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위한 스테이크
에프라임 키숀 지음, 프리드리히 콜사트 그림, 최경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에프라임 키숀이라는 이름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라는 제목의 미술비평서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 책에서도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을 그저 평이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전달시키는 방법보다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무릎을 탁 치며 웃게 만드는, 그만의 독특한 화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책 '개를 위한 스테이크'는 작가의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 모음이다.
고무 젖꼭지가 없어졌다고 울어제끼는 딸, 찾아 주면 잃어 버리기를 반복하여 지친 식구들은 어느 날 알게 된다. 어린 딸 자신이 고무젖꼭지를 스스로 숨키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가장 무난한 선물 품목중의 하나인 초코렛. 돌고 돌아 어느 날 자기 집에 있던 초콜렛이 곰팡이가 핀채 다시 선물로 되돌아 온 이야기,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아들때문에 머리를 짜내다 못해, 결국 자신도 그것을 의심하게 된다는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긴 한데, 그 재미라는 것이, 즐거움을 추구하여 생긴 재미라기 보다는, 원치 않은 상황,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 자가당착의 상황에서 나오는 헛헛한 웃음, 어처구니 없어서 웃는 웃음, 그런데서 오는 재미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말이 의미하는 그 아름다움과 동격의 웃음이고 재미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나치 강제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바 있는 그가, 그의 방식으로 들려주는 '인생은 이런거야' 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보면 될까. 인생은 이렇게 막다른 골목의 연속이고, 자가당착이며,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아무때나 찾아 오는, 그런 거라고,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니 뭐, 웃고 넘어가라고 한 수 가르쳐주는 것인가. 유쾌한 웃음, 아니고, 허탈하고 쓸쓸한 웃음을 주는 책이다. 

--> 2006년에 마음산책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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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무슨
소리라도 한번 들려라
살포시라도 

외롭구나
무슨
벌레라도 한 마리
나를 물어라
너무 외롭구나 

생각하고 생각하다
생각이 막힌 곳
문득 생각하니 

내 삶이란 게 간단치 않아
온갖 소리 갖은 벌레 다 살아 뜀뛰는
무슨 허허한 우주 

쓴웃음이
한번 

뒤이어
미소가 한번 

창밖의 마른 나무에
공손히 절 한번 

가랑잎 하나
무슨 종교처럼 진다.
 

 

김 지 하 

 

 

친정에 가면 아직도 여기 저기 결혼 전 나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번 설에 가서 집어온 시집, 김 지하 시인의 중심의 괴로움, 1994년에 나온 시집이다.
책 겉장을 들춰보니 이 시집을 구입한 날짜와 장소가 쓰여 있다.
대학로에도 종로서적이 있었던가?
김 지하 시인의 <새벽 네시>라는 시를 시작으로 그의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다. 
오늘, 오랜만에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새봄 9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김 지 하 

 

새봄, 새봄!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자동차 안의 히터를 키지 않고 올수 있을 만큼 날이 많이 풀려 있었다.
봄이란 말에는 어떤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봄!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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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7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1-27 23:52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 ^^
종로에 있던 종로 서적이면 저렇게 대학로 종로 서적이라고 쓰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자기가 써놓고 이렇게 추리를 하고 있자니 웃기네요 ㅋㅋ

하양물감 2009-01-2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적들을 하나둘 발견하다보면, 정말 이랬던가 싶은게 한두가지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인간의 기억력이란 믿을게 못되는건지도요~

hnine 2009-01-28 11:10   좋아요 0 | URL
기록이 없으면 그냥 묻혀버릴 추억들이 참 많지요 ^^

상미 2009-01-2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지하님 <새봄> 시는 요새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hnine 2009-01-29 22: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네 덕분에 알았네 ^^

상미 2009-01-31 01:4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네가 쓴 거 처럼<봄>이 주는 그런 느낌을 알면 된다고 생각 하는
우리 병규한테 학교는 비유가 어떻고 댓구가 어떻고 하는걸 알 길 원하니... 우리도 그렇게 배웠지만..
나중에 시험 때문에 배우는 시가 아닌 시를 만나면, 느낌을 알게 되겠지.
 

"아, 오늘도 나갈 시간이 다되어 오는군.
자,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 차례더라, 달력을 볼까?
아하. 반팔 옷을 입어야겠군.
어디, 나가 보자." 
두둥실~

달이 힘차게 떠올랐습니다.
높이 높이.
되도록 먼 곳까지 볼 수 있으려면 높이 높이 떠올라야합니다.

"여기가 좋겠군. 어디 보자~"
달은 눈을 크게 뜨고 여기 저기 둘러 봅니다.
저쪽에는 도로에 차가 잔뜩 밀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상점마다 화려한 조명등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두둥~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보니, 그곳은 아파트가 빽빽히 들어선 동네입니다.
저기 놀이터가 보이네요.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아이가 집에 갈 생각도 안 한채 쪼그리고 앉아 계속 모래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모양의 플라스틱 그릇에 모래를 꽉 차게 담은 후 재빨리 바닥에 뒤집었다가 그릇을 들어올립니다. 그 자리에 그릇모양의 모래탑이 생깁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모래탑을 연달아 만들던 아이는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봅니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옆의 의자로 가서 가방을 끌어앉고 우두커니 앉아있습니다.
"왜 집에 안가고 있는거지?"
달은 궁금해서 계속 그 아이를 비추며 지켜봅니다.
이미 주위는 깜깜해지고 달빛만이 놀이터를 비춰주고 있습니다.
달은 그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합니다.
꼼짝 않고 그 아이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이는 알까요? 지금 달이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앉아 있는 의자 주위가 유난히 환해보입니다. 

구름이 달을 가릴려고 하면 달은 사정합니다.
"구름 양반, 지나가려면 얼른 지나가주쇼. 당신이 나를 막아서 내 빛이 가려지면 저기 저 꼬마가 겁먹을지 몰라요."
친절한 구름은 얼른 달을 지나서 갑니다. 

아이는 배도 고프겠지요.
누구를 기다리는지 계속 아파트 입구쪽을 쳐다 봅니다.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달도 안타깝습니다.

그때, 아이를 부르며 달려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는 달려갑니다.
아마 아이의 엄마인가 봅니다. 허겁지겁 뛰어 왔는지 숨을 몰아쉬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듭습니다.
곧 아이와 엄마는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합니다.

"휴~ 이제 안심이야."
한 곳만 계속 비추느라 힘들었던 달은 다시 주위를 잘 둘러봅니다.
내가 필요한 곳이 없나, 나를 친구로 필요로 하는 곳이 없나 하고요.

매일 밤 달이 하는 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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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6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1-26 22:14   좋아요 0 | URL
밤에 잘때 아이한테 들려줄려고 지어낸 이야기어요 ^^
올해에도 좋은 사진, 음악, 글 볼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실 2009-01-27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어낸 이야기라니..님 동화 쓰셔도 될듯.
엄마 달려오는 부분에서 그만 울컥했습니다. 감동입니다.

hnine 2009-01-27 09:55   좋아요 0 | URL
아이쿠, 세실님. 쑥스럽습니다 ^^

비로그인 2009-01-2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동화를 쓰셔도 되겠어요. 나인님. 아이를 키운다는 일..아직 해보지 못했지만 정말 많은 말들을 함축하는 단어 같아요. 다린이가 정말 좋겠어요.

hnine 2009-01-27 19:56   좋아요 0 | URL
그런데요...막상 이 얘기를 해주니까 유치하다는 듯한 반응이네요 흑 흑...
이제 다린이가 너무 커버렸어요. 조금 더 수준을 높인 얘기를 만들어내야겠어요.

이리스 2009-01-27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화 듣다가 잠들고 싶어요. 어흑.. -_-;;

hnine 2009-01-27 23:5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어흑.. ^^
 

중학교 1학년 입학하고 첫 주.
처음 입어본 교복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내가 교복을 입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교복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한 그 어정쩡한 느낌.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시더니 집이 어느 동네인지 물으셨다. 아직 같은 반 아이들 얼굴을 익히기 전이라, 호명된 아이가 누군가 궁금하여 뒤돌아보니 교실 뒷문 가까이에 한 아이가 앉은채 대답하고 있었다. 체구는 좀 있는 편이나 얼굴은 아주 하얗던 그 아이는 소아마비여서 걸음이 불편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곧 '성애병원' 근처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 물으셨다. 그 아이가 자기 집이 성애병원 근처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꼐서는 근처에 사는 사람중 누군가 하교시에 그 아이를 도와 함께 집에 가도록 권하시려던 것. 성애병원을 우리 집 근처의 '성혜병원'으로 잘못 알아들은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나보고 이제부터 집에 갈때 될수 있으면 그 아이와 함께 가도록 하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숫기 없는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던 것인지. 그 아이 인상이 어딘가 가라앉아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강단있어 보이기도 한, 한마디로 인상이 얼른 잡히지 않아 한번 친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일까.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성애병원 근처라는 그 애의 집은 우리 집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가야하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결국 나는 한번도 그 애의 하교를 도와주지 못하고 1학년을 마쳤고, 누구도 그것을 뭐라 한 사람도 없는데 나 혼자 미안하고 떳떳하지 못하여 그 애를 오히려 피하며 지내고 말았다.
그 아이는 생각보다 활달하여 반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글을 제법 잘 썼고 책도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 그녀가 나중에 이런 일을 하게 될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 모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주말드라마를 바로 그녀가 쓰고 있다. TV를 잘 안 보는 나도 주말에 아이가 좀 일찍 잠이 들라치면 다른 일 제치고 TV를 켜고는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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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9-01-25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기억이 있으시군요. 주말드라마 궁금해집니다.
가문의 영광? 유리의 성? 또 뭐가 있더라~~ ㅎㅎ
고등학교 1학년때 우리반에도 소아마비였던 친구 있었는데 도와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 아이도 책 많이 읽고, 이야기도 잘 했었는데....

hnine 2009-01-25 13:58   좋아요 0 | URL
'가문의 영광'이요 ^^

세실 2009-01-27 08:57   좋아요 0 | URL
오우 즐겨봅니다. 재미있네요.
한 남자만 가슴에 품고 살아가리라 다짐했던 여인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어요. 그런 와중에도 코믹한 설정들이 재미있네요.

hnine 2009-01-28 00:24   좋아요 0 | URL
재미있지요? 단아의 사랑도, 맏아들과 진아씨의 사랑도, 둘째아들과 활달한 경찰 아가씨의 사랑도 참 예쁘지요. 동동이도 그렇고요. 세실님 말씀대로 코믹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도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아요. 웃을 수 있으니까요 ^^

하양물감 2009-01-2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양한 그녀들이 있네요^^ 음, 저는 드라마를 거의 안보기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왠지 다르게 보일 것 같아요.

hnine 2009-01-25 19:56   좋아요 0 | URL
이전에 다른 드라마도 했을텐데 제가 눈여겨 보질 않았어요. 이번엔 우연히 알게 되었지요.

하늘바람 2009-01-26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마치 소설 읽는 것처러 재미나네요.이제 부터 그 드라마를 눈여겨 볼것같아요.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09-01-26 22:18   좋아요 0 | URL
꿈은 포기하지 않는한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이 친구를 봐도 그렇고요. 소설도 몇 편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었지요. 이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하늘바람님, 태은이 사진을 보면 저도 마음이 환해져요.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엄마의 사랑과 노력때문이라 믿어요. 복 많이 받으실거예요 ^^


상미 2009-01-2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글 읽고 ,검색 해 보니 내가 즐겨본 독특한 드라마를 몇 개 썼더라고.
내 사랑 못난이,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
올해는 드라마 덜 보려고 노력 중이라 가문의 영광은 못보고 있는데...
그 이름이 본명인거니? 아니면 나랑 그 친구는 한번도 같은 반이 아니었나보다.

hnine 2009-01-29 22:16   좋아요 0 | URL
본명 아니야.
'가문의 영광'은 시간이 좀 늦길래, 그나마 다린이가 그 전에 잠이 들면 얼른 TV켜고 보고 있지. 재미있더라.
 

Boss로 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한창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임신이라니. 도대체 뭘 하자는 말인가 이해를 못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때 내 나이 서른 다섯.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스에 있으면서 아이를 마냥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학위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남편을 당장 들어오게 하려는 압력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장남이기 때문에 져야할 짐이라고나 할까. 보다못한 남편의 지인 한분이 우리 부부에게 어서 아기를 가지는 수 밖에 없겠다고 슬쩍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시기도 했다. 

우물쭈물 하다가 Boss 에게 결국 임신했음을 알린 것은 임신 7개월째 되어서였다. 7개월 되었어도 내가 말 안하면 사람들은 임신한지도 모를 정도로 배가 안 나와 있었다. 얼마나 망설이다 말을 꺼냈는지. 고민에 또 고민. Boss의 반응은 뭐, 예상하던 대로였고. 

별다른 입덧을 하지는 않았으나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을 앞에 놓고도 전혀 식욕이 당기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안 먹은 적은 없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나름대로 손수 끓여 놓은 국과 밥을 맛있게 먹었다. 자다가 화장실 가느라고 자주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불편했으나 책에서 읽으니 다 이런 거래, 생각했으며, 일하다가도 잠이 얼마나 쏟아지던지. 그럴 땐 할 수 없이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이고 눈을 붙이고 나오곤 했다. 엄마께서 한국에서 붙여 주신 예쁜 원피스형 임신복은 한번도 입어보질 못했다. 나의 일터는 실험실.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활동하기 편리한 복장을 하다보니 나의 임신복은 남편의 셔츠, 그리고 동네 수퍼마켓에서 산 고무줄 처리된 바지가 대신 했고, 한국에서 보내온 그 촉감 좋고 따스한 임신복은 새것인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왔다. 정기 검진 받을 때마다 병원에서는 아기가 너무 작다고 했고, 출산 예정일 다가와서는 그 이유 때문에 일주일에 두번씩 병원에 가야했다. 그렇게 병원에 다녀온 날은 남편은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태어날 아기에 대한 걱정으로 기분이 안좋았던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나는 더 마음이 무거웠다. 

출산예정일을 2주 앞두고. 그때까지 나의 몸무게는 6kg이 늘었을 뿐이었다. 실험실일은 몸도 마음도 힘들게 했다. 그날도 아는 이웃 집에 가서 저녁을 배불리 얻어 먹고 잘 자고 있다가 양수가 터졌다. 그게 양수가 터진 것이라는 것도 책을 찾아보고 내가 내린 판단이다. 한국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여쭤보았더니 엄마도 모르신단다. 한밤중에 병원으로 전화했더니, 간단히 짐 챙겨서 병원으로 오란다. 짐? 아무 것도 준비해놓은 것이 없었던 나는 대충 나의 옷 몇 가지와 책, 뭐 그런 것을 가지고 병원으로 가서 그날 저녁에 아이를 낳았다. 낳자마자 보았더니 아이는 그때 남편이 입고 있던 옷의 주머니에 넣어도 될 정도로 작았다. 2.5kg.  한국의 가족들에게 전화하고, 다음으로 실험실에 전화해서 내일부터 몇 주 못나가겠노라고 얘기하고, 내가 하던 실험 뒷 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느라 한참 통화를 해야했다. 4주후엔 학회가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아이 낳고 3주후부터 학회 발표 자료를 만들고 실험실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으며 4주째에는 비행기를 타고 학회에 참석하느라 갓난쟁이 아이를 며칠 동안 남편 혼자서 돌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참 여러 가지 감정이 물밀듯 밀려오는 시절이다.
아이를 낳고서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까지의 얘기는 이보다 더 구구절절이니...웃음도 나오고 그러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뭐,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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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1-2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서러우셨겠어요. 아이 가졌을때는 정말 감정도 왜 그렇게 발달하는지 조그만 일에도 그렇게 맘도 많이 상하고 울지 않을 일도 울게되고 하던데 말예요.

마노아 2009-01-2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런 날이 있었네...예요. 그런데 그 날은 참 역사적인 날이기도 했네요. 낯선 곳에서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저는 일찍 나오는 바람에 그보다 더 작았답니다. 인큐베이터 두달 신세지었지요. ^^;;;

hnine 2009-01-24 00:33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그래도 무사히 아이를 낳아서 저렇게 개구장이 짓 하며 잘 크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지요. 차례 음식 1탄으로 식혜 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남아 그냥 끄적거려보았네요.

마노아님, 그러셨구나. 2주도 아니고 2달 동안, 어머니께서 얼마나 아기를 안스러워 하셨을까요. 2.5kg보다 더 작은 아기라면 세상에나...

미설 2009-01-2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전 알도 가졌을때 21킬로그램 이상 몸무게가 늘었던 터라, 어떻게 그렇게 하셨을까 싶네요. 담담히 쓰셨지만 이런 이야기 들으면 늘 울컥하지요.. 그래도 2.5킬로그램이 되어 나와 참 다행이었네요...

L.SHIN 2009-01-24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들었을텐데 담담하게 쓰셨네요.
그것이 세월의 힘일까요? ^^
죽을 것 같이 가슴 아픈 일도..시간이 지나면 점점 색이 바래더군요.

세실 2009-01-24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주밖에 못 쉬셨다니 원...어디 아픈곳은 없으신가요? 산후조리를 잘해야 하는데...
낯선 곳에서 친정엄마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셨다니 서러움도 크셨겠네요.
전 임신 4개월부터 예쁜 임신복 줄줄히 사놓고 골라 가며 입었답니다. 그때 생각하면 참 철없었어요. 히~~



hnine 2009-01-24 08:48   좋아요 0 | URL
미설님, 저도 아마 한국의 부모님 곁에서 있었다면 아기가 작다거나 체중이 안 늘어나서 걱정하거나 하는 일 없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 제가 그때 유일하게 먹고 싶었던 것이 바로 따끈따끈 호빵이었지 뭡니까 ㅋㅋ 그런데 결국 못먹었지요.

L.SHIN님, 말씀하신대로 세월의 힘이겠지요. 그런데 여자들 이런 얘기는 남자들 군대 얘기 만큼이나 cliche 아닌가 싶네요 ^^ 그래도 종종 생각이 나서...

세실님, 그때 긴장을 해서 그런지 아이 낳고 일주일만에 저는 반팔 옷 입고, 찬물 만지며 집안 일도 다 하고 그랬네요 ㅋㅋ 우리 나라에는 정말 예쁜 임신복 많이 나오더라구요. 나중에 임신과 상관 없이 한번 사다가 입어 볼까, 이런 생각 하는 제가 진짜 철이 없는거죠? ^^

프레이야 2009-01-2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는 고생스러웠던 일들도 이렇게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같아요.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겠죠. 6킬로그램밖에 안 늘고 예쁜 임신복도 못 입고 지나가셨다니..
근데 저도 임신복은 예쁜 거 별로 안 입고 지나가서 아쉬워요.ㅎㅎ

hnine 2009-01-24 22:19   좋아요 0 | URL
오히려 당시에는 당장 닥친 대로 적응하며 사느라 고생인지 호강인지 따져볼 겨를도 없었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한숨 돌리고 뒤돌아보니, 쉬운 시간은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고생하신 분들 생각하면 이런 얘기 하기도 조심스럽지요.

기인 2009-01-2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이에요 ^^ 저는 공익 다녀왔어요.. 저도 이제 결혼이고, 함께 외국나가야 되서 걱정인데, 글을 읽어보니 왠지 위안(?)이랄까, 남들도 함께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드니 그런가봐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hnine 2009-01-25 14:04   좋아요 0 | URL
기인님, 제 글이 위안이 될만한게 뭐 있을까요. 외국에 나가시는군요. 생각해보면 그때가 어렵고도 한편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많은 추억을 만들수 있었던 시간이니까요. 힘찬 걸음 내딛으시길 응원해드립니다.

울보 2009-01-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무럭 무럭 엄마옆에서 잘 자라는 아이를 보면 참 흐믓하시겠어요,,
조금 있으면 새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아이랑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세요,,

hnine 2009-01-26 22:19   좋아요 0 | URL
아이 출생에 관한 얘기는 모든 엄마들이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제게 온 아이가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인데 가끔 그걸 잊고 불평을 하네요.
울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상미 2009-01-29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설 연휴 마지막 날 서랍 정리를 하다가
네 편지 모아둔걸 읽었단다.
넌 기과연 시절.영국 살던 시절.
난 신혼초 아파트, 목동 아파트 살 시절이었고.

hnine 2009-01-29 22:18   좋아요 0 | URL
예전에도 말한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나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아마 제일 먼저 너를 만나보면 되지않을까 생각이 든적이 있단다 ^^

상미 2009-01-31 01: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다음에 다 돌려줘야지 하고 있어.
그게 언제일지는 나도 몰라.ㅋㅋ