생들과 스트립 댄서 출신의 싱글맘인 엄마와 함께 캐나다의 빈민지역에 살고 있는 소녀 '카이버'는 결핍된 현실에 대한 반항이자 벗어나고픈 기대와 희망으로 '엑스'라는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내는데, 책에서 그녀는 엑스를 마치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 양 샌드위치를 만들어 만나러 나가기도 하고, 나중에는 엑스를 찾아 며칠 씩 집을 나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특별한 교육과 보살핌이 필요한 쌍둥이 동생들에게 더 나은 양육 환경으로 보낼 것을 계속해서 설득하는 사회복지사의 권유에 따라 마지 못해 기관에 보내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린 엄마에 결사 반대하여 카이버는 집을 나오게 되고.
옛날에 비해 아무리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고 하나 그것은 평균치에 불과할 뿐이고, 이 세상에는 여전히 굶주리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돈을 세어가며 빵을 사는 사람들, 배고픔에서 벗어나고픈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엑스'로 상징되는 존재는 지금 내게 없는 것을 꿈꾸게 하는 기대이자 희망이며, 그런 나의 초라하고 궁핍한 마음을 숨김없이 털어 놓고 위안 받을 수 있는, 오ㄴ 하루를 더 버틸 수 있게 하는 숨통같은 존재인 것이다.
나중에 작가의 이력을 읽고 나니, 책 내용 중 싱글맘 가정의 경제와 양육 문제, 사회보장 문제, 카이버를 공격하는 인종단체 사람들의 등장, 여성 엘비스 그룹의 도움 등이 나오는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그녀는 그렇게 작품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그녀 식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으로 그녀는 캐나다 최고 권위의 총독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캐나다 터론토의 여성단체에서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간다. 아프가니스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냈다는데 ('파르바나' 시리즈) 거기서 그녀는 또 어떤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조용히 펼치고 있을지 찾아보고 싶어서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9-02-16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는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 많은 것같아요 이 작가도 그렇네요. 참 대단해요.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hnine 2009-02-16 16:49   좋아요 0 | URL
보통 사람들과 조금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죠.
재미있고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어요.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