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창조는 자유에서 오고
자유는 고독에서 오고,
고독은 비밀에서 오는 것,
사랑하고, 글을 쓰고, 생각하는 일은
모두 숨어 하는 일인데
어디에도 비밀이 쉴 곳은 없다.


이제 거대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되었구나.
각기 주어진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부르면 즉시
알몸으로 서야 하는 삶.


혹시 가스실에 실려가지 않을까,
혹시 재판에 회부되지 않을까,
혹시 인터넷에 띄워지지 않을까,
네가 너의 비밀을 지키고 싶은 것처럼
아, 나도 보석 같은 나의 비밀 하나를
갖고 싶다.


사랑하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벨이 울리면
지체없이 달려가야 할 나의 수용소 번호는
016-909-3562.  

 

 오 세영(1942∼ ) 

--------------------------------------------------- 

 

어디 휴대폰 뿐이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왓슨이 들려주는 DNA 이야기 - 과학자들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09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131
이흥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자들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시리즈 중의 한권이다. 어떤 분야의 대표적인 인물을 내세워, 그가 직접 그 분야에 대한 해설을 해주는 식의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13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중요한 사실들을 조리있게 잘 설명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류의 책은 깊이 있는 설명이 목적이 아니다. 핵심적인 내용을,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금방 이해가 될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능력을 요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려면 그 분야에 대해 아주 바닥부터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비유의 대상을 잘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 내용 중에서 예를 들어 보자면, "DNA 정보는 복사되어 세포질로 전달된다." 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사용하였다.

DNA라는 정보는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도서관은 절대 책을 빌려주지 않는 도서관이다. 그래서 필요한 책은 복사만 해갈 수 있다.
여기서 도서관은 , 복사된 DNA 정보는 RNA에 해당된다. 책 전체가 아닌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간다는 것도 DNA 에서 RNA로의 transcription (전사)  과정 설명에 적절하다.
어떤 사실을 이해하고 나의 지식화 하는 것이 한 단계의 과정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이해시키는 것은 또 다른 노력을 요하는 별개의 단계이고 능력이다. 별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의 지식도 다른 사람들의 그런 노력에 의해 습득되었지 않는가. 그것이 선생님일수도 있고, 이런 류의 책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잘 쓰여진 책이라고 하고 싶다. 이런 류의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나 나와 있는 만큼 모두 추천하고 싶지 않은 까닭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냥 기술하는 데에만 치중하고, 그것을 다시 풀어서, 읽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들어가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세포의 DNA는 세포마다 같을까요, 다를까요?" 하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을 해볼 기회를 주며 시작하는 수업과,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세포의 DNA는 모두 같습니다, 혹은 다릅니다 라고 일방적으로 사실을 전달하는 수업에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일부는 같다, 일부 학생들은 세포의 종류의 따라 다르다고 대답할 것이다.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는 셈. 그러면 이제 설명을 해준다. 사람의 모든 세포는 하나의 세포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수정난) 가지고 있는 DNA는 똑같다고. 그러면 왜 세포들은 다 같지 않고 각기 다른 일들을 하느냐는 질문이 나오면 강의하는 사람은 참 신이 난다. 이런 식의 신나는 수업을 구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도 읽어보았는데 그것은 이 책만큼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모든 책들을 추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 만큼은 추천할만하다고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를 위한 스테이크
에프라임 키숀 지음, 프리드리히 콜사트 그림, 최경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에프라임 키숀이라는 이름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라는 제목의 미술비평서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 책에서도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을 그저 평이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전달시키는 방법보다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무릎을 탁 치며 웃게 만드는, 그만의 독특한 화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책 '개를 위한 스테이크'는 작가의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 모음이다.
고무 젖꼭지가 없어졌다고 울어제끼는 딸, 찾아 주면 잃어 버리기를 반복하여 지친 식구들은 어느 날 알게 된다. 어린 딸 자신이 고무젖꼭지를 스스로 숨키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가장 무난한 선물 품목중의 하나인 초코렛. 돌고 돌아 어느 날 자기 집에 있던 초콜렛이 곰팡이가 핀채 다시 선물로 되돌아 온 이야기,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아들때문에 머리를 짜내다 못해, 결국 자신도 그것을 의심하게 된다는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긴 한데, 그 재미라는 것이, 즐거움을 추구하여 생긴 재미라기 보다는, 원치 않은 상황,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 자가당착의 상황에서 나오는 헛헛한 웃음, 어처구니 없어서 웃는 웃음, 그런데서 오는 재미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말이 의미하는 그 아름다움과 동격의 웃음이고 재미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나치 강제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바 있는 그가, 그의 방식으로 들려주는 '인생은 이런거야' 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보면 될까. 인생은 이렇게 막다른 골목의 연속이고, 자가당착이며,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아무때나 찾아 오는, 그런 거라고,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니 뭐, 웃고 넘어가라고 한 수 가르쳐주는 것인가. 유쾌한 웃음, 아니고, 허탈하고 쓸쓸한 웃음을 주는 책이다. 

--> 2006년에 마음산책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슨 

 

무슨
소리라도 한번 들려라
살포시라도 

외롭구나
무슨
벌레라도 한 마리
나를 물어라
너무 외롭구나 

생각하고 생각하다
생각이 막힌 곳
문득 생각하니 

내 삶이란 게 간단치 않아
온갖 소리 갖은 벌레 다 살아 뜀뛰는
무슨 허허한 우주 

쓴웃음이
한번 

뒤이어
미소가 한번 

창밖의 마른 나무에
공손히 절 한번 

가랑잎 하나
무슨 종교처럼 진다.
 

 

김 지 하 

 

 

친정에 가면 아직도 여기 저기 결혼 전 나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번 설에 가서 집어온 시집, 김 지하 시인의 중심의 괴로움, 1994년에 나온 시집이다.
책 겉장을 들춰보니 이 시집을 구입한 날짜와 장소가 쓰여 있다.
대학로에도 종로서적이 있었던가?
김 지하 시인의 <새벽 네시>라는 시를 시작으로 그의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다. 
오늘, 오랜만에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새봄 9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김 지 하 

 

새봄, 새봄!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자동차 안의 히터를 키지 않고 올수 있을 만큼 날이 많이 풀려 있었다.
봄이란 말에는 어떤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봄! 봄! ^^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1-27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1-27 23:52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 ^^
종로에 있던 종로 서적이면 저렇게 대학로 종로 서적이라고 쓰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자기가 써놓고 이렇게 추리를 하고 있자니 웃기네요 ㅋㅋ

하양물감 2009-01-2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적들을 하나둘 발견하다보면, 정말 이랬던가 싶은게 한두가지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인간의 기억력이란 믿을게 못되는건지도요~

hnine 2009-01-28 11:10   좋아요 0 | URL
기록이 없으면 그냥 묻혀버릴 추억들이 참 많지요 ^^

상미 2009-01-2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지하님 <새봄> 시는 요새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hnine 2009-01-29 22: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네 덕분에 알았네 ^^

상미 2009-01-31 01:4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네가 쓴 거 처럼<봄>이 주는 그런 느낌을 알면 된다고 생각 하는
우리 병규한테 학교는 비유가 어떻고 댓구가 어떻고 하는걸 알 길 원하니... 우리도 그렇게 배웠지만..
나중에 시험 때문에 배우는 시가 아닌 시를 만나면, 느낌을 알게 되겠지.
 

"아, 오늘도 나갈 시간이 다되어 오는군.
자,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 차례더라, 달력을 볼까?
아하. 반팔 옷을 입어야겠군.
어디, 나가 보자." 
두둥실~

달이 힘차게 떠올랐습니다.
높이 높이.
되도록 먼 곳까지 볼 수 있으려면 높이 높이 떠올라야합니다.

"여기가 좋겠군. 어디 보자~"
달은 눈을 크게 뜨고 여기 저기 둘러 봅니다.
저쪽에는 도로에 차가 잔뜩 밀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상점마다 화려한 조명등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두둥~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보니, 그곳은 아파트가 빽빽히 들어선 동네입니다.
저기 놀이터가 보이네요.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아이가 집에 갈 생각도 안 한채 쪼그리고 앉아 계속 모래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모양의 플라스틱 그릇에 모래를 꽉 차게 담은 후 재빨리 바닥에 뒤집었다가 그릇을 들어올립니다. 그 자리에 그릇모양의 모래탑이 생깁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모래탑을 연달아 만들던 아이는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봅니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옆의 의자로 가서 가방을 끌어앉고 우두커니 앉아있습니다.
"왜 집에 안가고 있는거지?"
달은 궁금해서 계속 그 아이를 비추며 지켜봅니다.
이미 주위는 깜깜해지고 달빛만이 놀이터를 비춰주고 있습니다.
달은 그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합니다.
꼼짝 않고 그 아이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이는 알까요? 지금 달이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앉아 있는 의자 주위가 유난히 환해보입니다. 

구름이 달을 가릴려고 하면 달은 사정합니다.
"구름 양반, 지나가려면 얼른 지나가주쇼. 당신이 나를 막아서 내 빛이 가려지면 저기 저 꼬마가 겁먹을지 몰라요."
친절한 구름은 얼른 달을 지나서 갑니다. 

아이는 배도 고프겠지요.
누구를 기다리는지 계속 아파트 입구쪽을 쳐다 봅니다.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달도 안타깝습니다.

그때, 아이를 부르며 달려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는 달려갑니다.
아마 아이의 엄마인가 봅니다. 허겁지겁 뛰어 왔는지 숨을 몰아쉬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듭습니다.
곧 아이와 엄마는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합니다.

"휴~ 이제 안심이야."
한 곳만 계속 비추느라 힘들었던 달은 다시 주위를 잘 둘러봅니다.
내가 필요한 곳이 없나, 나를 친구로 필요로 하는 곳이 없나 하고요.

매일 밤 달이 하는 일이랍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01-26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1-26 22:14   좋아요 0 | URL
밤에 잘때 아이한테 들려줄려고 지어낸 이야기어요 ^^
올해에도 좋은 사진, 음악, 글 볼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실 2009-01-27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어낸 이야기라니..님 동화 쓰셔도 될듯.
엄마 달려오는 부분에서 그만 울컥했습니다. 감동입니다.

hnine 2009-01-27 09:55   좋아요 0 | URL
아이쿠, 세실님. 쑥스럽습니다 ^^

비로그인 2009-01-2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동화를 쓰셔도 되겠어요. 나인님. 아이를 키운다는 일..아직 해보지 못했지만 정말 많은 말들을 함축하는 단어 같아요. 다린이가 정말 좋겠어요.

hnine 2009-01-27 19:56   좋아요 0 | URL
그런데요...막상 이 얘기를 해주니까 유치하다는 듯한 반응이네요 흑 흑...
이제 다린이가 너무 커버렸어요. 조금 더 수준을 높인 얘기를 만들어내야겠어요.

이리스 2009-01-27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화 듣다가 잠들고 싶어요. 어흑.. -_-;;

hnine 2009-01-27 23:5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어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